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사과주스(1)
사탕무만 재배했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원래대로라면 [9등급 사과]라는 식으로 나와야만 한다.
만약 ‘잘 익은 사과’가 아이템 명이면 [9등급 잘 익은 사과]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잘 익은’이 앞에 나왔다는 것은, 본래 아이템 명은 [9등급 사과]고, 특별한 이유로 인해서 ‘잘 익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거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이유’도 대충 예상이 되었다.
‘생활 스킬들이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생활의 달인 직업의 효과였다.
생선구이의 추가효과처럼, 이것도 아마 농사 스킬의 추가효과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추가효과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생선구이처럼 좋은 버프가 생길 것 같은데, 그냥 먹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먹는다면 요리를 해서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리 스킬을 써서 적당한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마땅한 다른 재료가 없기 때문에, 사과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 말이다.
그리고 적당한 것이 하나 있었다.
[레시피, 사과주스
기본 재료 : 사과, 물
추가 재료 : 설탕
필요한 도구 : 음료를 담을 것, 1레벨 이상의 조합 스킬
※이 레시피는 조합 스킬을 필요로 합니다.
조합 스킬이 없다면 스킬을 이용한 제작을 할 수 없습니다.]
기본 재료로 사과와 물만 있으면 가능한 레시피였다.
특이하게 조합 스킬이 필요한 도구에 적혀 있었지만 말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볼 때, 물과 사과를 조합시킨다는 의미 같았다.
만약 조합 스킬 없이 만들려면 이 레시피를 이용할 수 없으니, 믹서기도 없는 이곳에서 어려운 방식으로 과즙을 짜서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스킬을 이용한 편의를 많이 봐주는 게임 시스템이었다.
레시피는 확인 했으니, 나는 다시금 사과의 개수와 종류를 확인했다.
9등급과 8등급으로 나뉘어져 수확되었기 때문이었다.
[잘 익은 9등급 사과 39개]
[잘 익은 8등급 사과 17개]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인 9등급 사과가 많았으므로, 9등급 사과 하나를 재료로 하기로 했다.
목공 스킬을 이용해 간단한 컵을 만든 나는, 호수에서 물을 조금 떠서 레시피를 다시 한 번 클릭했다.
그러자 빈칸이 있는 투명한 시스템 창이 떴다.
[기본 재료를 투입하십시오.]
물과 사과를 넣으라는 것 같은데, 인벤토리에 있는 ‘잘 익은 9등급 사과’ 하나를 드래그 하여 넣었다.
그럼 물이 든 컵은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한 나는, 우선 인벤토리에 그것을 넣어보려 했다.
[약간의 물이 든 나무컵]
그러자 아이템화 되어 인벤토리에 들어간 물이 든 컵이었다.
나는 그것을 드래그하여 기본 재료 칸에 넣었다.
그리고 한편에 있는 ‘조리’라고 적힌 것을 클릭했다.
[추가 재료가 없습니다, 이대로 조리하시겠습니까?]
“그래.”
추가 재료로 넣을 설탕이 없으므로, 그대로 조리를 실행시켰다.
그러자 곧 내 손에 빛이 나면서 노란 액체가 담긴 컵이 생겼다.
아이템 이름은 [10등급 사과주스가 든 나무 컵]이었다.
향긋한 사과향기가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도, 사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꿀의 단맛이 벌써부터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조금 음미해보았다.
시원하고, 달고, 조금은 시큼한, 좋은 가게에서 팔 것 같은 수제 사과주스의 맛이었다.
나는 단숨에 그것을 다 마셔버렸다.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를 마셨습니다]
[만복도가 소폭 오릅니다.]
[생활의 달인 클래스의 효과로 인해 추가효과가 더욱 강해집니다.]
[추가 효과로 활력이 오르고, 한동안 갈증과 더위를 느끼지 않습니다.]
[추가 효과 8시간 동안 지력 + 6, 정신력 + 6]
추가 효과가 여러 개 떴다.
어쩐지 폐활량이 좋아지고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시원한 느낌이 감돌았다.
갈증이 싹 가신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다만 스탯이 지력과 정신력이 오르는 것은 애매하게 느껴졌다.
정신력은 정령술에 필요한 듯했지만, 지력은 지금의 나에겐 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른 유저들에게 팔기에도 애매한 효과라고 생각되었다.
마법사에게 유용할 것 같은데, 초심자 마을이라서 그런지 마법사로 보였던 구경꾼은 없었다.
애석하지만 이것은 지금 이곳에서 유저들에게 팔기엔 적절하지 않은 듯 했다.
“잠깐······ 골램아 하나 물어봐도 돼?”
[무엇이든 여쭤보십시오, 주인님.]
“NPC들도 요리를 살 수 있지?”
[물론입니다, 주인님. 그들에게 파는 것도 좋은 판매 전략입니다.]
골램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잠깐 선입견에 잠겨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이라고 해서 꼭 유저들에게 팔라는 법은 없다.
바로 NPC들이 있는 것이다.
애당초 사탕무도 식료품점 NPC에게 팔았다.
필요로 한다면 고객은 꼭 유저가 아니라 NPC도 될 수 있단 것을 잠깐 잊고 있었다.
물론 식료품점 아가씨는 이 사과주스를 그리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마시기 좋은 시원한 음료로는 좋겠지만, 인벤토리에 쌓아 두고 마실 정도의 수요는 없겠지.
그렇다고 이 음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안녕히 가세요오.’
의욕 없이 늘어지는 마법사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그렇다, 마을엔 그녀뿐만 아니라 마법사들이 잔뜩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마법사 길드! 그곳에는 이 사과주스의 수요가 폭발적일 것이다.
예컨대 수요가 있는 곳에 물건을 팔아라!
싸구려 양말과 팬티도 야근한 후 들리는 회사원들이 많은 찜질방에선 비싸게 팔린다.
그것과 같은 이치란 것!
세일즈의 기본이다.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을 자축하듯 박수를 짝하고 쳤다.
[불돌이가 당신의 박수에 깜짝 놀랍니다.]
“이런, 미안.”
내 주변을 돌면서 놀고 있던 불돌이가 박수소리에 그만 놀란 모양이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쓰다듬어 준 후, 사과주스 제조에 들어갔다.
남은 사과 55개를 전부 사과주스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도박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법사 길드에서 좋은 가격에 팔지 못할지도 모르고, 식료품점 아가씨가 사과를 더 비싸게 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손익과 기회비용을 계산하기 위해서 잘 익은 사과의 판매가격도 알아보았겠지만, 방금 생선구이로 큰돈을 번 나는, 한 번은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재료는 사과를 제외하면 약간의 목재와 공짜나 다름없는 호수의 물, 기회비용적인 측면만 감안한다면 얼마에 팔리든 적어도 손해는 아니다.
나는 자신감 있게 사과주스를 55잔 만들었다.
[요리 스킬 레벨업!]
덩달아 요리 스킬의 레벨이 올랐다.
그렇게 만든 55잔의 사과주스를 모두 인벤토리에 넣어 아이템화 시키곤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