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80화 (80/239)

< 62화 블렌디드 위스키, 막걸리, 요구르트 >

마을로 향하면서 카우보이 목장주가 운영하는 목장을 보게 되었다.

멀리서보니 방목지에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몰려다니는 것이 보였다.

문득 농장에 있는 돼지 두 마리가 생각났다.

다른 가축들은 아직 그대로도 충분한데, 돼지는 한 마리쯤 더 있으면 좋을 것도 같았다.

송로버섯과 마나 물망초를 기르고 있는데, 붉은 석양초를 기를 녀석이 없기 때문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새끼를 밴 것 같았지.”

가축 암컷들의 배가 불룩했었다.

아마도 닭이 유정란을 낳았을 때랑 비슷한 시기에 새끼를 밴듯했다.

게임을 한지 2일 째에 유정란을 낳았으니까, 다른 아이들도 같은 시기에 새끼를 배었다면 이제 새끼를 밴지 4일째란 말이다.

게임으로 구현된 바로는 일주일간 임신하고 새끼를 낳는다고 하니까, 3일 후에 낳는다.

“가축이나 하나 더 살까?”

적어도 돼지는 일단 붉은 석양초를 키울 녀석이 하나 더 있으면 좋기 때문에 특히 사고 싶었다.

그러니 돌아가는 길에 돼지 한 마리를 더 사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마을로 향했다.

목적지는 식료품 상점, 그곳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식료품점 아가씨가 나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동물이랑 정령들도 잔뜩 왔네요!”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씨앗 좀 사러 왔습니다.”

“이번엔 뭘 사러 오셨나요, 농부 이방인님?”

“사탕무 씨앗 200개랑 토마토 씨앗 100개, 오이 씨앗 100개, 그리고 상추랑 양파 씨앗 100개씩요.”

“정말 골고루 사가시네요.”

“제가 선술집을 열었는데, 메뉴를 추가하고 있어서요.”

“어머 굉장하네요. 이방인 분들 중에 선술집을 여신 분은 아마 유일하실 거예요.”

그녀와 간단한 수다를 떨고 난 뒤, 나는 그녀에게서 씨앗을 건네받고 3만 골드를 주었다.

교환을 마친 뒤,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먼 마을에선 식료나 물품의 가격이 달라요.”

“시세차이가 있단 말이군요.”

“네, 그래서 상단이 이득을 보는 거죠. 그래서 특별히 알려드리는 건데요······ 마법사 길드를 이용하면 손쉽게 마을간 이동을 할 수 있어요. 돈이 좀 들긴 하지만요.”

“아, 들어 본 적 있습니다.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요.”

“그곳에서 비싼 물건을 가져가서 팔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마을의 특산품을 사거나 채집할 수도 있어요.”

“한 번 기회가 되면 이용해 봐야겠군요.”

식료품점 아가씨와 대화하면서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다른 마을에 가본다라, 조금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내가 아무리 농장일 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해도 기왕 게임을 하고 있으니 다양한 풍경을 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모험까진 아니더라도 여행은 하고 싶은 것.

한 번쯤 산책삼아 돈 좀 쓰더라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안녕히 가세요!”

멍멍

왈왈!

냐오옹

꼬꼬꼭

삐이이익

식료품점 아가씨의 배웅에 아이들이 제각각 울음소리를 내며 답했다.

나도 그녀에게 인사를 하곤 마을을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정말로 돼지를 살지 고민했는데, 하나를 더 사기로 결심했다.

연금술 도구를 하나 더 사든지 아니면 만들어서 석양초를 모으고 그걸로 체력회복의 포션도 만들면 딱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카우보이 목장주의 목장으로 향했다.

“여어 오랜만이군.”

“안녕하세요.”

여전히 카우보이 같은 말투의 목장주였다. “오늘은 내 평화로운 목장에 무슨 일로 찾아왔지? 자네 동물친구들 구경이라도 시켜주려고 왔나?”

“그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사실 돼지 한 마리 사러 왔습니다.”

“두 마리로는 부족한 모양이군.”

