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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54화 (54/239)

37화 농장 확장

“아이고 힘들다.”

결국 나는 어느 정도 밭을 갈다가 잠시 멈추게 되었다.

하려면 계속 할 순 있지만, 너무 많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꺾이는 것이 문제였다.

자연스레 좀 더 수월하게 밭을 가는 방법은 없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아주 전통적인 방법이 있었는데, 게임이라는 위화감 때문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성이 높은 이 게임에선 그것도 구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재빨리 목공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를 열었다.

[목공, 쟁기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도구. 밭을 가는데 드는 노동력을 크게 줄인다.

필요한 재료 : 목재 20개, 밧줄

필요한 도구 : 망치, 목공 스킬 Lv2, 조합 스킬                     ]

예상대로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쟁기, 전통적으로 밭을 가는 도구였다.

소나 말을 이용해야하지만, 무엇이 문제인가? 나에겐 옥스라는 훌륭한 소가 있다.

그런데 밧줄이 필요하다는 것이 거슬렸다.

나는 아마도 조합 스킬로 만들거라 생각하곤 조합 스킬의 카탈로그를 뒤져보았다.

[조합, 밧줄

무언가를 묶거나 연결시킬 때 쓰는 도구. 이상한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도 애용한다.

필요한 재료 : 밀, 보리, 벼 등의 짚단이 있는 작물 5개 혹은 그 대체품

필요한 도구 : 조합 스킬                                                     ]

예상대로 밧줄은 조합 스킬로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나한텐 밀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다소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골램이 말했다.

[주인님, 밧줄 재료의 대체품은 동물의 가죽입니다.]

“어? 진짜?”

[예, 가죽을 엮어 밧줄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 맞아. 가죽 밧줄도 있다는 말을 들어봤어.”

면 소재 밧줄보다 무진장 비싸고 동물보호협회 쪽의 항의도 있지만, 게임에서 그런 것은 무의미하다!

마침 인벤토리에도 물소가죽이 있었다.

10개나 있으니 다섯 개만 사용하면 된다.

나는 바로 제작 버튼을 눌렀다.

[물소가죽 밧줄]

1개인데도 상당히 긴 밧줄이 만들어졌다.

현실이었다면 핸드백 따위에 쓰일 밧줄인데, 쟁기에 쓰려니 뭔가 과소비하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얼른 쟁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선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옥스에게 다가갔다.

“옥스야 일 좀 도와줘야겠다.”

음머어어어어어

순하고 착한 옥스는 얌전히 날 따라왔고, 쟁기도 순순히 썼다.

원래 쟁기는 고삐를 걸기 위해 코뚜레를 하지만 그냥 망처럼 입에 씌우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하튼 쟁기를 씌우고 밭을 갈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편했다.

“와 소로 밭 간다.”

“만날 직접 갈던데, 기술이 발전했네.”

“아까 울타리 확장하는 거 보니까, 이번엔 밭 엄청 크게 갈려는 듯.”

“요즘은 소로 밭가는 거 구경하기 힘든데, 이걸 게임에서 보게 되네.”

구경꾼들은 소와 쟁기로 밭을 가는 것이 신기한지 그것에 관해 수다를 떨었다.

사실 밭을 갈고 있는 나도 신기했다.

나는 게임이기 때문에 소가 얌전히 말을 들어주는 거지만, 옛날 사람들은 게임도 아니고 현실의 소를 어떻게 다룬 것일까?

물론 가축화된 소는 온순하다고 하지만 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리면 밭을 망칠 텐데 말이다.

여하튼 옥스를 이용해 밭을 계속 갈았다.

편하긴 했지만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작물 600개를 심을 면적을 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태산이도 돕고 있어서 2시간 정도 소처럼 일하니 밭을 다 갈 수 있었다.

“수고했어, 옥스야.”

음머어어어어

“좀 이따가 맛있는 사료 만들어 줄게.”

