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5화 (5/239)

3화 첫 수확(2)

묘한 소리와 함께 인벤토리에 있던 나무수액과 나뭇잎더미가 사라지고 일반 비료가 50포대 생겼다.

포대라는 단위가 적힌 것이 인상적이어서 한 포대를 꺼내보았다.

그러자 반투명한 포대에 담긴 검은 비료가 손에 쥐어졌다.

딱 씨앗 한 개 분에 필요한 만큼의 비료가 들어 있었다.

작은 아령 수준의 무게감이었다.

나는 그것을 개간한 땅에 뿌려보았다.

진한 비료냄새가 났지만 심한 악취는 아니었다.

비료를 골고루 뿌리자 그것을 담고 있던 반투명한 포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게임의 편의를 위해 임시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주인님, 아이템을 여러 개의 묶음으로 꺼내면 더 큰 홀로그램 포대에 담겨져 나옵니다.]

“어? 그래? 근데 너, 도와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트리거에 대한 힌트만 드리지 못할 뿐입니다. 주인님을 보좌하는 것이 본래의 제 임무입니다]

“그렇구나.”

골램이 도와주듯 말했다.

잠깐 그와 대화를 나눈 나는 그의 말대로 해보았다.

쿵!

“어이쿠.”

다섯 포대를 한 묶음으로 꺼내니, 작은 포대가 다섯 포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큰 포대가 한 포대 나왔다.

나는 미처 그것을 잡지 못하고 놓칠 뻔 했었다.

무겁긴 하지만 이러면 좀 더 뿌리기 쉬워질 것도 같았다.

왜냐하면 자루를 거꾸로 해서 쏟는 식으로 비료를 뿌리면 되기 때문이다.

역시 농사일은 힘보단 기술이다.

나는 벌써 프로 농사꾼이라도 된 것처럼, 휘파람을 불며 비료를 밭에 뿌려나갔다.

다 뿌리고 나니 밭은 검은 색깔의 비료로 검게 변해 있었다.

척 봐도 뭔가 심으면 잘 자랄 것 같은 모습.

뭔가 기대가 셈 솟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 비료 뿌리는 모양이네.”

“농사 좀 지어봤나? 능숙한데?”

구경꾼들이 또 쑥덕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 끄고 다음 일을 하기로 했다.

이제 씨를 뿌려야 하는데, 뿌린 다기보단 조심스럽게 심어야 할 것 같았다.

애초에 밭도 일정한 간격으로 심기 위해서 계산하며 갈았으니 말이다.

나는 사탕무 씨앗 50개를 꺼냈다.

인벤토리에 함께 담았던 자루에 담겨져 나왔다.

그리곤 손을 더럽히며 30센티 간격으로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농사만 짓잖아.”

“사냥은 안하는 거야?”

“난 사냥하러 가야겠다.”

씨를 일정한 간격으로 심는 일은 의외로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구경꾼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일이라고 보면서 수다 떨다가도, 지겨워져서 떠난 모양이다.

조용해지니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본래 계획했던 대로 씨앗을 정확한 간격으로 심을 수 있었다.

“후우······.”

계속 쪼그려서 씨앗을 심었더니 다시 열이 올랐다.

올라오는 더위에 물로 뛰어들고 싶었다.

나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바로 호수로 뛰어갔다.

풍덩!

시원한 호수의 물이 나를 식혀주었다.

힘껏 땀 흘리고 수영으로 식히는 기분은 끝내주게 좋았다.

나는 만족할 만큼 수영을 한 뒤, 다시 뭍으로 나왔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밭에 물주기다.

스킬북에 그것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을 것이다.

나는 스킬북을 펼쳐 읽어보았다.

[······게임의 편의상 플레이어가 심은 작물은 모두 게임시간으로 8시간 만에 완전히 자랍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1시간마다 물을 꾸준히 주어야 합니다. 만약 물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작물의 등급이 낮아지거나 작물이 죽어버립니다. 또한 작물이 자라는 동안 잡초가 생길 수 있으니 수확용 대낫으로 잘라내고, 몬스터나 동물로부터 작물을 지켜야 합니다······]

읽다보니 물 뿌리기에 관한 정보 외에도 게임에서 작물이 자라는 속도나 관리에 관한 정보도 알게 되었다.

스킬북에는 여러모로 농사에 관한 정보가 잘 적혀 있는 것 같으니 자주 참고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농가에서 얻었던 낡은 목재 물뿌리개에 물을 채웠다.

졸졸졸졸

물 뿌리는 소리가 났다.

게임에선 어느 정도나 물을 줘야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물을 어느 정도 뿌리니, 자동으로 일정 범위까지 물이 고르게 퍼져서 땅이 적셔졌다.

그렇게 되는 정도까지만 물을 주면 된다는 의미 같았다.

대략 다섯 번 물을 주니 물뿌리개의 물이 동이 났다.

편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물뿌리개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호숫가 옆에 밭을 만들지 않았다면 매우 불편했을 것 같았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긴 했지만 10번 왕복하면서 물을 전부 뿌릴 수 있었다.

“골램아,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냐?”

[맞습니다, 주인님. 하지만 계속 농작물을 돌봐야 합니다.]

골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밭에 변화가 있었다.

명백히 잡초로 보이는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던 것이다.

나는 스킬북에 잡초가 자라니까 관리를 하라는 말이 적혀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수확용 대낫으로 자르라는 설명도 기억했다.

인벤토리에서 수확용 대낫을 꺼내 그것을 휘둘러 잡초를 베어보았다.

잡초는 나무를 쓰러트렸을 때처럼 아이템이 되었다.

[풀 1포기]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잡템’ 같았지만 혹시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버리진 않고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다.

잡초는 우후죽순처럼 계속 생겼고, 나는 그것을 베면서 풀을 모았다.

한 시간 쯤 시간이 지나자 땅에 물기가 말라버려서 또 다시 물을 주는 일을 반복했다.

일을 하다가 심심해지거나 더워지면 다시 수영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8시간이 흘렀다.

물을 줄때마다 쑥쑥 자랐던 사탕무가 완전히 자란 것 같았다.

다가가보니 아이템으로 체크가 되고 있었다.

[10등급 사탕무]

그런 이름으로 뜨는 사탕무를 파내어 들어보니, 알이 굵은 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냥 무도 아니고 사탕무라고 해서, 나는 그것을 한 번 베어 먹어보았다.

“으음, 꿀맛!”

농사의 결실은 매우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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