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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플레이어-14화 (14/239)

8화 과수를 해보자(1)

나는 농장에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돌아가도 심을 씨앗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식료품점에 가서 씨앗을 사야 하는데, 문득 사탕무는 너무 많이 팔아서 이제 헐값에 산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럼 이제 다른 농작물을 사야 할 텐데, 뭘 사야할지 고민이었다.

일단 가서 골라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익숙한 메시지창이 떴다.

[수상한 쪽지가 빛을 냅니다.]

쪽지가 빛난다는 메시지다.

이번에도 퀘스트가 뜨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쪽지를 꺼내보았다.

[히든 연계 퀘스트 발동]

[퀘스트, 사과나무를 심자.

좀 더 다른 방식의 농사인 과수를 해보자.

클리어 조건 : 사과나무를 심어 키워라.

클리어 보상 : 100 업적점수]

마침 적절한 퀘스트 같았다.

다른 작물로 뭘 고를지 고민 중이었는데, 퀘스트도 깰 겸 사과나무를 심으면 될테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사과나무는 씨앗보단 묘목부터 기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게임이라서 어떨지 잘은 모르겠다.

일단은 식료품점에 가서 씨앗을 사며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리고 곧장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또 오셨네요!”

식료품점에 들어서자 식료품점 아가씨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예 내 얼굴을 기억한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 용건을 바로 말했다.

“혹시 여기 사과 씨앗도 팝니까?”

“물론이죠, 사과 심으시게요?”

“네, 하는 김에 여쭤보는 건데, 이 마을에 사과나무 묘목도 파나요?”

“과수를 하시는 분들은 계신데, 묘목을 파시는 분은 안 계실 거예요.”

“그렇군요. 사과 씨앗은 얼마죠?”

“개당 200골드에요.”

사탕무 씨앗보다 네 배 비싼 가격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사과는 얼마에 팔리는지도 물어보았다.

“10등급 사과는 300골드에 사요.”

“흠······ 사탕무 보다 50골드 손해군요. 씨앗 가격도 더 비싸고.”

사탕무는 씨앗이 50골드에 10등급의 판매 가격이 200골드였다.

하지만 사과는 씨앗이 더 비싼 주제에 판매 가격은 똑같았다.

사탕무보다 사과가 더 고급이라는 것은 없으니 꼭 비싸게 팔리라는 것은 없지만, 왜 씨앗 가격은 더 비싼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하지만 이건 보통 사과 씨앗이 아니라 심으면 사과나무가 될 수 있는 씨앗이에요.”

“네? 아무 씨앗이나 심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아마도 이방인님이 오신 곳과는 다른 모양이지만, 이곳에선 사과 10개 중 한 개 꼴로만 사과 씨앗이 있어요. 없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사과 씨앗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그렇군요. 사과 농사는 손해가 좀 크겠군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사과 씨앗을 얻기가 좀 어렵지만, 한 번 키우면 사과를 계속 수확할 수 있어요.”

“계속 수확한다고요?”

“네, 과일을 수확해도 나무는 그대로 있으니까, 과일이 또 자라면 수확이 가능하죠. 일단 나무가 다 자라면 관리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요.”

아, 그런 거로군.

현실의 과수와는 좀 다른 모양이지만, 게임에선 일종의 무한자원으로 취급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야 씨앗이 좀 더 비싸도 이해가 될 법했다.

난 지금 남아 있는 돈을 확인해보았다.

3900골드, 사과 씨앗을 19개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럼 사과 씨앗 19개 주실래요?”

“네, 여기 있어요.”

사탕무와는 달리 처음 키워보니까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해야하지만, 어쩌면 더 크게 벌 수 있을지도 몰라서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사과나무는 이윤을 남길 확률이 높았다.

사탕무는 하나를 심으면 사탕무 하나만 나왔지만, 사과나무는 상식적이라면 여러 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이라 다를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개씩만 열린다고 해도, 꾸준히 수확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볼 땐 이득이라서 감수 못할 리스크가 아니다.

무엇보다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키워야 하니까 고민할 것은 아니었다.

