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48화 (48/239)

31화 배가 고파졌다.

“좋아, 오늘 옷은 이것들로 만들면 되겠······.”

[포만감이 낮습니다.]

“앗.”

배가 고파졌다.

잊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게임상에서 음식을 먹은 지 오래됐단 것을 깨달았다.

뭔가 하느라 정신 팔려서 배고픈 감각을 잊고 있었는데, 메시지가 떠서야 눈치 챈 것이다.

뭘 먹을까, 편하게 먹으려면 그냥 마을의 식당에 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하지만 그래선 회사 점심시간에 점심을 사먹는 기분이라서 싫었다.

뭔가 직접 해먹고 싶었고, 나는 호수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인벤토리의 치즈를 떠올렸다.

좋아, 한 번 그걸 해볼까?

“물방울아! 낚시하자!”

[물방울이 모른 척하면서도 당신의 말에 호응합니다.]

나는 낚싯대를 꺼내면서 물방울을 불렀다.

물방울은 새침한 반응이면서도 좋아하는 듯했다.

나는 간만에 낚시 스킬을 사용해서 낚시를 시작했다.

물속의 물고기가 붉게 표시되었고, 물방울이 그 물고기들을 모아주었다.

그곳에 낚싯줄을 던져 미끼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잠시 후 입질이 왔다.

“얍!”

철퍽!

낚인 물고기가 물을 차면서 물 밖으로 끌려나왔다.

40cm의 베스였다.

아주 대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인 녀석!

일단 배가 고프니, 이 녀석을 먹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요리 스킬을 쓰진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레시피로 요리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베스의 배를 따고 내장을 끄집어냈다.

“불돌아 내장 먹을래?”

[불돌이가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화르르륵

불돌이에게 물고기 내장을 던져 주었다.

곧 불돌이의 몸에 화르륵하고 물고기 내장이 흡수되듯 사라졌다.

불돌이는 태울 수 있는 것, 혹은 물고기 뼈처럼 태우기 힘든 것도 잘 먹었다.

‘먹는다’라는 표현이 정령에게 맞다면 말이지만.

여하튼 내장을 제거한 뒤에는 흰 살을 포를 떠서 파이를 만들고 남은 흙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 위에 치즈를 꺼내 단검으로 잘라서 알맞게 올렸다.

“불돌아, 화덕을 지펴야 해.”

[불돌이가 신나게 화덕으로 들어갑니다.]

불돌이는 내 말에 개집으로 쏙 들어가는 강아지처럼 화덕 안으로 들어가 금방 불을 지펴버렸다.

요리 준비는 끝났다.

접시에 풍성히 담긴 치즈가 얹힌 흰살 생선이 벌써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이른바 ‘흰살 치즈 생선 구이’다.

직화가 아닌 화덕으로 구워 치즈를 녹힐 생각이라 맛이 각별할 것이었다.

화덕에 집어넣자마자, 생선이 익고, 치즈가 녹는 냄새가 퍼졌다.

“요리하고 있당.”

“벌써 맛있는 냄새가 나.”

“설마 혼자 먹는 건 아니겠지?”

“하나만 만드는 거 보니, 저건 혼자 먹는 거 같은데.”

“구경이라도 시켜줬으면. 난 보리빵 질림”

음식을 만들면 유달리 웅성거림이 커지는 구경꾼들의 말 소리가 들렸다.

안 됐지만, 일단 이건 내 입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를 더 잡아서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민물은 대부분 흰 살이고, 치즈가 많았으니 당장 사과파이를 못 만드는 걸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내 배부터 채우고 봐야겠다.

나는 화덕 안에 들어간 흰살이 충분히 익고, 치즈가 자글자글 녹자 그것을 집게로 꺼냈다.

“햐······.”

절로 감탄이 나오는 자태였다.

황금을 녹인 것 같이 치즈가 알맞게 흰 살에 녹아들고 있었고, 흰 살은 노릇노릇 익혀서 눈부터 즐겁게 해주었다.

나는 빨리 목공 스킬로 나무 포크를 만들어서 한입 집어먹어 보았다.

“으음!”