음머머머

[옥스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옥스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쟁기를 풀어주었다.

옥스는 작은 꼬리를 휘휘 흔들며 다시 풀을 뜯으러 가버렸다.

태산이는 밭가는 것이 힘들었는지 흔들거림이 심해졌다.

나는 태산이도 수고했다며 쓰다듬어주면서 다음 할 일을 생각했다.

우선 마을의 목장을 들러서 비료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비료를 가져와서 밭에 뿌려야한다, 아마도 상당히 중노동이 될 것이다.

그 다음엔 이것 역시 좀 힘들겠지만, 씨를 심어야 한다.

그제야 마침내 스프링클러, 그러니까 분수기를 시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에고고, 규모를 키우려니까 좀 힘드네.”

멍멍!

“그래, 실버야 잠깐 다녀올게. 농장 잘 지키고 있으렴.”

정령들과 농장을 나서면서 허리를 두들겼다.

게임에서 허리가 아플 일은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실버가 나를 배웅 나왔는데, 그런 실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마을의 목장으로 향했다.

축사와 방목지의 크기로는 나보다 훨씬 큰 목장은 가축들도 많았다.

그런 동물들 사이에서 여전한 카우보이 목장주도 있었다.

내가 울타리를 지나 다가가자 그는 손가락 인사를 하면서 여전히 카우보이같은 말투로 말했다.

“여어, 오늘은 무슨 일이야?”

“안녕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비료 문제 때문에 왔는데요.”

“아하 똥을 사러왔구만.”

“뭐, 그렇습니다.”

남한테 똥이라고 하기 뭣해서 둘러말했는데, 시원시원한 성격의 카우보이 목장주가 먼저 말해버렸다.

그는 씩 웃으며 가축들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우리애들이 좀 많이 싸지. 얼마나 필요한 거야?”

“600개가 필요한데요.”

“작물을 600개나 심으려고? 갑자기 규모가 커진 거 아니야?”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더라고요. 그만큼의 똥이 있나요?”

“차고 넘치는 수준이지. 항상 싸주기 때문에 언제든 와도 줄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돈을 조금 받아야 해. 똥에 돈을 받고 파는 꼴이 우습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도 경쟁하면서 사가거든”

“아, 이해합니다.”

마을의 농부들도 비료가 필요할 테니 당연할 것이다.

수요가 있으면 똥이라도 가격이 붙는 것이 경제의 이치이다.

물론 대동강 물장사 같은 사기가 있긴 하지만, 이건 그런 경우는 아니다.

비록 똥을 사는 것이래도 말이다.

“비싸게 팔진 않아. 개당 100골드만 받거든. 600개가 필요하다고? 그럼 60000골드야.”

“저야 문제없긴 하지만 다른 농부들에겐 비싸지 않습니까? 10등급 사탕무가 200골드에 팔리는 걸로 기억하는데······.”

“비료 값이 만만치 않긴 하지. 하지만 나라고 좋아서 이런 가격에 파는 게 아니야, 이것도 경매로 정해진 가격이라고. 누군가에게 더 싸게 팔면 농부 어르신들에게 한 소리 들어. 그리고 초입 농부들이 아니고서야 10등급으로 파는 일은 없지. 비료를 쓰면 적어도 9등급 이상은 나오잖아? 그렇게 1년 농사짓고 그걸 팔거나 먹으면서 사는 거지.”

“그렇군요. 일단 사겠습니다.”

“고마워, 용돈 벌었군.”

결과적으로 농부들은 비료를 써서 이득은 보지만, 나처럼 대단하게 이윤을 보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애초에 난 플레이어라서 농작물의 생장속도가 빠른 걸로 알고 있다.

플레이어가 아닌 농부들은 현실처럼 농사를 지을 테니 수입도 폭발적이지 못하고, 근근하게 살아가는 모양이다.

여하튼 그런 정보를 얻고서 60000골드를 지불해 똥을 샀다.

