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9화 (9/239)

5화 게임을 하는 이유(1)

땅을 넓힐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이 작은 농장의 땅도 다 써먹지 못하고 있었기에, 나는 미리 사온 사탕무 씨앗을 심어 농사를 계속해보기로 했다.

사탕무 100개를 심기 위해서 밭을 더 갈기 시작했다.

사탕무를 이미 한 번 수확한 곳도 다시금 고르고, 더 넓은 면적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이 개간하는 곳도 있었다.

“저 사람 농사만 짓네, 혹시 유저가 아니라 NPC 아님?”

“몸 죽이네.”

“현실에서도 농부인가?”

구경꾼인 유저들은 밭을 가는 나를 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발표할 때 빼곤 이렇게 주목 받아본 적이 없던 것 같은데.

연예인까지는 아니더라도 BJ니 스트리머니 하는 개인방송인이 된 기분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잘나가는 사람은 연예인 수준으로 시청자들이 많다고 하니, 이 정도 관심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 그냥 계속 밭가는 일에 집중했다.

[반복된 노동으로 체격이 더욱 다부져집니다.]

[힘이 1 올랐습니다.]

열심히 밭을 갈다보니 메시지창들이 떴다.

군살이 좀 더 없어진 기분이고 근육이 더 붙은 것 같다.

현실에서도 이렇게 체격이 빨리 좋아지면 얼마나 좋으련만, 일에 치여서 예전에 틈틈이 했던 운동도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인지 게임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일상의 공허함을 떠나, 뭔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집중하면서 한 시간 정도 밭을 갈았다.

“후우.”

밭을 다 갈고나니, 그 많던 구경꾼들도 어느새 없어졌다.

다시 조용해진 가운데, 이제 다시 비료를 만들 차례다.

나는 낡은 벌목용 도끼를 들고 근처의 숲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50개의 일반 비료를 만드는데 10그루의 나무를 베어야 했다.

그러니 이번엔 두 배인 20그루의 나무를 베어야 한다.

전에 나무를 벴던 곳에 가보니,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숫자가 10그루는 아니었다.

몇 그루의 나무 밑동은 사라졌고, 거기에 새로운 나무 묘목이 자라 있었다.

나무가 고갈되지 않도록 만드는 게임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하긴, 안 그러면 나무를 벌목해 다 없애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퍽 퍼억

나는 20그루의 나무를 벌목했다.

목재 200개와 나무수액 100개, 그리고 나뭇잎더미 100개를 얻었다.

목재는 인벤토리에 그대로 놔두고, 나무수액과 나뭇잎더미는 곧바로 조합 스킬을 이용해 비료로 만들었다.

농장으로 돌아와 비료 포대를 밭에 뿌렸다.

이것도 이미 한 번 해봐서 요령이 생겼다.

포대를 거꾸로 들어서 비료를 쏟을 때, 비료가 너무 쏟기지 않도록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결과 비료가 아주 적절히, 고르게 밭에 뿌려졌다.

[섬세한 작업으로 손재주가 늘어납니다.]

[민첩이 1 올랐습니다.]

이번엔 처음으로 민첩이 올랐다.

조금씩 오르는 거긴 하지만 레벨업을 하지 않아도 스탯이 오르는 것은 꼭 게임소설의 클리셰같다.

물론 다른 유저들도 같은 행동을 하면 같은 혜택을 누리겠지만 말이다.

문득 게임에 처음 접속했을 때, 사람들이 허수아비를 열심히 치던 것이 기억났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임 소설 클리셰 중엔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노가다를 끔찍하게 싫어해서 하지 않는다는 묘사가 있던 걸로 아는데, 돈이 되거나 이득이 되는 일에는 물불 안 가리는 사람들의 심성을 고려하면 다소 그런 묘사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영 틀린 것만은 아닐까? 농사로도 돈을 벌 수 있는데, 주변에 농사짓는 유저는 나 하나인걸 보면 농사는 확실히 버려진 컨텐츠 같으니 말이다.

아마도 물을 주고 잡초를 베어야 해서 사냥을 하지 못한다는 게 큰 문제겠지.

[반복노동으로 체력이 좋아집니다.]

[체력이 1 올랐습니다.]

여하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씨앗을 심고, 물뿌리개로 물을 뿌렸다.

