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원예를 해보자(2)
깡깡깡깡!
철괴도 모아둔 것이 있으니 재료는 문제없었다.
통짜 철 삽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무기도 아니고 오로지 삽질하는데만 쓸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삽처럼 삽 머리만 쇠로 만들었다.
곧 훌륭한 삽이 완성되었다.
[훌륭한 재질의 삽]
[대장기술 레벨 업!]
이름이 말 그대로 ‘훌륭한’ 재질의 삽이었다.
더불어서 대장기술이 레벨 업하여 2레벨이 되었다.
삽을 만들기 전에 요리도구를 이것저것 만든 덕분인 것 같다.
그렇게 삽을 만든 나는 기다릴 것 없이 축사로 달려갔다.
닭, 소, 양, 돼지가 제각각 똥을 쌌지만 모두 가축의 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실버가 놓은 똥도 그러했다.
아이템화 되어 있어서 손만 좀 더럽히면 바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수 있지만, 삽까지 만들어서 굳이 똥을 치는 이유는 가축들과 실버의 집을 깨끗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열심히 똥을 치워주었다.
[실버가 청소된 자신의 집 주변을 보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축들이 청소된 자신의 축사를 보고 컨디션이 좋아집니다.]
골램의 말에 따르면 가축들의 컨디션은 생산량과 질에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걸 노리고 한 것은 아니지만 똥을 치워주니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보람을 느끼곤 치워놓은 똥무더기를 보았다.
[가축의 똥 52덩이]
게임 시간으로는 꽤 시간이 흘렀는데, 그에비해 똥은 그리 많이 모이지 않았다.
하긴, 현실적인 주기로 가축들이 똥을 싼다면 그것도 문제일 것이다.
더욱이 고급 비료의 효과가 좋은데, 그것의 재료가 너무 많다면 밸런스 문제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 이전에 생활 스킬은 전반적으로 인기가 없지만, 여하튼 나는 50덩이의 가축의 똥을 고급 비료로 만들었다.
[고급 비료 50자루]
튤립 꽃씨를 50개 사왔으니, 딱 맞춰서 사용할 양이었다.
나는 꽃밭으로 쓸 수 있도록 고르게 간 밭에 비료를 뿌렸다.
고급 비료의 냄새는 일반 비료보다 조금 진했다.
냄새에서부터 작물에게 더 좋을 것 같은 퇴비의 냄새.
비록 지금 심을 것은 꽃이지만 말이다.
멍멍! 킁킁 크르르릉
“어허, 실버야. 방해하면 못 써.”
실버에겐 조금 고약한 냄새인지 얕게 짖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더 이상 짖지는 못하고 끙끙 앓는 실버였다.
곧 실버는 구경꾼들이 몇몇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요 녀석 아주 귀여운 개네.”
“늑대를 좀 닮았는데, 이거 늑대개 아닌가?”
“회색 늑대같이 생기기도 한 것 같고······.”
“어디서 이런 애완동물을 얻는거지?”
“나 알고 있음. 업적점수를 쌓아서 업적상점에서 사는 거임.”
구경꾼 몇몇이 실버에게 보리빵을 던져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쩌다가 나도 듣게 됐는데, 업적상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업적상점이란 나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비료를 다 뿌리고 튤립 꽃씨를 심으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았다.
“업적점수라면 되게 쌓기 힘든 거잖아? 대단한 업적을 하거나, 히든 퀘스트 같은 거를 해야 주는 거.”
“맞음. 그 점수를 쌓아서 업적상점의 좋은 아이템이나 애완동물을 살 수 있음. 선착순으로.”
“그럼 저 농부 같은 사람은 업적점수를 쌓아서 샀단 말이네?”
“맞음.”
“혹시 히든 퀘스트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음.”
“대박이네? 히든 퀘스트는 어디 숨겨져 있거나, 알고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급 퀘스트인걸로 아는데.”
“그럼 설마······ 저 농사짓고 있는 게 사실 히든 퀘스트에 연관된 거 아닐까?”
“그럴지도······.”
흠, 그들은 나름대로의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추측은 대체로 맞고 있었다.
내가 히든 퀘스트를 하고 있단 것은 맞는 말이니까.
이거, 괜한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사실이 알려져도 그리 불쾌한 것은 아니지만, 게임 플레이를 방해 받는 것은 싫다.
이 게임, 그러니까 이 게임 속에서 농사를 짓는 것 등은 내게 있어서 정말 포기하기 싫은 힐링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걸 방해 받는 것은 싫었다.
아무래도 뭔가 물어보거나 하면 이젠 적당히 모른 척 하는 기지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생활의 달인이라는 히든 클래스는 밝히지 않는 다던가, 수상한 쪽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어쨌든 나는 꽃씨를 다 심었다.
“물방울아! 물 뿌리자!”
[물방울이 흥미 없는 척하지만 당신의 말을 듣습니다.]
물방울은 도도하게 날아오면서 꽃밭에 물을 뿌려주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자라는 잡초들은 전부 대낫으로 베어버렸다.
