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자동화 농업
수액을 채취하기로 한 나는 실버에게 농장을 맡기고 숲으로 향했다.
하는 김에 호크를 함께 데려갔다.
수액을 채취하는 동안 호크를 이용해 사냥해서 고기도 얻고 호크의 레벨도 올리기 위해서였다.
꼬꼬꼬꼭!
뀨우우우
숲으로 가는 동안 토끼 열 마리를 사냥한 호크였다.
나는 호크가 잡는 족족 도축해서 고기와 힘줄, 가죽을 모았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숲에 도착했다.
나는 수액채취기를 꺼내서 나무에 꽂고 피를 뽑듯 실린더를 당겨보았다.
수액채취기에 달린 정령석이 푸르게 빛나더니, 곧 시스템창이 떴다.
[나무수액 10개 획득]
“오오,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인벤토리에 나무수액이 10개 들어왔다.
뭔가 꽉 찬 것 같던 수액채취기의 실린더는 다시 빈 것처럼 가벼워졌다.
내가 감탄하고 있자, 골램이 조언했다.
[같은 나무에선 8시간동안 채취가 불가능합니다. 다른 나무에서 채취를 계속 하십시오.]
“고급 비료 한 개에 나무수액 2개면 비료 600개를 만들려면 1,200개······ 한 그루에 10개씩이니까 120그루만큼 채취하면 되겠군.”
나는 간단히 계산을 마쳤다.
앞으로 119그루, 채취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서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호크야, 같이 다니면서 뭔가 나타나면 바로 사냥해버려.”
꼬꼬꼭!
“너희들도 호크를 도와주고.”
[불돌이가 당신의 명령에 따릅니다.]
[물방울이 알겠다고 합니다.]
[태산이가 졸면서 끄덕입니다.]
[바람이가 경례로 대답합니다.]
호크와 정령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나는 대답을 들으면서도 곧바로 다른 나무에게서 수액을 채집해갔다.
기왕 하는 것 산책삼아 좀 더 깊은 숲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숲 깊은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개의 나무에서 수액을 채집했을 때였다.
킁킁킁
“앗, 멧돼지다!”
꼬꼬꼬꼬댁!
전에는 가지 않았던 숲 깊은 곳까지 들어가니, 멧돼지가 출현했다.
멧돼지는 처음 나타났을 땐 먹을 것을 찾듯이 땅에 코를 박고 있었는데, 우릴 보자마자 발로 땅을 긁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돌격할 것 같은 모습.
나는 로렌의 창을 꺼내려고 했지만 호크가 먼저 움직였다.
맹렬하게, 그리고 용맹하게 돌격하는 호크!
이름이 호크지만 결국 닭이라서 멧돼지보다 덩치가 작은데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호크야 위험해!”
꼬꼭!
멧돼지도 가만히 있지 않고 맞돌격을 했다.
그대로라면 호크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때 호크를 지켜주는 바위덩이가 생겼다.
태산이가 호크를 지켜준 것이다!
화르르륵
슈슉
샤아아악
꼬꼬꼬꼭!
이어서 불돌이의 불길과 물방울의 얼음창, 그리고 바람이의 날카로운 바람이 멧돼지에게 쇄도했다.
멧돼지는 큰 피해를 입은 듯했는데, 호크가 최후의 일격을 가해 쓰러트렸다.
멧돼지 잡는 닭의 모습을 보는 건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내가 나설 틈도 없네.”
나는 꺼냈던 로렌의 창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호크와 정령들이 알아서 사냥해버렸다.
나는 멧돼지 시체에 다가가 흑요석 단검으로 도축을 해보았다.
[멧돼지 고기 5개]
[멧돼지 힘줄 5개]
[멧돼지 가죽 5개]
마찬가지로 고기와 힘줄, 가죽이 나왔다.
물소처럼 대형 취급을 받는지 가죽이 여러 장 나왔다.
여러 동물의 가죽이 점점 쌓이는데, 조만간 가죽으로도 옷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후 나는 다시 수액채취기를 꺼내 수액을 모으는데 집중했다.
그 사이 멧돼지도 계속 나타나 선공태세를 취했는데, 그때마다 호크와 정령들이 쫓아가서 죽였다.
내가 할 일은 수액을 채취하면서 동시에 멧돼지를 도축하는 것뿐이었다.
[나무수액 1,200개]
[멧돼지 고기 235개]
[호크 - 레벨 33]
“다 모았네.”
그것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목표했던 나무수액을 다 모을 수 있었다.
