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38화 (38/239)

22화 옷 만들기(2)

나는 주저 없이 제작 카탈로그의 물레를 클릭했다.

파란 모형이 생겼고, 그것을 둘 적당한 공터를 찾았다.

본래 가내수공업의 대표적인 물품이기에 집안에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껏 플레이하면서 집안을 잘 쓴 적이 없다.

뭔가 하면서 놀기가 무척 바빠서 항상 농장 바깥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바깥에 두기로 했다.

집 앞에 적당한 공터가 아직 있었으므로 그곳에 만들었다.

뚝딱뚝딱

[제작진척도 10%]

[제작진척도 20%]

[제작진척도 30%]

······.

소형 제작물이라 열 번의 망치질로 만들 수 있었다.

망치질로 만들어진 물레는 작고 전통적인 멋이 있었다.

그런데 이걸로 실을 잣는 것은 스킬이 아니면 생각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손재주가 나에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물레를 만지니 제작 시스템창이 떴고, 그것을 클릭해서 제작 카탈로그를 띄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것과 똑같았다.

[제작, 굵은 실 1개

양모를 이용해 굵은 털실을 만든다. 폭신하고 따뜻한 옷감의 재료가 된다.

필요한 재료 : 양털 1뭉치

필요한 도구 : 물레, 재봉 스킬 1Lv                                  ]

양모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모(wool)’다.

제작 설명에 적힌 대로 푹신하고 따듯한 옷감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양을 키우는 문화가 있는 곳에선 양털은 소중한 옷감의 재료였기에 사철을 가리지 않고 입었다고 한다.

농사꾼들도 양모 튜닉을 자주 입었다는데, 조금은 덥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입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땀을 자주 흘리긴 하지만 옆에는 훌륭한 호수가 있어서 언제든 수영을 할 수 있고, 또한 게임의 봄 날씨가 그렇게 더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우보이같은 목장주인에게 들은 것이지만, 이 게임에는 아마 겨울도 있는 듯하다.

벌써부터 겨울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겨울에 양모 옷은 정말로 좋은 거겠지.

나는 잡생각은 거기까지 하곤 제작버튼을 클릭했다.

[주인님, 한 가지 조언을 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오, 골램아. 뭐든 말해봐.”

한동안 말이 없었던 골램이 간만에 팁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골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재봉에는 옷감 외에도 실이 필요합니다. 고로 실을 만드셨을 때, 모든 실을 옷감으로 만들면 난처해질 수 있으십니다. 양모를 더 채집하시거나 아니면 적당한 비율로 실을 남기십시오.]

“맞아, 실이 필요하지. 그럼 바늘도 필요하겠네?”

[물론입니다.]

“대장스킬로 만들어야겠다. 아, 문득 궁금해져서 그런데, 만약에 가죽으로 옷이나 갑옷을 만들려면 무슨 실을 써야해?”

[몬스터나 동물의 힘줄을 사용합니다. 도축 스킬로 가죽과 함께 얻으실 수 있으십니다. 힘줄 외의 대체품으론 철실이 있습니다만, 높은 수준의 대장기술을 요구합니다.]

“그렇구나.”

골램의 팁을 기억하곤, 다시 물레 쪽을 바라보았다.

제작 버튼을 클릭했었는데, 어느새 양털의 한 가닥이 물레에 맞물려 있었다.

이대로 돌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돌려보았다.

[질 좋은 9등급 굵은실 1개 획득]

달칵 달칵 소리와 함께 물레가 돌아갔는데, 10번 돌리니까 1개의 굵은 실이 만들어졌다.

그때 골램이 말을 덧붙였다.

[등급이 높은 양털일수록 좋은 실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실의 등급이 높을수록 좋은 옷감과 실이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옷감과 실의 등급이 높아야 재봉으로 만드는 옷의 효과 또한 좋아집니다.]

“앞에 ‘질 좋은’은 생활의 달인 효과지?”

[그렇습니다. 완성품의 효과를 상승시켜 줍니다.]

“알겠어. 어라?”

골램과 수다를 떨면서 물레를 돌렸다.

1개를 만드는데 10번을 돌려야하니까, 80뭉치의 양털을 다 실로 만들려면 800번을 돌려야했다.

