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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46화 (46/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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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은 공진의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군신 길드의 시화와 접촉하는 것은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플레이 기록 시간으로는 16시간에 불과한데, 공진의 주목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물론 게임 내 플레이 시간은 64시간이긴 하지만, 그 ‘흑태자’ 시화와 접촉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운영진에겐 악몽 같은 일이었다.

“윗선에선 조용히 덮기로 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잖아!”

쾅!

여사원도 퇴근한 모니터링실의 데스크를 주먹으로 내리친 김 팀장이었다.

임원들은 이 일에 대해서 함구하고, 가급적 조용히 묻기로 했다.

크게 주목받지 않는 한 해당 유저에게 제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당연한 결정이었고,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애초에 공진이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명목으로 제재를 한단 말인가?

예상 밖의 히든 피스가 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회사의 잘못이었다.

일이 알려지면 추한 스캔들이 터질 것이므로 임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다.

어차피 제재를 가하는 순간 게임이 롤백 되는 락이 걸려 있었으므로 하고 제재 같은 것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유저, 눈치는 좀 있는 사람 같은데······.”

김 팀장은 공진과 시화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리고 공진이 특이한 조건으로 길드에 가입한 것을 알게 된 김 팀장이었다.

김 팀장이 분석하기로는 공진은 스스로 주목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소문이 퍼지고 군신 길드 쪽에서 먼저 접촉하게 된 것이다.

추측컨대 공진은 오히려 주목 받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듯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군신 길드에 더 많은 혜택을 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플레이를 고집하기 보단 그들에게 적극 협력하려 했을 테니 말이다.

“시화에게 히든 클래스를 말한 것 정도는 괜찮아. 이대로 일만 더 커지지 않으면······.”

시화에게 히든 클래스를 말한 것도, 소소하게 노출된 영상으로 유저와 사람들의 주목을 얻는 것도, 상당량의 골드를 모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직까진 괜찮은 수준이었다.

이 정도 선을 유지한다면 게임의 판을 뒤흔드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좀 좋은 생산물을 군신 길드에게 준다고 해도 말이다.

어차피 군신길드는 원래 뛰어나서 공진의 생산품이 있든 없든 놀라운 성과를 보였을 길드였다.

“제발 이대로만 유지해라. 더 이상 눈에 띄는 짓은 안 돼······.”

김 팀장은 공진이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모니터에 대고 말하였다.

이번 <마일스톤>의 성패에 승진이 달린 그에겐 아주 간절한 일이었다.

* * *

오늘은 회식이 있었다.

그래서 술을 마셨지만, 나는 인사불성으로 취하진 않았다.

나는 술이 좀 강한 편이라, 기분은 알딸딸해져도 좀처럼 취하진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회식이 있던 날, 나는 가끔 집에 돌아와서 혼자 술을 더 마시곤 했다.

직장인에겐 회식도 일이기에, 진짜 휴식을 갈구하던 나는 혼술을 자주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술보다 더 좋은 휴식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사용자 신원 ‘사공진’ 확인

<마일스톤>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

당연히 그것은 <마일스톤>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한 뒤, 재빨리 캡슐에 들어가 접속을 했다.

오늘은 야근이 아니라 회식이었으므로 어제나 그저께보다 몇 시간 더 빨리 돌아왔다.

그만큼 더 오래할 수 있으니 흥분되기 짝이 없었다.

곧 접속이 완료되어 이젠 정겨운 나의 농장이 보였다.

멍멍!

“실버야!”

고향의 시골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이는 기르는 멍멍이라 하지 않던가?

그 말이 딱 맞게도 실버가 가장 먼저 나를 반기며 달려오고 있었다.

금방 내 앞에 당도해, 앞발을 들어 올리는 녀석.

나는 무릎을 꿇어 녀석의 포옹을 받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실버는 너무도 반가운 모양인지 내 얼굴을 핥으며 애정표현을 했다.

“녀석, 잘 지냈어? 농장은 잘 지켰고?”

멍!

[실버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잘했다. 기특한 녀석!”

오늘도 실버가 문제없이 농장을 지킨 모양이었다.

개집을 둘러보면 쌓아두었던 토끼고기는 다 먹은 모양이다.

당연하겠지, 나는 하루 만에 접속한 것이지만 실버에겐 긴 시간이었을 테니까.

“자, 오늘은 뭐부터 해볼까!”

[오셨습니까, 주인님.]

“아, 골램아 안녕.”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골램이 인기척을 내서 그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렇게 된 거, 일단 불돌이와 물방울도 부를까? 태산이는 귀찮아 할 것이 분명하니까 필요하면 부르고 말이다.

[불돌이를 소환하셨습니다.]

[물방울을 소환하셨습니다.]

“불돌아, 물방울아! 잘 지냈어?”

[불돌이가 당신을 보고 매우 기뻐합니다.]

[물방울이 왜이리 늦었냐며 투덜거립니다.]

“미안! 일하다 이제 왔어!”

불돌이는 실버와 똑같이 강아지처럼 달려와서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반겼고, 물방울은 다소 삐진 모습이다.

나는 둘 모두 반갑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인사를 하지 않은 농장 가족들은 무심한 가축들과 호크 정도뿐이었다.

뭐, 녀석들이야 내가 있건 없건 풀 뜯어먹고 벌레 쪼아 먹은 뒤 축사에서 자는 것이 더 중요하니 말이다!

“일단 사과부터 따야지!”

아직 할 일을 떠올리지 못한 나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사과나무를 바라보며 그것부터 수확하기로 했다.

실버와 불돌이는 나를 따라다녔고, 물방울은 어느 틈에 호수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활기 찬 농장 생활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사과를 따기 시작했다.

