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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64화 (64/239)

47화 돈키호테

곧 나는 그 갑옷과 방패를 장착해보았다.

로드릭 경의 갑옷은 직접 착용하려면 적어도 5분은 걸릴 것 같은 까다로울 것 같은 판금갑옷이지만 인벤토리와 장착 시스템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착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네.”

처음으로 판금갑옷을 입은 감상은 깡통을 껴입은 기분이어도 그렇게 불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구조적인 결함이 전혀 없어서 어깨도 문제없이 들어 올릴 수 있고, 허리를 숙이거나 비트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다음은 방패였다.

“이런 모양에 이 정도 크기면······ 히터 실드인가?”

카이트 실드보다 하단이 길지 않고 다리미처럼 생긴 모양이 아마도 히터 실드 같다.

그리고 특이하게 재질이 통짜 금속 같았다.

현실의 중세 방패는 판타지적인 설정과는 달리 주재료가 나무였다.

판타지를 읽는 사람에겐 “그랬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데, 큰 방패를 금속으로 만드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 별로 맞지 않았다.

우선 과거에는 철 수급이 현재보다 열악했고, 따라서 방패에 쓰기보단 검과 창을 만드는데도 바빴다.

그리고 힘들게 방패를 통짜 금속으로 만들어도 라운드 실드 정도의 크기만 되어도 무거워서 못쓴다.

방패의 역할은 기민하게 반응해서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에 있는데, 방패의 내구도만 생각해서 금속으로 만들면 무거워서 정작 공격을 막지 못하니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몇몇 판타지 매체에서 멋진 설정을 집어넣으려고 통짜 금속으로 방패를 벼려냈다고들 하지만 그래선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이었다.

“어윈이란 사람은 힘이 아주 장사였나? 어째 좀 묵직한데.”

[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용병대장 어윈은 키가 190센티에 근육질의 남성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럼 이런 방패를 써도 납득은 되네. 근데 내가 쓰기엔 좀 무겁네.”

[힘이 더 오르면 중량감이 덜해질 것입니다.]

“그렇구나, 능력치가 아직 부족한 것이었군.”

힘 능력치는 단순히 근접공격력을 2만 올리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더 무거운 중량을 쉽게 들 수 있도록 실제 완력을 보정해주는 듯했다.

민첩 능력치가 몸을 더 기민하게 움직이게 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하튼 나는 계속 방패를 들어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무게 때문에 아주 기민하게 움직일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힘들거나 지치지는 않았다.

생활 스킬을 통해 힘도 29로 꽤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기 전에 고기를 먹어서 힘을 늘리면 더 가벼워지겠네.”

아직 힘과 체력은 음식 버프를 받지 않아서 증강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먹으면 중량감이 여기서 더 덜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단 로렌의 창을 꺼내보았다.

오른손에는 로렌의 창을, 왼손에는 어윈의 방패를 들어보니 상태창으로 비추어지는 내 모습은 그럭저럭 멋졌다.

그게 꼭 내 주관적인 평인 것만은 아니었는지 구경꾼들의 수다가 들렸다.

“오! 봤음? 농장주인이 갑자기 갑옷을 입었어.”

“룩이 개쩌는데.”

“상당히 좋은 아이템 같다.”

“근데 검이 아니라 창을 쓸 생각인가? 저래선 기사라기보단 병사 같아.”

“판타지 영화 생각난다.”

대부분 멋지다는 말이었는데, 검이 아니라 창을 쓰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멋져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방패를 들면서 창을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물론 고대부터 방패를 쓰던 문화권에선 창과 방패가 흔한 무기의 조합이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냉병기 다루는 훈련은 고사하고 게임에서의 사냥도 자주 안했다.

방패 없이 창만 다룰 때는 몰라도 무거운 금속 방패를 들고 창을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를 것이었다.

“하는 수 없지. 연습 좀 해보는 수밖에.”

나는 대충 영화와 미드에서 보았던 자세를 취해보았다.

방패를 들고 그 위에 창을 얹듯이 하는 자세.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막고 찌르기 위함이었다.

방패가 좀 무거워서 자세가 불안정했지만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다음은 방패를 치우고 창을 내지른 뒤, 다시 창을 회수하고 방패를 드는 행동을 해보았다.

