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샌드위치와 된장삼겹살 >
나는 다시 설탕 만들기로 돌아왔다.
이미 많은 설탕을 만들긴 했지만 기왕 하는 거 잔뜩 만들어놓고 필요할 때 마다 꺼내쓰려고 남은 사탕무를 계속 삶고, 설탕물을 원심분리기에 돌렸다.
[잘 만든 4등급 설탕 220개]
약 2시간이 좀 덜 되서 목표했던 설탕 220개를 다 만들 수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설탕을 조금 집어먹어 보았는데, 설탕 맛이 그렇듯 굉장히 달았다.
이걸로 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간 꿀로 대체하고 있던 것들도 설탕을 넣을 수 있었다.
다만 그건 남에게 팔 땐 조금 물어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설탕 대신 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설탕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으음, 조금 쉴까.”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2시간 가까이가 지나서 곧 발효가 끝날 와인 발효액을 숙성통에 집어넣어야 하고, 작물도 다 자랄 시간이 되었다.
유리잔을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위스키 잔도 더 필요하지만 와인을 만들었으니 와인 잔도 필요하다.
작물을 다 수확하면 메주를 빚어야할 것 같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적당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시금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는 신조를 발휘할 때였다.
“실버, 불돌아 물어와!”
멍멍!
왈왈!
나무 공을 던져 불돌이와 실버와 어울려 주었다.
불돌이와 실버는 서로 경쟁하듯 먼저 공을 물어 와서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누가 먼저 가져오든 둘 다 사랑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골램은 낚싯대를 들고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호숫가에는 이미 호크와 물방울이 있었다.
꼬꼬꼭
냐아아아
싸움닭이 되어서 이제 독수리만큼이나 큰 호크의 등 위에 아기 고양이 물방울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물고기를 골램과 호크에게 몰아주고 있었다.
호크는 곧잘 물속으로 고개를 처박더니 아주 손쉽게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리곤 가마우지처럼 뭍으로 돌아와선 물고기를 뱉고 다시 물방울을 데리고 수영하는 것을 반복했다.
“닭이 전보다 커진 기분인데.”
“진짜네, 진화라도 했나?”
“나중에 봉황되는 거 아냐?”
“닭 등에 타 있는 고양이, 너무 귀엽다.”
“나는 강아지랑 개가 더 귀여움.”
어느새 모여든 구경꾼들이 애들의 귀여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특히 호크는 덩치가 커져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선을 끄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삐이이이이익!
“오오! 매다!”
“저것도 정령이야! 색깔을 보면 바람의 정령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바람의 정령은 녹색 바람이니까?”
바람이는 하늘을 용맹이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급강하 하면서 매의 사냥감이라고 할 수 있는 호수의 물고기를 낚아챘다.
그 광경이 너무 멋져서 구경꾼들이 전부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바람이는 낚은 물고기를 골램과 호크가 낚은 물고기를 쌓아놓는 곳에 놔두곤 내 어깨로 돌아왔다.
삐이이익 “잘했어, 바람아야.”
삐이익
내 칭찬에 바람이가 척하며 경례로 답했다.
그것조차 구경꾼들에겐 잘 조련된 매훈련사가 보이는 묘기로 보였을 것이다.
“하하, 저 녀석 경례를 다 하네.”
“완전 동물 서커스임. 정령술 짱인데 왜 다들 안함?”
“그야 마법이 편하고······베타테스터들 말에 따르면 저렇게 정령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베타테스터들이 정령들에게 불친절해서 그런 거 아님? 합리적 의심이 좀 드는데.”
“그럴지도, 베타테스터들은 다 랭커를 목적으로 하니까 성질도 급하기 일쑤잖아.”
“나는 정령사 해봐야겠다. 똥망하면 어차피 초보캔데 지우고 새로 키우면 되지.”
정령술이 화두가 되는 모양이다.
한 사람이 정령사를 해봐야겠다는 말도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령술이 인기가 생기는 것 아닐까?
