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53화 (53/239)

36화 분수기 만들기

“골램아 이 스프링······ 아니, 분수기는 어느 정도 면적에 물을 뿌릴 수 있어?”

나는 스프링클러 역할을 할 분수기가 몇 개나 필요할지 예상해보려고 골램에게 물었다.

[한 개의 분수기는 현재 간격으로 심었을 경우, 50개의 작물에게 물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럼 우선 튤립 밭에 하나, 사과나무에 하나 만들어야겠네. 그리고······.”

나는 더 심을 작물을 생각해보며 계획을 짜보았다.

우선 200리터짜리 숙성통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다.

지난번엔 발효통 하나에 발효액이 1리터 만들어지니까, 발효통의 용량을 키우든 개수를 늘리든 해서 200리터의 발효액을 확보해야한다.

발효통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200리터의 발효액을 만들려면 밀의 경우는 3개씩 들었으니까 600개의 밀이 필요하다.

50개의 밭이 12개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분수기도 12개가 필요하다.

튤립 밭과 사과나무에 쓸 것을 포함하면 14개다.

“분수기보다 밭이 문제겠네. 농장규모를 어마어마하게 늘려야겠어.”

갑자기 대규모 농사가 계획되어버렸다.

그저 술통 하나를 채우고 싶을 뿐이었는데, 나비효과처럼 계획이 커져버린 것이다.

작물 600개짜리 밭에 물을 뿌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분수기가 있기에 계획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잠깐, 지금 있는 사과를 다 써도 이스트가 모자라서 200리터는 무리잖아?”

위스키 발효액을 만드는데 드는 이스트는 2개다.

이스트를 하나 만드는데는 사과 한 개가 필요하고 말이다.

즉 200리터의 발효액을 만드는 데엔 이스트 400개가 필요하다.

지금 남은 이스트는 37개고 사과는 187개가 있다.

만들 수 있는 이스트의 최다수는 224개, 200리터를 만들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하지만 100리터를 만들기엔 충분한 숫자야.”

200리터까진 아니더라도 100리터의 위스키는 만들 수 있다.

그 정도여도 상당한 양이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럼 작물도 300개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줄이기보단, 기왕 하는 거, 술 외에도 여러 작물을 키울 수 있으면 좋지.”

물만 자동으로 줄 수 있어도 대량생산이 쉬워진다.

그러니 기왕 하는 거 300개로 만족하지 말고 600개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우선 사과가 더 필요해. 사과나무를 더 심자. 50개면 충분할 거야. 그리고······.”

나는 구체적으로 심을 작물을 생각해보았다.

지난번엔 그레인 위스키를 만들었으니까, 이번엔 보리로 스카치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맥주나 스카치 위스키에 쓰이는 보리는 다 자란 보리가 아니라 맥아(麥芽, malt)다.

그러니까 씨앗에 싹만 튀어서 그걸로 위스키를 만드는 것인데, 그럼 약간 내 구상에 모순이 생긴다.

상점에서 보리 씨앗을 팔면 그냥 그걸 조금만 키워서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레인 위스키를 만들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궁금해져서 골램에게 물어보았다.

[게임의 일관성을 위해 맥아는 다 자란 보리로 대체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스카치 위스키의 발효액을 얻기 위해선 보리 3개, 이스트 2개, 1리터의 물이 필요합니다. 또한 맥아가 쓰이는 다른 식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고추장 또한 맥아가 아닌 보리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현실과는 좀 다르지만, 아마도 게임의 일관성을 위해서 해놓은 조치인 것 같다.

예컨대 생산스킬이 있는 PC게임에서 맥주의 재료는 보통 ‘보리’다.

하지만 현실에선 정확히는 ‘맥아’를 쓴다.

그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가상현실 게임에서도 스카치 위스키의 재료를 보리로 한 모양이다.

여하튼 그럼 일단 보리 씨앗 300개를 사야한다.

그럼 남은 300개의 작물은······.

“우선 사과파이용 밀로 하자. 새로 얻는 사과들은 전부 사과파이로 만드는 거야. 아 또 치즈가 문제네, 우유가 몇 리터나 있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우유를 확인해보았다. 24리터, 암소에게 더 얻으면 8리터가 더해져서 32리터가 된다.