준비를 마친 나는 농장으로 돌아왔다.

농장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농사 스킬북을 읽으며 과수에 대한 정보가 없는지 알아보았다.

그러자 적당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과수를 할 때는 1m 정도 간격을 두고 심는 것이 좋다. 처음 성장할 때는 작은 묘목이나 씨앗에 불과하지만 다 자란 뒤에는 그만큼 뿌리도 굵어져 많은 면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비료는 그 면적만큼 뿌리면 좋다. 나무는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이 농사 스킬로 심을 경우 8시간이 되면 첫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하지만 갓 다 자란 나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열매가 적을 수 있다. 나무가 다 자란 뒤에는 물을 자주 줄 필요는 없다. 다만, 8시간이 되기 전에는 1시간마다 물을 주어야 한다. 시간이 더 지나서 완전히 자란 나무에선 보통 5개 이상의 열매가 열린다.]

과수도 현실의 과수와는 자라는 시간이 달랐다.

현실의 과수는 보통 미리 묘목으로 키워 논 것을 사서 몇 년간 키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게임이라 8시간이면 자라도록 해놓은 것이다.

대신 씨앗을 얻기 힘들다거나, 처음에는 열매 수확량이 적다거나 그런 제한이 있는 모양이다.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면서도 게임 내 환경 밸런스를 맞추려고 한 듯하다.

여하튼 과수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얻었으니 이젠 일할 시간이다.

농장에 돌아오자마자 나무를 좀 해서 비료를 만들었다.

19개의 사과나무를 심을 거니까, 가로 4m 세로 5미터로 심으면 공간이 알맞을 것이다.

비료는 19개가 필요하다.

4그루의 나무만 베고 재료를 다 모을 수 있었다.

조합 스킬로 비료 20개를 만들어서 골고루 뿌린 다음 씨앗을 1m 간격으로 심었다.

그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베면 잠깐 휴식시간이 되었다.

[만복도가 상당히 낮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만복도가 너무 낮으면 굶어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배가 고프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러고 보니 게임 상에서 8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사탕무는 미처 생각지 못해서 다 팔아버렸고, 인벤토리에 먹을만한 것은 베스와 잉어뿐이었다.

그러자 나는 문득 어릴 때, 아동 만화에서 물고기를 잡아 불에 직화로 구워먹는 것을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흔히 ‘만화 고기’나 ‘만화 생선’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한 번쯤 그렇게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은 생선은 찌개로 만들어 먹거나 회로 먹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게임이니까 그런 만화의 요리를 흉내나 내보기로 했다.

나는 의욕이 앞서서 목재를 도끼로 쪼개서 장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불은 어떻게 만들지? 라는 생각을 하면, 나는 정령술을 배운 것을 떠올렸다.

“정령술!”

이 게임은 보통 말하거나 생각하면 스킬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정령술이라고 외쳐보았다.

그러자 목공 스킬을 쓴 것처럼 선택지가 나왔다.

[하급 불의 정령 소환]

[하급 물의 정령 소환]

[하급 땅의 정령 소환]

[하급 바람의 정령 소환]

[현재 당신의 정신력 수준으로는 한 번에 하나의 정령만 소환 가능합니다.]

정령술사가 나에게 말해준대로, 불물땅바람의 4속성을 소환할 수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불의 정령이지.

나는 [하급 불의 정령 소환]을 클릭했다.

화르르륵

그러자 작은 불길이 일더니 붉은 도깨비 불 같은 것이 생겼다.

그것이 내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하급 불의 정령이 당신의 소환에 기뻐합니다.]

[하급 불의 정령이 이름을 지어주길 바랍니다.]

“이름?”

[하급 불의 정령이 당신을 보며 끄덕입니다.]

이름을 지어달라니, 내 네이밍 센스는 별로 좋지 않은데.

물론 샐러맨더나 이프리트 같이 유명한 정령이름을 갖다 붙이면 될 것도 같지만, 그건 또 너무 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친근한 한글을 쓰기로 했다.

“너는 이제 불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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