확실히 생활 스킬이랑은 달리 힘들지는 않으니 정령술은 배울만한데, 아마도 나쁜 소문이 있어서 사람들이 꺼리는 모양이었다.
그게 내 덕분에 다시 고려되었다면 나쁜 일이 아니라서 꽤 기분이 좋아졌다.
여하튼 잠깐 쉬는 사이 물고기를 30마리 정도 낚았다.
그물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낚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면 꽤 많이 낚은 것이다.
“다시 일 좀 해볼까. 골램아, 작물부터 수확하자.”
“예, 주인님.”
휴식과 낚시는 이쯤에서 멈추고 다시 농사일을 할 시간이었다.
나는 밭으로 향해 아름답게 펼쳐진 작물의 밭을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채소들과 황금빛 같은 밀과 보리와 벼의 경광.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도 무르익는 광경이다.
나는 골램에게 채소의 추수를 맡기고, 나는 추수용 대낫으로 벼와 보리, 밀의 수확을 시작했다.
삭, 삭 하고 벼와 보리, 밀을 베어가는 느낌이 매우 시원하고 좋았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벼와 보리, 밀은 다 수확했고, 나도 나무 호미를 들어서 알이 꽉 찬 양배추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수확을 하면서 인내심을 길러 정신력이 오릅니다.]
[정신력이 2 올랐습니다.]
“근데 이거 하나로 샌드위치를 여러 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소소하게 정신력이 올랐다.
한편 나는 알이 꽉 찬 양배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샌드위치는 조각으로 먹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1개로 샌드위치 여러 개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요리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검색 해보았다.
[요리, 샌드위치 10개
포커라도 하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 앗! 하는 사이 다 먹어버리고, 어느 틈에 배가 부른 요리이기도 하다.
필요한 재료 : 밀가루 10개, 양배추 1개, 베이컨 10장, 계란 10개, 토마토 10개, 감자 10개
추가 재료 : 피클, 그 외 적당한 첨가물
필요한 도구 : 프라이팬, 불, 요리 스킬 Lv2]
[이 제조는 간소화된 제조과정을 요구합니다.]
예상대로 여러 개인 10개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재료가 제법 많이 들었다.
이러면 이건 미리 만들어두고 파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재료 중 몇 개가 눈에 띄었다.
“토마토랑 피클······ 토마토는 만들어서 심으면 되겠지만 피클은 또 어떻게 만들지?”
“잼과 마찬가지로 절임통으로 만듭니다, 주인님.”
“앗, 골램아.”
어느 틈에 다가온 골램이가 조언해주었다.
골램이는 이때다 싶은 것인지 계속 조언을 했다.
“샌드위치를 만들려 하시는 겁니까?”
“응.”
“샌드위치의 적당한 첨가물로는 케첩과 마요네즈가 있습니다.”
“그렇군, 케첩은 토마토로 만들고······ 마요네즌 달걀로 만들려나?”
“그렇습니다.” “그럼 토마토도 키워봐야겠네.”
토마토는 생산력이 무척 좋아서 텃밭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냥 집에서 테라스나 배란다를 이용해 기를 수 있는 작물이다.
과일처럼 생겼고, 과일의 특징도 가지고 있지만 과일처럼 다년생이 아니라서 채소로 취급 받는 특이한 녀석이기도 하다.
그걸 만들어서 케첩도 만들고 샌드위치도 만들면 꽤 재밌을 것 같았다.
마요네즈나 피클을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말이다.
수확하고 나서 새로 사야하는 작물 씨앗들을 다시 정리 해봐야할 것 같다.
곧 골램과 내가 힘을 합쳐서 작물들을 모두 수확할 수 있었다.
밀, 벼, 보리는 각각 100개씩 수확했고, 감자는 엄청난 수확량을 보여서 567개를 수확했다.
콩도 만만치 않았다, 436개의 콩이 수확되었다.
양배추는 아쉽게도 한 포기씩 나오는 작물이라 사탕무처럼 100개뿐이었다.