동시에 멧돼지도 꾸준히 나타나서 고기를 많이 모을 수 있었다.
덕분에 호크도 레벨이 상당히 올랐고 말이다.
“선술집 안주용 요리로 고기를 내놔도 될 정도네.”
고기 요리는 그냥 직화에 구워주기만 해도 맛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제대로 된 요리를 구상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안주용 요리는 우선 만들기 쉽고 양이 많아야 한다.
특히 돼지고기는 그야말로 구워서 소금만 치면 훌륭한 요리가 아닌가?
이번처럼 수액을 채취하면서 멧돼지 고기를 모으면 재료수급도 쉽다.
나무수액을 채취하면서 얻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나는 즐거운 기분으로 농장에 돌아갔다.
멍멍!
“실버야, 고기 먹어.”
멍!
지겨워하지도 않고 마중 나오는 실버에게 멧돼지 고기 하나를 던져 주었다.
실버는 프리스비를 받아 무는 것처럼 고기를 받아내곤 맛있게 뜯어먹었다.
난 그런 실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선 옥스에게로 향했다.
여유로이 풀을 뜯고 있는 옥스, 그런 옥스가 할 일이 있다.
당연히 밭을 가는 것이다.
“옥스야, 밭갈자.”
음머어어어어어
온순한 옥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쟁기를 씌우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얌전히 따라와, 밭으로 따라왔다.
곧 어제처럼 옥스를 이용해 밭을 갈았다.
포도와 딸기를 심을 땅까지 하여서 작물 700개분의 밭을 갈아야 했는데, 그야말로 소처럼 일하는 옥스 덕분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전거라도 모는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신토불이, 신토불이야아아”
흥에 겨워서 농사에 관련된 트로트도 불렀다.
그러자 저 멀리서 구경꾼들이 낄낄 대는 소리도 들렸다.
“저게 무슨 노래야?”
“트로트 같은데?”
“21세기도 아니고 20세기 때 만들어진 노래임. 우리보다 나이 많은 곡임.”
“헐, 세대차이 쩐다.”
크흠, 젊은 친구들이라 이 곡을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 사실 나도 나이를 따지면 모르는 게 맞긴 한데······.
나는 괜한 세대차이를 느껴서 노래는 그만두었다.
음머어어어어
“수고했어, 옥스야.”
곧 옥스가 밭을 다 갈아주었다.
그 다음엔 비료를 뿌렸다.
그런데 비료도 바람이의 힘으로 뿌릴 순 없을까?
[하급 바람의 정령이 가진 힘으로는 마나 소모가 큽니다. 중급 정령 때부터 시도하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끙, 언제 중급 정령이 되는 거야?”
[정령술 4레벨부터 중급 정령으로 소환이 가능합니다. 다만 중급 정령은 하급정령 2마리분의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주인님의 정령술 스킬 레벨은 3레벨입니다.]
“1레벨만 올리면 된다는 거네, 근데 중급 정령을 소환하면 내 정신력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다른 아이들을 부르지 못한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별 수 없지, 지금은 그냥 하는 수밖에.”
약간 힘든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으므로 비료를 손수 뿌렸다.
넓은 밭에 비료를 다 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끈기를 가지고 다 할 수 있었다.
충직한 바람이가 시원한 바람을 계속 불어주어서 심한 더위도 느끼지 않았다.
그 다음엔 바람이와 함께 씨를 뿌렸다.
당연히 아무렇게나 뿌리지 않았다.
벼는 벼끼리, 보리는 보리끼리, 다 구분지어서 뿌렸다.
“이제 가축들로 잡초를 뜯어먹게 하면 되겠네. 그런데 딸기와 포도 밭에 쓸 분수기 두 개가 모자라구나. 당장 만들어야겠다.”
나는 대장간으로 가서 불돌이를 용광로에 들어가도록 하고, 분수기 두 개를 우선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포도밭과 딸기밭에 설치했다.
“물방울아, 지금이야.”
[물방울이 모든 분수기를 작동시킵니다.]
촤아아아아
“다시 봐도 장관이라니까.”
분수쇼를 보는 것처럼 일제히 분수기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이 꽤 아름다워서 볼만했다.
구경꾼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와 분수다!”
“멍청아, 저건 스프링클러야.”
“그게 그거지 뭐.”
“어제도 하더니 또 하네. 마법 아이템 같은 건가?”
“자세히보면 가축들이 잡초 뜯어먹고 있음.”
“완전 자동농법 아니냐? 개꿀이네.”
대장간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구경꾼들의 수다를 들은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서 씩 웃었다.
