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41화 (41/239)

24화 갑질

[조심하십시오, 주인님. 파이를 너무 익히면 탄 요리로 취급되어 실패작이 될 수 있습니다.]

파이 굽는 일은 재밌었지만, 동시에 다른 생활 스킬과 마찬가지로 인내심이 요구되었다.

적당히 파이가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서 너무 익혀도 안 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적당히’ 익을 때 빼낼 줄 알아야 했다.

집중하면 빼낼 때가 됐는지 구분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49개를 굽는데 그걸 계속 집중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다행히 태워먹은 것은 없지만 힘들어서 요리 스킬도 인기 있긴 글렀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저들은 인내심이 없기 마련인데, 그걸 필요로 하는 과정은 게임에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 과정이 재밌다고 계속하는 부류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리 스킬 레벨업!]

“다 구웠다.”

요리 스킬이 레벨업하면서 파이 49개를 다 구웠다.

레벨업 하기 전엔 요리 스킬이 3레벨이었기 때문에 7등급인 것도 있었고, 8등급인 것도 있었다.

버프에 약간 차이가 있겠지만, 경험상 맛은 차이가 없으므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여기서 20개는 사람들에게 팔고, 나머지는 마법사 길드에 팔기로 했었다.

나는 아직도 군침을 흘리고 있는 구경꾼들을 향해 걸어갔다.

“여러분, 사과파이를 다 만들었습니다. 사실래요?”

“살게요! 얼른 팔아주세요!”

“네, 사과파이가 주는 버프는 그러니까······”

“그건 먹어보면 알겠죠! 제가 가장 먼저 말했으니 제가 선임!”

“······판매는 경매로 할 겁니다. 하지만 먼저 말씀하셨으니, 경매 시작가를 부르세요. 참고로 20개만 팝니다.”

“4000골드!”

버프는 먹어보고 나서 알아보겠다며 시작부터 높은 금액을 부르는 사람이었다.

낯이 어째 익은데, 아마 구경꾼으로 여러 번 온 사람인 듯 했다.

하긴, 그러니 시작부터 4000골드를 지르고 있는 것이리라.

시작부터 4000골드라서 그런지 다른 입찰자는 없었고, 사과파이는 그에게 주어졌다.

입찰 경쟁이 붙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다지 조바심은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장사가 잘 안되어도 마법사 길드라는 보험이 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애초에 나는 ‘재미’로 만들고 ‘재미’로 장사를 하는 중이니, 이윤이 적게 난다고 상심할 일은 없었다.

물론 대박나면 좋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에 첫 파이를 얻은 사람이 파이를 아구아구 먹어 완식했다.

“······.”

“님, 되게 맛있게 먹던데 버프는 뭐 나와요?”

“버프가······.”

“버프가?”

“똥버프임? 님 돈날렸음?”

“개꿀임! 대박임. 나 마법산데 지능이 18에 정신력 18오름. 힘이랑 체력도 조금 오르고 대박임. 님들 나 이제 광랩하러 감. 빠빠여.”

파이를 다 먹은 그는 폭탄발언 같은 말을 하고선 쌩하고 초보존을 1초라도 더 빨리 벗어나려고 달려가 버렸다.

나나 다른 구경꾼들은 그걸 잠시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3초 정도 정적이 흐른 다음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나나! 나도 살래, 나 살래!”

“다음은 나야!”

“내가 입찰한 파이 상위 입찰하지마라!”

“다음 입찰 가즈아!”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벌써부터 자기네들끼리 경매를 붙기 시작했는데, 이런 소란이 주변에도 알려져서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저기서 왜 저래?”

“아 님 처음임? 저기 유명한 곳임. 어느 유저가 농장하는데, 거기서 만들어주는 요리 버프가 쩐다고 함.”

“헐 진짜요? 한 번 가볼까?”

구경꾼이 아니었던 주변의 초보자들이 소란을 듣고 와버렸다.

그래서 당초 계산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져버렸다.

물고기를 구워 팔 땐 항상 물고기보다 사람이 많긴 했지만, 이번 파이는 사람 수에 맞췄다.

하지만 이래선 또 사람 수가 더 많아져버렸다.

물론 그런 것이 경매에는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쉬워할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 조금 마음에 걸렸다.

“헐 진짜잖아, 버프 왜 이렇게 개 쩜? 마나통 대박 늘어남.”

“아, 사셨으면 빨리 가시고, 우리 경매 진행해줘요!”

6000골드에 파이를 산 사람이 다 먹은 뒤, 또 기성을 토했다.

그는 조금 초보자인 것처럼 보였는데, 당장 마나가 늘어났을 때 더 사냥해야 한다며 숲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나는 그런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빨리 경매를 하자며 종용했다.

마나가 늘어나기 때문에 전사 계열로 보이는 사람들도 경매에 참여했지만,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더욱 열광적이었다.

아마도 지능이 18이나 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남은 파이를 다양한 가격에 팔게 되었다.

모두 처음에 4000골드에 팔린 것 외에는 6000에서 7000골드 사이로 팔리게 되었다.

그렇게 모은 돈은 골드. 124500골드.

대박이었다.

원래 가졌던 돈과 합쳐서 521000골드가 모였다.

처음에 사탕무 씨앗 50개를 주웠던 것을 떠올리면 참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게임의 돈이 많아서 뭐에 쓰겠냐만 말이다.

“저 실례합니다.”

“네?”

경매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졌을 때였다.

아직 몇몇 구경꾼들이 있었지만,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뭔가······ 대단히 고수인 사람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번쩍번쩍 광이 나는 흑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울타리에서 나를 부른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시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잠깐 시간 되십니까?”

