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사이버 혼술
나는 영업 분야의 사원이지만, 현장의 영업 사원은 아니었기에 불티나게 팔린다는 말을 체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바로 지금 체감하게 되었다.
“저기요, 여기 위스키 한 잔 더요!”
“네네, 갑니다!”
“다음 음식 경매는 언제 해요?”
“지금 굽고 있어요, 다 익으면 바로 할게요.”
술 주문이 계속 이어졌고, 음식 경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좋은 일이지만, 나는 마치 현장의 영업 사원처럼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술을 따라주고, 물이나 얼음을 추가해주고, 동시에 화덕에서 요리를 구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크으, 바로 이 맛이야. 스카치 위스키는 아니지만 바에 가서 마시는 거보다 훨씬 좋군.”
“바에선 한 잔에 얼마 정도유?”
“만원이나 그 이상 내야 하는데, 여기선 6000골드면 마시네.”
“6000골드면 현금으로도 6000원이잖아? 뭐 이렇게 싸?”
“그러니까 말이야. 맛으로 볼 땐 오래 숙성한 위스키인데······ 여하튼 땡잡은 거지.”
애주가로 보이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들은 위스키를 홀짝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은 벌써 취했는지 응어리진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2년째 기러기 아빠 생활 중인데, 마누라랑 딸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야.”
“쯧쯧, 그런데 가상현실은 왜 하고 있는 거유? 당장 가족 얼굴이나 보러 가야할 사람이”
“딸이 이 게임을 한다고 하더라고······ 힘들게 유학 보냈는데 게임이나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서 하게 됐지.”
“딸 얼굴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껄껄.”
“예끼! 이 친구 눈치는 빨라서. 쯧.”
“그럼 딸 얼굴은 봤는가?”
“아 부끄러워서 딸한테 어떻게 말하나, 그리고 내가 같은 게임 한다고 하면 또 부담 주는 거 같고······.”
“쯧쯧쯧 힘든 건 자기면서 딸 걱정이 더 앞서는군. 자, 한 잔 더 하게, 내가 산다!”
고단한 삶을 술로 위로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가상현실에서 마시는 술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현실의 술보다 나은 점이 많았다.
더 싼 가격에, 더 맛있는 술, 똑같이 취기는 오르지만 숙취는 없다고 한다.
대신 숙취 디버프는 있다고 하지만, 가상현실에서 술을 찾는 사람들이 신경 쓸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진짜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니 건강을 해칠 일도 없다.
이거, 생각해보면 주류 업계에서 사이버 음주에 대해 시위를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6000골드!”
“6200골드!”
“6500골드! 내가 꼭 먹을 거야!”
“에라이 7000골드!”
“와 비겁하다. 바로 칠천을 불러 버리네!”
“비겁한 게 어디 있어, 먹는 놈이 임자지!”
흰 살 치즈 구이 경매도 불붙은 지 오래였다.
대부분 버프를 노리지만, 버프와는 무관하게 안주를 원하는 애주가들도 경매에 붙어서 더욱 치열해졌다.
낙찰가는 대부분 7000골드 선에서 멈추었다.
사과파이와 비슷한데, 사과파이보다 재료가 간단해서 가성비가 좋은 듯했다.
물론 물고기를 낚아야 해서 사과파이보다 대량생산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직접 가꾸는 농장에 직접 만든 술을 판다라, 낭만적이네요. 주인장.”
“운이 좋았죠.”
“현실에선 돈이 많아도 농장하려면 힘들고, 술파는 것도 주류법이니 뭐니 하면서 어려운 게 많은데······ 이래서 가상현실이 좋은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는 사람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바텐더가 된 기분으로 그런 사람들과도 대화를 간간히 주고받았다.
그의 말대로 나의 농장에서 나의 술을 판다는 것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이미 이전에도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판다는 것에서 묘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말이다.
술은 아니더라도 현실의 농가들도 직접 포도즙이나 블루베리 주스 같은 것을 팔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것저것 더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서 팔아봐야겠다.
그 전에 내 입이 즐거워야겠지만!
그렇게 얼마간 장사를 계속 했을 때였다.
[잘 숙성된 6등급 그레인 위스키 2리터]
어느덧 술이 2리터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2리터의 술은 남겨두기로 했었다.
1리터는 내가 마시고, 1리터는 술을 팔기로 약속한 여관주인의 딸에게 팔기 위해서였다.
“죄송합니다, 판매할 수 있는 술이 다 떨어졌습니다.”
“정말요? 술 숨겨둔 거 아니에요?”
“하하, 사실 남은 술은 제가 마실 거랑 다른 곳에 팔 것이라 서요.”
“에이, 아쉽다. 다음에도 장사 할 거예요?”
“다음엔 더 많이 만들어서 팔아볼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또 살 테니 꼭 팔아요, 허허허.”
아쉽게도 오늘의 술장사는 끝났다.
비슷한 때에 물고기 27마리도 다 떨어졌다.
물론 모두 경매로 팔아버린 것이다.
흰 살 치즈 구이의 매출은 165500골드였다.
그리고 위스키 12리터를 팔아서 번 돈은 480000골드였다!
12리터를 80잔으로 팔아서 번 결과였다!
지금까지 번 것 중 역대급인 것이다!
내 지갑, 아니 인벤토리에는 1510000골드가 있었다.
순식간에 100만원이 넘는 돈이 생긴 것이다.
이 게임을 한지 3일이 된 시점에서 말이다.
“정말로 회사 관두는 게 이득이려나?”
계속 유혹에 가까운 사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 사원의 자리를 그냥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란 말이 있긴 하지만, 현물이나 현금도 아닌 사이버머니만 믿고 직장을 관두는 것은 꽤나 위험한 결정이다.
