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5일차 농장일 시작 >
“안녕하세요, 공진씨.”
“오셨군요, 시화씨.”
여전히 멋진 검은 갑옷을 입은 시화가 농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그를 선술집으로 들였다.
“아직 술을 만들지 않아서 술은 대접하지 못하겠네요, 하지만 사과주스나 딸기주스, 포도주스는 얼마든지 가능해요. 뭐로 드릴까요?”
“사과주스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의 주문대로 사과주스 하나를 내주었다.
시화는 단숨에 그걸 다 마셨고, 곧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강화용소재들을 가져왔습니다. 한 번 보시죠.”
시화는 그렇게 말하곤 교환창으로 강화용소재들을 보여주었다.
아예 가져가라는 듯이 ‘거래완료’를 누르면서 말이다.
[라이칸슬로프의 정수 50개]
[만티코어의 정수 50개]
[리자드맨의 정수 50개]
[데스나이트의 정수 2개]
“꽤 여러 가지군요.”
“네, 적당히 모아오다보니까요.”
“정수는 얼마에 지불해드려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돈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이런 정수는 지금 생활 스킬을 쓰는 사람이 사실상 공진씨 뿐이라 거래가치가 없습니다. 다들 상점에 헐값으로 팔아버리거나 아니면 그냥 버리죠.”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군요.”
“그런 셈이죠. 일단 받아주십시오.”
나는 시화의 요청대로 정수들을 받았다.
그러자 시화가 계속 말했다.
“그 속성강화 말이에요.”
“아, 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일단 저도 잘 모르는 겁니다만.”
“히든 클래스인 공진씨가 만드는 거라면 분명히 뛰어난 거겠죠. 다른 길드와 격차를 조금이라도 벌일 수 있다면 이득입니다. 다만 저도 당장에 많은 투자를 하기엔 부담스러우니 두 개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죠, 특별히 더 요청할 게 있습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시화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가 곧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만들어주셨던 대로 양모 옷과 레더아머를 만들어주셔도 좋습니다만, 이번엔 철제 갑옷이나 무기는 어떻습니까?”
“흠, 그건 재봉이 아니라 대장기술의 영역입니다만······ 아마 안 될 건 없겠지만요.”
“부탁드립니다. 무기와 철제 갑옷의 수요도 좀 있어서요.”
“생각해보죠.”
흥미가 동했기 때문에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면 대장기술을 배워놓고 갑옷이나 무기는 만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 기회에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시화는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곤 농장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나는 기지개를 펴면서 농장을 둘러보았다.
“끄으으응, 오늘도 슬슬 농장일을 해볼까.”
멍멍!
왈왈!
꼬꼬꼭!
냐오오옹
삐이이익
내가 기지개를 펴고 있자, 아이들이 내 주변을 맴돌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녀석들을 쓰다듬으며 귀여워해주곤 풀을 뜯고 있는 옥스에게로 향했다.“옥스야 오늘도 밭 갈자.”
음머어어어어어
옥스는 온순하게 울며 나를 따랐다.
밭으로 향하는 동안 옥스의 꽁무니를 다른 아이들이 따라왔다.
그건 옥스에게 쟁기를 씌우고 밭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밭가는 것을 골램과 태산이가 같이 도왔기 때문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애들이 주변을 맴돌아서 서로를 쫓아다니며 놀았기 때문에 볼 거리가 있어서 심심하지도 않았다.
어느덧 밭을 다 갈았다.
“바람아, 이제 비료 뿌리는 것도 도와줄 수 있지?”
삐이이이익!
바람이는 매의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곧 바람이와 함께 비료를 밭에 골고루 뿌렸다.
내가 대충 손대중으로 뿌리는 것보다 더 고르게 뿌려서 편하고 좋았다.
이제 씨앗들을 뿌릴 차례다.
“자, 오늘의 작물은 감자, 양배추, 밀, 콩, 보리, 쌀인가.”
