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55화 (55/239)

38화 바람의 정령

메시지창이 뜸과 동시에 나의 앞에 바람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불돌이와 물방울이 가진 것 같은 ‘핵’이 생겼고, 그것을 중심으로 연두 빛의 바람이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곧 바람의 정령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급 바람의 정령이 당신에게 경례를 합니다.]

“어? 그래. 안녕.”

그런데 뜬금없이 경례를 한다는 메시지창이 떴다.

나는 얼떨결에 경례를 받아주었다.

그러자 흡족한 듯이 내 곁으로 다가오는 바람의 정령이었다.

이 녀석은 어쩐지 군인 같은 성격이구나, 동물로 치면 매 일려나?

[하급 바람의 정령이 이름을 정해주길 요청합니다.]

“그래. 넌······ 바람이로 하자!”

정령들은 모두 한글이나 한자식 이름으로 했다.

바람의 정령이니까, 이 녀석은 바람이다!

[바람이가 자신의 이름을 감사히 받아들입니다.]

[바람이가 명령을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응, 바람아. 지금부터 씨를 뿌릴 건데, 네가 도와줄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바람이가 힘차게 대답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나는 씨를 한 움큼 쥐어보았지만, 손 같은 것도 없는 정령에게 씨를 어떻게 주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람이가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바람이가 씨를 뿌려야하는 밭에 씨앗을 뿌려주면 자신의 바람으로 적절하게 흩어주겠다고 합니다.]

“알겠어! 그럼······.”

나는 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씨앗을 파종하듯 뿌려보았다.

그러자 인위적인 바람이 불어서 씨앗들이 내가 일일이 심은 것처럼 밭에 뿌려졌다.

한 번에 10개의 씨앗은 심은 듯했다.

마나도 그렇게 많이 소모되지 않았다.

“오 정말 편해, 바람아 정말 네 덕분이야!”

[바람이가 당신의 칭찬에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폅니다.]

나는 바람이를 연신 칭찬하면서 씨앗을 계속 뿌렸다.

한 번에 10개의 씨앗이 심어졌기 때문에 60번만 뿌리면 600개의 씨앗을 다 뿌릴 수 있었다.

결국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보리 300개와 밀 300개를 전부 심을 수 있었다.

그런 뒤론 사과나무 밭에도 사과 씨앗 31개를 심었다.

그것의 비료는 내 가축들이 싼 똥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드디어 분수기를 사용할 수 있겠어.”

드디어 밀과 보리, 사과를 다 심었다.

분수기를 한 번 사용해보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

물론 술과 사과파이 재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넓은 밭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곤 분수기를 설치하려고 했다.

우선은 튤립 밭과 사과밭에 설치해야 한다.

이미 다 자란 것들이기에 자주 물을 줄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줘야 해서 자동으로 물을 주도록 해볼 생각이었다.

그다음에는 보리와 밀밭에 분수기를 설치할 차례였다.

넓었기 때문에 12개의 분수기를 알맞게 설치해야만 했다.

정확히 50개의 씨앗이 물을 받을 수 있는 범위로, 겹치지 않게 설치했다.

“골램아 다 설치했는데, 이거 작동은 어떻게 시켜?”

[물의 정령에게 작동을 명령하면 1시간마다 물을 생성해 뿌립니다. 최대 120시간 동안 유지되며, 그 이상 사용하면 정령석을 교체해야 합니다. 작물을 추수한 이후에는 언제든 작동을 중지시켜 정령석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건전지 같은 개념이구나.”

나는 그런 감상을 말하곤 물방울을 불렀다.

호수에서 놀고 있던 물방울이 나에게 다가왔다.

“물방울아 여기 설치해놓은 분수기들 전부 작동시켜 줄래?”

[물방울이 귀찮아합니다.]

[바람이가 물방울에게 충성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물방울이 바람이를 피해 주인에게 숨습니다.]