그리고 나는 조금 워커홀릭 같은 기질도 있어서 회사일을 꼭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회사 일만 하는 생활에 지쳤고, 그래서 힐링을 찾았던 것이다.
힐링을 찾다보니 이렇게 돈이 생기게 됐는데, 그렇다고 이걸 생업으로 삼고 싶진 않았다.
생업이 되는 순간 힐링이 아니게 될 것이니 말이다.
조금 로맨티스트 같은 생각인 것도 같아서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럼······ 진짜 힐링을 해볼까.”
장사를 끝마치고, 정리를 한 나는 1리터짜리 술병 두 개를 만들어서 남은 2리터의 위스키를 담았다.
유리병이 아니라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시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서 내가 마시기로 한 1리터의 그레인 위스키를 만끽하기로 했다.
치즈 하나를 안주삼아서 나는 농가의 문 앞에 걸터앉아 혼술을 시작했다.
“크으······.”
마나는 진작에 바닥났었지만, 조금 휴식해서 돌아온 마나로 물방울에게 얼음을 얻었다.
그걸로 온더록스해서 마시는 위스키의 맛은······ 정말이지 천상의 맛이었다.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힐링을 위해 다 마셔버리고 싶은 맛.
옛날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맛있는 술에 집착했는지 알만할 것 같았다.
마셔보기 전에는 고급술이 왜 비싼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의 나는 그 기분이 십분 이해되었다.
멍멍!
화르르륵
꼭꼬곡
농장 한 편에선 실버와 불돌이, 호크가 마음이 맞는지 서로 뛰놀고 있었다.
그걸 구경하면서 마시니, 현실에서 혼술 할 때와는 달리 씁쓸한 외로움도 없었다.
더욱이······
“허허허허, 주인장 아저씨 혼술하고 있네.”
“술 더 있는데, 자기 마실 거였나?”
“그렇게 맛있는 술이면 자기도 마시고 싶었겠지.”
“술 마시는 모습이 아주 영화배우해도 되겠네.”
······술 마시는 모습이 뭐 재밌다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수다도 안주삼아 마시니, 술맛이 더욱 좋았다.
어느덧 7잔 째, 마지막 잔이었다.
“후우······.”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술도 이걸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워졌다.
그냥 남은 1리터의 술도 마셔버릴까 했지만, 과음은 좋지 않고 자제심을 잃는 것이 싫어서 참았다.
[취기가 오릅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습니다. 전투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취기가 올랐다는 시스템창이 떴다.
실제로 취한 것처럼 몸의 균형 감각이 조금 둔해져서 이대로 전투 같은 것을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었다.
하지만 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투는 할 일이 없으니······
[수상한 쪽지가 빛을 냅니다.]
······까라고 생각할 때였다.
때마침 수상한 쪽지가 빛을 내었다.
나는 수상한 쪽지를 꺼내보았다.
[히든 연계 퀘스트 발동!]
[퀘스트, 정령석을 이용해 신비한 도구를 만들자
정령석을 이용하면 정령술의 속성부여를 이용해 신비한 도구를 만들 수 있다.
생활 활동에 도움이 되는 신비한 도구나 재료를 만들어 보자!
클리어 조건 : 정령석을 이용한 도구를 최소 3개 만들기.
클리어 보상 : 100 업적점수 ]
오랜만에 퀘스트가 떴다.
그런데 정령석?
생소하면서도 판타지 매체에선 있을 법한 단어가 보였다.
그런데 그걸로 신비한 도구를 만든다니, 영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골램아, 정령석은 뭐고 또 그걸로 만드는 신비한 도구는 또 뭐야?”
[정령석은 지난번에 가신 광산의 2층부터 얻을 수 있는 광석입니다. 정령의 힘을 유지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 생활 활동에 유용한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것들 말이야?”
[대표적으로 분수기가 있습니다.]
“분수기?”
[일정 시간마다 물의 정령의 힘으로 생성한 물을 분수처럼 솟아오르게 만들어 밭에 물을 주는 도구입니다.]
“······스프링클러잖아.”
[주인님의 세상에선 그렇게 부른다고 제 데이터베이스에는 등록되어 있습니다.]
신비한 도구라 하더니, 과학의 산물인 스프링클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명만 들어선 실제 스프링클러처럼 파이프로 물을 연결시킬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실제 스프링클러보다 더 좋은 거잖아?
어쨌든 그걸 만들면 지금의 농사에 드는 노동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동이 준다는 말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당연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그 외엔 뭐가 있어?”
[주인님이 가지신 연금술 도구를 개조해 자동화 할 수 있습니다.]
“뭐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한 번 작동시키면 자동으로 각각의 플라스크를 가열시키고, 용액을 다른 플라스크로 옮길 수 있습니다. 다만 유리공예가 필요하기에 대장스킬을 이용해야만 합니다.]
“까짓것 만들지 뭐! 근데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신비한 도구 한 개를 더 만들어야 하는데,”
[추천해드리는 것은 냉풍기나 냉기생성기, 온열기입니다.]
“······어쩐지 뭔지 대충 예상되는 것들이네.”
이름이 좀 다르긴 하지만 아마도 에어컨, 냉장고, 난로일 것 같은 이름들이었다.
여하튼 그 정령석을 모으러 가야할 것 같았다.
비틀
“윽.”
······술이 좀 깬 다음에 말이다.
금방 일어나려던 나는 균형 감각이 약해져서 넘어질 뻔해서 다시 주저앉았다.
나는 술이 깰 때까지 앉아서 편하게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