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4일차 로그아웃 >
멍멍!
왈왈
냐오옹
꼬꼬꼭
실버는 바깥에 산책을 나가는 것이 기쁜지 내 주변을 돌면서 짖었다.
그러자 불돌이, 물방울, 호크가 따라서 울었다.
졸지에 브레멘 음악대가 된 것 같아서 재밌었다.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로 곧장 향했다.
귀여운 동물들을 이끌고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사람들과 NPC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걸어가다보니 어느덧 마법사 길드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오오······ 앗, 아기 고양이다!”
냐아아아
“안녕하세요.”
항상 그랬듯이 의욕이 없는 것 같은 마법사 아가씨였으나, 물방울을 보자 대번에 눈빛을 바꾸면서 일어나 물방울을 내려다보는 그녀였다.
물방울은 부끄러운지 냐아아 울며 내 뒤에 몸을 감췄다.
마법사 아가씨는 그런 물방울의 모습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곧 그녀가 내게 말했다.
“오늘은 친구들을 잔뜩 데려오셨네요.”
“네, 사과파이를 팔고 애들이랑 사냥을 좀 할까 해서요.”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랑 놀 수 있다니, 가끔은 정령술이 부럽기도 하네요.”
“사람들은 정령술보단 마법을 선호하는 것 같은데요.”
“그야 마법이 즉각적으로는 강하니까요. 흠, 그런데 모습을 보니 중급 정령이겠네요. 그거 알아요? 중급 정령부턴 속성부여를 할 수 있다고 해요.”
“그게 뭐죠?”
“저도 잘은 몰라요. 하지만 인챈트 비슷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다만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는데, 아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마법사 아가씨는 더 자세한 정보는 모르는 듯했다.
아무래도 골램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네, 일단 오늘 사과파이를 팔죠. 오늘은 50개입니다.”
“많이 가져오셨네요, 다 살게요. 개당 7000골드죠?”
“네.”
“여기 35만 골드입니다.”
곧 사과파이와 골드를 교환했다.
시화에게 사과파이와 아이템들을 팔고 번 돈까지 합해서 800만 골드가 모였다.
돈 욕심이 도는 순간이었으나, 나는 부업을 하여서 저축한다고 생각하곤 휘파람을 불며 마법길드를 나섰다.
“또 오세요!”
멍멍!
왈왈!
마법사 아가씨가 손을 흔들며 배웅하면 실버와 불돌이가 친근하게 짖어서 대신 대답해주었다.
나는 실버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터로 향하기 전, 뭔가 살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여고생 손님에게 추천받은 페스츄리와 샌드위치를 떠올렸다.
필요한 것은 밀가루를 만들 밀이다. 하지만 밀은 가지고 있는 것이 조금 있으니까 씨앗을 100개만 사면 될 것이다.
그리고 샌드위치에는 양배추와 감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식재를 모을 겸 그 두 개의 씨앗을 100개씩 사봐야겠다.
“그럼 300개 분량의 밭이 남는데······.”
밭을 놀리는 것은 아깝다.
그러자 문득, 나는 간장과 된장이 떠올랐다.
고추장도 만들었으니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도 좋지 않은가?
그럼 한식 요리의 폭이 넓어질 것이었다.
간장과 된장의 재료는 메주, 메주는 보리메주도 있지만 본래는 콩메주가 더 흔하다.
그러니 콩 씨앗을 100개 사기로 했다.
“한식은 그럼 된장찌개나 조림을 만들 수 있겠어. 요리는 그런 쪽으로 생각해보자.” 다음은 고기안주 혹은 양식이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스테이크? 좋긴 하지만 소스에 아마 후추가 들지 않을까, 후추를 여기서 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중세시대에 후추는 무척 귀한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귀한 것이란 취급이면 곤란하다.
물론 후추가 없다고 고기 요리를 못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할 문제 같았다.
“그럼 남은 작물 200개는 술 담을 용으로 심어볼까.”
위스키 외에도 다른 술을 담가보고 싶다.
하지만 그래도 인기 있는 스카치 위스키를 포기하긴 좀 그러니까 보리 100개를 심자.