실제로 실을 만드는 노동에 비하겠냐만, 이것도 상당히 힘이 들긴 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물레를 돌렸다.

[손재주에 관련된 생활 스킬을 사용하여서 민첩이 좋아집니다.]

[민첩이 2 올랐습니다.]

[눈이 빠질 것 같은 인내심으로 노동을 하였습니다. 정신력이 좋아집니다.]

[정신력이 1 올랐습니다.]

열심히 800번을 돌리니, 팔과 어깨가 쑤시는 기분이었다.

질 좋은 9등급 굵은 실을 34개 얻었고, 10등급 굵은 실을 46개 얻었다.

상당히 힘든 노가다였는데, 굵은 실과 능력치 상승 메시지가 보상이라면 보상이었다.

다만 보상이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퀘스트 달성!]

[100 업적점수 획득]

퀘스트가 완료되고 업적점수를 얻은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발효통의 이스트와 치즈가 다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은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다음 일을 하기로 했다.

방적 다음에는 방직.

실로 옷감을 짜는 과정을 할 때였다.

내 지식이 맞는다면 방적에는 물레가 쓰이고 방직에는······

[목공, 전통 베틀

각종 실을 옷감으로 만든다.

필요한 재료 : 목재 20개, 못 15개

필요한 도구 : 망치, 목공 스킬 Lv2]

······베틀이다.

모형으로만 봐도 물레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북이나 바디 같은 베틀의 구조에 대한 용어뿐이다.

어떻게 손을 놀려야 베나 옷감이 짜지는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스킬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고 생각하곤 우선 망치질로 베틀을 만들었다.

[목공 스킬 레벨 업!]

베틀을 만들었더니 목공 스킬의 레벨이 올랐다.

만들면서 구조적인 이해가 가긴 했지만, 여전히 직접 옷감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뜨개질도 할 줄 모르는데 언감생심 베틀을 만지는 것은,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여하튼 나는 배틀 앞에 쪼그려 앉아, 베틀을 만져서 제작 카탈로그를 띄웠다.

[제작, 양모 옷감

굵은 실을 이용해 양모 옷감을 만든다.

필요한 재료 : 굵은 실 10개

필요한 도구 : 베틀, 재봉 스킬 Lv1   ]

주저하지 않고 제작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굵은 실이 촘촘하게 베틀에 맞물렸다.

그런데 그런 촘촘한 실위에 파란색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시스템 메시지로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작’을 누른 후, 리듬에 맞춰 내려오는 노트를 북과 바디로 제거하십시오.]

북은 베틀에 달려 있는 빗 같은 것이고 바디는 활처럼 생겼는데 그걸 당기거나 미는 것이다.

그런데 노트는 전혀 다른 용어다.

리듬게임에 쓰이는 용어인데, 화면에 내려오는 막대기 같은 것을 노트라고 부른다.

눈치를 봐선 한마디로 이 베틀로 리듬게임을 하라는 것 같다.

리듬게임이라······ 다행히 리듬게임은 해본 적이 있었다.

꽤 하는 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학생시절 심심하면 지나가던 길에 오락실을 가서 해봤으니 말이다.

나는 물레를 돌릴 때 썼던 의자를 끌어 당겨, 베틀 앞에 제대로 앉았다.

그리고 리듬게임기에 동전을 넣는 기분으로 ‘시작’ 버튼을 눌렀다.

티리리링.

갑자기 하프의 음색같은 음률이 베틀에서 들렸다.

당혹스러운 것은 둘째 치고, 노트가 무섭게 떨어졌다.

나는 정신없이 북과 바디를 이용해서 그 노트를 지워야했다.

지울 때마다 하프의 현이 튕기는 음색이 울려 음악이 들렸다.

“어디서 악기 소리 안 들려?”

“저 사람에게서 들리는 것 같은데?”

“저렇게 생긴 악기도 있었나?”

“바보야 저건 베틀이야. 천짜는 거.”

“근데 저기서 소리가 들리잖아?”

“그러네? 이상하다.”