이제 밭일은 일단락되었으니 식기를 다시 만들 때였다.
“그런데 대장기술은 다 좋은데 시간이 너무 걸리네.”
[제가 몸을 가지게 되면 그 점을 완화해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주인님의 생활스킬에 한정하여 생산보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주인님이 만드는 작업을 따라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를 만들던 것을 골램이가 만드는 것까지 해서 두 개 만들 수 있단 거야?”
[그렇습니다.]
“이런, 그럼 광산부터 가야하나?”
[그것도 좋은 선택입니다만 광산 3층은 만만치 않습니다. 갑옷과 방패를 만들어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갑옷과 방패라······.”
나는 식기를 만들려다가 말고 또 다시 다른 선택을 고민하게 되었다.
골램의 조언대로 갑옷과 방패를 만들어서 3층에 가 마력석을 얻는다.
그리고 그걸로 골램의 몸을 만들면 노동력이 더 늘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혹은 업적점수를 이용해 로렌의 창 같은 전설 무기를 구매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 맞아, 그것도 있었지.”
잊고 있었다.
업적점수로 아이템을 살수도 있단 것을 말이다.
나는 얼른 업적상점을 열어보았다.
찾고 싶은 것은 방패와 갑옷.
지금 가지고 있는 업적점수는 그간의 퀘스트를 해서 모아서 900점이 모여 있었다.
[카인의 갑옷(전설), 100,000,000QP]
“이 게임 개발진은 그림의 떡 그리는 게 취미였나보네.”
방어구들을 살펴보는 와중에도 1억 업적점수짜리 쇼윈도우 상품이 있었다.
붉은 색의 뭔가 사악해 보이는 갑옷이었는데, 척봐도 강력해보이지만 1억 업적점수는 사지 말라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당연히 구매가 가능한 것을 찾아보았다.
[노장 로드릭 경의 갑옷(전설), 450QP]
[어윈의 방패(전설), 450QP]
“흠······.”
900점의 업적점수에 딱 맞는 갑옷과 방패를 찾았다.
하지만 어렵게 모은 업적점수를 다 써버리는 거라서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골램의 말이 이어졌다.
[주인님, 이번 연계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의 마지막입니다.]
“어라, 그럼 더 이상 퀘스트를 주지 않는 거야?”
보상으로 100 업적점수를 주던 것이 이번으로 끝? 그렇다면 업적점수를 좀 더 신중하게 써야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골램이 또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창조주님이 남기신 히든 피스는 적절한 히든 일일 도전과제 퀘스트를 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히든 일일 도전과제 퀘스트?”
[하루에 한 번 할 수 있는 도전과제형 히든 퀘스트입니다. 클리어할 경우 하루에 단 한번 500의 업적점수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생활스킬에 관련된 것입니다.]
“뭐야, 그럼 업적점수를 너무 아낄 필요는 없잖아.”
업적점수를 더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두 개의 상품을 사기로 결정하였다.
곧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두 상품을 업적점수로 구매하였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확인하였다.
[노장 로드릭 경의 갑옷 : 기본 방어력 120 내구도 50/50
다른 세상에서 용사와 함께 전장에 섰던 노장 로드릭. 자유기사이자 노장인 로드릭 경은 검과 기사도의 나라 글라디오의 왕위계승 내전에 참전했다가 그랜드 소드마스터 볼코프의 일격으로부터 기사단장 안젤리카를 지키면서 목숨을 잃었다. 이 갑옷은 그가 기사서임을 받기 전인 용병시절부터 입은 갑옷이다.
장착효과 : 힘 + 15, 체력 + 15
‘나는 틀렸네, 하지만 명예롭게 죽을 수 있을 것 같군.’ -전사하기 전 노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
[어윈의 방패 : 높은 방어율, 추가방어력 40 내구도 50/50
다른 세상에서 용사의 동료였던 용병대장 어윈. 노련한 용병대장이자 용사의 죽마고우였다. 그는 의리가 깊은 사내였고, 초기에 용사와 여정을 함께 했었으나 용사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후일 용사와 조력자 로렌을 만났고, 조력자 로렌의 설득으로 용사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장착효과 : 불굴-어떤 상황에도 사기위축 효과를 받지 않는다.
‘저런 무능한 용사보단 다른 사람들이 마왕을 막겠지. 저놈을 어떻게 해보겠단 건 괜한 생각이오.’ -조력자 로렌에게 어윈이 말하는 용사 ]
모르긴 몰라도 둘 다 꽤 좋은 아이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