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마구 만들기!
“후욱, 후욱.”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유리를 불었다.
지치는 일이었지만, 익숙해지니 이것도 나름 견딜만했다.
약 두 시간을 소모해 유리 20개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위스키잔을 조합 스킬로 만들었다.
그러자 손에 예쁜 위스키잔이 만들어졌다.
“맛있는 술은 예쁜 잔에 담아 마셔야 제 맛이지.”
소주는 소주잔에, 맥주는 맥주잔에, 막걸리는 사발에, 위스키는 위스키잔이 제격이다.
시간과 체력 관계상 오늘은 스탠드바에서 마시는 사람들에게만 제공할 수 있지만, 나중엔 제대로 해볼 생각이다.
농장을 하면서 농장에서 난 재료로 음식과 술을 만들어 판다, 마치 정말로 귀농한 판타지 세계의 사람이 된 기분이다.
나는 서둘러 20잔의 위스키잔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소중히 인벤토리에 담았다.
[농사 스킬 레벨 업!]
“어, 작물이 다 자랐나보다.”
때마침 농사 스킬이 레벨 업 되면서 작물이 모두 자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장간을 나와 밭쪽으로 향하면 다 자란 보리와 밀이 아름다운 황금빛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삭막한 도시에 살면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없었는데, 왠지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나 많은 것을 손수 만든 적이 있었던가?
서류와 씨름하면서 사는 삶 속에서 자연 풍요로움을 느끼긴 참으로 힘들다.
그걸 게임으로나마 느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남들은 몬스터를 잡고 강해지는 것이 목표라지만, 나에겐 이것이 게임을 하는 이유였다.
“수확할 시간이군.”
나는 즐겁게 중얼거리며 수확용 대낫을 꺼냈다.
많은 수의 작물이지만, 수확은 즐거운 마음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거야 현실의 농부들에겐 일상의 노동이고 로망일 수 없겠지만, 나같이 힐링에 목마른 회사원에겐 꿈같은 순간이다.
특히 그걸로 또 맛있는 술을 담글 생각을 하니,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나는 밭뙈기의 여포가 된 기분으로 신나게 보리를 수확했다.
“거참 시원시원하게 베는구먼.”
“벼농사는 안허나? 보리랑 밀만 재배하네.”
“벼는 모종으로 키워야하지 않나?”
“게임에서 어떻게 혀 놨는지 모르제. 모종하려면 얼마나 힘든디.”
근처에 와서 수확을 구경하는 장년의 유저들이 있었다.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어쩐지 실제로 농사에 종사하시거나 경험이 있으신 듯했다.
문득 나도 게임에서 벼는 농사를 어떻게 짓지?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편의상 그냥 심심하게 밭에 씨를 뿌리는 파종으로 키울 수도 있다.
모종, 그러니까 모내기 방식이 고안되기 전에는 벼도 그렇게 길렀으니 말이다.
“골램아, 벼는 어떻게 키워? 모종으로? 아니면 밭에 그냥 뿌려서?”
[선택입니다. 파종으로 키울 경우 8시간동안 같은 방식으로 자랍니다.]
“그럼 모종으로 하면?”
[비료를 쓰지 않아도 성장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됩니다. 또한 등급도 높게 책정됩니다. 다만 모종을 하기 위해선 모내기 밭을 따로 만들고, 모판이나 밭에서 벼의 모종을 키운 뒤 모내기 밭으로 옮겨 심어야 합니다. 대단한 노동력이 소모됩니다. 추천해드리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네······.”
골램의 말에 따르면 모종 방식도 구현은 되어 있는데, 여러모로 귀찮은 방식인 것 같다.
사실 모내기가 노동집약적인 방식인 것도 사실이다.
요즘이야 모내기 심는 기계도 있고, 농촌활동이나 대민지원 같은 것이 있다지만, 예전에는 순수한 농부들의 노동력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래도 현실에선 그렇게 키워야 쌀이 잘 자라니 자리 잡은 방식이지만, 게임에선 굳이 따라할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내가 벼만 키워 팔아서 돈을 벌어야하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모내기는 따라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래도 벼는 키워보고 싶었다.
