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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45화 (45/239)

28화 2일차 로그아웃

“트라이횟수랑 공략성공률이 뭘 의미하는 거죠?”

그의 대답에도 나는 다소 게임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드란 것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본래는 약탈이나 습격이란 의미지만 게임이나 게임 소설에선 대규모의 파티가 보스 같은 몬스터들을 잡는 걸 이야기 한다.

하지만 트라이횟수나 공략성공률은 생소한 단어였다.

물론 후자는 어느 정도 무슨 말인지 예상은 되었지만, 트라이횟수는 뭘 트라이(try)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던전이나 필드의 보스몬스터에 도전하는 횟수를 트라이횟수라고 합니다. 3번 도전해서 전멸하면 3번 트라이하다가 전멸했다, 라는 식으로 말하죠. 공략성공률은 말 그대로 공략에 성공할 확률입니다.]

“그럼 이 물약이 그 트라이횟수를 줄이고, 공략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것도 획기적으로.”

[네 맞습니다. 고작 15%라고 말씀하셨지만, 탱커의 생존에 있어선 15%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지속힐이라고 하지만 회피와 방어로 버티는 동안 차는 체력을 무시할 수 없죠. 사제의 힐이 들어가지 않아도 그만큼 탱커가 버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군요.”

레이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대충 그의 말을 이해할 순 있었다.

예컨대 앞에서 버티는 사람이 죽지 않게 되어서 이점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여하튼 고생해서 만든 보람이 있는 물건이란 것은 알게 되었다.

[가능하시다면 전부 사고 싶은데, 몇 개나 있으십니까?]

“아직 하나뿐입니다.”

[혹시 재료가 모자라신 겁니까? 그럼 저희 길드원들을 동원해서라도······.]

“아니요, 재료는 구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하나 만드는데 한 시간이나 걸리는 것이 문젭니다. 이거에만 매달리기엔 제 시간이 너무 뺏기는 거죠.”

[······.]

나의 대답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어쩐지 분위기적으로 곤란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곤란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유용한 물건이라면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할 텐데, 아무리 뭔가 만드는 것이 재밌어도 약초 달이는 것에만 계속 매달리고 싶진 않은 것이다.

[공진씨, 그럼 하루에 몇 개 정도 만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우선 지금 붉은 석양초가 7개 남았으니까 7개 더 만들 순 있겠지만, 다음엔 4개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게임시간으로 4시간 정도라면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렇게라도 만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 얼마를 만들건 공진씨 마음이긴 하지만, 수량이 어떻든 좋은 가격에 저희가 모두 사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 정도 성능이면 하루에 4개도 감지덕지입니다. 이걸로 다른 길드보다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물약은 가능하면 하루에 4개는 만들어 보죠. 일단 오늘은 7개 다 만들고요.”

[감사합니다, 가격은 제가 직접 가서 제시하겠습니다.]

“네, 게임시간으로 7시간 후에 오시면 8개 전부 받아 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시화와의 귓속말은 거기서 끝났다.

나는 그 후, 다시 연금술을 시작했다.

약초를 빻고, 달이고, 정제하는 것이 내가 상상했던 연금술과는 조금 다르다는 기분이 들어버렸다.

해X포터의 마법사들이 하는 신비한 약물을 만드는 걸 기대했는데, 이건 한약 달이는 무수리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농사와 생활 스킬을 하면서 기른 인내심과 내 특이한 성취욕으로 7시간동안 달여 7개의 ‘잘 만든 9등급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을 만들 수 있었다.

중간 중간에 실버와 불돌이랑 어울려 놀았기 때문에 심심하지도 않았다.

도중에 퀘스트도 완료되어서 100 업적점수를 얻었다.

다 완성한 뒤에는 어둑어둑해졌는데, 시화가 농장에 도착했다.

“공진씨.”

“시화씨.”

“물건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나는 인벤토리에서 물약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의 표정에 얕은 놀라움이 일었다.

“사실이었군요.”

“그럼요, 거짓말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럼······ 전부 사겠습니다. 개당 2만 골드에.”

“······.”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보통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 가격에 두 배입니다.”