다만 인벤토리로 거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직접 가져가라고, 우리들의 ‘신용’을 위해서 600개만 가져가줬으면 하는군.”

“물론 그럴 겁니다.”

양심이 있지, 똥으로 사기 칠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는 아이템화 되어 있는 가축의 똥을 줍기 시작했다.

다만 인벤토리에 똥을 600개나 넣고 가는 것은 조금 찜찜했다.

비록 냄새도 별로 안 나도록 게임에서 조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찜찜해서 조합스킬로 바로 고급 비료를 만들었다.

그런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주인님, 고급 비료는 나무 수액 2개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래? 하지만 그래선 나무를 더 배어야 한단 말이잖아. 그건 좀 곤란한데. 숲을 아주 초토화시킬 거야. 그런 짓은 하기 싫어.”

[나무를 베지 않고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 정말?”

[수액채집기를 이용해 나무를 베지 않고 수액을 채집할 수 있습니다.]

“수액채집기는 어떻게 만들어?”

[분수기와 마찬가지로 물의 정령술을 접목시킨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1개 나무에 채집하면 그 나무에는 8시간동안 채집할 수 없습니다. 채집할 수 있는 양은 벌목했을 때보다 두배 많은 10개입니다.]

“아하, 그럼 숲을 망가트리지 않고 얻을 수 있겠네.”

[나무 수액은 비료에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유용하게 사용하십시오.]

골램의 팁을 기억하면서 농장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똥으로 비료를 만들었으니 이걸 써야할 것 같다.

수액채집기는 나중에 필요해지면 만들어봐야 할 것 같다.

멍멍!

“옳지, 집 잘 지켰지?”

멍!

역시나 마중 나오는 실버였다.

꼬박꼬박 나를 배웅하고 마중 나오는 것이 아주 기특한 녀석이다.

마음껏 쓰다듬어준 뒤, 비료를 뿌려야하는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노동을 시작하려 했다.

비료를 뿌리는 작업은 옥스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현실이었으면 기계의 도움을 받았을 텐데, 여기서 흙비료를 뿌리는 비료살포기 농기계가 있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반복노동으로 체력이 좋아집니다.]

[체력이 2 올랐습니다.]

[무거운 것을 계속 들어서 힘이 좋아집니다.]

[힘이 2 올랐습니다.]

[인내심을 계속 발휘해서 정신력이 좋아집니다.]

[정신력이 2 올랐습니다.]

600개를 다 뿌리고 나니 능력치가 올랐다.

하지만 나는 땀이 뻘뻘 흐르고 목이 타서 지쳤다.

땅에 주저앉았지만 갈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사과주스 하나를 만들어 마셨다.

꿀까지 타 마시는 사과주스는 적당히 단 맛이 나서 일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었다.

이젠 텃밭치곤 너무 넓어졌지만 일하고 나서 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직 씨앗을 심어야하지만 씨앗은 그나마 쉬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땀을 닦으며 쉬고 있을 때 골램이 말했다.

[주인님, 이제 씨앗을 뿌리실 겁니까?]

“응. 그래야지.”

[이제 규모가 커졌고, 정신력이 충분해져 마나가 많습니다. 정령술을 이용해 뿌려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응? 그럴 수 있는 정령이 있어?”

[아직 하급 바람의 정령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면 씨앗을 더 편하게 심으실 수 있습니다.]

“오오······.”

나는 골램의 말에 벌떡 일어서버렸다.

아무래도 골램은 내 마나가 부족해서 지금까진 말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이젠 충분해져서 말한 모양이다.

나는 얼른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아직 한 번에 소환을 할 수 있는 정령은 최대 3마리, 나는 태산이를 역소환해야 했다.

태산이는 워낙에 꾸벅꾸벅 졸기를 좋아해서 역소환 한다고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았다.

곧 하급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다.

[하급 바람의 정령이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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