치즈는 1리터당 5개를 얻을 수 있으니까 다 쓰면 160개를 얻을 수 있다.

또 사과파이에는 꿀을 넣어야 하는데, 꿀은 그리 많이 넣지 않아도 되니까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즉 만들 수 있는 사과파이의 개수는 필경 160개가 될 것이고, 밀가루로 만들 밀이 아마도 남을 것이다.

그 밀은 나중에 또 그레인 위스키로 만들어서 스카치 위스키와 섞어 블렌디드 위스키로 만들어도 될 것이다.

술 생각을 하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사과파이 160개를 다 팔면 돈이 얼마나 될지 기대가 되었다.

“일단 분수기부터 만들어야겠다.”

우선은 분수기 14개를 만들 수 있는 철광석은 충분히 모아왔기에 나는 서둘러 제작을 시작했다.

제작버튼을 누르자, 원판 모양의 파란 모형이 생겼다.

나는 그것을 망치로 때렸다.

깡깡깡깡!

소형 물품인데도 정령술이 필요한 고급 물품이라선지 망치질을 30회는 해야했다.

나는 열심히 망치를 두드려서 하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만들어야 하는 것이 13개나 남았다.

나는 계속 망치질을 했다.

[중노동으로 단련되어 힘이 강해집니다.]

[힘이 2 올랐습니다.]

[땀흘려 일해서 체력이 좋아집니다.]

[체력이 2 올랐습니다.]

[인내심으로 정신력이 단련됩니다.]

[정신력이 2 올랐습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만들었다.

중간에는 열기 때문에 양모 옷을 벗고 작업을 해야만 했다.

대장간 안은 온통 사우나에 온 것 같이 후끈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게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계속했다.

어느덧 13개의 분수기를 만들 수 있었다.

[대장기술 레벨 업!]

“후우······.”

다 만들고 나니, 대장기술이 레벨 업 했다.

나는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을 느끼곤 얼른 대장간을 나왔다.

대장간을 나오니, 바깥은 온도 차이 때문에 추울 지경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차가움이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농장주인 아저씨가 오늘은 뭘 만드시나 보네.”

“땀 흘리는 거 봐라. 완전 야생남인 듯.”

“어어, 호수로 간다. 곧 뛰어든다는데 1000골드 검.”

풍덩!

구경꾼들이 내가 나온 것을 보고 수군거렸지만, 지금 내 귀에는 그런 수다가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호수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바지조차 벗지 않고서 그대로 다이빙 해버렸다.

“푸하! 이제 살만하다!”

[물방울이 당신의 다이빙에 깜짝 놀라 도망갑니다.]

[호크가 홰를 치며 놀랍니다.]

“앗, 미안.”

물방울은 호수에서 호크와 같이 수영하면서 놀고 있었는데, 내가 방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둘에게 사과하곤 뭍으로 돌아갔다.

그대로 수영하고 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을 계획했으니 내 성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을로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야만 했다.

“실버야! 마을 갔다 올게, 농장 잘 지켜!”

멍멍!

실버가 배를 까서 애교를 부리면서 대답했다.

나는 배를 문질러주곤 농장을 나섰다.

수영하던 물방울과 용광로에서 방금 나온 불돌이, 그리고 졸고 있던 태산이가 따라 붙었다.

나는 사야하는 목록을 떠올려 보았다.

“사과 씨앗 31개, 밀 씨앗 300개, 보리 씨앗 300개. 그 외엔······ 아, 가는 길에 여관주인 딸에게 그레인 위스키를 줘야겠다.”

할 일을 떠올린 나는, 마을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여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관의 1층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편에는 여관주인의 딸이 활기차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오셨네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전에 술을 팔기로 했잖아요? 샘플인 격이지만, 여기 한 병 가져와봤습니다.”

“나무병이네요, 유리병이면 좋겠지만 욕심이겠죠? 음.”

여관주인의 딸은 그렇게 말하며 나무병마개를 따곤 냄새를 맡았다.

그리곤 조금 마셔보았다.

“그레인 위스키네요. 맛도 향도 아주 좋아요. 역시 이방인이 만들면 숙성이 빠르고 잘 되는군요.”

