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20화 (20/239)

11화 목축을 해보자(1)

목장에 가자, 여전히 카우보이 말투를 쓰는 목장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엔 무슨 일이지? 스킬은 아까 배웠을텐데.”

“가축을 사러 왔습니다.”

“오, 그럴 것 같았어. 스킬만 있고, 가축이 없으면 무의미하잖아? 어떤 녀석들을 사러 왔지?”

“소랑 양, 돼지, 닭······ 가축 종류별로 한 마리씩이네요.”

“한 마리씩? 정말 한 마리씩만 살 생각인가?”

“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가 그렇게 반문하자, 카우보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문제라고 할 건 없지만, 짐승도 짝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보았나? 강매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마리씩만 사가선 새끼를 칠 수 없다고. 목축에서 가장 중요한 걸 못하게 되는 셈이지.”

“아, 그렇군요. 그럼 암수 한 마리씩 주십시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한 마리의 가축이 새끼를 낳을 순 없지.

그 정도의 현실성은 고려한 게임이라면 말이다.

“소는 2만 골드, 돼지는 만 골드, 양은 8000골드, 닭은 5000골드라네. 암수 한 마리씩 하면 86000골드로군.”

“······비싸군요.”

“요 귀여운 녀석들을 파는데 당연한 가격이지.”

가축이 비쌀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상당한 지출이 발생했다.

물론 현실의 가축이 얼마나 비싼지 생각해보면, 더 비쌀 수도 있었기에 이 정도라 다행인 것도 같았다.

그래도 아직 92000골드가 있어서 지갑은 두둑한 편이었다.

“말 나온 김에 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야. 뭐든 물어봐.”

“제가 이방인이라서 그런데, 여기서 가축은 얼마 만에 새끼를 낳고, 새끼는 얼마나 돼야 다 자랍니까?”

“좋은 질문이군. 잘 들어, 가축들은 좋은 환경에 있을 때 높은 확률로 새끼를 쳐. 출산까지 걸리는 시간은 우리의 시간으로 한 달이 흘러야 새끼를 낳아. 너희들의 시간으로는 아마 일주일 정도일거야. 새끼가 자라는 속도는 우리들의 시간으로 일주일, 너희들의 시간으로는 이틀 정도군.”

현실에 비해선 아주 짧은 속도지만 게임의 편의에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는 기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이런 시간적 제한이 없다면 게임에서 목축을 하는 사람마다 가축이 넘쳐나는 인플레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밸런스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목축도 그다지 유저에겐 환영받지는 못할 것 같았다.

“뭐 더 궁금한 것은 없나?”

“가축들의 먹이는 어떻게 주면 좋습니까?”

“방목해 기를 거라면 먹이를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어. 닭은 땅에서 벌레를 쪼아 먹고, 나머지 소, 양, 돼지들도 풀을 뜯어먹지. 하지만 풀이 부족하거나 축사에서 지내야하는 겨울이 되면 건초나 모이를 준비 해줘야해. 건초는 풀을 이용해 만들 수 있고, 모이는 곡식을 이용해 만들어.”

“그렇군요.”

“내친 김에 더 설명해주지. 방목해 기른다고 해도 밤이 되면 동물들이 잘 수 있는 축사가 필요해. 그리고 겨울이 아니더라도 축사는 가능하면 따듯한 것이 좋지. 더울 땐 반대로 시원해야 좋고. 아까도 말했지만 애들의 기분이 좋아야 새끼도 치고, 축산품의 질도 좋아져. 아, 그리고 경비견 하나 키우는 거 잊지 마. 개는 우리뿐만 아니라 이 녀석들에게도 든든한 친구니까.”

“알겠습니다.”

그에게서 여러 유용한 정보를 얻은 것 같았다.

그러자 이번엔 그가 나에게 먼저 질문했다.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군. 당연한 질문이지만, 이 녀석들을 키울 농장이나 목장은 당연히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 근처의 호수에 제 농장이 있습니다.”

“아, 누가 거기에 농장을 차렸다는 말을 들었는데, 자네였군. 다들 그 허름한 폐가는 저주받았다며 기피했는데. 귀신이라도 나왔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겁 많은 친구들이 지어낸 헛소리지. 여기 자네의 가축들일세. 이제 자네의 소유기 때문에 자네 말을 들을 거야. 하지만 닭은 들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네. 말을 좀 안 듣거든. 아, 그리고······ 이거 받아.”

목장주인은 특이하게 생긴 작은 단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나에게 건넸다.

[양털깎이용 단도]

“필요할 거야. 새내기 목장주인에게 주는 내 선물이라고 해두지.”

“감사합니다.”

“잘 가게, 친구.”

난 그의 선물을 인벤토리에 넣곤, 그의 충고대로 닭은 양 옆구리에 껴들고 동물들을 몰았다.

“딴대로 새지 말고 농장으로 가자.”

음매애애애애

매애애애

꿀꿀

꼬끼오

목축 스킬 때문인지, 가축들은 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잘 따랐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닭들도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 외에는 얌전히 있었다.

그렇게 동물들을 이끌고 가니, 작은 무리지만 꼭 목동이 된 기분이었다.

