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3일차 로그아웃
계속해서 다음 거래를 이어나가는 나와 시화였다.
“일단 사과파이부터 거래하죠.”
“네, 21개 전부 사겠습니다. 얼마에 파실 거죠?”
“개당 7000골드, 유저들에게 경매로 팔았을 때 평균가격입니다. 장사가 너무 바빠서 이제 경매는 그만두고 이 가격으로 팔 생각입니다. 딱히 더 달라고는 안할테니, 개당 7000골드에 사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현실의 사과파이를 7000원에 판다면 너무 비싼 가격이겠지.
하지만 이건 게임이고, 미식이나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다.
좋은 버프효과가 있었고, 그걸 얻기 위해 경매도 불사한다.
현실의 사과파이와는 달리 수요가 더 커서 가격이 뛸 수밖에 없었다.
이득이 많이 남지만, 폭리를 취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시화도 그걸 이해하고 있는지, 별 말없이 7000골드에 전부 사들였다.
147000골드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체력 포션 8개입니다.”
“네, 그런데 4개만 만드시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연금술도구를 개량해서 제조과정이 그나마 쉬워졌습니다. 여전히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만드는 중에 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8개를 만들었습니다. 혹시 살 돈이 없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대로 8개를 팔아주신다니, 좋을 따름입니다. 지난번처럼 2만 골드에 파시겠습니까?”
“그러죠.”
체력 포션을 거래하여서 160000골드를 얻었다.
술장사한 돈에 비하면 적지만, 그래도 짭짤한 수입이다.
시화는 거래가 썩 나쁘지 않았는지,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거래로 마법사와 탱커 분들이 좋아하실 겁니다. 저도 벌써부터 다음 레이드가 기대되는군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내일도 거래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또 기다리는 파티가 있어서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좋은 저녁······ 아니군요. 좋은 아침 되십시오.”
“공진씨도 좋은 아침되십시오.”
게임에선 저녁이지만 현실로는 아침이다.
나와 시화는 서로에게 묘한 인사를 하곤 헤어졌다.
그가 떠난 뒤, 나는 잠시 할 일을 생각했다.
이제 마법사 길드로 가서 사과파이를 팔아야 한다.
그런 김에 내일은 무슨 작물을 키울지도 생각해보아야 하고, 실버의 먹이도 사냥해야한다.
“실버야 마을 다녀올게.”
멍!
우선 마법사길드에 사과파이를 팔러 가기로 하고, 배웅하는 실버를 쓰다듬어 주었다.
불돌이와 물방울, 바람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마을로 걸어가면서 내일 키울 작물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부터 기본적으로 술의 수급을 위해 작물을 키울 것인데, 문제는 그것만 생각해선 안 될 것이었다.
오늘 장사는 미비한 점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안주’가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준비한 음식이 사과파이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양식 바에선 서양 문화대로 안주를 제공하지 않기도 하지만, 내 선술집에 그런 손님만 오길 바랄 순 없다.
나는 엄연히 한국에서 살고, 한국인의 음주문화에는 안주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양주에는 보통 과일안주긴 하지만······.”
과일안주의 경우, 현실의 술집에서 파는 것처럼 화려한 것을 내놓을 형편은 아니었다.
농장에서 지금 나고 있는 과일은 사과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과일을 심을 순 있긴 한데, 과일을 심으려면 밭을 또 늘려야 한다.
과수는 나무가 계속 남기 때문에 밀과 보리를 심었던 600개 분량의 밭을 차지하게 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농장을 또 늘리는 수밖에 없나······ 뭐, 안 될 건 아니지만.”
결국 밭을 늘리기로 결심했다.
과일 안주를 현실처럼 화려하게 만들 순 없지만, 일단 두 가지 과일을 더 추가해볼 생각이다.
식료품점에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사과파이 외에 다른 요리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문득 한식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일단 하나는 정해졌다.
“우선 쌀을 재배해야겠군. 그 다음엔······.”