“네, 둘 다 허브돼지로 쓰고 있는데······ 하나 쯤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새끼를 배긴 했지만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요.”

“급한 거거나, 거창한 계획이라도 있나보군.”

“거창한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죠.”

“허브돼지를 늘려서 약초나 버섯을 키울 생각인가?”

“다 아시는군요.”

“그야 나는 머리 좋으니까.

카우보이 목장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시원시원한 성격이면서도 자의식이 강한 사람 같다.

아니, 사람은 아니라 NPC지만 말이다.

“괜히 조언 좀 하자면 말이야, 일단 암컷으로 사가는 것을 추천하지. 지난번에 암수 한 마리씩 사갔으니, 수컷끼리 괜한 분쟁이 안 생기도록 암컷을 사가는 편이 좋아.”

“그렇군요.”

“그리고 말인데······ 일을 얼마나 벌릴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돼지를 더 많이 필요로 할 지도 몰라. 그래서 말인데, 가축 수가 늘어나면 축사도 당연히 늘려야하고 방목지도 더 커야해. 그러지 않으면 가축의 컨디션이 떨어지니까 주의하라고.”

“알겠습니다.”

“돼지의 가격은 지난번처럼 1만 골드야.”

카우보이 목장주의 조언을 새겨듣고 1만 골드를 건네곤 돼지를 받았다.

“잘가라구.”

꿀꿀

손가락 인사를 하는 카우보이 목장주를 뒤로하고 새로운 동물친구인 돼지를 데리고 농장으로 향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농장은 아무 일 없었지?”

“네, 이상 없습니다.”

농장에는 로렌의 창을 들고서 경비를 서고 있는 골램이 있었다.

나는 우선 돼지를 축사에 몰아넣은 뒤, 할 일을 생각했다.

일단 와인 발효액을 숙성통에 옮긴 뒤 발효통이 비어있으니까, 그걸 채우기로 했다.

보리는 188개가 있고, 밀은 390개가 있으니 각각 스카치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보리 150개를 사용해서 50리터의 스카치 위스키 발효액을 만들고, 그레인 위스키도 50리터만 만들까?”

“주인님 스카치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서 숙성시키면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 그래.”

블렌디드 위스키란 말에 귀가 번뜩였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그레인 위스키와 스카치 위스키를 서로 섞어서 맛과 향은 절충한 것이다.

너무 강하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게 말이다.

위스키 애호가들 중에는 스카치 위스키의 맛과 향을 망친다며 블렌디드 위스키를 스카치 위스키보다 한 수 아래로 보기도 한다지만, 사실 위스키에 좋고 나쁨은 없다.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인 것이다.

여하튼 블렌디드 위스키도 마시고 싶은 생각에 나는 얼른 발효통 100개에 각각 그레인 위스키와 스카치 위스키의 발효액을 발효시켰다.

이스트가 200개 소모되었다.

[그레인 위스키 발효액 발효 중 - 1시간 59분]

[스카치 위스키 발효액 발효 중 - 1시간 59분]

“그럼 발효통이 100개 남는데, 이건 뭘 만든다······ 그래, 막걸리를 만들어 볼까?”

쌀이 264개나 있다.

50리터 정도는 쌀 150개를 써서 만들 만하다.

나는 발효통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막걸리를 검색해보았다.

[제작, 막걸리

한국의 전통 양조주. 본래 조선의 고급술인 청주(淸酒)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저급 술이지만 지금은 청주는 대부분 실전되고 막걸리는 대중적인 전통주로 남았다.

필요한 재료 : 쌀 3개, 이스트 2개, 물 1리터

필요한 도구 : 발효통, 농사 스킬 Lv3, 요리 스킬 Lv3]

막걸리도 제작 카탈로그에 있었다.

설명이 꽤 인상적인데, 막걸리는 청주를 만들 때 부산물로 만든 술이 맞다.

하지만 청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실전되었고, 청주라는 호칭도 일본 술을 가리키는 걸로 쓰였다.

그때 탁주라는 의미는 조선술을 가리켜서 조선 술 자체를 저급한 것으로 표현했다.

