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44화 (44/239)

27화 연금술

“그럼 아가씨, 연금술도구를 팔아주시죠.”

“네, 잠시만요.”

마법사 길드 마스터는 계약(?)을 체결하곤 길드 안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그제야 접수원 아가씨에게 연금술 도구를 팔아 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빙긋 웃고는 어딘가에서 고등학교 과학실험도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연금술도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만 골드에요!”

“비싸네요!”

“유리는 귀하거든요!”

71만 골드 가량이나 가지고 있으니 1만 골드 정도는 여유지만, 현금과 1:1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견물생심이라 하여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괜히 실랑이를 벌이며 깎는 것은 싫어서 순순히 돈을 내기로 했다.

어차피 골램의 말에 따르면 유리는 무척 만들기 힘들어서 사는 편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현실의 유리주조가 얼마나 힘든지 상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골램의 말을 신용하고 완성품을 사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어쩐지 의욕 넘치는 접수원 아가씨의 배웅을 받으며 마법사 길드를 나서게 되었다.

만 골드나 뜯겼으니, 연금술은 반드시 해봐야 할 것 같다.

연금술도 돈이 되면 좋겠지만, 돈보단 재미가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연금술뿐만 아니라, 밀 씨앗도 심어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다.

밀을 이용해 그레인 위스키를 만들어보기로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출근 시간 전까지 할 수 있을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에 안 되면 내일 하지 뭐.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농장으로 돌아갔다.

“나 돌아왔어!”

멍멍!

꼭 꼬곡

농장에 돌아오니 실버와 호크가 나를 반겼다.

실버야 항상 나를 반겼지만, 웬일로 호크도 나를 보곤 ‘꼭꼭’ 하며 울어댔다.

호크의 성격상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겠지만, 주인을 반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농장 잘 지켰어?”

멍!

[실버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잘 지켰다고? 잘했어!”

멍멍!

농장을 잘 지킨 실버가 대견해서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호크는 날 보긴 했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지 땅을 쪼며 축사쪽으로 가버렸다.

무심한 녀석 같으니.

여하튼 나도 축사 쪽에 볼일이 있었다.

바로 허브돼지에게 말이다.

“어디보자······ 이번에도 다섯 개 씩 자라 있네!”

돼지들은 풀을 마음껏 뜯어먹곤 돼지우리에서 편하게 머무르고 있었다.

허브돼지들의 등에 붉은 석양초와 송로버섯이 각각 다섯 개씩 다시 자라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채집하기 전에 꿀꿀 거리는 녀석들이 귀엽게 여겨져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이번에도 한 개씩만 남겨두고 붉은 석양초와 송로버섯을 채집했다.

[8등급 붉은 석양초 4개]

[8등급 송로버섯 4개]

[목축 스킬 레벨 업!]

채집을 끝마치니 목축 스킬이 레벨 업 했다.

축산품을 많이 얻었으니 할 때가 되긴 했었다.

붉은 석양초는 쓴 적이 없어서 8개나 모였고, 송로버섯은 한 개 빼고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5개였다.

음, 사과파이를 먹어서 배는 부르지만 송로버섯 맛이 다시 떠올라서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끼기로 하고 연금술도구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연금술도구는 인벤토리가 아니면 들고 오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알 수 없는 것들이지만, 한 개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약초를 빻는 거네.”

돌 그릇과 작은 절구.

분명 한의학에서도 쓰이는 한방용품이다.

이따금 영화 속의 주술사나 드루이드, 연금술사들이 약물을 만들 때 약초를 빻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쓰이는 물건.

전통적이면서도 오컬트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도구들은 마법사 길드에서도 느꼈지만, 과학실험도구를 닮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용도나 명칭을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몇몇 개는 플라스크, 비커 정도로 명명할 순 있겠지만, 엉뚱한 곳에 구멍이 있다거나, 유리관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인님, 제가 연금술을 하는 법에 대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봐, 골램아.”

[연금술 스킬은 다소 사용 과정이 까다롭습니다. 우선 양동이를 만들어 물을 가득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어렵지 않지.”

호수가 바로 옆에 있으니, 물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즉석에서 목공 스킬로 양동이를 만들곤 호수의 물을 펐다.

그러자 골램이 이어서 말을 했다.

[다음은 스킬을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연금술 스킬!”

골램의 조언대로 연금술 스킬을 사용하고 제작 버튼을 누르니 이번에도 제작 카탈로그가 마구 떴다.

다양한 물약들이 제작 카탈로그에 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을 선택해주십시오.]

“알았어.”

나는 제작 카탈로그를 넘겨 골램이 말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붉은색 물약이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는 모습이었다.

[연금술,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

붉은 석양초를 이용한 기초적인 체력회복용 물약.

필요한 재료 : 붉은 석양초, 다량의 물

필요한 도구 : 연금술도구                      ]

“이걸 제작하면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제작을 실행하십시오.]

골램에게 확인하고는 나는 제작 버튼을 눌렀다.

이걸로 끝인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이게 끝이 아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사과파이를 만들 땐 굽기만 하면 되도록 사과파이의 원형을 만들어주었는데, 이건 그런 것도 없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제부터 연금술 제조를 시작하면 됩니다.]

“뭔가 시스템이 도와주는 것은 없어?”

[마지막에 유리병이 없어도 홀로그램 유리병을 지원해줍니다. 그 외에는 연금술 도구를 사용해 제조과정을 거처야만 합니다.]