물방울이 투정을 하자, 바람이가 물방울에게 훈계를 하는 듯했다.

그런 물방울은 내 뒤로 숨어버리고 말이다.

나는 물방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일 끝나면 놀아줄 테니까, 도와주라.”

[물방울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며 도와주기로 합니다.]

물방울은 결국 새침하게 나의 뒤에서 나왔다.

그리곤 하늘로 부유해선 물줄기를 각각의 분수기에 뻗었다.

그러자 엄청난 장관이 펼쳐졌다.

츄아아아아!

“우와! 갑자기 분수 쇼다!”

“스프링클러 같은데?”

“판타지 게임에 웬 스프링클러?”

“몰라 마법 같은 거겠지.”

분수기가 스프링클러처럼 물을 뿌리는 모습은 판타지풍의 게임에선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사실 분수 쇼 자체도 분수가 있는 공원 같은 곳을 가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구경꾼들도 나도 그것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한편으로 나는 쑥쑥 자라는 잡초들을 보고 저걸 다 치우는 것도 일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잡초만 베어주면 되는데······ 이렇게 넓은 밭을 한 시간 마다 하는 것도 일이겠다.”

[주인님, 그럴 땐 가축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가축? 아! 잡초를 먹어주는구나!”

[그렇습니다. 가축의 똥으로 비료를 만들고, 가축을 이용해 밭을 갈고, 잡초를 관리하는 것. 목축 시스템의 선순환입니다.]

“과연. 얘들아! 가축들아!”

나는 얼른 가축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밭의 잡초들 좀 먹어 없애 줘.”

음머어어어

매애애애애

꿀꿀꿀

옥스와 암소, 양 두 마리, 돼지 두 마리가 일제히 울었다.

그들은 내 명령을 듣고는 밭에 자라는 잡초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것과 비슷한 친환경 농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부작용에 대해서도 떠올랐다.

동물들이 작물을 훼손해 버리는 것이다.

“골램아, 혹시 작물을 잘못 건드리는 일은 없어?”

[없습니다. 절대로 잡초만 골라 먹을 것입니다.]

“캬, 똑똑한 애들이네! 잠깐, 그럼 난 이제 밭만 갈고, 씨만 뿌리면 자동으로 밭에 물을 뿌리고 잡초를 관리할 수 있구나?”

[그렇습니다. 이제 거의 자동화 농법에 접근하셨습니다.]

“자동화 농법?”

[마지막으로 수확만 자동으로 하실 수 있으시면 자동화 농법을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수확도 자동으로 할 수 있어? 어떻게?”

[그건 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제게 육체를 주시면 제가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아······ 골램의 몸은 무슨 스킬로 만들 수 있어?”

[마법공학 스킬이 필요합니다.]

“음, 척 듣기에도 어려울 것 같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다만?”

[돈과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뭐, 그럴 것 같아.”

앞에 ‘마법’이 붙긴 하지만 ‘공학’이란 단어가 뒤따르는 것이 딱 그런 느낌이다.

한국어는 뒤쪽의 단어가 진짜 의미를 가지므로 아마도 마법보단 공학에 가까운 것일 터이다.

예를 들어서 ‘음식물쓰레기’라고 하면 음식물이 아니라 쓰레기가 그 단어의 진짜 의미를 대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게임이니까 공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 거라고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이제 물과 잡초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럼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다음에 할 일은······

[대장기술, 개조 자동 연금술도구

정령술과 유리공예를 이용해 자동으로 정제작업을 할 수 있는 연금술도구를 만든다.

필요한 재료 : 연금술도구, 정령석, 유리

필요한 도구 : 유리공예용 철봉, 용광로, 대장기술 Lv3, 정령술 Lv3]

이걸 만들 차례였다!

대장기술 카탈로그에 있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만들 수는 없었다.

유리공예용 철봉과 유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같은 대장기술 카탈로그에서 일단 ‘유리공예용 철봉’을 찾아보았다.