한쪽에서 농장의 실버에게 보리빵을 던지고 놀던 구경꾼들이 숙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쁜 음색은 아니지만 주의를 끄는 게 조금 거슬렸다.

하지만 나는 집중력을 발휘해 노트를 계속 지웠다.

아직까지 미스는 없었다.

대부분 good으로 처리했고, perfect도 몇 개 있었다.

템포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서 실수를 유도하는 듯했으나, 나는 어린 시절의 감각을 되찾으면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

티리링

[완벽하게 연주하셨습니다. 등급이 100%확률로 오릅니다.]

[질 좋은 9등급 양모 옷감 획득]

[처음으로 완벽한 방직을 했습니다. 10의 업적점수를 획득합니다.]

[민첩이 2 올랐습니다.]

“재밌는데?”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 베틀에서 손을 뗐다.

간만에 리듬게임을 한 것치곤 매우 잘했지만, 조마조마해서 힘들었다.

하지만 꽤 재미는 있었다.

오랜만에 리듬 게임을 해서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힐링이 된 기분이었다.

여하튼 제작진은 이렇게라도 생활 스킬에 관심을 끌려고 한 것 같다.

나름 나쁘지 않은 시도이긴 한데, 리듬게임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겐 다소 진입장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굵은 실 10개를 소모해서 한 개의 옷감을 만들었으니까······ 실 20개를 남겨둔다면 앞으로 이걸 다섯 번 더 해야 한다.

손가락이 조금 고생하게 생겼다.

“저 사람이 연주하는 거 맞는 거 같네.”

“진짜인가보네, 근데 왜 베틀에서 음악소리가 나는 걸까?”

“저 베틀이 특별한 거 아냐?”

“아님, 아까 저 사람이 나무로 대충 만드는 거 봤음.”

“잘은 모르겠는데, 미니게임 같은 거 아닐까요? 생활직 스킬에 그런 미니게임이 있었던 고전게임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계속 옷감을 만들었다.

구경꾼들이 좀 더 모이는 가운데, 재봉 스킬에 대해 유추하는 사람도 있었다.

옷감 만들기를 할 때마다 다른 연주가 나와서 결국엔 miss나 bad를 여러 번 띄워야 했다.

그런 것은 높은 등급을 받을 확률에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처음엔 퍼펙트라서 100%였지만, 두 번째는 좀 실수해서 90%, 더 못했을 땐 80%,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하면?

[실패시 재료가 증발할 확률이 있습니다. 주인님]

······그렇다고 골램이 알려주었다.

양털 정도야 다시 모을 수 있긴 하지만 만약 귀중한 재료를 쓴다면 조심해야할 것 같았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6개의 질 좋은 9등급 양모 옷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제 이걸로 재봉을 만들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퀘스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고 싶었다.

“재봉 스킬!”

주저 없이 재봉 스킬을 사용해 제작 카탈로그를 띄웠다.

수많은 목록이 떴는데, 양모 옷감을 사용하는 것 중에 적당한 것을 찾아보았다.

[재봉, 양모 튜닉

양모 옷감을 이용해 튜닉을 만든다. 적당한 내구력과 방어도, 방한성이 있다.

필요한 재료 : 양모 옷감 3개, 굵은 실 10개

추가 재료 : 강화용 소재

필요한 도구 : 바늘, 재봉 스킬 Lv1                                     ]

[재봉, 양모 바지

양모 옷감을 이용해 바지를 만든다. 적당한 내구력과 방어도, 방한성이 있다.

필요한 재료 : 양모 옷감 3개, 굵은 실 10개

추가 재료 : 강화용 소재

필요한 도구 : 바늘, 재봉 스킬 Lv1                                     ]

괜찮은 것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바로 하진 않고 조금 쉬기로 했다.

호수에 뛰어들어 물방울과 수영을 하기도 했고, 실버와 불돌이를 데리고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였다.

그러다 지치면 아무데나 누워서 쉬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

이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철칙이다.

현실에선 ‘닥치고 일해라’라서 정말이지 지치는데, 여기선 그런 것이 아니라서 정말 좋다.

그렇게 마음의 힐링을 다 한 뒤에, 나는 슬슬 다시 일을 해볼까 생각하면서 골램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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