가슴 아픈 역사인데, 여하튼 그런 시간이 지난 뒤 막걸리는 대중적인 술로 남았다. 요즘은 청주의 부산물이 아니라 좋은 쌀을 이용해 막걸리만을 위한 양조법들도 많아서 맛도 좋다.

시제품에는 탁 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사이다나 탄산을 섞기도 한다지만······

“이건 탄산을 넣진 않으니까, 전통 막걸리 맛이겠네.”

사이다를 넣는 막걸리도 맛있지만, 한 번 그걸 쓰지 않은 고급 막걸리도 마셔보고 싶다.

막걸리 맛은 참 다양하다는 평이 있어서 정형화되어 있진 않지만, 게임에선 과연 어떻게 구현했을지 궁금했다.

나는 얼른 막걸리의 발효를 시작했다.

[막걸리 발효 중 - 1시간 59분]

“이제 발효통 50개가 남았네. 뭘 더 만들지?”

소주가 떠올랐지만 소주는 막걸리와 마찬가지로 청주의 밑술로 만드는 것이라 쌀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은 쌀은 이제 밥을 만드는데 써야 해서 더 쓰기 곤란했다.

뭔가 다른 것이 있을까?

“술만 만들기 뭣한데, 요구르트라도 만들까?”

손님들 중에는 미성년자도 많다.

음료로는 우유와 주스 종류를 팔긴 하지만, 요구르트도 추가시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먹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회사일로 바쁜 내가 이럴 때 아니면 내가 언제 직접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어 보겠는가?

나는 요구르트를 찾아보았다.

[제작, 요구르트 1리터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것. 요거트, 요플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필요한 재료 : 이스트 2개, 우유 1리터

추가 재료 : 취향에 맞는 과일 3개, 혹은 그 외의 적당한 첨가물

필요한 도구 : 발효통, 농사 스킬 Lv4, 요리 스킬 Lv4]

"있네, 근데 취향에 맞는 과일이라니, 이건 무슨 소리지.“

발효통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다만 추가 재료에 적힌 말이 의문스러웠다.

그러자 골램이 다가와 말했다.

“요구르트는 추가재료에 따라 종류가 달라집니다. 아무것도 넣지 않으면 플레인 요구르트, 과일을 넣으면 해당 과일의 요구르트가 됩니다. 꿀이나 설탕, 소금을 넣어도 달라집니다.”

“그렇군! 종류를 다르게 만드는 거구나. 그럼······ 딸기로 하자!”

딸기는 골램이 산더미처럼 수확한 것이 있다.

플레인 요구르트도 좋긴 하지만 그건 조금 건강식 같은 기분이니까, 딸기 요구르트면 어쩐지 인기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은 발효통 50개에 요구르트 50리터를 제작시켰다.

“자, 이제 발효통은 끝났고······.”

이제 해야 할 일은······

“옥스야, 밭 갈자!”

음머어어어어어

······또 옥스를 데리고 밭을 가는 일이다.

사온 씨앗들을 심어야하니 말이다.

옥스를 두 번 노동시키는 것은 좀 너무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옥스는 내 말을 듣곤 알아서 온순하게 축사에서 나오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 나는 가서 등을 쓸어만져 주곤 밭으로 향했다.

골램을 따라서 불돌이와 실버, 물방울, 바람이, 태산이도 따라왔다.

그렇게 또 밭을 갈고, 비료를 만들어 뿌리고, 바람이와 함께 씨앗들을 골고루 심었다.

[농사 스킬 레벨 업!]

몇 번이고 반복해서 농사를 지어서 그런지 벌써 농사 스킬이 7레벨이 되었다.

농작물이나 가공품은 이제 3등급이나 2등급이 나올 것이다.

그걸로 만든 요리는 더 좋은 등급이 나올 확률이 높겠지.

맛이 더 좋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자 그럼······ 유리 잔이나 만들어 볼까.”

위스키 잔이 20잔이 있지만 턱없이 모자라다.

게다가 와인을 만들면 와인잔도 필요하다.유리공예는 좀 힘들지만······

“저도 돕겠습니다. 주인님.”

······골램이 나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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