어제 사두었던 작물의 씨앗들이었다.
감자와 양배추는 샌드위치용, 밀은 술이나 밀가루, 콩은 된장과 간장을 만들기 위해 메주를 만드는데 쓰일 것이다.
보리는 술 담그는데 쓰일 것이고, 쌀은 밥을 지을 때도 쓸거지만 막걸리와 소주를 만들 때 쓰인다.
오늘도 만들어 볼 것이 잔뜩 있다.
나는 뭔가 기대가 되는 기분으로 바람이와 함께 씨앗을 심었다.
분수기가 작동되었고, 자동으로 작물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옥스를 포함한 가축들이 잡초를 뜯어먹기 시작해서 밭쪽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작물이 자라는 동안 해둬야 할 건······ 일단 이스트를 만들어둬야겠다.”
이스트가 항상 모자라다.
술이랑 빵에 너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걱정할 것이 아니기도 했다.
“골램 덕분에 사과가 잔뜩 있어서 이스트 걱정은 없겠어. 잘했어, 골램아.”
“감사합니다.”
내 칭찬에 골램이는 건조한 기계음으로 대답했지만 어쩐지 칭찬을 받아서 쑥쓰러워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발효통으로 향했다.
“발효통은 200개······ 사과는 2300개를 훌쩍 넘기니까, 그냥 이스트 2000개를 만들어두는 게 좋겠다.”
나는 하는 김에 이스트를 잔뜩 만들어 놓기로 하고 발효통 200개에 사과를 다 채워넣었다.
채워넣는 것도 일이라서 골램이 도와주었다.
“그런데 과일 쓰임새가 이스트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과의 경우 식초와 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잼의 경우 포도와 딸기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식초와 잼이라······ 일단 잼은 빵에 발라 먹으면 맛있겠는데.”
“잼은 절임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설탕이 필요합니다. 이는 꿀로는 대체할 수 없습니다.”
“설탕을 만들어야겠구나.”
“설탕은 칼로 썬 사탕무를 삶아서 우려낸 물을 원심분리기로 분리시키면 물과 설탕으로 분리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설탕을 만들어보자. 매운탕용 사탕무를 좀 사와야겠네.”
사탕무는 55개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밭은 가득 찼으니 4시간 뒤에 또 다른 작물을 사러 식료품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씨앗이 아니라 그냥 사탕무를 사올 순 있지만······ 그럼 좀 재미 없으니까 꼭 필요할 때 빼곤 웬만해선 키워서 먹을 것이다.
여하튼 곧 발효통에 사과들을 전부 채워 넣었다.
[이스트 발효 중 - 1시간 59분]
“자, 그럼 설탕을 만들어볼까?”
“우선 가마솥에 물을 채우고 사탕무를 썰어서 담그십시오.”
“알겠어.”
나는 흑요석 단검을 식칼로 삼아 사탕무를 썰었다.
도마가 있으면 편해서 나무 도마도 목공 스킬로 만들었다.물방울이 가마솥에 물을 채워 넣어 주었고, 사탕무를 적당히 썰어 넣었다.
너무 넘치지 않게 적당히 넣는 것이 포인트였다.
곧 불돌이가 아궁이로 쏘옥 들어가서 불을 떼면 얼마지 않아서 가마솥이 펄펄 끓었다.
사탕무의 당분이 물에 충분히 녹을 때까지 푹 삶아야 했다.
몇 십분 뒤, 충분히 삶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가마솥을 열어서 끓는 물을 수저로 퍼선 호호 불어 먹어보았다.
“달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이제 이 물을 담아서 원심분리기에 돌리면 설탕이 완성됩니다. 그 전에 요리 스킬의 제작 목록에서 설탕을 찾아 사용하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스킬을 쓰지 않으면 완성이 안 되는 거야?”
“간소화된 생산과정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해야만 설탕이 완성됩니다.”
“그렇군.”