한식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언젠가는 막걸리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삭 사삭 사사사삭!
[반복노동을 견뎌서 정신력이 향상됩니다.]
[정신력이 2 올랐습니다.]
“좋아! 다 베었다!”
600개의 밀과 보리를 다 수확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수확을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해서 별로 힘든 줄 몰랐다.
무엇보다 곧 만들어 마실 술을 생각하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오늘 너무 술에 집착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도 회식한 날이라 그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까 마셨던 그레인 위스키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 것이고 말이다.
현실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고급 위스키를 또 만들어 마실 수 있다니, 애주가의 가슴이 끓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스카치 위스키 발효액 발효 중 - 1시간 59분]
망설일 것 없이 바로 발효통 100개에 보리 3개, 이스트 2개, 그리고 물 1리터씩 넣어서 발효액 발효를 시작했다.
발효에 2시간, 증류에 2시간, 숙성에 2시간. 이제 여섯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스카치 위스키가 100리터나 만들어진다.
팔기 전에 몇 잔 마시고, 남은 것은 아껴둬야겠다.
일단 이젠 사과파이를 만들어야 했다.
그곳에도 고급 비료를 뿌려두어서 같은 시간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50그루의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잔뜩 열리니, 황홀할 붉은 색 열매의 전경이었다.
[잘 익은 4등급 사과 80개]
[잘 익은 5등급 사과 141개]
농사 스킬 레벨이 5가 되어서 4등급과 5등급 사과가 수확되었다.
사과나무가 50그루나 되다보니 이제 생산량이 두 배 가량으로 뛰었다.
이 사과들은 잘 나누어서 사과파이용 사과와 이스트로 써야한다.
221개니까 반으로 나누면 사과 110개, 이스트 110개.
밀가루와 치즈도 110개가 필요하다.
일단 밀가루는······
[조합, 밀가루
주로 빵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 이스트 없이 구우면 매우 딱딱한 빵이 된다.
필요한 재료 : 밀
필요한 도구 : 농사 스킬 Lv1, 조합 스킬 ]
······조합 스킬로 만들 수 있었다.
재료는 문제 없지만 110개나 만들어야 해서 시간이 약간 걸릴 듯 했다.
어차피 뭔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하지 문제 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과파이를 만드는 데에는 치즈도 필요하다.
나는 남은 우유를 확인해보았다.
24리터가 있었다.
1리터에 5개의 치즈를 발효 시킬 수 있으니까, 120개의 치즈를 만들 수 있다.
좋아, 재료는 충분했다.
나는 남은 발효통에 11개에 사과 110개를 넣고 이스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5개의 발효통에는 24리터의 우유를 넣고 치즈를 발효시켰다.
“이제 밀가루만 만들면 된다는 거지.”
그럼 사과파이의 재료는 다 모이고, 화덕에 굽기만 하면 된다.
나는 곧바로 조합 스킬의 제작 버튼을 눌러 밀을 만들기 시작했다.
300개의 밀 중 110개의 밀을 밀가루로 만들었다. 190개의 밀은 나중을 위해 아껴둘 생각이다.
스카치 위스키의 발효액과 이스트, 치즈가 만들어지는 자투리 시간이 남았다.
나는 잡초만 뜯은 동물들에게 사료라도 줄까, 생각하고 10개의 사료를 만들었다.
사료는 한 개 이상의 사료가 필요했는데, 다른 종류를 서로 섞으면 혼합사료가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리는 다 위스키를 만드는 중이라 밀알로만 된 사료였다.
나는 그것들을 각각 돼지, 소, 양에게 한 개씩 뿌려주었다.
음머어어어
매애애애애
꿀꿀꿀
아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나는 쉰다는 생각으로 호크와 암탉에게도 모이를 주었다.