상당히 힘이 들었지만 할 수는 있었다.

“이걸로 충분하면 좋겠는데.”

내가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이었다.

내가 CQC(Close Quarters Combat, 주로 현대전에서 냉병기를 이용해 싸우는 근접전투) 전문가도 아니고, 로마 군단병도 아니니 더 이상 머리 굴리는 것은 무의미해보였다.

그리고 나는 믿는 구석이 따로 있었다.

“불돌아, 물방울아, 태산아, 바람아, 호크야, 옥스야! 나랑 같이 사냥하러 가자!”

꼬꼬꼭!

음머어어어

[불돌이가 잽싸게 당신에게로 달려옵니다.]

[물방울이 둥실둥실 다가옵니다.]

[태산이가 꾸벅꾸벅 걸어옵니다.]

[바람이가 쏜살같이 날아옵니다.]

내겐 든든한 친구들이 여섯이나 있었다.

오크들이 좀 세다고 하지만, 갑옷과 방패를 껴입은 내가 버티고 애들이 공격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공격력만큼은 강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될 것이다.

“가기 전에 버프도 좀 하고.”

목재 하나를 꺼내서 장작으로 만들곤 불돌이로 불을 붙였다.

그리곤 꼬치에 꿴 멧돼지 고기에 소금 좀 쳐서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맛좋은 냄새가 퍼졌다.

멧돼지 고기는 돼지고기에 비해 노린내가 심하다는데, 게임에선 딱히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냄새를 맡고 실버가 다가와서 실버에게 고기 좀 떼어준 다음 우유와 함께 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으음, 존맛.

“또 먹방시작하네 저 아저씨.”

“토끼고기보다 커보이는데, 무슨 고기지?”

“돼지고기 같은데······ 냄새 넘나 좋은 것.”

“아놔 저 아저씨는 왜 우리 앞에서 혼자만 먹는 거야?”

“위꼴되라고 일부러 저러는 듯.”

이번엔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또 구경꾼들을 약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냥 나눠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에 나는 그 큼직한 돼지고기를 혼자 다 먹었다.

[잘 구운 6등급 멧돼지구이를 먹어 포만감이 차올랐습니다.]

[추가 효과! 힘 + 20, 체력 +10]

멧돼지 구이는 유독 힘이 많이 올랐다.

멧돼지의 저돌성을 표현한 것 같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좀 덜 올랐지만, 지금은 오히려 힘이 더 좋은 것 같다.

힘이 오르니 무거웠던 방패가 훨씬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가자. 얘들아. 실버야 농장 잘 지켜.”

멍멍!

실버를 두고 농장을 떠났다.

광산으로 가는 길에는 옥스를 타고 갔다.

옥스는 무거운 갑옷을 입은 내가 타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말대신 소이긴 하지만 꼭 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곧 얼마지 않아서 광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티 구합니다! 30레벨 도적 쉬는 중······ 어? 소 탄 기사다!”

“정말이네! 근데 옆구리에 닭은 왜 껴안고 있지?”

“갑옷이 멋지긴 한데······ 닭은 먹으려고 가지고 있는 건가?”

“정령들이 따라다니는데?”

“정령사? 아니 정령검사? 근데 창들고 있잖아?”

광산 앞에서 파티를 구하는 이들이 나를 보곤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럴만한 것이 나는 지금 방패를 잠시 인벤토리에 넣고 호크를 안은 채로 옥스 위에 타고 있었다.

소를 탄 모습도 꽤 눈에 띌 텐데, 닭을 끼고 있는 모습은······

“엉뚱해서 돈키호테 같다.”

······그래, 돈키호테 같겠지.

하지만 뭐, 돈키호테도 나쁘지 않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마지막 기사의 낭만이 돈키호테이지 않던가?

게다가 옥스는 그래도 당나귀보단 멋진 소라고?

그래서 나는 오히려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광부 NPC들은 광물을 캐느라 정신이 없어서 날 쳐다도 안 봤다.

좀 더 들어가서 사냥에 열중하는 유저들은 몇몇 떠들긴 했다.

“뭐지? 소타고 닭을 든 기사라니. 놀러온 고인물인가?”

“대박 웃기네.”