현실의 설탕은 더 복잡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하튼 나는 골램의 말대로 요리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설탕을 검색해 찾았다.
[요리, 설탕 5개
단맛이 나는 가루 결정. 정제가 어렵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요리 전반에 쓰여서 단맛과 풍미를 더 한다.
필요한 재료 : 사탕무 삶은 물 1리터
필요한 도구 : 마법공학 원심분리기, 요리 스킬 Lv3]
나는 제작 버튼을 누르곤 가마솥을 기울여 나무 대야에 설탕물을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원심분리기에 옮겨 담았다.
원심분리기의 용량이 1리터라서 조금 불편했다.
이것도 여러 개 만들어 버릴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우선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아까 가마솥에 사탕무를 다섯 개 썰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설탕물의 용량은 대략 4리터 정도.
원심 분리기에 네 번 돌릴 수 있으니까 설탕 20개를 만들 수 있다.
사탕무는 55개 있으니까 44리터의 설탕물을 만들 수 있고, 따라서 총 220개의 설탕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다.
“원심분리기 용량이 1리터뿐이니까 한 번에 10분이니 440분이 걸리네. 하나 더 만드는 편이 좋겠다.”
원심분리기는 목공 스킬로 만들기 때문에 만드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즉시 마법공학 스킬을 써서 원심분리기를 제작했다.
망치를 두들겨 본체를 만들고 마법공학 회로 세공도구로 회로를 땜질했다.
“주인님, 저에게 마법공학 회로 세공도구를 만들어주시면 제가 제작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 좀 이따 대장간을 쓸 때 꼭 만들어야겠다.”
골램이 돕고 싶은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대장간을 쓸 때 꼭 만들어주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어제도 유리잔이 부족한 상태로 장사를 했었다.
좀 이따 유리잔도 만들고 시화가 부탁한 제작도 해봐야하니, 하는 김에 세공도구도 만들기로 했다.
여하튼 금방 원심분리기 하나를 더 만들었다.
이걸로 작업시간이 절반으로 감소한 셈이니, 220분이면 된다.
대략 4시간. 밭의 작물이 완성되는 시간과 적절하게 맞다.
“하지만 도중에 이스트가 완성되니까······ 그걸로 뭐 좀 만들어야겠다.”
발효통을 놀리는 것은 좋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일단 두 시간동안 설탕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이스트 2000개가 다 만들어졌다.
[퀘스트 달성!]
[500 업적 점수 획득]
100개의 가공품을 만들라는 퀘스트가 간단히 완료되었다.
오늘은 더 이상 퀘스트를 할 순 없지만, 500이라는 많은 업적점수를 얻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메시지창을 지웠다.
“일단 이 이스트들로는······.”
그리곤 이스트로 무얼 만들지 생각해보았다.
간단하게 2시간으로 발효통을 이용해 만들 만한 것.
나는 곧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손가락을 튕겼다.
“생각해보면 포도도 잔뜩 있잖아? 포도라면 역시 그거지.” 나는 즉시 발효통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그것을 검색했다.
[제작, 와인 발효액 1리터]
포도를 이용한 술, 고대부터 이어진 고급술이다. 아직 숙성이 되지 않고 발효만 거쳤기에 맛은 덜하지만 이대로도 마실 수는 있다.
필요한 재료 : 포도 3개, 이스트 2개, 물 1리터
필요한 도구 : 발효통, 농사 스킬 Lv3, 조합 스킬]
“일단 이거다.”
새로운 술을 담가보고 싶었는데, 와인은 좋은 시작일 것 같았다.
숙성통을 새로 하나 만들면 다 채워 넣는데 200리터의 발효액이 필요하다.
거기에 드는 포도는 600개, 이스트는 400개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담스러운 숫자였지만, 지금은 포도도, 이스트도 워낙 많아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나는 숙성된 와인의 맛은 또 어떨지 굉장히 기대를 하면서 발효통을 채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