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24화 (24/239)

13화 1일차 로그아웃

[‘송로돼지’기능과 ‘허브돼지’기능을 적절히 사용하십시오. 송로돼지 기능은 송로버섯을 비롯한 다양한 약초와 버섯을 획득할 수 있게 해줍니다. 반면 허브돼지는 심은 약초나 버섯만 재배할 수 있지만, 해당 약초나 버섯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골램의 보충 설명이 있었다.

채집을 할 것인지 재배를 할 것인지 잘 결정하란 의미다.

나는 한 마리는 송로버섯을 심었으니, 일단 다른 한 마리는 채집을 시키기로 했다.

송로돼지 상태인 돼지는 연신 땅을 킁킁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의 숲을 더 뒤지게 되었는데, 도깨비 토끼 두 마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뀨?

푸욱!

뀨뀨!

푸욱!

간단하게 불돌이와의 연계로 두 마리 모두 해치울 수 있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그러더니 레벨이 올라버렸다.

아까 잡은 한 마리까지 해서 3마리를 잡으니 오른 것이다.

아마도 도깨비 토끼는 선공몹인 만큼 레벨이 좀 높은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보통의 1레벨은 잡지 못할 녀석으로 말이다.

여하튼 레벨이 올랐으니 능력치를 올려야 할 때였다.

[힘17+10, 민첩11, 체력15+10, 지능10+6, 정신력12+6 보너스 포인트:3]

이 게임은 1레벨당 3의 보너스 포인트를 얻는다.

스테이터스창을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보너스 포인트가 3 있었다.

나는 어떤 능력치를 올려야할지 고민해보았다.

힘은 일단 탈락이었다.

찍지 않아도 지금 공격력은 오버파워 상태다.

민첩도 보류, 지금의 나는 활 같은 원거리 공격은 하지 않는데다가 크리티컬이나 회피도 그리 급하지 않다.

체력은 좀 전의 구경꾼에게서 2씩 찍는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2나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대미지가 오버파워인 나는 체력보단 더 유용한 곳에 투자하고 싶었다.

물론 체력은 죽지 않으려면 찍어야 하니, 1만 투자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지능과 정신력인데······

[불돌이가 가만히 서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불돌이가 눈에 들어왔다.

맞아, 정령술은 정신력에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지능은 마법공격력을 보정해주는 것인데, 마법이라고 해봐야 나는 정령을 통해 쓰니까 지능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남은 포인트 두 개를 정신력에 투자했다.

킁킁

그런 사이 송로돼지가 무언가를 찾은 듯했다.

이번에도 한 나무 밑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에 가까이 가니, 이번에는 붉은색 약초가 있었다.

[질 좋은 10등급 붉은 석양초]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약초 같지가 않았다.

이름 그대로 석양처럼 붉은 약초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연금술에 쓰일 것 같은데, 이걸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하나 싶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골램아.”

[예, 주인님]

“송로돼지와 허브돼지는 언제든 변경시킬 수 있지?”

[그렇습니다, 주인님. 허브돼지가 된 돼지도 언제든 다시 송로돼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붉은 석양초도 송로돼지에게 심고, 나중에 필요하면 또 송로돼지로 이용하면 되겠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주인님. 붉은 석양초는 기초 연금술에 쓰이는 재료입니다. 재배하실 경우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좋아. 그럼······.”

골램과 대화를 나눈 뒤, 나는 붉은 석양초를 아직 아무것도 재배 중이지 않은 송로돼지의 등에 심었다.

그 송로돼지의 등에 붉은 석양초가 심어지고 허브돼지가 되었다.

두 허브돼지는 이제 더 이상 땅을 킁킁대지는 않았지만, 대신 꿀꿀대며 내 주변을 돌았다.

퀘스트도 깼으니 이제 농장으로 돌아갈 때였다.

“불돌아 농장으로 가자.”

[불돌이가 기쁜 마음으로 앞장섭니다.]

완연한 밤이 되어서 불돌이의 불이 더욱 환하게 느껴졌다.

물론 불이 없어도 달빛이 환한 수준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면 유저들의 밤사냥이 너무 힘들 테니, 게임의 편의상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농장에 돌아오니 구경꾼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침입자도 없었는지 농장은 고요했고, 실버가 멍멍 거리며 돌아온 나를 반길 뿐이었다.

돼지들은 돼지우리로 다시 돌아갔다.

퀘스트가 이렇게 또 하나 일단락되었다 싶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골램아, 수탉이나 수소에게선 뭘 얻을 수 있지?”

암탉은 달걀을 얻고, 암소는 우유를 얻을 수 있는데, 수탉과 수소는 그러질 못한다.

그럼 그들은 새끼를 치는 것 외에는 뭘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현실에서 수탉과 수소는 도살해서 고기를 얻지만, 게임에서도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비싸게 산 녀석들인데, 고작 고기 몇 개 얻자고 도살하는 것도 아까웠다.

[수탉과 수소가 있어야 암탉과 암소의 컨디션이 좋아집니다. 또한 수소는 암소에 비해 전투력이 좋고 기승할 수 있습니다.]

“기승이라면, 말처럼 탈 수 있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말보다 속력은 느리지만 훌륭한 지구력과 저돌성을 가져서 전투용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럼 수탉은 뭘 할 수 있어?”

[수탉 또한 암탉의 컨디션을 좋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수탉은 사냥과 전투에 능합니다.]

“닭이 사냥과 전투를 잘해?”

[사냥본능과 전투본능이 매우 뛰어나 저돌적으로 적을 공격하고, 공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육성시키면 더 강력한 닭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흠, 조금 애매한데.”

