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59화 (59/239)

42화 선술집 1일차 마무리

첫 선술집 운영에 미숙하고 바쁜 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현실보단 편하긴 했다.

일단 설거지가 필요 없었다.

물방울이 한 번 물로 씻으면 티 하나 없이 깨끗해졌기 때문이다.

사과파이의 담는 접시나 테이블의 컵은 가져가도 상관없는 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그것도 물방울 덕분에 힘든 설거지는 필요 없어서 재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리고 아직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보니까 바쁘긴 해도 일이 어렵진 않았다.

나중에 메뉴가 늘어나면 힘들어지겠지만, 지금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그냥 이대로 그 날 파는 메뉴를 정해서 적은 메뉴를 유지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요식업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영업적인 실수가 바로 많은 메뉴이지 않던가?

메뉴가 많으면 사람들이 많이 사먹어 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들은 맛있는 것만 먹지, 다양한 것을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린 유리잔에 주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손님. 유리잔이 충분하지 않아서 우선 스탠드바에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그렇군요.”

몇 가지 콤플레인이 계속 이어졌다.

테이블에도 위스키 주문이 이어졌는데, 그들에게는 나무잔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유리잔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를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충분한 잔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술집을 좀 더 늦게 열고, 유리잔을 더 확보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내 스케줄이 꼬였을 것이다.

문을 열었을 때 이미 현실의 8시간, 그러니까 게임의 32시간 중 16시간이 훨씬 지났다.

이보다 늦게 개점했다면 내 개인적인 마무리에 영향을 줄 것이었다.

울타리에서 기다렸던 손님들이 떠나는 것도 문제였고 말이다.

“와 정말 사람 많다.”

“줄이라도 서야 하나?”

“저기 서서 마시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래도 좋다는 사람들은 서서 마셔도 상관없데.”

“중세나 서부극 주점 같네.”

“나무잔은 들고 가도 상관없어서 바깥에서 마시는 사람도 있어.”

“나도 농장 구경이나 하면서 마셔야겠다.”

장사는 너무 잘되는 수준이었다.

파이는 57개가 어느새 다 팔렸고, 술만 팔게 됐는데도 입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몰렸다.

초보자들만이 아니라 차림이 고수인 사람들도 찾아온 것이다.

고수인 사람들은 골드가 많아서 몇 잔이고 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듣자하니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고급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주인장, 메뉴가 너무 적어. 사과파이도 나쁘진 않지만 안주가 다양하면 좋았을 텐데.”

“게임인데도 만드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요. 재료 확보도 시간이 걸리고요.”

“쩝, 술맛은 참 좋은 곳인데 아쉽네. 구운 오징어라도 팔아보는 건 어떤가?”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여긴 오징어가 막 유통되는 그런 곳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여러 가지 생각해보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손님도 계셨다.

그분은 훈계에 가까운 조언을 해주었는데, 일리있는 말이긴 했다.

사과파이만 팔기엔 좀 문제가 있었다.

일단 마법사 길드와 군신 길드에도 팔아야 해서 수량을 많이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뭔가 다른 메뉴라도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과 샐러드라든지, 버프와는 상관없이 안주로 팔만한 것 말이다.

아니면 주변에 토끼가 널렸으니 토끼구이라도 팔아볼까?

여하튼 나는 8시간 가까이 장사를 했다.

그제야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새벽이 늦었고,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 나도 슬슬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때란 말이었다.

“오늘 장사는 이만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축객령을 내렸다.

아, 장사하는데 좋은 점이라면 만취하는 손님이 없다는 점이었다.

술 취하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게임 시스템으로 만취는 구현하지 않은 모양이다.

기껏해야 알딸딸하고 다리가 좀 꼬이는 정도? 필름이 끊기고 주태를 부리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들 내 말을 듣고 선술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바람아, 청소하자.”

[바람이가 당신의 명령을 즉시 응답합니다.]

충직한 바람이는 바로 날아와서 바람을 이용해 땅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나는 접시와 컵을 치웠다.

그러면서 정산을 해보았다.

우선 인벤토리에 들어온 골드를 확인해보았다.

“3927100골드······.”

인벤토리에 확인되는 골드를 보고 나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

이게 1:1 비율로 돈이 된다니, 그럼 나는 3일 만에 400만원 가까이 벌었다는 의미다.

연봉이 센 고소득 직종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회사원들에겐 꿈도 못 꿀 돈이었다.

나는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파악해보았다.

일단 사과파이는 아니다.

대략 7000골드 선에서 경매가 이루어진 사과파이는 57개를 팔아봐야 기껏 40만 골드 정도였다.

거기에 1500골드에 몇 십잔 판 우유를 더해도 몇 만원 더해졌을 뿐이었다.

그것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런 돈이 쌓이게 만든 주원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원인은 하나 뿐이다.

술인 것이다.

나는 남은 술을 확인해보았다.

[잘 숙성된 4등급 스카치 위스키 49리터]

절반 정도인 51리터를 팔았다는 것이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돈이 150만 골드 정도였으니, 사과파이로 번 돈을 제외하면 190만 골드 정도의 수익을 냈다는 의미다.

술장사가 돈이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술은 안 그래도 사람들이 반드시 사는 기호품이다.

거기에 이 사이버 상의 술은 현실의 술보다 장점이 너무 많았다.

마셔도 건강에 해롭지 않지, 맛있지, 값싸지······ 장사가 안 될 이유가 없었다.