그리고 막걸리나 소주용 쌀을 100개 심는 것이다.
더 필요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정도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도합 해보면 감자, 양배추, 밀, 콩, 보리, 쌀의 씨앗을 100개씩 사면된다.
생각을 마친 나는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머, 멋진 개랑 강아지네요!”
“안녕하세요.”
마법사 아가씨와는 달리 식료품점 아가씨는 개 쪽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실버와 불돌이가 자신들에게 호감을 표하는 그녀에게 열렬히 애정표현을 했다.
한동안 아가씨가 개들과 놀아주는 것을 훈훈하게 보고 있다가 곧 그녀가 주문을 받으러 내게 말했다.
“흠흠, 오늘은 무얼 사러 오셨어요?”
“감자랑 양배추, 밀, 콩, 보리, 쌀 씨앗을 100개씩 주세요.”
불돌이와 실버를 마구 쓰다듬다가 체통을 뒤늦게 차리며 묻는 그녀에게 살 것을 말했다.
그녀는 씨앗을 챙기곤 교환창을 열며 내게 말했다.
“3만 골드입니다.”
“여기요.”
“또 오세요! 너희들도 또 보자!”
멍멍!
왈왈!
식료품점 아가씨의 배웅에 응답하는 불돌이와 실버였다.
나는 실버와 불돌이, 물방울과 호크를 이끌고 강쪽으로 향했따.
물소와 칠면조들이 있는 곳.
거기서 사냥을 하고 오늘을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았다.
돼지가 한 마리 더 있었다면 송로돼지 상태로 약초를 찾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둘 다 허브돼지 상태다.
골드도 많은데 돼지를 좀 더 살까나?
행복한 고민이 좀 되었지만, 내일 접속해서 심사숙고해보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물소와 칠면조들이 돌아다니는 강가의 사냥터에 도착했다.
“로렌의 창은 두고 왔으니까, 아쉬운 대로 이 녀석을 써야겠군.”
[목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얻었던 기본 무기였다.
맨손이랑 별 차이 없는 공격력에 내구도였지만 안 드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나는 공격력 보정을 받아서 목검을 들어도 상당한 공격력이 나오니 물소와 칠면조는 충분할 것이었다.
거기다가 오늘은 실버도 왔으니 사냥이 더욱 쉬울 것이다.
[바람이가 자신도 있다고 존재감을 어필합니다.]
“그래, 너도 있어.”
얌전한 바람이가 드물게 그런 말을 해서 쓰다듬어 주었다.
갑옷과 방패가 있긴 하지만 입지 않았다.
오크를 상대할 땐 위험해서 입었지만, 물소와 칠면조의 공격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얘들아 물어!”
크르르릉 컹컹!
왈왈!
냐오오옹
꼬꼬꼭 [바람이가 칼날 바람을 쏘아 보냅니다.]
가장 먼저 노린 것은 칠면조였다.
칠면조는 애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나설 것도 없이 사체가 되었다.
나는 흑요석 단검으로 그것을 도축해 통짜고기와 힘줄, 가죽과 깃털을 얻었다.
칠면조는 특이하게 통짜고기를 준다.
자연히 통닭이 연상 되었는데, 차이점은 크기다.
닭에 비해 과도하게 뚱뚱한 칠면조는 고기양이 엄청나다.
칠면조를 추수감사절에 먹는 풍습이 있는 나라에선 양이 너무 많아서 남기는 것이 문제라고 했던가?
이걸로 통닭을 만들어 팔 수만 있다면 꽤 재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무우우우우우!
“이번엔 물소야 얘들아!”
다음은 물소였다.
물소도 곧 죽어서 고기와 가죽 힘줄을 남겼는데, 조금 질긴 것을 빼면 소고기 대용으로 적당했다.
소고기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여러 가지였지만, 양식에는 후추가 쓰일 것이라서 곤란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한식 쪽으로 일단 알아보아야 할 것도 같았다.
일단은 실버의 먹이로 쓸 거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나와 동물, 정령 친구들은 칠면조와 물소를 30마리 정도씩 사냥했다.
나와 호크는 각각 레벨이 2 올랐다.