“네, 말씀해보세요.”

나는 뭔가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사실은 바로 마법사 길드로 남은 파이를 팔러 갈 생각이었지만, 잠깐 시간 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영업의 감이 그가 중요한 손님이라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길드 가입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저한테요?”

“네, 저희 길드와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딱히 길드 같은 거 관심이 없는데······ 그 전에 그쪽이 어떤 길드인지도 모르겠네요.”

“아 참,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군신(軍神)’길드의 길드마스터 시화라고 합니다.”

시화, 어쩐지 무협지에서 나올 이름 같다.

군신이라는 길드명도 그렇고 말이다.

딱 봐도 이름에서부터 무협이나 삼국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헐! 군신길드!”

“프로게이머 길드잖아!”

“시화라면 그 흑태자?”

“헐헐, 저기요 싸인 가능한가요?”

그런데 나만 그를 모르는지, 갑자기 다른 구경꾼들이 그를 알아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어쩐지 그를 의아하게 보고 있긴 했었다.

마치 ‘연예인 같은 사람을 보고 반신반의하는 사람’ 같이 말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몰리자, 그는 조금 곤란해진 모습이었다.

“저, 잠시······ 저 집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만.”

시화라는 사람은 농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오라고 했다.

개조심 팻말 덕에 사람들이 넘어오지 않는 것인데, 그는 훌쩍 넘어와버렸다.

크르르르르르릉

그가 넘어와 버리자 온순했던 실버가 급격히 공격적이게 변했다.

금방이라도 울타리를 넘어온 사람을 물어뜯을 기세라 다른 이들은 울타리를 넘지 않았다.

다만 시화라는 사람은 실버가 위협을 표해도 조금도 겁먹지 않고 있었다.

“실버야, 저 사람은 손님이야.”

멍!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곧바로 경계를 푸는 실버였다.

헥헥거리면서 내게 다가왔고, 나는 ‘잘했다.’를 연발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뒤 나는 그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집안에는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휑했다.

“잠시만요.”

나는 재빨리 목공 스킬을 켜서 나무 테이블과 의자를 두 개 만들었다.

망치질 서른 번에 뚝딱하고 테이블과 의자가 만들어졌다.

그걸 본 그가 말했다.

“정말로 생활 스킬이 다양하신 모양이시군요.”

“네,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어떻게 알고자시고, 그쪽······ 그러니까······.”

“사공진, 이름은 공진입니다.”

“네, 공진 씨는 꽤 유명해졌어요. 초보존에서 농사나 그 외 생활 스킬을 쓰는 별종으로 말이죠.”

“그런가요?”

처음 알던 사실이었다.

하긴, 나를 찍어 영상으로 올리겠다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길드 가입 권유를? 보아하니 그쪽도 대단히 유명한 길드 같은데요.”

“그렇게 대단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찾아온 계기는 공진씨가 유명해져서라기 보단 제 길드원이 공진씨의 음식 버프를 받아보고 저에게 알려줘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을 내서 확인하러 와봤는데, 사실인 모양이군요.”

“그렇군요.”

“그래서 어떻습니까? 저희와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라고 하기엔 한 2초 정도 고민했던 것 같았다.

“죄송하지만 힘들 것 같네요. 그쪽은 프로게이머 길드죠? 세간에 유명한 가상현실 게임 랭커 길드들.”

“맞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다른 가상현실 게임들에선 랭킹 1위였던 길드죠.”

“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대기업 사원이라 하루 종일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만 수면모드로 게임을 하죠. 그래서 그쪽 분들처럼 게임에 종일 접속할 수가 없어요. 아, 시화님이나 그쪽 분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랭커가 되기 위해서 게임에 거의 24시간 접속해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는 내가 거부했지만, 다시 한 번 설득해볼 생각인 듯했다.

조금 지적여 보이는 인상이라, 허튼 소리를 할 것 같진 않아서 들어보기로 했다.

“저흰 길드원들을 헤비 유저와 라이트 유저로 구분해서 모집합니다. 헤비 유저는 저 같이 장시간 접속해 랭커를 달리는 사람들을 말하고, 라이트 유저는 공진씨처럼 일반적인 시간동안 접속이 가능하신 분들입니다.”

“프로게이머 길드인데, 라이트 유저인 사람들을 받으시나요?”

“사실 거의 받지 않죠. 하지만 공진씨 정도의 사람이라면 라이트 유저로라도 기꺼이 모셔가고 싶습니다.”

“제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요.”

“히든 클래스지 않습니까?”

“······.”

나는 그의 마지막 말에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내가 히든 클래스라고 밝히지 않았는데, 단 번에 눈치 챈 것이다.

안목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뒷조사라도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그냥 제 예측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음식으로 버프를 얻을 수 있단 것은 이미 저희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직업으로 요리 스킬을 배워서 어렵게 요리를 해도 그런 효율을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히든 클래스라고 단정 지은 겁니다.”

“촉이 좋으시군요. 맞습니다. ‘생활의 달인’이 제 히든 클래스입니다.”

“처음 듣는군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건 그쪽의 설득을 듣고 이야기하죠.”

“설득이요?”

“네, 절 설득하세요. 제가 왜 그쪽 길드에 가입해야 할지, 가입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저를 설득하면 제가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말씀드리죠.”

맨날 회사에서 바이어에게 을의 입장에서 있던 나는, ‘갑질’의 입장이 되어서 자신을 설득해보라고 말했다.

어쩐지 묘한 쾌감이 들어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반대로 시화라는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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