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4화 (4/239)

3화 첫 수확(1)

대형게임회사 <이터널>은 최근 야심차게 만든 신작 가상현실 게임인 <마일스톤>을 출시했다.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서 만들었고 대박을 기대하고 런칭했기 때문에 모니터링 팀들을 따로 만들어서 24시간 게임 현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중 ‘알파’ 모니터링 팀은 다른 가상현실 게임에서 넘어온 프로 유저들을 감시하는 팀이었다.

베타테스터이기도 했던 프로 유저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치고 올라서 히든 피스들을 선점하고 랭커가 되었다.

그들은 게임 속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기에 운영자로써 주시할 필요성이 다분히 있었다.

“팀장님, 헥토르가 두 번째 히든 피스를 획득했습니다.”

“음, 역시 예상한대로군. 꼭꼭 숨겨놨는데, 베타 테스트때 얻은 힌트로 찾아낸 모양이지?”

“예, 부정행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퀘스트와 힌트를 통해서 얻었습니다.”

“좋아, 다른 대상들도 놓치지 말고 계속 주시해.”

김태훈 팀장은 보고를 하는 여사원에게 칼같이 지시를 내렸다.

알파 모니터링 팀이 해야 할 일은 그런 랭커들이 혹시라도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지 감시 하는 것도 있었다.

예컨대 개발진이나 운영진으로부터 정보를 사서 게임을 쉽게 공략해버리는 것 따위 말이다.

경쟁 게임업체에서 그런 스캔들이 흔하게 터졌기에 임원진들은 민감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또한 부정행위가 아니더라도 프로 유저들과 그들의 길드가 게임을 ‘망칠’ 정도로 심각한 일을 하고 있으면 재빨리 보고하거나 제재를 가할 목적으로 감시하는 것이었다.

오픈한지 2주, 벌써 레벨 100을 넘긴 괴물 유저들이 많았지만 이렇다 할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늘어나는 랭커들 때문에 모니터링 팀의 야근은 이어졌지만 부장의 마음은 가벼웠다.

이대로 순조롭게 이어지면 자신은 자연스럽게 승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 저기 팀장님.”

“무슨 일이야?”

“새 히든 피스 발견자가 나타났는데요.”

“뭐? 1차 히든 피스는 전부 발견 됐을 텐데?

“그게······ 인공지능이 발견자라고 감지해서 영상이 떴어요.”

여사원은 자신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눈치로 말했다.

김 팀장의 얼굴이 조금 구겨졌다.

예상 밖의 일이다.

분명히 그들은 1차 히든 피스 발견자를 모두 찾아내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히든 피스 발견자가 나타났다? 그 말은 나쁜 가능성들만 말하고 있었다.

게임을 통제하는 인공지능에 문제가 생겼거나, 모니터링 팀이 감시 해야 할 히든 피스를 누락했거나, 아니면 개발 과정에 있어서 실수나 부정이 있었단 의미였다.

어느 것이어도 운영진 입장에선, 혹은 김 팀장 입장에선 난처한 일이었다.

“영상 띄워봐.”

“네.”

김 팀장의 명령에 여사원이 김 팀장이 보고 있는 스크린으로 영상을 띄웠다.

그리고 그 영상은 다소 황당한 것이었다.

“이게 뭐야? 제대로 띄운 거 맞아?”

“네······ 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옷 벗고 밭가는 남자가 무슨 히든 피스를 발견했단 말이야!”

스크린에 띄워진 것은 약간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속옷만 입고 밭을 가는 영상뿐이었다.

바로 공진이 수영을 끝낸 뒤 열심히 밭 갈고 있던 모습인 것이다.

김 팀장은 여사원이 실수로 다른 영상을 띄운 것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여사원은 자기 PC의 모니터를 보이면서 직접 보고 확인하라는 제스쳐를 보였다.

김 팀장이 확인하니, 분명히 인공지능이 찾아낸 히든 피스 발견자였다.

“······진짜네.”

“그렇죠? 근데 저희가 농사 관련 스킬로 히든 피스를 넣었던가요?”

여사원의 말에 김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마일스톤>에 농사 스킬이 있긴 하지만, 그 스킬은 베타 테스터 중에 주목받지도 못했고, 소수의 유저들이 직접 체험해본 결과 ‘실패한 컨텐츠’로 판명된 것이었다.

현실의 농사와는 달리 8시간 만에 작물이 모두 자라도록 했지만, 그렇게 현실성을 배제한 편의를 해주어도 농사 스킬은 각광을 받기 힘들었다.

