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마법사들
[<군신>길드에 초대되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길드 초대 메시지가 떴다.
나는 시화를 바라보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이유가 없지만, 어쩐지 약간 긴장이 되었다.
회사생활 외에 어떤 조직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회사를 통해 사회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회사와 집을 오갈 뿐인 매우 얕은 사회에서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마음속으로 잠시 조소하곤 메시지를 수락했다.
[<군신>길드에 가입하셨습니다!]
“가입 되셨군요.”
“어디 가입인사라도 해야 합니까?”
“길드채팅으로 하면 됩니다만, 지금은 늦은 시간이라 몇 명 없군요. 그리고 내키지 않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신입에 대한 텃세 같은 것도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다행이군요.”
길드에 가입하긴 했는데, 사실 사람들과 갑자기 어울리는 것은 또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게임에서 조용히 농사나 다른 것들을 하며 지내고 싶은 내게 그런 것은 별로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구경꾼들을 상대로 음식을 파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 내 가치를 알아주기 때문에 길드에 들긴 했어도 너무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은 꺼려지는 것이다.
“옷이나 아이템을 만들면 어디로 연락하면 될까요?”
“저에게 귓속말을 해주시면 됩니다. 아, 그러기 위해선 저와 친구추가를 해야겠군요.”
[유저 ‘시화’에게 친구로 초대되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곧바로 메시지가 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수락을 눌렀다.
“귓속말은 하실 줄 아십니까?”
“모릅니다.”
“귓속말은 친구끼리만 가능합니다. 친구목록을 켜서······ 그러니까 친구목록이라고 말하거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목록의 친구를 클릭해 귓속말을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제와 말씀드리는 거지만, 사과파이가 남는게 있으십니까?”
“네, 마법사 길드에 팔려고 남은 것들이지요.”
“10개만 팔아주시겠습니까? 길드원들에게 효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마법사 길드 아가씨에겐 미안하지만, 길드에 가입한 기념이라 생각하고 이들에게 사과파이를 팔아보기로 했다.
가격은······ 경매가의 최고값인 7000골드가 적당할 것 같았다.
얼마나 통이 큰지도 봐야할 것 같고 말이다.
“개당 7000골드에 팔겠습니다.”
“좋습니다.”
“······7만 골드를 내셔야하는데, 그다지 고민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만한 가치를 하니까요. 시약과 중첩되는 음식버프가 지능과 정신력이 18씩 오른다면 레이드와 사냥에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불러옵니다. 그런 걸 개당 7000골드에 살 수 있다면 오히려 싼 가격입니다.”
“이런, 값을 더 부를 걸 그랬군요.”
“하하하, 제 주머니 사정도 조금은 이해해주십시오.”
나는 그에게 농을 했고, 그는 진솔하게 웃었다.
곧 거래창에 사과파이 10개와 7만 골드가 거래되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작이 좋군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서 랭킹 1위의 길드가 되어봅시다.”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만들어보죠.”
“분명히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시화는 그렇게 말하곤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니 구경꾼들이 울타리에 잔뜩 있었다.
시화가 나타나자,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는데, 이번엔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그를 보러 온 것이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시화는 깃털 같은 것을 꺼냈는데, 그것에 빛이 나오면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귀환아이템이나 순간이동아이템 뭐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헐 가버렸다.”
“잠깐이지만 흑태자를 볼 수 있었어.”
“이번 게임에서도 현재 개인 랭킹은 1위라지?”
“듣기로는 <마일스톤>은 롱런할 게임이라는데. 벌써 해외런칭도 요구가 빗발치고 있고.”
“군신 길드도 그걸 알기 때문에 마일스톤을 노리는 거지. 이번엔 세계구급으로 놀 기회란 거야.”
그들의 수다를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생각이상으로 판이 큰 곳에 발을 들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 그래봤자 나는 농사짓는 것에만 열중할 생각이지만 말이다.
“저기요, 저기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구경꾼 한 명이 연신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면서 가까이 다가가니, 구경꾼들의 관심은 그제야 나에게로 바뀌었다.
“흑태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길드에 가입하신 건가요?”
“네, 길드에 가입했습니다.”
“오오, 대박······ 근데 그럼 이제 우리한텐 장사 안하는 건가?”
“헐 그러네, 길드에 가입했으면 길드에만 아이템 파는 건가?”
몇몇 사람들이 오해를 하면서 동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길드에만 독점적으로 팔 생각이 없었고, 가입조건에도 분명히 말했었다.
곧바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저는 제 게임플레이와 장사에 간섭이 없다는 조건으로 길드에 가입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께 장사하는 것은 계속 할 겁니다.”
“와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네, 여기 비싸고 수량이 좀 제한적이지만 맛이랑 버프효과는 짱이잖아.”
“버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열랩했다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저기요, 낮에는 접속 안하시나요?”
“자주 장사 좀 해주세요.”
질문이 계속 늘어나서, 나는 대충 얼버무려야 했다.
그래도 그들이 영 귀찮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현실에서의 나는 고독한 회사원일 뿐이었는데, 게임에선 이리도 각광 받는단 것이 오히려 기쁜 수준이었다.
나는 이 게임을 통해 여러 가지 힐링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수상한 쪽지가 빛을 냅니다.]
그때, 또 다시 수상한 쪽지가 빛을 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쪽지를 꺼내 히든 퀘스트를 받았다.
[히든 연계 퀘스트 발동!]
[퀘스트, 연금술을 해보자!
비록 금을 만들진 못하더라도, 연금술은 쓸모가 있는 생활 스킬이다.
연금술의 기초를 익혀보자.