처음 사냥을 해본 소감으로는 지금의 나는 딱히 동료를 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공격력이 강한 상태였다.

그래서 수탉의 전투능력은 그리 메리트가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싸울 수 있다면 수탉으로도 경비견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현 상태의 진화수준으로는 경비견을 맡을 정도로 똑똑하진 않습니다. 수탉의 사냥과 전투 능력은 본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 진화란 건 언제 할 수 있지?”

[수탉과의 친밀도가 높은 상태에서 수탉의 레벨이 50까지 도달하고 목축 스킬의 레벨이 4가 되었을 때, 첫 진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조금 키워봐야겠네. 데리고 다니면서 사냥이라도 해야 하나?”

[수탉의 사냥감은 여러 가지입니다. 벌레, 물고기, 야생동물, 약한 몬스터. 수탉에게 사냥을 명령하면 스스로 사냥감을 찾아 사냥을 시작합니다. 다만 수탉이 길을 잃거나 목숨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알겠어.”

골램의 설명 덕에 수탉의 쓰임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 애매하긴 하지만 키워보면 뭔가 쓸 만할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제 밤이 된 것을 보니 나도 슬슬 접속을 종료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아침까지의 8시간, 게임 시간으로 치면 3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 시간이 알차게 느껴질 만큼 재밌게 게임을 즐겼다.

슬슬 일어나서 출근을 준비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농장을 두고 가려니 영 불안했다.

누가 사과를 서리하거나 가축을 도둑질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실버가 농장을 지키긴 하겠지만······.

아, 그리고 실버의 먹이도 문제다.

“실버야.”

멍멍!

“일단 이거 먹어볼래?”

멍!

나는 실버에게 도깨비 토끼 시체 3개를 꺼내보였다.

실버는 그것들을 보자 멍멍! 짖더니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걸로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 같은데, 회사를 다녀오는 시간 동안 버틸는지가 문제였다.

야근까지 한다면 최대 16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될 텐데, 게임 시간으로 치면 64시간이다.

시체 하나를 먹고 8시간을 버틴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조금 기지를 발휘해야 했다.

“실버야.”

멍?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농장을 지켜줘야해. 하지만 배가 고프면 알아서 사냥해야 한다?”

멍!

[실버가 당신의 명령을 인지합니다.]

일단은 이해한 것 같았다.

주변에 토끼가 많으니 아마도 사냥은 가능할 것이다.

명색이 늑대개인데 토끼한테 지진 않을 테니 말이다.

“불돌아, 나는 이만 가봐야 하니까. 다시 오면 또 보자.”

[불돌이가 아쉬워합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불돌이는 내 주변을 붕붕 돌았다.

실버도 불돌이를 따라 빙빙 돌았다.

기특한 녀석들······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얘들아 다녀올게!”

음머어어어어

매애애애

꿀꿀꿀

꼭꼬곡

멍멍!

화르륵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실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친구들도 울음소리로 배웅해주었다.

이제 이 아이들이 전부 내 농장의 가족들처럼 여겨졌다.

난 삭막한 현실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마음의 힐링을 느끼며 접속을 종료했다.

* * *

공진의 플레이 영상을 보고 있던 김 팀장은 입맛이 썼다.

그냥 겉으로 보면 사냥은 하지 않고, 생활직 스킬만 배우고 있는 유저였다.

하지만 데이터를 통해 그가 획득하고 있는 히든 피스를 보고 있는 김 팀장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 내 최초로 땅주인이 되어서 농장을 가지게 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히든 클래스로 전직한 것이었다.

“젠장, 장기래. 장난을 칠거면 얌전하게 칠 것이지······.”

히든 클래스는 기본적으로 ‘사기다’라고 할 정도로 강한 것은 맞다.

하지만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도록 개발진이 만들어 놓진 않았다.

복권당첨보다 낮은 확률로 얻도록 하거나, 아니면 베타테스터들의 선점한 힌트가 없으면 얻지 못하도록 해두었다.

그 외에도 히든 클래스 간에 상성을 두어서 서로 경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공진이 얻은 ‘생활의 달인’이란 클래스는 몰래 만들어진 것인 만큼 상성 클래스가 없다.

게다가 1레벨의 유저가 10레벨의 도깨비 토끼를 한 방에 오버킬할 정도로 강한 공격력을 지니게 되었다.

잠재적으로는 생활 스킬을 더 얻고, 생활 활동으로 능력치를 더 얻으면서 더 강해질 것이었다.

만약 그가 지금 당장 게임 내 모든 랭커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버틸 수 있는 랭커가 거의 없을 지경이다.

비록 플레이 방식을 보니,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윗선에선 아마 덮으려고 할 테고······.”

여사원도 퇴근하고 없는 지금, 김 팀장은 초조함에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만약 그 플레이어, 그러니까 공진이 어떤 일이라도 터트리면 잘나가던 게임 흥행이 고꾸라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임원들은 이 일을 어떻게든 덮으려고 할 것이다.

공개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면, 개발과정 중에 장기래에 관련된 추한 스캔들이 터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게임 회사 이터널은 개발진을 죽음으로 몰고 간 회사, 그런 식으로 말이다.

경쟁 게임 회사들이 그 스캔들을 물고 늘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해당 유저에게 접촉해 협조를 구해보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협조적이란 보장이 없기에 곤란하다.

돈을 쥐어준들, 그 유저가 입을 다물어 줄 것인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것이나 다름없는 히든 클래스를 버릴 것인가?

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정확히는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터널의 입장에서는 일단은 그를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 때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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