“어? 저 사람 뭐하는 거야?”

“동물들이 따라다니네?”

“설마 기르는 건가?”

“아! 저 사람, 알아! 호숫가의 농장 주인이야. 자주 팬티차림이던!”

내가 가축들을 몰며 농장으로 향하자, 열심히 토끼를 잡던 초보 유저들이 나를 발견하곤 몰려들었다.

“아저씨! 이제 동물들 키우는 거예요?”

“닭에 소에 양에 돼지에······ 가축인 모양이네.”

“대박이다. 이 겜 자유도가 그렇게 높았나?”

“농사에 낚시에······ 남들 안하는 건 다하네.”

“저 따라다니는 불덩이는 정령이지?”

“나 저거 암. 불돌이라고 함. 네이밍 센스 구림.”

날 따라오는 동물들 마냥 따라오기 시작한 유저들이었다.

난 그들이 가축들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 중에선 그런 이들은 없는 모양이었다.

곧 얼마지 않아서 가축들을 농장까지 데려올 수 있었다.

가축 여덟 마리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농장의 넓은 울타리가 좁아진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좁아졌다는 것이 맞았다.

농장 가운데에는 사과나무 19그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농장의 울타리를 확장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가축들을 사도 퀘스트가 완료 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말은 단순히 사는 것은 클리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의미다.

가축들을 ‘사육하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그 카우보이가 말한 대로 축사를 지어 줘야할 것 같다.

각 동물들의 축사라면······

[닭장]

[외양간]

[돼지우리]

······였고, 나는 그것들을 건축 스킬의 카탈로그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이전에 일단 농장을 확장시키기 위해 뒤편의 울타리들을 해체해야 했다.

도끼질 할 필요 없이, 울타리가 하나의 아이템으로 인정되어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비료를 만들면서 남아돌 정도로 많이 쌓아놓은 목재로 울타리를 만들면 될 것이었다.

그 전에 닭장과 외양간, 돼지우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웃통을 벗었다.

“꺄, 저 근육 좀 봐.”

“동물들도 귀여워!”

“보리빵 먹을래?”

여자 구경꾼들의 말소리가 뒤로 들렸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축들은 알아서 풀을 뜯어먹거나 구경꾼들이 던지는 보리빵을 주워 먹는 듯했다.

여러모로 무료동물농장이 된 셈이다.

땅땅땅!

게임의 편의인 건축 스킬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복잡한 설계로 골머리 앓을 일은 없었다.

재료를 가지고 망치질만 열심히 하면 천천히 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계속된 망치질로 근육의 힘이 강해집니다.]

[힘이 2 오르셨습니다.]

[고된 노동이 당신의 체력을 강화시켜줍니다.]

[체력이 2 오르셨습니다.]

[건축 스킬 레벨업!]

[목공 스킬 레벨업!]

닭장은 구조와 크기가 간단해서 몇 번의 망치질로 만들 수 있었지만, 외양간과 돼지우리는 각각 100회, 80회 망치질을 해야만 했다.

그랬더니 힘과 체력이 2나 올랐다.

2씩이나 오르는 것은 아마도 생활의 달인 클래스의 효과인 모양이다.

마치 아령을 한 것 같은 피로감이 들었지만, 건축과 목공 스킬도 올라서 성취감이 들었다.

음머어어어어

매애애애애

꿀꿀꿀

꼭꼬꼭

여덟 마리의 가축들이 제각각의 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직도 퀘스트가 깨지지 않은 것이다.

뭔가 부족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카우보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얘들을 지켜줄 애가 필요하다.

바로 개 말이다.

근데 개는 어떻게 구하지?

[주인님, 경비견은 업적상점을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 전에 봤을땐 아이템뿐이었는데.”

[좀 더 넘겨보시면 애완동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이 나옵니다.]

“그럼 한 번 볼까?”

골램이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골램의 말대로 업적상점을 열어서 확인해보았다.

아이템들을 전부 넘기니 애완동물이란 것들이 보였다.

[전율의 티라노사우르스 100000000QP, 전율적인 크기와 위력을 가진 공룡.]

맨 처음 보인 것은 1억 업적점수 짜리의 공룡이었다.

사실상 사라고 만든 것이 아닌 것 같은 쇼윈도우 상품 같았다.

다음으로 보인 것들은······

[청룡]

[주작]

[백호]

[현무]

[레드드래곤 해츨링]

······.

한동안 똑같이 1억 포인트가 드는 더미 아이템들이 잔뜩 있었다.

해츨링은 반값으로 5000만 포인트였다.

그나마 해츨링이라선가?

한참을 넘겨야 그나마 정상적인 녀석들이 나왔다.

[골든 리트리버 1000QP, 황금빛 털의 신사. 친근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전투용이나 경비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음]

한동안 고급품종의 개들이 이어져서 나왔다.

그나마 현실적인 가격이라고 하지만, 410 업적점수로는 살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다.

그러던 중, 살 수 있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늑대개 400QP, 개와 늑대의 혼종. 늑대보다 크기가 조금 작지만 용맹하고 똑똑하다. 경비견으로 알맞음]

아무래도 이 녀석이 적당할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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