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농사를 짓는 이유
[위스키의 증류에는 2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숙성에도 2시간이 걸립니다.]
“그럼 총 네 시간이네. 네 시간 동안······ 음식이나 만들어야겠다.”
술장사를 할 생각인데, 안주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안주는 좀 전에 만든 ‘흰 살 치즈 구이’를 만들 생각이다.
치즈가 64개 남았으니 최대 64개를 만들 수 있는데, 문제는 생선이 얼마나 낚이냐였다.
사실 낚시로 낚이는 수는 그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호크야! 같이 낚시하자!”
꼭꼬꼬
호크를 이용하기로 했다.
일전에 호크는 훌륭하게 물고기를 사냥했었다.
호크가 도와주면 물고기를 좀 더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호크에게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방울아, 이번엔 호크가 사냥하는 거 도와줄래?”
[물방울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물방울은 그런 메시지를 보이자마자 물가로 걸어가고 있는 호크의 주변을 맴돌았다.
호크는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선 지난번에 보여준 닭헤엄(?)을 다시금 선보였다.
“닭이 수영한다!”
“진짜 영상처럼 수영하네.”
“실제로도 수영하는 영상 있는데, 이거 완전 고증갓겜이네.”
“저 물의 정령이랑 같이 사냥하는 듯.”
“주인아저씨도 낚싯대를 던지네요.”
호크가 수영하는 모습을 선보이자 구경꾼들이 신난 듯이 수다를 떨었다.
나는 어쩐지 자식을 자랑하는 기분이라 씩 웃고는 낚싯대를 드리웠다.
물방울이 물고기를 모아주었고, 호크가 곧 사냥을 성공해보였다.
호크에게 당한 베스 한 마리가 물에 둥둥 띄워졌다.
“물방울아! 호크가 사냥한 건 뭍으로 옮겨줄래?”
[물방울이 자신을 너무 부려먹는다고 투덜거리지만 도와줍니다.]
“헤헤, 잘했어.”
[물방울이 수줍어합니다.]
투덜거리면서도 물고기를 물로 감싸서 뭍으로 옮겨 놓은 물방울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쩐지 쑥스러워하는 물방울이었다.
나는 씩 웃으면서도 나도 입질이 와서 낚싯대를 당겨야 했다.
나도 40센티 정도의 베스를 낚았다.
대물까진 아니고 보통 수준의 크기지만, 지금은 대물보단 양이 중요했다.
나는 계속해서 낚시를 계속했다.
그렇게 호크와 협동해서 15마리 쯤 잡았을 때였다.
[주인님, 증류가 끝났습니다. 주입구에서 증류기의 파이프를 분리하시고 숙성통을 봉인하시면 숙성이 시작됩니다.]
“그래? 알았어.”
벌써 두 시간이 흘러 증류가 끝난 모양이었다.
나는 골램이 말한 대로 증류기로 다가가 숙성통의 주입구에 이어진 파이프를 분리하여 주입구를 닫았다.
[숙성통은 그늘진 곳에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 흠, 집안에 둬도 상관없지?”
[예,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집을 쓰진 않으니까, 창고로라도 써야겠다.”
웬만해선 인벤토리가 있기 때문에 창고의 용도로도 애매하긴 하지만, 계속 농장 바깥을 어지럽힐 수도 없어서 숙성통의 경우는 집안에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2시간만 숙성시키면 되는 거야?”
[예, 이방인에 한해서 술의 숙성은 2시간 만에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긴, 안 그러면 누가 술 만들려고 하겠어.”
원래 술의 숙성은 년단위인 것인 흔하다.
숙성을 안 한 술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체로 싸게 팔리고 맛도 그냥 알콜에 가깝다.
어쨌건 게임인데 정말로 1년 이상 숙성시키면 고증 따라하다가 망한 게임이 될 것이므로 2시간이면 적당한 타협이었다.
물론 그 정도도 유저들의 인내심에는 너무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말이다.
나는 숙성통을 집안에 놓곤, 다시 물가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호크가 물고기를 몇 마리 더 잡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낚시를 더 해서, 27마리의 물고기를 모았다.
호크는 10레벨이 되고 말이다.
“불돌아! 화덕에 불 지펴줘.”
[불돌이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화덕에 들어갑니다.]
이젠 요리를 할 시간이었다.
27마리의 물고기들을 요리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숙성이 완료되는 한 시간 만에 다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도중에 판매를 시작해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일단 기본 가격을 정하기로 했다.
위스키는 한 잔에 6000골드, 흰 살 치즈 구이는 5000골드로 말이다.
흰 살 치즈 구이는 어쩐지 경매가 치열하게 붙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수량은 정해져 있고, 버프 때문에 사려는 사람은 더 높은 값을 부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집을 피워서 선착순으로 팔 순 있지만, 그래선 나중에도 계속 선착순으로 팔아줘야 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기 때문에 만약 경매가 붙는다면 그냥 두기로 했다.
5000골드는 기본급으로 말이다.
“킁킁, 좋은 냄새 난다.”
“아까 먹었던 거 만드나 보네.”
“이번엔 많이 만드는 거 보니까······.”
“팔려나 보다!”
“이때를 기다렸지!”
“나는 먹자마자 고렙존으로 뛰어갈 거야.”
“쯧쯧, 나같이 순간이동 깃털을 준비해뒀어야지.”
“님들 바보임? 그냥 가져가서 먹으면 되잖음?”
눈치는 기가 막히게 빠른 구경꾼들이 벌써 내가 장사를 하려는 것을 눈치 챘다.
정확히는 진작 예상하고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인내심이면 직접 생활 스킬을 해봐도 좋을 텐데, 굳이 나를 찾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걸까?
