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플레이어-3화 (3/239)

2화 히든 피스

“유산이라······.”

어쩐지 죽은 사람의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골램은 나의 그런 감상과는 상관없이 무기질적인 말을 계속 이어갔다.

[주인님처럼 일상에서 눈을 돌리실 줄 아시는 분께 선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일상에서 눈을 돌린 다라······ 왜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지?”

[평범한 이방인이셨다면 이 버려진 농가에 눈길을 주지 않으셨을 겁니다. 또한 농사 스킬과 조합 스킬에도 관심이 없으셨을 겁니다.]

“그런가?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하지?”

[트리거를 작동시키셔야 합니다.]

“트리거? 어떤 것이 작동되도록 하란 말이구나. 그런데 그 트리거가 되는 것이 뭔데?”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창조주님께서 내리신 마지막 수수께끼입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선물을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복잡하군, 그 선물이란 것이 기대되긴 하지만 트리거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추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골램핵과 히든 피스라고 적힌 수상한 쪽지는 이 허름한 농가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이 허름한 농가에는 낡은 농기구들과 사탕무 씨앗, 그리고 농사 스킬과 조합 스킬이 있었다.

만약 그것들이 힌트거나 트리거에 관련된 것이라면······.

“농사라도 지으란 말이야?”

[저에게 물어보셔도 정답을 말씀 해드릴 순 없습니다.]

“그래? 뭐, 일단 씨앗을 잔뜩 얻었으니까, 농사나 지어봐야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괭이를 꺼내 들었다.

어릴 적 농촌에서 자라서 밭을 매던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현대시대에 괭이로 밭을 갈진 않았지만, 대충 얼마 간격으로 씨앗을 심어야 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아까 주운 사탕무 씨앗이 50개니까, 이 씨앗들을 심기 위한 대략적인 밭 크기가 예상되었다.

나는 괭이를 힘껏 쥐어 땅을 갈기 시작했다.

깊게, 고르게, 넓게, 흙에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땅을 고르는 작업.

가상현실이지만 금방 땀이 나게 되었다.

야근과 소모적인 휴식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노동이었다.

금방 더워지고 땀이 흘러서 웃통을 벗어버렸다.

[상의를 탈의 하셨습니다.]

[상체에 방어구가 없는 상태입니다.]

자잘한 메시지가 떴지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무시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게임 속에서 내 맨몸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입사 전에 틈틈이 했던 헬스 덕분에 근육이 붙어 있는 몸.

하지만 4년간의 회사생활로 조금 군살이 붙어버렸다.

아직 뱃살은 나오지 않았지만, 나도 조만간 부장님처럼 배가 나올까봐 무서울 때가 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몸을 너무 안 쓰니, 점점 굳어지는 몸과 정신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군대 작업과 형태는 다르지 않는 이 밭가는 노동이 그리 싫지 않았다.

오히려 농사를 할 거라는 목적의식 때문인지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하아, 하아······.”

그렇게 숨이 찰 정도로 밭을 갈아봤다.

아직 필요한 면적의 반도 갈지 못 했다.

대충 갈지 않고 제대로 갈고 있기 때문에 속도가 잘 붙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잠시 몸을 식혀보려고 물가로 다가갔다.

그리곤 세수를 하고 물을 마셨다.

시원한 호수의 물 덕분에 갈증이 싹 가셨다.

현실이었다면 수질 때문에 마시지 못 했겠지만, 게임 속이니 물은 청정수처럼 깨끗했다.

내친 김에 나는 수영도 한 판 해보기로 하고 바지를 벗었다.

[하의를 탈의 하셨습니다.]

[신발을 벗으셨습니다.]

[하체에 방어구가 없습니다.]

[속옷은 탈의하실 수 없습니다.]

옷을 벗자 또 자잘한 시스템 메시지가 떴지만, 중요한 것은 없었다.

나는 냅다 물속으로 점프했다.

풍덩!

시원한 소리, 시원한 물의 감촉. 통쾌함이 온 몸을 감쌌다.

수영은 능숙하게 할 줄 알기에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다가, 적당히 숨이 차오를 때 수면으로 올라왔다.

“푸하!”

나는 배영 하듯 유유히 물에 떠다녔다.

이런 안락감과 여유로움은 입사한 후 정말로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

한동안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다가 다시 뭍으로 나왔다.

몸을 닦을 수건이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태양이 말려줄 것이니 말이다.

완연한 봄의 날씨라 춥지도 않고 적당히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속옷만 입은 상태란 것이 현실이었다면 민망했겠지만, 뭐 어떤가? 여긴 게임 속이다.

나는 잠시 땅에 두었던 괭이를 다시 들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저기 봐, 저 사람 뭐하는 거야?”

“팬티맨이다! 근데 밭 갈고 있네?”

“우리 형이 팬티만 입은 사람은 엄청 고인물이라는데.”

“헐, 이 겜 오픈한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고인물 있는 거임?”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던 유저로 생각되는 네 명의 청년들이 날 구경하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전부 나와 같은 초보유저인 모양이었다.

“이 게임, 농사도 지을 수 있었어?”

“지을 수 있음. 근데 개고생 해야 한다고 알고 있음. 그 시간에 사냥하는 게 개이득임.”

“근데 저 사람은 왜 저럼?”

“모름.”

“그래도 재밌으니까 영상 찍어둬야지.”

수다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나는 밭 가는데 열중했다.

한동안 밭만 가니까, 영상을 찍던 그들도 곧 지루해졌는지 어딘가로 가고 없었다.

그렇게 밭을 거의 다 갈았을 때였다.

[힘이 1 올랐습니다.]

[체력이 1 올랐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하지만 이번엔 사소한 것 같지는 않았다.

힘? 체력? 아마도 능력치, 그러니까 스테이터스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건 게임이니까 그런 능력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치를 보는 방법을 모르는데······.

그러자 문득 인벤토리를 여는 법과 똑같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인벤토리라고 말하거나 생각을 하면 되니까, 같은 방식이라면······

레벨 : 1

힘 : 11

민첩 : 10

체력 : 11

지력 : 10

정신력 : 10

······스탯이 적힌 상태창이 뜰 것이었다.

잡다한 능력치 정보가 적힌 상태창이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레벨과 힘, 민첩, 체력, 지력, 정신력이었다.

레벨은 당연히 1이었고, 능력치는 10이 기본인지 민첩과 지력, 정신력은 10이었다.

방금 1만큼 올랐다고 메시지가 뜬 힘과 체력은 11이었고 말이다.

게임의 초심자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레벨을 올려서 얻는 보너스 포인트 같은 것이 없어도 노동을 하면 능력치가 오르는 방식인 것 같다.

어쨌든 필요한 만큼의 밭을 다 갈았다.

그렇다면 다음은 씨앗을 뿌려야 하나······

아니, 본래 농사라면 그 전에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비료다.

비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비료를 만들 방법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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