“아뇨, 생각보다 많이 불러주셔서요. 16만 골드······ 그러니까 16만원에 사시는 거나 다름없는데, 괜찮습니까?”

“길드 자금으로 사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횡령 아닌가요?”

나의 마지막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 개인적인 용도로 사는 게 아닙니다. 이건 중요한 레이드 때 탱커이신 분들이 쓰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팔겠습니다.”

“네.”

나는 그에게 포션과 돈을 교환했다.

수중에 있는 골드가 864500골드가 되었다.

모를 때는 그냥 그저 그랬는데, 이제는 견물생심이라고 아니까 돈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거 회사 때려치워버리고 이걸로 돈 벌 수 있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소위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인으로써 경제적 합리성을 잊지 않았다.

대기업 사원이 고되긴 해도, 직장을 가진 것에서 주는 안정감을 게임이 대신해주긴 어렵다.

더욱이 게임머니는 일종의 가상화폐다.

현금화하기 전까진 진짜 돈이 아니라서 여러모로 불안전성이 많다.

무엇보다 나는 이 게임을 통해 ‘힐링하고’, ‘즐기고’ 싶지, 이걸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

만약 이걸로 돈을 벌려고 하면 아마 벌수는 있겠지만······ 그래선 게임을 그저 게임으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어쩌면 이 게임을 망치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건 싫기 때문에 피어오르는 돈 욕심에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는 이만 다시 가보겠습니다. 대기 중인 파티가 있어서요.”

“아, 네. 안녕히 가십시오.”

시화는 그런 말을 하곤, 다시 텔레포트하는 깃털을 꺼내 사용하곤 모습을 감췄다.

다행히 지금은 구경꾼들이 없어서 아까 같은 난리는 없었다.

게임 시간에서 완연한 밤, 내 출근시간이 가까워졌다는 말이었다.

나는 슬슬 정리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잊은 것이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맞아, 도축 스킬······.”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도축 스킬을 배웠는데, 써먹어보질 않았다.

그리고 실버의 먹이도 해결해야하는 것을 떠올렸다.

아직 몇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토끼라도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기를 도축해 실버에게 주면 좋을 것이다.

사체만 줘서 질긴 가죽을 뜯어먹게 하는 것이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로렌의 창을 꺼내 들었는데, 내가 잡는 것보다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호크야!”

꼭꼬곡?

“사냥가자!”

꼬꼭꼭!

호크를 부르자 호크가 푸드득거리면서 다가왔다.

나는 호크의 레벨을 올릴 겸 호크를 이용해 사냥할 생각이었다.

토끼 정도는 호크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서 걱정은 없었다.

아, 밤이니까 도깨비 토끼를 만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변함은 없을 것이다.

정 위험하면 불돌이나 태산이, 혹은 내가 도와주면 되고 말이다.

나는 호크를 옆구리에 안고 농장을 나섰다.

물론 나서기 전에 농장 잘 지키라고 실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농장을 떠나려던 때였다.

[주인님, 연금술 스킬의 ‘약초추적’ 능력을 활성화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 전에 말했던 거지?”

[예, 송로돼지의 기능과 유사한 것입니다. 약초 추적 능력으로 똑같이 약초나 버섯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신 식용버섯이나 식료는 찾지 못합니다. ‘약초 추적’이라 말씀하시면 활성화 됩니다.]

“알았어, ‘약초 추적’.”

골램이 시키는대로 말했지만, 그리 변한 것은 느끼기 힘들었다.

주변에 약초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실버야, 밥 많이 가져 올게!”

멍!

실버의 배웅을 받으면서 초보자 필드로 향했다.

지난 번 숲으로 갔을 때에는 도깨비 토끼를 만났었는데, 지금은 그냥 토끼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쪽으로 가면 선공몹들이 있다.’라고 말했던 구경꾼이 있었던 것 같다.

밤이 되면 더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모양인데, 그래도 초보존은 여전히 토끼가 전부인 모양이다.

“호크야, 사냥하자. 토끼들을 잡아줘!”

꼭꼬곡!

호크를 놓아주자마자 호크는 홰를 치면서 날개를 푸덕였다.