다 따고 나니 110개가 모였다.

지난번과 비슷한 수확량, 양봉으로 인해 수확량이 더 많아진 사과나무였다.

사과파이를 굽고 남은 사과 20개와 합쳐서 130개의 사과가 모였다.

“일단 사과파이를 만들까, 딱 맞아 떨어지게 65개가 좋겠어.”

혼잣말로 말하면서 계획을 짜보았다.

사과파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신 길드의 시화, 마법사 길드, 그리고 구경꾼들.

오늘도 전부에게 팔 것인데, 어제처럼 사과를 남기진 않을 것이다.

이스트를 만드는데 1개가 들고 사과파이를 굽는데 1개가 드므로 130개의 사과로는 65개의 사과파이를 만들 수 있다.

거기에 치즈까지 하면······.

아, 그럼 발효통이 모자라다.

한 번에 만들 수가 없었다.

“별 수 없네, 발효통부터 좀 더 만들어야겠어.”

65개의 이스트를 만드는데 필요한 발효통은 7개, 남은 발효통은 3개고 75개의 치즈를 만드는데 필요한 발효통도 7개다.

4개를 더 만들어야 한다.

재료는 목재 정도뿐이니 만드는 것은 문제없었다.

[이스트 발효 중 - 1시간 59분]

[치즈 발효 중 - 1시간 59분]

“좋아.”

발효통을 더 만들어서 이스트와 치즈 발효를 시작했다.

나는 다음 일로 가축에게서 축산품을 거두기로 했다.

방금 치즈를 만들면서 우유가 8리터 밖에 남지 않았다.

우유는 워낙 생산성이 좋아서 걱정은 없지만 짜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음매애애애애

우유를 짜주자, 암소가 기분 좋다는 듯이 울었다.

8리터의 우유를 더 획득했다!

다음은 닭에게서 계란을 얻기로 했다.

계란은 아직 가공품을 만들진 못 했지만, 계란후라이를 해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꼭꼭꼭

암탉을 쓰다듬어 5개의 계란을 얻었다!

“어라?”

하지만 계란 하나가 더 있었다.

분명히 다섯 번만 쓰다듬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 계란에 손을 뻗으려 했다.

꼬꼬꼭!

“앗! 왜 그래, 암탉아?”

하지만 암탉이 홰를 치며 내 손을 쪼았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정란]

“아, 유정란이었구나.”

미처 아이템 이름을 못 봤는데, 그냥 무정란이 아니라 유정란을 품고 있던 것이다.

암탉은 그걸 지키려고 한 것이고 말이다.

나는 암탉을 안심시키려고 쓰다듬어 주곤 물러섰다.

그러고 보니, 카우보이 같은 목장주에게서 새끼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것을 떠올렸다.

컨디션이 좋으면 높은 확률로 새끼를 친다고 했다.

호크가 힘을 좀 썼는지 암탉은 유정란 하나를 낳은 것이다.

다른 애들도 새끼를 쳤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알을 낳는 닭과는 달리 아직 배가 부른 애가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우선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위해 양에게로 다가갔다.

매애애애애

그리곤 양털깎이용 단도로 양털을 깎기 시작했다.

양들은 더운 털옷을 벗는 것이 기분 좋은지 기분 좋게 울었다.

40개의 양털을 얻었다.

양털은 재봉 스킬로 양모 옷을 만들 수 있다.

좋은 강화소재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좋은 아이템을 만들어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사냥터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화씨에게 물어봐야 할까?

마지막으로 돼지들에게 갔다.

꿀꿀꿀

여전히 허브돼지 상태인 돼지들은 땅에 코를 킁킁 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등에 난 약초와 송로버섯을 조심스럽게 채집했다.

일부러 하나씩 남겨서 송로버섯 4개와 붉은 석양초 4개를 얻었다.

송로버섯은 아주 맛있고 현실에선 귀한 버섯이다.

붉은 석양초는 비싼 값에 팔았던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을 만들 수 있다.

다만 만드는 과정이 좀 지루한데,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쉬는 김에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다 됐다, 그럼 이제 뭐하지?”

축산품들은 모두 모았다.

농장일 또 하나를 마친 나는, 다른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아, 얘들 똥을 좀 치워줘야 하는데, 비료로 쓸 겸 심을 만한 작물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밀 씨앗이 50개 있었다.

이걸 왜 사뒀더라······.

“······그래, 술을 만들려고 샀었지.”

여관주인의 딸이 술을 만들어 팔면 사겠다고 해서 흥미를 가졌었다.

그러다가 사과파이를 사려고 밀가루를 사다가 밀로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단 것을 깨닫고 밀 씨앗을 사둔 것이다.

술······ 처음엔 여관주인의 딸에게 팔려고 만들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기분이 달라졌다.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만든 술을 맛보고 싶어졌다.

직접 담가 먹는 술은 맛이 각별할 것 같았다.

애주가들은 과일주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 마신다고 하지 않던가?

외국인들은 문샤인 같은 술도 담가 먹는다고 하고 말이다.

물론 현실이라면 주류법이 문제지만, 이건 게임이라 그런 제약이 없다!

“좋아, 밀을 심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괭이를 꺼내들었다.

오랜만에 밭을 갈려고 했다.

그런데 공간상의 문제가 생겼다.

아직 텃밭을 갈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울타리가 또 좁아진 것이다.

대장간도 지었고, 발효통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할 필요가 없지만 더 큰 규모의 밭을 갈려면 농장을 또 확장시켜야 할 것 같았다.

울타리는 금방 만들기 때문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새 농장이 이리도 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땅 관리 스킬을 사용하면 아마 영향력이 더 커져 있을 터였다.

여하튼 나는 새로운 밭을 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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