또 체력이 1 올랐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곤, 우후죽순처럼 자라는 잡초를 대낫으로 베었다.

혹시 쓰일지 모를 풀을 수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상한 쪽지가 빛을 냅니다.]

“응?”

그때, 히든 퀘스트를 받았을 때와 같은 메시지가 떴다.

나는 또 다시 인벤토리에서 수상한 쪽지를 꺼냈다.

[히든 연계 퀘스트 발동]

[퀘스트, 울타리를 치자.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치자.

클리어 조건 : 농장을 둘러싸는 울타리를 쳐라.

클리어 보상 : 100 업적점수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

이번에도 히든 퀘스트가 발생했다.

그것도 히든 ‘연계’ 퀘스트다.

이전에 했던 퀘스트와 연계되어서 발생한 모양이다.

우선 퀘스트를 수락하고, 울타리를 만들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이 목공 스킬로 사다리를 만들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 목공 스킬을 이용하면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목공스킬을 사용했다.

[명령을 선택하십시오.]

[제작]

[수리]

이번에도 [제작]을 선택하고, 제작 가능한 목록을 살펴보았다.

이것저것들이 있었는데, 몇 번 넘기다보니 ‘울타리’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선택해보았다.

사다리를 만들 때처럼 눈앞에 파란색 울타리 모형이 생겼다.

자세히 살펴보니 만들면 다른 울타리와 연결할 수 있는 구조였다.

제법 커서 힘 좀 써야겠지만 말이다.

나는 망치를 꺼내 파란색 모형을 두들겼다.

뚝딱 뚝딱

망치질을 열 번하니 제작 진척도가 100%가 되고 울타리가 하나 만들어졌다.

카우보이 목장에서 쓸법한 커다란 울타리라서 무게가 상당했다.

하지만 나는 힘껏 들어 그것을 농장 한 편에 세웠다.

그러면서 대략적인 울타리 구조를 계산해야 했다.

대략 20개의 울타리를 만들면 될 것처럼 보였다.

울타리에는 목재가 울타리 하나 당 4개가 들었다.

그러니까 80개의 목재가 필요하지만 좀 전의 벌목으로 200개나 모아놔서 별 문제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망치질을 하며 울타리를 만들어댔다.

울타리를 만들고 옮겨서 연결하는 것을 반복하자, 힘이 상당히 들었다.

그러자 또 어김없이 스탯 상승 메시지가 떴다.

[고된 노동으로 힘과 체력이 상승합니다.]

[힘이 1 올랐습니다.]

[체력이 1 올랐습니다.]

도중에 울타리 모형 중 ‘문’이 달린 울타리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울타리를 다 만들어놓고선 정작 들어갈 곳이 없으면 큰일이니 말이다.

만들고, 세우다가 지치면 쉬엄쉬엄 밭에 물도 주고 자라난 잡초도 베었다.

몸에 열이 찬 것을 느끼곤 잠깐 수영도 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또 구경꾼들이 생겼다.

“어? 이제 여기 울타리 생겼네.”

“저 사람 봐바. 또 수영 중이다.”

“그럼 또 팬티맨이네 크크크.”

“영상 찍어야지. ‘팬티맨 이번엔 울타리 만들다’로.”

“이거 혹시 방송인거 아님? 인방이나 아니면 프로그램 같은 거?”

“헐 그럼 나 TV나온 거임?”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 유저들이 그런 수다를 떨었다.

나는 헤엄쳐서 뭍으로 나왔다.

그들의 말대로 수영을 하기 위해 또 팬티만 입은 상태였다.

날 구경하는 유저들은 손 모양을 카메라처럼 만들고 있었다.

카메라 기능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

찍힌다고 기분 나쁘거나 그런 것은 없는데, 연예인도 아닌 날 찍어서 뭐에 쓰려는 걸까?

그리고 카메라 기능을 쓰는 사람들 중엔 여러 번 봐서 낯익은 사람도 있었다.

아까 ‘팬티맨 이번엔 울타리 만들다.’라고 말한 사람이었는데, 아무래도 날 관찰하는 영상을 올리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울타리를 만들려고 울타리 쪽으로 다가가면, 그들에게 꽤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저기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젊은 남자인 누군가가 나에게 인사를 했기에 울타리를 이으면서도 나는 인사를 받았다.

그는 일하는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나는 울타리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그 질문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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