한식이니 밥은 빠질 수 없다.
그러므로 벼를 키워 쌀을 재배해야 한다.
문제는 밥과 함께 뭘 먹느냐는 것이다.
우선 호수 옆이니, 매운탕이 먼저 생각났다.
일전에도 사람들에게 물고기구이를 팔면서 매운탕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로써도 군침 도는 제안인데, 문제는 재료다.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필요할 텐데, 그럼 일단 고추가 필요하다.
엿기름(맥아)를 대신할 보리도 필요하고 말이다.
그러니 고추 씨앗이 식료품점에 있다면 사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메뉴는 사과파이처럼 남은 걸 팔만한 거래처가 없어. 즉석에서 만들어 팔아야 할 것 같은데······.”
여러 문제점이 떠올랐다.
우선 사과파이처럼 마법사 길드와 군신 길드 같은 고정 판매처가 없으니 재고를 남기지 않으려면 즉석에서 만들어야한다.
스킬을 쓸 테니까 현실처럼 시간은 안 걸리겠지만, 조금이라도 바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재료’.
매운탕을 만드는 데에는 물고기가 필요하다.
오늘 손님이 상당히 많이 왔는데, 주문량을 계산해보면 적어도 80마리의 생선은 확보해야한다.
그걸 다 낚시로 낚든지, 아니면 마을에서 사든지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어시장은 없던 것 같은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식기도 문제야.”
사과파이는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본격적인 음식 장사를 하려면 식기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나무 수저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건 싸구려에 일회용이란 느낌이 강해서 웬만하면 쇠 수저를 만들고 싶었다.
수저 외에도 사과파이용 포크와 나이프도 생각해야한다.
아, 매운탕을 담을 냄비도 생각해야하는구나······ 여러모로 철괴가 많이 필요할 듯 했다.
광산을 다녀오면서 쌓아둔 것이 있지만 부족할지도 모른다.
한 번쯤 광산에 가서 철광석도 가져오고 가는 김에 소금도 캐야 할 것 같다.
“술도 가능하면 채워놔야겠지.”
스카치 위스키가 불티나게 팔렸다.
49리터가 남긴 했지만 내일이면 동날지도 몰라서 뭐로든 채워놔야 한다.
그런데 스카치 위스키만 또 만들기는 뭣하니 그레인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레인 위스키를 만들면 스카치 위스키와 섞어서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혼합주인 만큼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게 문제지만, 적절한 가격만 부른다면 애주가들은 마실 것이다.
그러니 그레인 위스키용 밀도 더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 식료품점에서 사야할 건, 고추와 밀, 보리, 쌀, 그리고 과일 두 가지로군.”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하기로 했다.
과일은 따로 밭을 더 만들 생각이고, 고추와 밀, 쌀은 600개에서 비율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밀이 이미 190개가 있으니 밀 씨앗은 100개만 사고 고추 씨앗을 200개 사야겠다.
보리는 고추장을 만드는데 필요하니, 100개를 사고 벼는 일단 물량을 위해 200개를 사면 좋을 것 같다.
과일은 어떤 걸 고르든 50개씩 사기로 하자. 사과나무와 개수를 맞추면 계획을 짜기 편할 것이다.
난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면서 마법사 길드에 도착했다.
“어서오세요오오오오옷? 오셨군요! 늦었네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늦었다니, 딱히 시간을 정하진 않았잖습니까.”
“저희도 생활이란 게 있다고요, 저녁에 오신다니 너무 하시잖아요.”
“그렇군요. 오늘은 좀 바빴거든요.”
길드의 마법사 아가씨가 늘어지게 인사하려다가 나인 것을 확인하곤 묘한 활기를 띠며 말했다.
소모적인 대화가 잠깐 오갔고, 나는 바로 본론을 말했다.
“사과파이 21개 팔게요. 개당 7000골드.”
“네! 다 살게요. 자요 147000골드.”
“고맙습니다. 아, 그런데 혹시 이 마을에 어시장은 없나요?”