한 번 물어봐야할 것 같다.
여하튼 나는 계속 흰 살 치즈 구이를 구웠는데, 12마리를 구웠을 때였다.
[주인님, 숙성이 끝났습니다.]
“오, 벌써······ 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슬슬 장사할까.”
나는 골램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가려는데 골램이 말했다.
[주인님, 위스키는 온더록스하거나 물을 타 먹는 것이 맛을 더해줍니다. 물방울을 데려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 그래? 그러자! 물방울아, 이리온!”
온더록스는 바(bar)같은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음주용어다.
얼음 몇 개를 술에 타 먹는 것을 의미한다.
취향에 따라선 얼음 대신 물을 타마시기도 하고, 아니면 스트레이트로 그냥 마시기도 한다.
나는 골램의 조언을 따르기로 하고 물방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 만들어 둔 나무 컵을 들고 갔다.
유리컵이었으면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기품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그냥 술을 마시는데 기대감이 너무 컸다.
곧 숙성통의 배출구를 조심스럽게 열어 컵에 위스키를 따랐다.
[잘 숙성된 6등급 그레인 위스키가 든 나무 컵(150ml)]
일단 색깔은 너무도 예쁜 갈색 빛의 액체였다.
향은 냄새만으로도 기분 좋게 취할 것 같았다.
색깔과 향을 음미한 나는 물방울에게 얼음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퐁당퐁당 소리가 들리곤 위스키가 든 잔에 얼음이 투입되었다.
나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살짝 흔들곤 드디어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으음······ 캬아!”
······왜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첫 번째론 ‘먹기’ 위해서다.
두 번째론 농작물을 팔아서 ‘살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론 이 두 가지가 이유의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마지막 이유를 더하고 싶다.
“즐기기 위해서 우린 농사짓는 거야!”
그래! 즐기기 위해서, 바로 이런 맛을 말이다.
흔히 말하는 퇴폐적인 즐거움이 도박과 술,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도박과 사랑은 하기 어려우니 술이 가장 원초적이고 역사가 깊은 인간의 유희다.
그리고 술은 농부들이 만드는 작물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그것이 농사짓는 이유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이 술 한 모금에 그런 철학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입이 즐거운 맛이었다.
그리고 즐거움은 짧았다.
한 잔을 어느새 다 마셔버린 것이다.
“이거, 남한테 팔기가 아까운 수준인데.”
다시금 생각하지만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장사를 해선 안 된다.
자기가 마시고 싶은 술을 남한테 팔아야하고, 혹은 남한테 팔아야할 술을 자기가 다 마셔버릴 테니까!
그 말대로 벌써부터 장사가 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자제력을 발휘했다.
그래, 2리터만 남기고 팔자. 1리터는 약속대로 여관주인의 딸에게 팔고, 1리터는 내가 가지는 걸로 말이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곤 목공 스킬을 사용했다.
[목공, 스탠드 바
술집, 식당 따위에서 찾을 수 있는 스탠드 바.
필요한 재료 : 목재 15개
필요한 도구 : 망치, 목공 스킬 Lv1 ]
몇 번 음식 장사를 유저들에게 하면서 느낀 것인데, 이런 가판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남은 목재로 만들기로 했다.
나는 망치를 두들겨 그것을 만든 뒤, 사람들이 기대곤 하는 울타리에 설치했다.
“뭐야, 스탠드 바가 됐네.”
“저기요, 식당 차린 거예요?”
구경꾼들이 나에게 말을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대답해주었다.
“오늘은 위스키와 흰 살 치즈 구이를 팔 생각입니다. 흰 살 치즈 구이는 아까 제가 먹었던 건데······.”
대충 음식의 버프와 27마리의 물고기가 있지만, 12개 밖에 못 구웠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음식은 경매를 하겠지만, 술은 한 잔에 6000골드로 고정하겠습니다. 미성년자 분들은 어차피 시스템으로 술 못 마시게 되어있으니까, 몰래 술 주문하는 것은 참아주십시오.”
“빠, 빨리 경매해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위스키라······ 맛 한 번 보고 싶네.”
곧바로 버프가 급해 보이는 한 사람과 위스키를 주문하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왔던 숙성통을 다시 꺼내, 나무 컵에 한 잔을 따라주었다.
돈을 받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온더록스나 물은 필요 없으십니까?”
“그것도 해줘요? 그럼 온더록스로.”
“알겠습니다. 물방울아, 얼음 좀 타줘.”
나는 바텐더처럼 물었고, 그는 온더록스를 주문했다.
나는 물방울로 온더록스를 해줬는데, 한 가지 사소한 문제점을 깨달았다.
얼음을 만드는 데에는 마나가 닳는 것이다.
마나가 다 떨어지면 온더록스는 하지 못할 것이었다.
여하튼 그 중년 남자가 위스키를 마셨다.
그리고······
“크으······최고다! 이, 이거 몇 년산이에요?”
“그냥 2시간 동안 숙성시킨 건데요······ 현실에서 숙성한 거랑 똑같아 진다네요. 왜 한 병에 40만원씩 하고 그런 거 말이에요.”
“헐, 그렇게 귀한 걸 한 잔에 고작 6000골드면 마실 수 있단 거예요?”
“네, 상점가가 1리터에 4만골드 정도라서요. 한 잔이 150ml니까 그렇게 책정했어요.”
“그, 그럼 저도 한 잔 주세요!”
“그보다 안주가 필요한데 음식도 경매하지.”
“나도!”
벌써부터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텐더가 된 기분을 만끽하면서도, 음식 경매를 받고 술을 내주느라 정신없이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