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채광을 해보자(1)
“그걸 다 마셨어요?”
54개나 팔았는데, 혼자 그걸 다 마셨다니······ 아, 여기 시간으로는 64시간이 흘렀으니까 안 될 것도 아닌가?
“물론 아니죠! 길드의 마법사들에게 팔았어요.”
“······되파셨군요.”
“윽, 그럼 그걸 다 마실 리가 없잖아요. 물론 저도 많이 마셨지만요.”
“그래서 이번에도 또 사셔서 되파실 건가요?”
“그게······ 조금 복잡하게 됐어요.”
“음?”
조금 난처한 모습이 된 마법사 아가씨 NPC였다.
곧 그녀가 말했다.
“마법사 분들이 구입처를 물어봤어요. 대충 둘러댈 수가 없어서 사실대로 말했더니, 연구자금을 저에게 일부 주면서 꼭 사놓으라고 했어요.”
“그렇군요.”
“그렇군요가 아니잖아요! 들켜서 용돈벌이가 불가능해져 버렸다구요! 이젠 마법사들을 상대로 그걸 팔수가 없게 되었어요.”
“저한테 말씀하셔도, 제 잘못이 아닌데······.”
나한테 따지는 그녀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정식 공금을 받아버려서 그녀가 따로 사서 파는 것은 불가능해진 모양이다.
“여하튼 이번에도 저한테 파실거죠?”
“생각 중인데요.”
“생각 중이라니요! 다른 곳에 팔거나 할 생각이에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수확한 사과를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을지도 몰라서 고민 중이에요.”
“무조건 저한테 파세요! 지난번의 3000골드보다 더 비싼 3500골드에 살게요! 그럼 그쪽도 이득이죠?”
“그렇긴 한데, 되파실 수도 없다면서 그렇게 열심히 사시려는 이유가 뭐에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일거리라서 그래요! 그 사과주스가 특이하다며 길드마스터께서 연구하시기로 했어요. 잘 되면 제 입지도 좋아지고 월급도 오를 거예요. 마법도 더 많이 배우게 되겠죠!”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은 곤란합니다. 아직 사과주스가 아닌 사과인 상태니까요.”
“그럼 빨리 만들어오세요!”
“어, 그것도 좀 시간이 걸릴 텐데. 저 이제 광산에 가거든요.”
“으윽, 거긴 왜요?”
“왜긴요 광물 캐러 가죠.”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마법사 아가씨 NPC는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그럼 돌아와선 꼭 사과주스로 만들어서 저에게 파셔야 해요?”
“그러죠.”
“꼭이에요!”
구두약속을 계속해서 받는 그녀에게 대충 대답하곤 마법사 길드를 나섰다.
꼭 계약 하나를 따놓은 것 같다.
사과주스 하나 당 사과 한 개가 드니까, 84개의 사과로는 84개의 사과주스를 만든다.
개당 3500골드에 팔면 294000골드가 되겠군.
변동사항이 없다면 또 거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광산으로 가봐야할 시간이다.
나는 대장간 노인 NPC가 가르쳐 준 대로 서쪽 길을 따라갔다.
가는 도중에도 여러 초보 유저들이 토끼 따위를 잡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아, 마침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정령술!”
나는 문득 정령을 부르지 않은 것을 깨닫고, 바로 정령술을 썼다.
그리곤 [불돌이 소환]을 클릭했다.
화르륵
허공에서 불길이 이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돌이가 나타났다.
[불돌이가 당신을 반깁니다.]
“미안, 기다렸지?”
[불돌이가 많이 기다렸다고 합니다.]
“회사 일이 늦어서. 지금 광산 갈 건데, 괜찮지?”
[불돌이가 끄덕입니다.]
불돌이의 밝은 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그대로 불돌이가 내 주변을 겉돌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 서쪽 길을 따라갔다.
광산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표지판도 보았고, 무사히 광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티 구합니다! 전사 도적 대기 중! 힐느님 찾아요.”
“마법사가 파티 찾아요. 2서클 마법도 배웠음!”
“철광석만 캐고 나오실 분들 구합니다. 직업 상관없습니다. 발만 빠르면 됨!”
광산 바깥에는 여러 유저들이 소리치며 파티를 구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곳은 파티를 맺고 가야하는 곳 같았다.
하지만 나는 로렌의 창을 꺼내 쥐곤 불돌이와 함께 광산으로 들어갔다.
광산 안은 생각 이상으로 사람들이 많았다.
정확히는 NPC와 사람들이었다.