그리고 많은 양의 고기와 가죽을 얻고 농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골램아, 우리 돌아왔어.”
“돌아오셨습니까, 주인님. 농장은 이상 없었습니다.”
“응! 수고했어.”
“이제 무얼 하실 겁니까, 주인님?”
“이제 좀 쉬다가 로그아웃할 생각이야.”
“그렇다면 주인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야?”
“주인님이 부재하는 동안 제가 농장을 돌볼 수 있습니다. 농산품과 축산품을 수거하고 비료에 필요한 분뇨와 수액을 모을 수 있습니다.”
“아······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굉장하잖아? 그럼 포도랑 사과, 딸기, 우유, 양털, 송로버섯, 약초, 달걀을 내가 없는 동안 모아준단 거네?”
“그렇습니다.”
“대단해! 골램 대단해!”
“칭찬 감사합니다.”
지금까진 로그아웃한 동안에 자라는 과수와 축산품을 거둘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골램이 있으면 골램이 그것들을 수확해 모아둘 수 있단 것이다.
내가 보통 퇴근하는 시간은 야근까지해서 16시간.
게임시간으로는 64시간이다.
즉 8번의 수확주기를 놓치는 것이었는데, 골램이 그걸 다 해결해줄 수 있단 것이다.
“덕분에 게임이 더 재밌어 지겠어. 고마워.”
“감사합니다.”
“크으, 술이라도 마시고 싶지만 사과주스로 대신해야지. 얘들아, 모여서 놀자.”
멍멍
왈왈
냐오옹
꼬꼬꼭
음머어어어어
[바람이가 당신 옆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모닥불 하나를 피우곤 아이들과 모여서 불을 쬐면서 밤 하늘을 구경하며 사과주스를 마셨다.
실버 불돌이에겐 고기도 주었고, 호크와 옥스에겐 사료를 만들어주었다.
물방울에겐 사과주스를 나눠주고 말이다.
모두의 울음소리가 마치 음악소리처럼 들려서 듣기 좋았다.
나는 그대로 마음의 휴식을 취하다가 출근시간에 맞춰 로그아웃을 했다.
* * *
김 팀장은 모니터의 화면을 보면서 오늘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녀석은 대체······ 돈을 쓸어 담고 있잖아.” 김 팀장은 공진이 돈을 버는 속도가 너무 빠르단 것을 위험하게 느꼈다.
특히 오늘은 마일스톤의 거래장이 열리는 날이다.
혹시 공진이란 유저가 거기에 저 거금을 털어넣진 않을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김 팀장이었다.
물론 800만원 정도는 다른 이들의 거래량도 있으니 괜찮을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8시간만 플레이해서 300만원을 버는 괴물이 매일 현금으로 바꾼다면?
마일스톤의 거래시장은 무너질 것이다.
“아니지, 차라리 그렇게 조금씩 해준다면 안전할 거야. 더 큰 문제는 쓰지 않고 모을 때다.”
돈이 조금씩 풀린다면 물가 변화도 느리니, 차라리 대응하던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나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공진이 돈을 모아서 한꺼번에 돈을 풀어놓는다면?
최악의 가정이지만 7억 정도 모아서 한꺼번에 그걸 거래장에 던져버린다면?
사람들은 골드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풀렸다면서 좋아하면서 교환할 것이다.
그럼 게임이 망할 수도 있다.
법으로 골드와 현금의 거래를 1:1로 막아놨다고 해도, 게임 내 골드의 가치가 고정이란 말은 아니다.
그런 골드가 풀리면 당연히 골드의 가치는 급락, 엄청난 인플레가 생길 것이고 거래장은 대신 암거래나 직거래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게임이 망한다.
그렇게 망하는 게임을 김 팀장은 많이 봐왔다.
“젠장!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평범하게 게임 좀 해달라고! 군신 길드에 들었잖아! 골드도 많이 모았잖아! 펑펑 쓰면서 사냥도 좀 하면서 놀면 될 걸. 얘는 무슨 농부도 아니고 농사만 지어?”
김 팀장은 결국 담배를 물어 피우면서 공진에 대한 욕설로 투정을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