뜨끈한 살이 혀에서 치즈와 함께 녹는 듯했다.

소금 간 따위는 치지 않았는데, 치즈의 짭짤한 맛이 담백한 흰 살과 잘 어울렸다.

치즈는 정말 만능이다.

담백하기도 하고, 짭짤하기도 해서 궁합만 맞는다면 최고의 조미료였다.

역시 치즈가 든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어!

“마, 맛있겠다.”

“저기요! 여기 가까이 와서 보여주실 순 없나요!”

구경꾼들이 외치고 있어서 나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한 입도 주지 않고 그들 앞에서 먹었다.

그들은 행복하게 먹는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고, 부럽다는 듯이 구경도 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보란 듯이 음식을 다 완식했다.

[포만감이 가득 찼습니다.]

[직접 요리를 하여서 추가 효과가 강화됩니다.]

[추가 효과, 힘 + 15, 체력 + 15]

“오!”

“왜 그래요?”

“능력치가 잘 올라서요.”

나는 능력치를 보고 감탄했는데, 감탄하는 모습을 본 구경꾼이 이유를 물어봐서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힘이 15, 체력이 15 오르네요. 스킬 안쓰고 직접 만들어서 그런 거 같네요.”

“저, 저기 더 만들어 파실 건가요?”

“그러고 싶은데, 지금 할 일이 있네요.”

“무슨 일이요?”

“위스키를 만들고 있습니다!”

“위스키요? 술 말하는 거예요?”

“네, 아, 다 됐겠다. 그럼 실례합니다.”

나는 웅성거리는 구경꾼들을 뒤로하고 발효통으로 돌아갔다.

발효통의 위스키 발효액은 이미 발효가 끝나 있었다.

[농사 스킬 레벨 업!]

위스키 발효액 14리터를 회수하니 농사 스킬이 레벨 업 했다.

자, 이젠 이걸 증류해야만 한다. 이것에 대비해서 이미 철제증류기를 준비해뒀다.

그래서 철제증류기를 꺼내니, 골램이 말했다.

[주인님, 증류된 위스키를 바로 담을 수 있도록 숙성통을 미리 만드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그래, 그런데 아무 나무로 만들어도 오크통이 되는 거야?”

[오크통이 주인님의 세상에서 칭하는 숙성통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덧붙이면 제작 카탈로그에 있는 숙성통의 용량은 200리터입니다.]

“엄청 크잖아?”

[부피가 커야만 공기에 노출되는 표면적의 넓이가 작기 때문입니다.]

“아, 들어본 것 같아.”

흔히 술통이라고 부르는 오크통이 커다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골램의 말대로 크기가 작으면 술이 공기에 접촉되는 표면적이 커져서 숙성이 제대로 안 되고, 맛도 변질된다는 것이다.

사실은 나무도 아무나무면 안 되고 오크나무여야 하는데, 게임에선 그냥 나무로 퉁치는 모양이다.

[목공, 숙성통

발효하거나 증류시킨 술을 담아 보관하는 통. 오크통이라고도 불린다.

필요한 재료 : 목재 20개

필요한 도구 : 망치, 목공 스킬 Lv3                               ]

나는 곧바로 목공 스킬의 제작 카탈로그에서 숙성통을 찾았다.

그리고 제작 버튼을 누른 뒤, 망치질을 했다.

소형 제작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30번 정도 망치질을 해야 했다.

그러자 영화 따위의 창작물에서 익히 볼 수 있었던 ‘술통’이 만들어졌다.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놀랐는데, 물이 200리터 이상이나 들어간다는 것은 처음 아는 상식이었다.

이러면 문제인 것이, 발효액은 1리터씩 해서 14리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음에 양조할 땐 어쩔 수 없이 발효통을 늘릴 수밖에 없을 듯했다.

200리터의 발효액을 만들려면 200개의 발효통이 필요하다.

농장을 확장시켜야할 필요성이 또 늘어버렸다.

“물방울아, 불돌아! 이리온!”

[화덕 안에서 놀던 불돌이가 쌩하고 날아옵니다.]

[물방울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옵니다.]