클리어 조건 : 연금술로 아무것이나 3개의 물품을 만들어보자.
클리어 보상 : 업적점수 100 ]
생활의 달인이 되면서 여러 생활 스킬을 배웠고, 하나씩 퀘스트로 체험 중인 느낌이었다.
이번엔 연금술 차례인 듯했다.
연금술은 지금까지 접점이 없었는지, 여전히 1레벨이었다.
하지만 연금술에 무엇을 쓰는지는 알고 있었다.
[9등급 붉은 석양초 4개]
송로돼지로 찾아낸 붉은 석양초 4개가 있었다.
지금은 한 개를 허브돼지로 남겨두어서 다시 다섯 개로 자라났을 것이었다.
연금술에 쓰이는 재료라고 골램이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인님, 연금술을 하시려면 연금술 도구가 필요합니다. 마법사 길드로 가서 구입하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연금술 도구는 직접 만들 수 없어?”
[대장기술로 만들 순 있습니다만, 유리주조는 매우 힘들고, 비효율적입니다. 완성품을 사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알았어, 어차피 마법사 길드엔 가봐야 했으니까.”
사과파이는 19개 남았다.
그거라도 마법사 아가씨에게 팔고, 이제 마법사 길드에 판매가 어렵다는 것을 알려야 할 것 같다.
NPC에게 너무 신경 써주는 기분이 들지만, 사실 사람이랑 별 차이가 없어 보여서 막 대할 수가 없었다.
사이버윤리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것이 그것에 포함되는 것 같고, 나는 그것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여하튼 아우성 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마을로 향해 마법사 길드에 도착한 나였다.
“안녕하세요오······ 앗! 또 왔네요!”
“안녕하세요. 여전히 인사는 의욕이 없으시군요.”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또 사과주스 팔러 오신거죠?”
“아니요.”
“네? 그럼······.”
“이번엔 사과파이입니다!”
“오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먹음직스러운 사과파이를 꺼내보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접수원 아가씨 NPC는 입맛을 다셨다.
“맛있어 보이네요! 그런데 왜 사과파이를?”
“기회가 되어서 한 번 만들어 봤는데, 이게 사과주스보다 효과가 더 좋았습니다. 지능과 정신력이 각각 18씩 오르더군요. 우유와 같이 마시면 힘과 체력도 오르고요.”
“와······ 사실이라면 엄청 비싸게 파시겠군요.”
“네, 7000골드에 팔 생각이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특별히 6500골드에 팔죠.”
“웬일로 할인을······ 잠깐, 마지막이라고요?”
접수원 아가씨가 접수대를 쾅 치며 일어났다.
길드 안쪽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연구에 매진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한 번에 우리 쪽을 주목했다.
“왜죠, 왜 마지막이란 말이에요?”
“아, 그게 제가 길드에 들어서요. 사람들에게 팔고 길드에 팔면 아마 재고가 안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오늘은 특별히 남겨 온 거에요.”
“아니, 그럼 우리들은 어떡하고요.”
“뭐, 어차피 간식으로 드시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조금만 연구도가 올라가면 우리도 마탑 회원이 될 수 있었는데!”
“마탑 회원? 그게 뭐죠?”
“마법의 탑을 지을 자격을 얻는단 말이에요. 물론 돈이 없어서 아직 그럴 순 없지만요.”
“흠, 뭐 안됐네요. 일단 그래도 이건 팔고 싶은데요? 6500골드에.”
“일단 파세요!”
나는 사과파이 19개와 3리터짜리 우유 한통을 123500골드와 교환했다.
소지금이 714500골드가 되었다.
흠, 점점 돈이 무섭게 쌓이는 기분이다.
“우유는 뭐에요?”
“서비습니다. 마지막 거래니까요. 좀 남아돌기도 하고, 같이 맛있게 드세요.”
“고맙네요, 그런데! 길드마스터님을 부를 테니 기다려주세요!”
“아 잠시만요, 연금술 도구를 사고 싶은데······.”
“마스터님과 말씀 나누신 뒤 팔 테니, 기다려주세요!”
“······.”
접수원 아가씨는 내가 도망이라도 칠 것 같은지 그런 말을 남기곤 길드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조금 난감함을 느끼면서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곤 접수원 아가씨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곧 얼마지 않아서 흰 수염이 지긋한 마법사 한 명을 데려왔다.
누가봐도 ‘대마법사’ 같은 사람이었다.
“안녕하시오, 내가 이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이오.”
“안녕하세요, 공진입니다.”
나는 마법사 길드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수염을 연신 쓰다듬으면서도 파이조각을 먹고 있었다.
다소 점잖은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천진난만함이었다.
“자네에 대해선 여러 번 들었다네, 도움을 받았다는 말이 옳겠지. 자네가 준 사과주스의 추가효과 덕분에 우리 마법사들의 연구가 더 빨라졌지. 덕분에 곧 마탑 회원의 자격을 얻을 공산이 크다네.”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말이지만 우리에게 그런 음식을 더 팔아줄 순 없겠나? 값은 섭섭하지 않게 쳐주겠네.”
“흠, 구미 당기는 제안이긴 하지만 제가 아니더라도 마탑 회원의 자격은 곧 얻으실 수 있으신 것 아닙니까? 시간이 좀 더 걸려도요.”
“그렇긴 하지만, 마탑 회원이 되는 것 외에도 우리 마법적 성취가 좋아지려면 계속 연구가 필요하다네. 그때 자네의 그 음식들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그렇군요. 그럼 조금이라도 팔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싸게 팔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제 값을 주겠네.”
결국 마법사 길드에도 계속 판매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