“사실은 16리터 정도 만들었는데, 사람들에게 팔아버리고 1리터는 제가 마셔버렸습니다. 그건 남은 1리터고요.”

“어머, 정말 귀한 걸 주셨네요. 마시고 싶으셨을 텐데.”

“바로 아시는군요.”

“이방인님에게선 애주가의 냄새가 나거든요, 후후. 아, 값은 제대로 쳐야겠죠. 여기 4만 골드에요.”

여관주인의 딸은 골램의 말대로 1리터의 위스키를 4만 골드에 샀다.

나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흠, 실례가 아니라면 이방인님을 촌장님에게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네?”

“촌장님이 요즘 마을 일로 고민하고 계셔서요. 뭐,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아요. 다음에 또 봬요.”

“네, 그럼······.”

나는 그녀와 작별하곤 다음엔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여전히 수수한 차림의 갈색머리칼의 식료품점 아가씨가 있었다.

“좋은 하루에요, 이방인님.”

“네, 오늘은 좀 사야할 게 많습니다.”

“무얼 사시려고 하시죠?”

“사과 씨앗 31개와 밀 씨앗 300개, 보리 씨앗 300개요.”

“많이 사시네요. 다 합하면······ 33100골드입니다.”

많이 사다보니 비싸다······ 라고 생각을 했지만, 가지고 있는 골드가 많다보니 여유가 있었다.

나는 값을 지불하곤 그녀와도 손을 흔들어 인사하곤 식료품점을 나섰다.

나는 바삐 농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해야할 일이 참으로 많았다.

우선은 농장의 울타리를 확장해야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다.

멍멍!

“안녕 실버!”

돌아오자마자 실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물소고기 얻은 것을 실버에게 주어야할 것 같았다.

내가 없는 동안 알아서 토끼를 사냥해서 먹었겠지만, 실버는 가축들처럼 풀을 뜯거나 벌레를 쪼아 먹진 않으니, 챙겨주는 편이 좋았다.

“실버야 이거 먹어.”

멍멍!

나는 큼직한 물소고기 하나를 던져 주었다.

실버는 날쌔게 그것을 입으로 받아 물곤 아구아구 먹었다.

나는 그런 실버를 쓰다듬곤 일단 벌목을 하러 숲에 갔다.

숲에 가서 나무를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벌목한 뒤, 돌아오면서 문득 비료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밭의 범위가 늘어나면 주어야하는 비료도 많아지는데, 그걸 나무만 벌목해서 충당할 수가 없다.

만약 그랬다간 숲이 벌거숭이가 될 것이다.

물론 게임이라서 나무는 다시 자라긴 하지만 자라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다른 방법으로는 동물의 똥을 이용해서 고급 비료를 만드는 것인데, 내 가축들의 수는 그리 많지도 않아서 불가능했다······

“······아니, 방법이 없진 않잖아? 가축을 무진장 많이 기르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카우보이 말투를 하는 목장주, 그러면 가축의 똥을 잔뜩 쌓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한테 사보기로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그냥 비료 없이 하는 수밖에 없겠네.”

비료를 써야 더 고등급의 작물이 나오긴 하지만, 어차피 생활의 달인이 된 뒤로는 그것만으로는 큰 메리트가 아니었다.

고급비료는 작물을 키우는 시간을 줄여주어서 좋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울타리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추가 될 밭의 면적을 염두에 두고, 확장해야할 만큼의 울타리 숫자를 계산했다.

그리고 울타리를 해체해 연결한다.

아이템으로 인정받는 울타리를 연결하는 작업이 어렵진 않았지만 조금 노가다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목적의식을 가진 상태에선 뭘 해도 의욕이 있는 법이었다.

곧 울타리를 전부 칠 수 있었다.

다음은 밭 갈기였다.

“태산아! 밭 같이 갈래?”

[태산이가 하품을 하지만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땅의 정령인 태산이라면 밭을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는지 태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태산이와 함께 밭을 갈기 시작했다.

정신력이 69에 도달했기 때문에 마나가 꽤 충분해서 태산이와 함께 밭을 갈아도 어느 정도는 여유로웠다.

문제는 그래도 많은 면적을 갈아야 해서 노동량이 장난이 아니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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