광부로 보이는 NPC들과 곡괭이를 든 유저들이 열심히 광물을 캐고 있었다.
그들이 툭 튀어나온 광맥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어서,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내 것을 찾아봐야할 것 같았다.
케륵 케르륵
광산 안에선 어디선가 사람의 것이 아닌 음성이 들리고 있었다.
뭔가 간사하고 비열해 보이는 울음소리다.
그 울음소리의 정체가 뭔지는 곧 알게 되었다.
주변에 횃불을 켜들고 사냥하는 사람들이 상대하고 있는 존재가 내는 것이었다.
[광산 고블린]
그것의 정체는 판타지 매체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몬스터인 고블린이었다.
광산에 있어서인지 이름에 ‘광산’이란게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기로 날이 선 곡괭이와 방패를 든 모습이 인상적이다.
고블린들은 집단전을 좋아하는지 여럿이 뭉쳐 다녔고, 유저들은 파티를 맺고 와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옆에 우회하는거 놓치지 마!”
“내가 맡았음!”
“내가 한국의 고블린 헌터다!”
“집중해!”
유저들이 소리를 질러 합을 맞추는 모습이 꽤 흥미로웠다.
초보 유저들이 토끼를 잡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저들은 그것에 비해 능숙하게 싸우고 있었다.
차림새도 레더아머나 로브, 사제복 등을 입고 있어서 초보존의 유저들보다 레벨이 높은 것 같았다.
조금은 저런 식의 팀플레이에 흥미가 생겼지만, 내 목적은 따로 있기에 나는 눈을 돌렸다.
[철광석 광맥]
드디어 아무도 캐고 있지 않는 철광석 광맥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긴 광맥 채취보단 사냥이 중점인 곳이라 캐지 않는 광맥들이 많이 보였다.
확실히 이곳저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어서 정신이 조금 사납지만, 신경쓰지 않고 곡괭이를 들었다.
깡깡!
광맥을 열심히 때렸다.
그러자 어느 순간 광맥의 광물이 부서지면서 아이템을 쏟아냈다.
[철광석 5덩이]
꽤 많이 곡괭이질을 하긴 했지만, 한 번에 다섯 덩이나 얻을 수 있었다.
이대로만 준다면 앞으로 아홉 번만 더 하면 퀘스트 달성에 필요한 양을 채울 수 있었다.
[불돌이가 근처의 적대감을 감지합니다.]
그때, 불돌이의 메시지가 떴다.
돌아보니, 고블린 네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곡괭이를 집어넣고 로렌의 창을 꺼내 쥐었다.
문답무용.
나는 즉시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푸욱
고블린 한 마리가 창에 꿰뚫려 즉사했다.
생선구이를 먹었을 때와는 달리 힘과 체력 버프가 없지만 지금도 공격력은 충분하다.
고블린 정도로는 내 한 방을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다만 남은 광산 고블린 셋이 나를 협공하려고 했다.
화르르륵
하지만 불돌이가 불을 내뿜어 그들을 위협했다.
불길이 무서워선지 그들은 날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서야만 했다.
그 사이에 난 고블린 한 마리를 다시 공격했다.
푸욱
이번에도 역시 창에 찔린 광산 고블린은 즉사했다.
슬슬 나도 사냥에 익숙해지는 느낌인지, 바로 창을 회수했다.
짐승과는 달리 인간형 몬스터는 시체를 남기지 않았다.
대신 그 회색빛이 되면서 사라질 뿐이었다.
아마도 심의에 걸려서 해놓은 조치 같다.
푸욱 푹
남은 고블린들은 사기가 꺾인 모습이었는데, 나는 주저 없이 그 둘을 찔러 죽였다.
공격력이 높은 것은 참 편한 일이다.
귀찮게 여러 번 찌를 거 없이 한방에 죽어주니 말이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어? 이상하다.”
“왜?”
“저기 저 초보자 옷 입고 있는 사람, 몹 애드가 돼서 큰일 난 줄 알았는데······.”
고블린 네 마리를 죽이자,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떴다.
하지만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 수다소리가 들렸다.
초보자 옷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고블린들을 한 방에 다 죽이고 있었어.”
“초보인척 하는 고인물이겠지.”
“그런가? 그냥 창 든 정령사인줄 알았는데.”
“신경 꺼, 그렇게 관심 받으려는 사람들도 있어.”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초보인 척 하는 것도 아니고, 정령사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굳이 오해를 풀 필요는 못 느껴서 고블린이 남긴 아이템을 확인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