“다음엔 한 개씩만 나오는 작물은 더 많이 심는 게 좋겠다.”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내 말에 골렘이 맞장구를 쳤다.
100개도 많은 것이긴 하지만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가 좀 있었다.
그럼 씨앗 한 개에 1개만 열리는 작물은 더 많이 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탕무도 다 떨어졌지······.
일단 사탕무 씨앗을 200개 사야할 것 같다.
그리고 토마토 100개······
“피클을 만들려면 오이가 필요하려나?”
“식초도 필요합니다. 식초는 대표적으로 사과를 이용해 만들 수 있습니다.”
“식초만으로 피클 맛을 낼 수 있어?”
“설탕과 소금, 그리고 주인님의 세상에선 피클링 스파이스라는 향신료가 필요합니다만, 그것은 절임통이 대신해줄 겁니다.”
“절임통이란 것도 많이 만들어야겠네.”
“절임통은 용량이 크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다.”
······골램의 조언대로 사과식초도 만들면서 오이를 100개 심어야할 것이다.
그럼 나머지 200개의 작물은 뭘 심을까?
먼저 오늘 만들 음식을 제대로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페스츄리는 특별히 어레인지를 안하는 이상 대단한 게 들 것 같진 않고, 빵은 페스츄리와 샌드위치로 오늘은 충분할 것 같다.
그럼 일단 한식인데, 또 찌개 메뉴를 생각하기엔 좀 뭣했다.
“안주로 쓸만한 고기요리면 좋겠는데.”
내 선술집 메뉴에는 고기가 좀 부족하다.
작물을 많이 쓰려고 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안주거리도 되고 식사거리도 되는 고기요리.
나는 우선 돼지고기가 많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돼지고기하면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삼겹살’이었다.
그래서 요리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 삼겹살을 검색해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여러 개의 삼겹살 요리가 검색되었다.
그 중 하나 눈에 띄는 것을 찾았다.
[요리, 된장삼겹살
식사뿐만 아니라 술안주로 제격인 요리. 된장의 구수함으로 돼지고기의 맛을 살린다.
필요한 재료 : 돼지고기 1개, 상추 5개, 양파 1개, 아무 종류의 술 약간, 된장 약간
추가 재료 : 설탕, 마늘, 후추, 식용 기름, 그 외 적당한 첨가물
필요한 도구 : 프라이팬, 불, 요리 스킬 Lv4]
[이 제조는 간소화된 제조과정을 요구합니다.]
미리보기로 보니 아주 풍성하고 군침이 도는 요리였다.
식사용으로도 안주용으로도 그만일 것 같아 적당해 보였다.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재료 중 없는 것은 상추와 양파.
그렇다면 상추와 양파를 100개씩 사면 될 것이다.
정리하면 사탕무 씨앗 200개, 토마토 씨앗 100개, 오이 100개, 상추와 양파 각각 100개씩이다.
어쩌다보니 또 다 텃밭에서 잘 기르는 농산물들이다.
농사는 그만큼 무궁무진한 면이 있었다.
“일단 마을에 가기 전에 와인 발효액들을 숙성통에 옮겨둘까.”
발효통을 비워야하고, 와인을 숙성시켜야 하므로 그 작업을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발효통으로 향한 뒤, 목공 스킬로 숙성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발효통을 하나하나 비우면서 완연한 붉은 빛의 와인을 숙성통에 담았다.
꼭 와인 장인이 된 기분이었다.한 번 마셔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숙성이 되지 않아서 아마도 쓴맛 나는 포도주스 맛일 것이라 참았다.
위스키를 숙성시켰을 땐 정말로 천상의 맛을 냈는데, 와인도 그만큼 기대가 되었다.
“농장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안심하고 마을에 다녀오십시오.”
“다녀올게, 골램아.”
멍멍
왈왈
꼬꼬댁
삐이이익
냐아앙
[꾸벅꾸벅]
골램이 이번에도 농장을 지키고 실버를 비롯한 동물과 정령 친구들을 데리고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