“어시장이요? 없죠, 바닷가 마을도 아닌데. 생선이 필요하신 거예요?”
“네, 호수에서 낚시를 하긴 하지만 좀 대량으로 필요해서요.”
“그물을 이용해서 낚는 것은 어때요?”
“그물이라······.”
“그리고 정 바닷가 마을의 어시장에 들리실 생각이시라면 저희 텔레포트 서비스로 보내드릴 수 있어요.”
“그런 것도 있습니까?”
“네, 사실 여긴 초보 이방인 분들이 많이 계셔서 자주 쓰는 서비스는 아니지만요.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고맙습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꼭 찾아오죠.”
그냥 어시장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의외의 정보를 얻었다.
나는 마법사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말하곤, 마법사 길드를 나섰다.
다음 가야할 곳은 식료품점이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저녁이에요!”
“네, 좋은 저녁······이군요.”
식료품점 아가씨는 나에게 활달한 저녁인사를 했다.
나한텐 새벽이나 아침이지만, 일단은 저녁 인사로 받았다.
나는 식료품점을 둘러보면서 좋은 과일이 없나 살펴보았다.
“뭐 찾으시는 것이라도 있으세요?”
“아, 일단 과일 씨앗을 찾고 있습니다. 두 가지 종류로요. 과일 안주를 만들 건데, 적당한 과일이 없나 해서요.”
“그렇군요. 그럼 포도와 딸기는 어때요? 둘 다 주스와 잼, 혹은 술을 담가먹기에도 좋아요.”
“호오, 그럼 그렇게 하죠.”
안주 외의 쓰임이 있단 것에 혹했다.
게다가 잼을 만들 수도 있단 것도 혹했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사과도 잼을 만들 수 있지.
“또 찾으시는 것은 없으신가요?”
“밀과 보리 씨앗도 필요합니다. 벼 씨도 필요하고······ 그리고 혹시 여기 고추 씨앗도 파나요?”
“네, 팔아요. 매운 음식에 고추는 필수죠. 얼마나 필요하세요?”
“그러니까······ 딸기 씨앗 50개, 포도 씨앗 50개, 밀 씨앗 100개, 벼 씨 200개, 고추 씨앗 200개, 보리 씨앗 100개가 필요하네요.”
“딸기와 포도 씨앗은 각각 200골드에요. 나머지는 다 50골드고요. 계산해드리겠습니다, 잠시 만요······ 총 50000골드네요.”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제 5만 골드는 푼돈으로 느껴져서 그냥 내곤 나왔다.
식료품점 아가씨의 친절한 인사를 뒤로하고 나온 나는 농장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마법사 아가씨의 말을 떠올렸다.
그물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아보라는 말이다.
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유용한 말 같아서 사기로 했다.
전에 낚싯대를 잡화점에서 샀으니, 그쪽으로 향했다.
“오! 어서오게!”
“안녕하세요, 여기서 전에 낚싯대를 사서 여쭙는 건데, 여기 그물도 파나요?”
“물론이지! 낡은 그물은 100골드! 일반 그물은 1000골드! 고급 그물은 10000골드일세!”
“······고급 그물이면 딱히 더 좋은 것이 있습니까?”
“잘 안 끊어지고 내구성이 좋지! 물론 돈이 남아돌면 사게나!”
“그럼 그걸로 사죠.”
“돈이 남아도는 모양이군!”
여전히 기운 넘치는 잡화점 아저씨였다.
나는 1만 골드에 고급그물을 샀다.
마을에서 볼 일은 다 본 것 같았다.
이제 실버의 먹이를 얻어다주어야 하는데, 농장을 들렀다가 여유롭게 사냥할 시간은 없는 듯했다.
출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농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토끼 몇 마리를 잡아 버리고 도축해서 실버의 먹이를 만들었다.
그리곤 정령과 실버, 호크와 옥스, 그리고 다른 가축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하곤 로그아웃했다.
오늘도 알찬 플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