그 둘도 꼬꼬꼬 거리면서 모이를 쪼아 먹었다.
그러다가도 연금술도구를 확인했다.
나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1시간 간격으로 연금술도구를 확인해, 완성된 포션을 회수하고 새 재료를 세팅시켜 다시 제조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6개의 하급 체력 회복의 포션이 만들어졌다.
두 번만 더 하면 8개의 하급 체력 회복의 포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본래 하루에 4개만 만들기로 했는데, 자동으로 만들 수 있게 되어서 4개를 더 만들게 된 셈이다.
길드마스터 시화가 들으면 기뻐할 것이다.
그 후로는 우유를 짰다.
치즈를 만들면서 다 쓴 우유를 보충해서 8리터의 우유를 얻었다.
음식 버프를 위해 선술집을 찾은 미성년자들에게 내줄 생각이었다.
“하는 김에 재봉도 지금 해둘까?”
2시간이 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그냥 쉬고 있어도 좋지만 만들려고 했던 양모 망토와 양모 장갑을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늘을 꺼내 재봉스킬을 사용했다.
재료는 딱 맞아 떨어지게 가지고 있었으므로, 스킬을 사용해 즉시 망토와 장갑 만들기를 시작했다.
강화용 소재인 고블린의 정수 41개를 각각 21개, 20개씩 넣었다.
어떤 것이 만들어질지 조금 궁금해지고 있었다.
[잘 만든 8등급 고블린 사냥꾼의 양모 망토,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양모 망토, 보온성이 뛰어나고 그린스킨 족의 공격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해준다. 방어도 15
세트효과 : 잘 만든 8등급 고블린 사냥꾼의 양모 망토, 잘 만든 n등급 고블린 사냥꾼의 양모 장갑/ 그린스킨 족의 공격 피해를 15% 경감시켜준다 ]
[잘 만든 8등급 고블린 사냥꾼의 양모 장갑
생활의 달인 ‘사공진’이 만든 양모 장갑, 보온성이 뛰어나고 그린스킨 족의 공격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해준다. 방어도 10
세트효과 : 잘 만든 n등급 고블린 사냥꾼의 양모 망토, 잘 만든 n등급 고블린 사냥꾼의 양모 장갑/ 그린스킨 족의 공격 피해를 15% 경감시켜준다. ]
“이번에도 그린스킨 족 관련 세트효과네? 근데 이번엔 방어도군.”
내가 입고 있는 양모 옷과 바지는 공격력이 오르는 세트효과다.
그런데 망토와 장갑은 방어도를 올려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이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시화에게 보여주고 적당히 파는게 좋을 것 같았다.
재봉스킬의 바느질을 하느라 시간을 적당히 떼울 수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만 실버와 불돌이, 물방울과 놀아주자 2시간이 지나서 재료들을 수확할 수 있었다.
“위스키 발효액은 증류기에 넣었고, 이젠 파이를 구울 시간이군.”
파이를 110개나 구워야한다.
한 개 5분이라고 치면, 550분. 술이 완성되는 시간은 240분이니 역시 타임 오버다.
그러니까 일단 장사에 쓸 양만 굽는 것이 좋다.
240분의 시간을 전부 사용한다면 58개를 구울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파이가 52개 밖에 남지 않는다.
<군신>길드와 마법사 길드에도 나눠 팔아야하니, 각각 26개씩 돌아간다는 계산이 선다.
“우선 58개만 굽고, 나머지는 장사 끝내고 구워 팔아야겠다.”
58개의 파이가 덜 팔릴 수도 있으니, 그건 내가 먹던지 보태서 팔아야할 것 같았다.
다른 문제라면 파이가 안주로 적당한가, 싶은 거지만······ 버프 때문이라도 먹을 사람들은 많을 것이고 또 사과파이의 맛이 기가 막히니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불돌이를 불러서 화덕에 불을 지폈다.
“자, 이제 다시 요리사가 되어볼까.”
나는 두 팔을 걷으며 요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