“어? 나 저 사람 알아. 마을 근처 농장 주인이잖아.”

“아, 요즘 유명한 그 사람?”

그런데 몇몇이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하긴, 나는 투구가 없어서 맨 얼굴 상태였다.

밀짚모자는 잠시 벗어두었지만 말이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하곤 그들을 지나갔다.

꼭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지만, 자아도취하고 싶지 않아서 자제심을 가졌다.

사람들이 계속 나를 언급하였지만, 곧 사냥터에서 멀어져서 1층 깊숙한 곳에 도달했다.

그때부턴 옥스의 등에서 내리고 걸어갔다.

고블린들이 덤볐지만 호크와 옥스, 그리고 정령들이 알아서 처리했다.

가는 길에 철광석과 소금, 석회석을 채광했다.

광산에 자주 오진 않으니까 기회가 있을 때 모아두기 위해서였다.

“케르륵 케케케켁”

꼬꼬꼬꼬!

2층에 내려온 뒤에는 정예 고블린들이 덤볐지만 내가 조금 거드는 수준에서 정리되었다.

전과는 달리 방어력이 든든해져서 정예 고블린들의 공격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멧돼지 구이 버프가 효과적이었는지 방패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았고, 창도 한손으로 문제없이 휘둘렀다.

거기다가 호크와 아이들이 가세해서 수적인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정령석도 온 김에 챙겨놔야겠다.”

[좋은 선택이십니다, 주인님. 정령술 도구들은 정령석을 소모합니다. 소모된 정령석을 교체할 정령석을 항상 비축하십시오.]

2층에서 나오는 정령석도 채광해두었다.

골램의 말대로 비축시키기 위해서였다.

너무 시간이 끌리진 않게 적당히 채광하면서 2층을 돌파했는데 마지막에 이상한 녀석이 나왔다.

[정예 고블린 주술사]

“특이한 녀석이네?”

1층에서 봤었던 고블린 대장장이 같은 녀석인 듯했다.

아마도 보스? 그런 느낌이다.

하긴 1층에도 그녀석이 보스였다면 여기도 보스가 있어야한다.

인적도 드문곳이니 남이 사냥했을 리도 없으니 말이다.

“얘들아! 다굴치자!”

꼬꼬꼬꼭!

음머어어어!

다굴이란 게임 용어를 말하며 아이들과 함께 돌격했다.

다른 정예 고블린들이 그를 지키고 있었지만, 모두 창과 정령들의 공격, 그리고 호크와 옥스의 연계에 무너져 순식간에 그 녀석만 남았다.

놈은 정예 고블린을 상대하는 동안 불덩이를 날리거나 날카로운 바람을 쏘아보냈지만 우리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불돌이가 적의 불 공격을 흡수합니다.]

[바람이가 적의 바람 공격을 상쇄합니다.]

[정령술 레벨 업!]

정령들이 속성공격을 막아주기 때문!

곧 정예 고블린 주술사의 가슴 팍에 로렌의 창을 꽂아넣었다.

놈은 켁! 하고 죽어버렸다.

다른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시시한 골드와 고블린의 정수, 그리고 쓸모 없는 잡템을 남겼는데 대장장이가 모루를 준 것처럼 녀석도 뭔가를 주었다.

[중급 정령의 목걸이 : 내구도 7/7

중급 정령에 한해서 부족한 정신력을 가불해 중급 정령 하나를 더 소환할 수 있다.]

“오?”

어쩐지 굉장히 좋아 보이는 아이템이었다.

생긴 것은 그냥 더러운 끈에 정령석이 꿰매어 있는 꼴이지만 옵션이 나에겐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골램의 말에 따르면 중급 정령은 하급 정령 2개분의 정신력을 요구한다고 한다.

하급 정령은 25마다 더 소환할 수 있었으니까, 2개분은 50의 정신력이란 의미다.

버프를 총합해서 84의 정신력을 가진 나는 중급 정령 하나를 소환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중급 정령을 하나 더 소환시킬 수 있는 옵션은 사실상 정신력 능력치를 보정해준 격이나 다름없다.

물론 실제로 50의 정신력을 늘려준 것은 아니라서 마나가 늘어나진 않지만 말이다.

“땡잡았군.”

나는 그것을 착용하면서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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