대충 잔수로 따지면 51000ml리터를 150ml잔으로 팔았으니 340잔을 팔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루 종일 판 것도 아니고 8시간 장사에 이 정도다.

“순식간에 내 한 달 월급을 벌었군.”

나는 다소 어이가 없어서 실소했다.

그냥 재미있어서 장사를 했다는데 돈이 무진장 벌렸다.

그러니까······

“더 재밌잖아?”

······취미로 하는 일로 돈까지 버는 것만큼 재밌는 일은 없었다.

마치 취미로 쓰는 소설이 대박 난 기분.

뭔가 현실에 비유할 만한 것을 특정하기 힘들지만, 나는 게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힐링을 하고 재미로 장사를 할 뿐인데 그게 엄청 돈이 된다는 것이다.

이만큼 성취욕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없었다.

재밌고, 돈을 번다!

세상에 그것보다 더 뿌듯한 게 있을까?

“일단 오늘 일부터 마무리 지어야겠다.”

남은 일은 시화를 불러서 포션과 사과파이, 그리고 아까 만들었던 망토와 장갑을 팔아야한다.

그건 지금 버는 것에 비해서 비교적 별거 아닌 일이 되버린 것 같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화에게 파는 옷가지나 포션, 파이도 내가 직접 만들어 판다는 자부심이 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귓속말로 시화를 부르고 그가 올 때까지 나는 물방울과 술을 기울이면서 저녁놀을 바라보았다.

[물방울이 스카치 위스키에 취기가 오릅니다.]

물방울은 술을 마시더니 공기방울을 만들어내면서 취기를 올리고 있었다.

어쩐지 취한 것처럼 흔들거리는 것이 매우 귀여워 쓰다듬어 주었다.

불돌이나 바람이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지, 권해도 싫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물소고기를 구워서 소금을 친 걸로 안주를 했다.

그냥 구운 물소고기는 등심 스테이크 맛이 났다.

나는 옆에서 헥헥 거리며 먹고 싶은 눈치를 보이는 실버에게 조금 나눠줬다.

현실의 개라면 소금을 친 건 주면 좋지 않은데, 게임이라 문제는 없는 듯했다.

그렇게 석양이 지고 어스름이 내릴 때였다.

“공진씨.”

“아, 오셨군요.”

시화가 그때 도착했다.

나는 모닥불을 끄곤 울타리 앞에 있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루 사이에 못 보던 건물이 생겼군요.”

“제 선술집입니다. 저기서 말씀 나누시죠.”

나는 그를 그 안으로 안내했다.

멋들어진 흑색 갑옷을 입은 그는 저벅저벅 걸어서 테이블 하나에 앉았다.

“스카치 위스키 한 잔 하시겠습니까? 맛이 아주 좋습니다.”

“술을 파는 겁니까?”

“네, 준비는 어설펐지만 장사가 아주 잘됐습니다. 술로만 200만 골드 정도를 벌었군요.”

“······.”

나의 말에 시화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사실 그에게 이걸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말을 했다.

나는 그의 길드원이긴 하지만, 사실 사업상의 관계에 가까웠다.

나는 물건을 팔고, 그는 사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의 바이어와 세일즈맨의 관계가 아니다.

여기서 갑은 나이기 때문이었다.

갑질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괜히 으쓱하는 기분으로 일부러 오늘 장사수입을 말했다.

한 마디로 기를 좀 죽이려는 것이다.

“오늘 준비한 건 하급 체력의 물약 8개와 사과파이 21개, 그리고 이것들입니다.”

“망토와 장갑이군요.”

“옵션을 확인해보십시오.”

“이것도······ 좋은 세트효과군요.”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그린스킨 족을 상대할 때 탱커가 입으면 피해를 거의 받지 않을 정도입니다.”

“피해는 15%밖에 감소시키지 않는데요?”

“그런 감각이 아닙니다. 탱커는 이것 외에도 많은 방어구를 입습니다. 이미 높아진 방어도에도 피해가 누적되는 것이 문제인데, 15%가 더 감소되면 그 누적되는 피해가 훨씬 감소합니다. 그린스킨 족에 한해선 지금 나온 어떤 것보다 탱커에겐 효율적인 장비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10만 골드 어떻습니까?”

그는 잠시 고심하다가 말했다.

아마도 그도 상당히 비싸게 부른 것이리라.

여기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협상을 하려면 값을 더 올려야 한다.

그냥 넙죽 받는 것은 호구나 하는 짓.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방법인 직설적으로 값을 요구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직설적인 방법은 사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화씨, 제가 괜한 소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옷을 만드는 것은 노동시간에 비해 수지맞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

“양모도 제한적이지만, 무엇보다 방직과 방적 단계가 좀 귀찮거든요. 자투리 시간에 하긴 하지만 다른 작업들보다 손이 갑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죠.”

“125000골드에 사겠습니다. 이 이상은 어렵습니다. 아무리 효과가 좋다지만 강화도 되어 있지 않고 방어도는 낮은 아이템입니다. 양해해주십시오.”

“그러죠.”

물품에 드는 수고나 시간을 언급하면서 스스로 값을 더 올리게 만들었다.

사실 만들면서도 꽤 즐거웠기 때문에 그 시간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럴 땐 눈치껏 요령도 피울 줄 알아야한다.

게다가 상대가 이렇게 말이 통한다면 사정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협상이 된다.

나쁘게 말하면 호구라고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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