“어쩐지 연금술은 불친절한 느낌이네. 그럼 뭐부터 해야 해?”

[우선 약초를 그릇에 넣고 절구로 빻으십시오.]

처음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 예상한대로 약초를 빻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붉은 석양초 하나를 넣곤 정성껏 그것을 빻았다.

한의사도 아니고, 마늘 빻는 것도 해본 적이 없어서 서툴렀지만 대충 다 빻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주인님.]

“자, 그럼 다음은?”

[비커에 물을 채우시고, 빻은 약초를 넣어 달이십시오.]

“우려내는 거구나, 얼마나 달여야 해?”

[10분 정도면 됩니다, 주인님.]

“불돌아, 이리온.”

불이 필요해져서 불돌이를 부르니, 실버와 놀고 있던 불돌이가 날아와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불돌이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연금술 도구에 포함되어 있던 커다란 가열대를 설치했다.

과학시간에 알코올램프와 사용했던 삼발이가 생각났는데, 그것보다 매우 컸다.

아마도 알코올램프 없이 장작으로 불을 지필 상황을 생각하고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장작을 적당히 설치하곤 불돌이를 이용해 불을 지폈다.

화르르르륵

보글보글보글

강렬한 불온도 때문에 금방 비커의 물이 끓어올랐다.

벌써 붉은 색의 물이 우려 나와서 과학실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약 달이는 기분도 들었고 말이다.

10분 정도 달이니 색이 더 이상 진해지지 않았다.

[비커를 꺼내셔도 좋습니다. 불은 아직 꺼트리지 마십시오.]

“좋아, 이 다음엔 뭘 해야 해?”

[남은 정제용 플라스크에 용액을 넣고 각각 10분씩 끓여야 합니다. 물이 부족해지면 준비한 양동이의 물로 보충하십시오.]

“다섯 개가 있는데, 그거에 전부 다?”

[예 그렇습니다.]

“알았어.”

나는 골램의 말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모양의 플라스크 차례로 가열하기 시작했다.

과학실험하는 기분이라 어째 진짜 연금술사가 된 기분이었다.

다만 문제는 예상 완료 시간이 한 시간이란 점이다.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데, 이렇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나?”

[하급이라고 하지만 체력회복의 물약은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마법사 길드나 상점에서 파는 완제품은 개당 1만 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확실히 값은 나가는구나.”

재료가 붉은 석양초 하나인데 1만 골드라면 굉장히 비싼 것이다.

연금술 도구가 만 골드나 하지만, 그건 하나만 팔아도 회수 가능한 투자금액이란 말이다.

생활의 달인 효과로 효과가 더 좋다면 더 비싸게 팔수도 있을 테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문제라면 이것도 노가다란 사실이었다.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놓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땅한 이유라면 당연히 밸런스 때문일 것이다.

아마 이 게임에선 물약을 귀한 아이템으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인데, 연금술 스킬로 마구 찍어내듯 만들면 밸런스가 깨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좀 과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생활 스킬처럼 연금술도 도외시 당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하튼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골램이 시키는 대로 가열을 시작했다.

“지금은 뭐하고 있는 걸까?”

“한약 달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리도구들인데 연금술 아닐까?”

“연금술 배운 사람?”

“그런 걸 누가 배움?”

“나도 안 배웠지만, 저렇게 달이기만 하고 있어야 하면 안 배울래.”

울타리 쪽에서 구경꾼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는 그들도 지겨운 모양인데, 불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나는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이 너무 졸아 적어지면 물을 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아, 발효통에 뭔가를 집어넣어서 발효시키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뭘 만들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으므로 그냥 연금술에 집중했다.

그렇게 나머지 플라스크의 가열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게임 시간으로 저녁이 되어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띠링!

[정제에 성공하셨습니다!]

[잘 만든 9등급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 획득!]

가열을 다 마치니, 홀로그램 약병에 담긴 붉은 액체의 아이템이 손에 쥐어졌다.

유리가 귀하다고 했으니, 특별히 홀로그램 약병으로 지급해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하나 더 있었다.

[잘 만든 9등급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

30%의 체력이 즉시 회복되고, 15%의 체력이 20초에 걸쳐 회복됩니다.]

음식과는 달리 복용 시 효과를 미리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뛰어난 것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대략 설명을 읽고 총 45%의 체력이 회복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 이게 얼마나 전투를 하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참,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그러나 물어 볼 사람을 곧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가입한 <군신> 길드의 길드장, 시화였다.

나는 친구목록을 켜고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기요, 시화씨.”

[네, 공진씨, 무슨 일이시죠?]

“제가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이란 걸 만들었는데요.”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이요?]

“네, 정확히는 잘 만든 9등급 체력회복의 물약입니다.”

[명칭이 조금 다르군요. 효과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는 바로 본론을 물었고, 나는 그에게 효과를 말해주었다.

“······그런 거긴 한데, 제가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어서요. 완제품으로 판다는 거랑 차이도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공진씨.]

“네?”

[보통 상점에서 사는 하급 체력회복의 물약은 지속효과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30% 체력만 회복시키고 끝이란 말이죠.]

“그래요? 하지만 그래봐야 체력이 15% 천천히 더 차는 것 아닙니까?”

나의 물음에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만 있다면 레이드에서 탱커들의 생존률이 올라가서 트라이횟수가 획기적으로 줄고 공략성공률이 많이 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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