이유는 레벨 올리기 바쁘고, 서로 경쟁해야하는 플레이어들이 가상현실 시간이라도 8시간 동안이나 농작물에 물만 주고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더 줄여보자는 의견이 오갔지만 거기서 더 줄이면 게임 내 밸런스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서 그냥 방치하게 되었다.

자유도를 높인 게임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높은 자유도의 게임은 버려지는 컨텐츠가 생긴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일만 된 것이었다.

여하튼 그런 버려진 컨텐츠에 히든 피스가 있을 턱이 없었다.

“······.”

하지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을 버릴 수 없는 김 팀장이었다.

문득 잊고 있었던 게임 개발 중의 나쁜 기억도 떠올랐고 말이다.

“어떡할까요? 이 사람도 감시할까요?”

“······일단 감시대상에 올려두기만 해. 무슨 일인지 개발팀에 알아볼 테니.”

“네.”

김 팀장은 일단 그런 조치만 내렸다.

예상 밖의 일이 생겼지만, 그 원인은 조심스럽게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모니터링 팀의 실책일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에 이상이 생겼거나 개발 중에 문제가 있던 거라면 개발팀의 잘못이다.

잘못하면 사내정치로 발전할 수 있는 일이라, 자초지종을 잘 알아둬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 몸 좋네요. 조금 군살이 있지만요.”

“······.”

영상을 감시하던 여사원이 쓸 때 없는 감상을 늘어놓았지만, 김 팀장은 다그치지 않았다.

그녀도 며칠 째 야근을 하면서 심심할 법도 했으니 말이다.

* * *

좀 전에 조합 스킬을 배울 때였다.

조합 스킬북을 넘겨보았을 때, 가장 첫 장에 적혀 있던 것이 바로 ‘비료 조합법’이었다.

게임의 방식대로 비료를 만드는 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땐 조합 스킬을 배울지 묻는 메시지창이 떠서 금방 책을 덮었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스킬북을 꺼내 읽어보았다.

[일반 비료 조합법

재료 : 나무수액1, 나뭇잎더미1

필요 스킬 : 조합 스킬, 농사Lv1 스킬

스킬 사용법 : 인벤토리에 재료를 모아 클릭하여 조합 스킬을 사용한다.]

재료와 필요스킬, 스킬의 사용법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나무수액과 나뭇잎더미를 획득하는 방법도 추가로 적혀 있었다.

나무를 벌목하면 추가로 나오는 재료라는 것이다.

여하튼 도끼도 있으니 벌목을 하러 갈 필요가 있었다.

근처에 울창한 숲이 있으니 나무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였다.

나는 괭이를 인벤토리에 넣고 도끼를 꺼내 어깨에 지고는 숲을 향해 다가갔다.

숲의 나무 앞에선 나는 도끼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팍! 파악!

그리곤 나무 하나에 도끼질을 시작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나무의 결이 갈라졌다.

정확히 10번 도끼질을 하니까 나무가 흔들거리며 넘어가버렸다.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진 나무가 레고 블록처럼 일정하게 조각났다.

사이사이에 나뭇잎이 모인 것과 땅에서 약간 떠다니는 노란색 액체도 있었다.

그것들 모두 아이템으로 판정되는 것 같았다.

다가가서 그것들을 획득해보았다.

[목재 10개]

[나무수액 5개]

[나뭇잎더미 5개]

목재는 아직 쓸 곳을 잘 모르겠지만 비료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수액과 나뭇잎더미가 5개씩 나왔다.

사탕무 씨앗이 50개이니, 비료를 50개 만들 수 있을 만큼만 모아야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나무를 10그루 벌목하면 될 것이다.

나무수액과 나뭇잎 더미가 항상 5개씩 나온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렇게 정한 나는 다시 열심히 나무를 했다.

팍 팍 팍······.

[힘이 1 올랐습니다.]

[체격이 다소 좋아졌습니다]

10그루째가 되니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웃통을 벗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초에 생각한대로 나무를 10그루 벌목하니 재료가 모두 모였다.

나는 다시 농가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땀을 씻기 전에 먼저 비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어디보자, 클릭해서 조합하면 된다고 했지?”

스킬북에 적혔던 설명대로 인벤토리창을 열고, 그 창을 터치패드처럼 클릭해보았다.

그러자 ‘조합하기’ 메뉴가 떴고, 나무수액과 나뭇잎더미를 선택했다.

[몇 개 만드시겠습니까?]

수량을 정하라는 메시지가 떴고, 나는 그것에 50개라고 입력했다.

띠리리리링

[일반 비료 50포대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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