그리곤 가장 가까운 토끼를 향해 맹렬히 돌격했다.

뀨?

꼬고곡!

뀨우우웃!

곧 토끼와 닭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토끼가 당연히 더 빠르겠지만, 호크도 지지 않았다.

끈질기게 쫓아가서 부리로 토끼의 등과 목, 머리를 쪼았다.

그래도 토끼는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태산이가 하품을 하면서 흙손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토끼를 태산이가 흙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곧 이어서 호크가 토끼의 숨통을 끊었다.

뀨우우으으으······

“잘했어, 호크야, 그리고 태산아! 그리고 불돌이, 너도 등불 역할 잘했어.”

호크와 태산이를 칭찬하고, 그저 불만 비춘 불돌이도 칭찬했다.

호크는 그저 꼬꼬 거릴 뿐이고, 태산이는 하품을 했고, 불돌이는 신나서 내 주변을 돌았다.

한편 나는 그렇게 얻은 토끼 사체를 도축해보려 했다.

“도축 스킬!”

[도축을 하시려면 날이 잘 선 날붙이가 필요합니다.]

“아.”

아무래도 스킬에 필요한 도구를 들어야 하는 듯했다.

로렌의 창에도 창날이 있지만, 아무래도 창은 도구로 인정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인벤토리를 뒤적여보았다.

양털깎이용 단도가 있었지만, 이걸로 도축을 하는 것은 양에게 실례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고블린 대장장이를 죽이고 얻었던 ‘특제 흑요석 단검’이 있었다.

도축하거나 요리할 때 좋을 것 같았다.

“도축 스킬!”

스킬을 사용하자, 토끼 사체에 파란 홀로그램들이 생겼고, ‘절취선’ 부분들이 있었다.

다소 징그러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절취선을 따라 그어보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그냥 알아서 사체가 빛나더니 아이템을 내놓았다.

[토끼고기 3덩이]

[토끼가죽 1개]

[토끼힘줄 1개]

도축은 그다지 어렵게 해놓지 않은 것이다.

확실히 일반 유저들도 많이 배우는 스킬이라고 했었다.

이렇게 간편하니까 많이 배우는 것일 터였다.

그렇게 아이템을 전부 챙겼을 때였다.

“흠?”

나는 불돌이의 등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인위적으로 윤곽이 빛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혹시? 라는 생각에 그쪽으로 가보니, 은은하게 홀로그램의 빛을 받고 있는 약초가 보였다.

약초추적으로 찾아낸 것이다.

나는 그 아이템을 주워 보았다.

[10등급 마나 물망초]

“오오, 새로운 약초다.”

[하급 마나회복의 물약을 만들 때 쓰는 약초입니다, 주인님.]

“그래? 이것도 좋은 거려나? 내일 하나쯤 만들어 봐야겠다.”

나는 그것을 챙기곤 다른 토끼들을 사냥하러 돌아다녔다.

호크는 이어서 10마리의 토끼들을 잡고, 레벨이 5가 되었다.

레벨이 50이 되면 진화를 한다는데 뭐로 진화할지 참 궁금했다.

나는 토끼고기 30덩이와 토끼가죽 10개, 토끼힘줄10개를 모으곤 농장으로 돌아왔다.

멍멍!

“실버야, 먹을 거 잔뜩 가져왔어!”

멍!

[실버가 기뻐합니다. 당신에게 애정을 표현합니다.]

실버는 기쁘게 짖더니, 발랑 드러누워 배를 보였다.

그러고 보니, 개들은 배를 만져주면 좋아한다.

나는 배를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고기를 개집 앞에 쌓아주었다.

“실버야, 이번엔 맛있는 고기로 가져왔어. 나 없는 동안 농장 잘 지키고 있어야해?”

멍!

[실버가 당신의 명령을 잘 인지합니다.]

“그럼 모두들 나중에 봐!”

꿀꿀

음매애

꼭꼭꼭

멍멍!

매애애애

화르르륵

데굴데굴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오늘도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로그아웃을 했다.

오늘 밤도 보람차게 보낸 것 같았다.

내일 밤엔 더 재밌게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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