“불돌아, 여기 불 좀 지펴줘. 물방울은 여기에 물을 담아줘”

[불돌이가 당신의 명령을 따릅니다.]

[물방울이 투덜대면서도 당신을 도와줍니다.]

증류기는 기본적으로 가열을 이용하지만, 증류 과정 자체는 기화와 액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증류기에 붙어 있는 큰 통에는 시원한 물을 담아서 그 안을 통과하는 파이프 안의 뜨거운 알콜 증기를 액화시킨다.

그 액화된 것이 증류 원액이고, 그 원액을 연결시켜 놓은 오크통에 담는 것이다.

술 종류에 따라서 두 번 증류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아마 게임에선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돌이가 불을 지피고 물방울이 찬 물을 담으면, 나는 바로 발효액들을 증류기에 콸콸 부었다.

증류기의 크기는 대략 50리터 정도.

부피가 꽤 나와서 바깥에 설치해야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공장 증류기는 2700리터가 나간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엄청 소형이다.

나는 발효액들을 전부 다 붓고는 발효액이 전부 증류 될 때까지 기다렸다.

“술 만든다는데, 저건 뭐지?”

“끓이고 식히는 걸 보니까 증류기 같아 보이는데?”

“캬, 참 무인도 떨어진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다 만드는구만.”

“위스키······ 한 번 마셔보고 싶다.”

“마을에서도 술파는 곳 있지 않아?”

“거기 술은 금방 동나. 그래서 대부분 에일만 팔고.”

구경꾼들은 아저씨들이었는데, 위스키라는 말에 다들 기대가 큰 모양이었다.

물론 나이가 어려 보이는 친구들도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술은 일단 여관주인의 딸에게 팔 생각이지만, 만약 사람들에게도 판다면 미성년자들에 관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 게임은 12세 이용가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들, 여기 술파는 곳 있어요?”

“이런 어린 녀석이 술을 마시려고!”

“여기선 민짜 안 통하니까 돈 날리지 말거라 이 녀석.”

“안 통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술을 사도 미성년자는 한 모금도 못 마신단다. 시스템으로 그렇게 되어있거든! 끌끌끌.”

“······.”

그때, 마침 그런 이야기를 하는 구경꾼들이었다.

들어보니, 이미 시스템적으로 문제를 차단해놓은 것 같다.

자신은 술을 못 마신다는 말을 들은 아마도 미성년자인 것 같은 유저는 죽상이 되고, 아저씨들은 껄껄 웃었다.

그럼 한 번 장사를 해볼까?

“골램아, 여기서 위스키 1리터는 가격이 어느 정도야?”

[잘 숙성된 위스키의 경우 등급별로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4만 골드에 팔 수 있습니다.]

“헉! 비싸잖아?”

[주인님의 세상에서 시중에 판매되는 그레인 위스키의 가격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아 그런가? 현실에선 얼만데?”

[제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숙성된 그레인 위스키의 경우 최소 10만원대에서 최대 30만원대입니다.]

“······.”

나는 골램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현실에선 그렇게 비싼 술을 만들고 있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 버린 것이다.

이제 구경꾼만이 아니라 나도 군침이 돌고 있었다.

혼술하면서 반쯤 애주가가 된 나는 좋은 술에 대한 갈망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현실에선 시간이나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마시지 못 하지만, 여기선 아니다!

여기선 돈 주고 사마시는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직접 양조해 마실 수 있다.

어마어마한 만족감과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열망이 불타는 기분으로 증류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굴렸다.

“판매는 잔으로 해야겠지, 유리를 못 만드니까 불편하네.”

술장사를 하려면 잔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리는 만들기 까다롭다고 하니, 나무잔으로 대신 해야만 했다.

[목공, 나무 위스키잔(150ml)

나무로 만든 위스키잔. 너무 투박하지만, 유리잔 대용으로는 가능할 것 같다.

필요한 재료 : 목재 1개

필요한 도구 : 망치, 목공 스킬 Lv1                                     ]

1리터에 4만 골드라면 150ml 잔에는 6000골드 정도면 손해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하나 걱정이라면 나도 이 술을 마시고 싶다는 것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장사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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