[대장기술, 유리공예용 철봉

유리공예에 쓰이는 속이 빈 철봉. 봉의 끝에 유리를 달아 열에 녹이면서 부는 용도다.

필요한 재료 : 철괴 2개

필요한 도구 : 망치, 용광로, 대장기술 Lv3                                       ]

일단 이것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나는 곧 불돌이를 불러서 용광로에 불을 지폈다.

불돌이가 기뻐하면서 들어가 후끈하게 불이 붙었다.

나는 제작버튼을 눌러 파란모형을 만들었고, 망치로 두들겨 철봉을 만들었다.

철봉은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유리를 만들어 볼 때인데······

[대장기술, 유리

철봉을 이용해 유리를 만든다. 만드는데 상당한 노동이 필요하다.

필요한 재료 : 석회석 1개, 소금 1개, 모래,1개

필요한 도구 : 유리공예용 철봉, 용광로, 대장기술 Lv3         ]

망치를 쓰지 않는 대장기술이었다.

이런 것은 처음인데, 왠지 힘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을 적중시키는 골램의 말이 이어졌다.

[1개의 유리를 만들려면 5분간 철봉을 돌리며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으셔야 합니다.]

“오, 오분 동안이나?”

[이 또한 다른 생활 스킬과 마찬가지로 주인님의 세상에서 필요한 노동을 간략화한 것입니다.]

“그래도 게임인데 너무한 걸······.”

유리를 만들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이게 스킬을 사용해서 그런 거라니, 만약 스킬을 안쓰고 유리를 만들려면 현실처럼 고생해야한다는 말 같다.

유리가 비싸다는 NPC들의 말이 괜히 떠오르지 않았다.

실제로 과거에는 유리가 매우 귀했다는 상식도 떠올랐다.

하지만 불만만 가져서야 일이 안 된다.

나는 제작버튼을 누르고 유리 제작을 시작했다.

“후욱 후욱”

[폐활량을 지속적으로 소모시켜 체력이 늘어납니다.]

[체력이 2 올랐습니다.]

열심히 5분간 철봉을 돌리면서 유리 하나를 만들었다.

다소 숨이 차고 머리가 지끈 거렸다.

그나마 능력치가 올라서 위안이 되었다.

여하튼 유리 하나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헤엑, 그 다음은······ 연금술 도구를 개조하는 거구나. 이것도 5분 동안 불어야해?”

[플라스크가 여섯 개이므로 개당 5분, 총합 30분을 하셔야 합니다.]

“꽤액.”

나는 괜히 죽는 소리를 내었다.

차라리 망치질을 300번 하라면 할 것인데, 30분 간 봉을 돌리면서 부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하지만 자동으로 포션제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만들었다.

[개조 자동 연금술도구]

“됐다!”

유리를 만들고, 그 유리로 연금술 도구를 개조하는 시간.

도합 30분 동안 철봉을 돌리면서 숨을 불어넣은 나는 드디어 그 결실에 기뻐했다.

이제 이걸 이용하면 포션을 만들기 위해 한약을 달이는 무수리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이지 정령술 만세다!”

[불돌이가 당신의 말에 함께 기뻐합니다.]

[바람이가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같이 있던 정령들이 함께 기뻐해주었다.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대장간을 나왔고, 그대로 호수를 향해 달려갔다.

마치 허물을 벗는 것처럼 옷을 탈의하면서 말이다.

풍덩!

“물방울아, 놀자!”

[물방울이 당신에게 물을 열렬히 뿌립니다.]

“아하하하하!”

일한 뒤에는 실컷 논다!

현실에선 꿈도 못 꾸는 행복함!

아직도 더 만들 것들이 있지만, 노동을 한 뒤엔 확실히 쉬어주어야 한다.

여긴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이고, 내 농장이니까 내 마음대로다!

나는 어린애로 돌아간 마음으로 수영을 하며 물방울과 놀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