고급 비료를 썼으니 4시간이면 다 자랄 것이다.
그때까진 물을 주면서 잡초도 베고······ 시간을 떼워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따분한 감이 있었다.
일단 똥을 만져서 더러워진 손을 씻었다.
잠을 자는 것도 좋겠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 하고 싶었다.
뭘 할까, 고민하고 있으니 내 앞을 지나가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꼭 꼭꼭
바로 수탉이었다.
암수 한쌍의 가축으로 들여놓긴 했는데, 암탉에 비해 쓰임이 애매한 녀석.
골램의 말로는 사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사냥할 수 있는 것은 벌레, 동물, 물고기, 몬스터······ 응?
물고기? 닭이 물고기를 어떻게 사냥하지?
일단 닭이 수영은 할 수 있나?
골램이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 말했을 가능성은 없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지 않는 이상, 인공지능이 그럴 리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의구심이 들어서 일단 수탉을 불러보았다.
“수탉아.”
[주인님, 가축 수탉은 현재 이름이 없습니다. 가축 상태에서도 사냥은 가능하지만, 이름을 정해주어야만 경험치를 쌓을 수 있습니다.]
수탉을 불러보니, 골램이 그런 조언을 해주었다.
이름을 정해주어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골램은 애정을 가지고 육성시키면 더 강한 닭이 된다고 말했었다.
진화 같은 거라도 하는 거려나?
여하튼 수탉은 내가 부른 것에 응답하듯, 느릿느릿 내 앞으로 다가왔다.
“수탉아, 이제 네 이름은 ‘호크’다!”
즉석에서 이름을 지어줬다.
어쩐지 닭으로써의 정체성을 잃을 것 같은 이름이긴 하지만, 이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치킨호크(chicken hawk)라는 영어단어로 떠올린 언어유희였다.
호크란 이름을 가졌지만, 닭이므로 치킨호크.
부장님의 아재개그가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 치킨호크의 뜻대로 겁쟁이 닭이 되란 의미는 아니지만 말이다.
기왕이면 진짜 호크(매)처럼 용맹해지길 바랄 뿐이다.
[호크가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만, 지능이 너무 낮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하하! 넌 그런 녀석이구나?”
이녀석은 소위 말하는 ‘새대가리’ 같은 컨셉인 모양이다.
아니, 닭이니까 ‘닭대가리’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가? 뭐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호크야, 물고기를 잡아봐!”
중요한 것은 이 녀석이 정말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지였다.
그렇게 명령하자, 호크는 매우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꼭꼭 거리면서 호숫가로 다가가더니, 날개를 푸더덕 하며 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곤 마치 오리처럼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닭이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것도 게임의 허용이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닭이 정말로 수영을 할 수 있는지 검색해서 확인해봐야할 것 같다.
“어머머 저거 봐, 닭이 수영하고 있어!”
“대박, 나 저런 거 처음 봄.”
“저거 테이머 스킬인가? 닭이 어떻게 수영해?”
“모름? 닭 원래 수영할 수 있음. 그저 수영하길 싫어할 뿐임.”
구경꾼들도 난리가 났다.
하긴, 닭이 수영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이니 말이다.
더욱이 닭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장면은 어떨까?
꼭꼭!
철퍽!
호크는 오리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것처럼 물속에 고개를 처박더니 작은 피라미 한 마리를 덥썩 물고 있었다.
“와아!”
나도, 구경꾼들도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비록 날아서 물고기를 낚아챈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매처럼 물고기를 쪼아서 사냥한 것이다.
다만 문제라면······
“호크야, 먹지 말고 잡아와야 하는데······.”
[호크가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당신의 명령을 듣고 겨우 인지합니다.]
호크는 그 작은 피라미를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
별로 피라미가 아까운 것도 아니었고, 그 피라미는 닭이 삼킬 수 있을 만큼 작은 피라미였지만 말이다.
[물방울이 수영을 하는 호크에게 큰 관심을 가집니다.]
그때, 물방울이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수영하고 있는 호크에게 날아갔다.
그리곤 그의 곁에 잠수하더니, 물고기를 몰아주는 것처럼 보였다.
곧 호크가 다시 부리질을 물속으로 해댔다.
그러더니 이번엔 커다란 녀석과 수중전을 하고 있었다.
바로 족히 60cm는 될 것 같은 메기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피라미처럼 작지 않고, 자기 몸보다 큰 녀석이라선지 물 위에서 푸드득대면서 싸우고 있었다.
물방울이 그런 호크를 돕는 모양이고 말이다.
“호크야 지지 마!”
나는 마치 닭싸움을 응원하는 것처럼 호크를 응원했다.
그런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호크는 삼연속 부리공격을 메기의 머리에 가했고, 메기는 곧 힘없이 물에 둥둥 떠다녔다.
호크는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지친 것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물에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호크야 뭍으로 돌아와!”
일단 호크가 지쳐보였으므로 호크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고, 나는 둥둥 떠다니고 있는 메기를 건지러 물에 들어가 헤엄쳤다.
그렇게 얻은 메기가 호크의 1호 사냥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