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219화 (외전 완결) (218/218)

외전 동료 (3)

차은월과의 수련은 빠르게 진행됐다.

어느 정도냐면, 첫 대면을 끝마친 직후부터 바로 수련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단지 시작이 빨랐을 뿐으로, 진척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때문에 배우면서도 조마조마했지만, 의외로 차은월은 차분하게 가르쳐 줬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이유를 묻자 이러한 대답이 돌아왔다.

“……20년간 캐리어로 살아왔다면서? 바로 체득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거니까.”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냥 차가운 사람은 아니구나.’

안일한은 그렇게 느끼는 한편, 그 이후로 성장 속도에 관해선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흘렀을 때.

안일한은 현천강기와 혼원공, 두 마나 심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다소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확실히 깨우쳤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이에게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는 차은월의 지도 방침 때문이었다.

“남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비로소 온전히 깨우쳤다고 할 수 있으니까.”

단순히 습득에서 그치지 않고 이론을 강조하는 것이다.

의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애초에 차은월 정도 되는 초인의 가르침이다.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분수에 맞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 식으로 납득하자 도리어 차은월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그 여자가 아직 설명 안 해 줬어?”

“무슨 설명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니다, 잊어 줘. 때가 되면 어련히 할 테니까.”

영문 모를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젓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오윤진과 나눴던 대화가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안일한 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요.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는 이유.

차은월이 언급한 설명이란, 이를 뜻하는 것이리라.

안일한은 이 점을 알면서도 별말 없이 넘어갔다.

그녀가 말했듯, 때가 되면 밝힐 거라 믿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게 납득하는 사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신체 강화는 익혔지?”

슬슬 수련에 관한 화제로 넘어갔다.

“네, 덕분에.”

“그럼 호신(護身)부터 시작하면 되겠네. 전혀 어렵지 않으니까…….”

“그건 은월 씨가 특별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부정하긴 힘든 이야기네.”

차은월은 쓴웃음을 지을지언정, 부정하진 않았다.

이젠 그녀도 안일한의 담백한 성격에 어느 정도 적응한 까닭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보다, 당신이 먼저 찾아온 거잖아.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정확히는 오윤진의 소개로 시작된 관계였다.

하지만 이를 일일이 지적할 만큼 눈치 없진 않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순간.

차은월이 별안간 훅 하고 다가왔다.

그녀의 숨결과 체향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귓가에 설명이 흘러들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여러 번 설명해 줄 여유는 없어. 그러니 잘 들어.”

그렇게 또다시 수련이 시작됐다.

안일한의 진척은 한결같았다.

차은월의 뛰어난 가르침 덕분에 꾸준히 나아가긴 했지만, 느린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성장 속도보다 차은월과 가까워지는 속도가 더 빠를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그녀와는 이따금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아카데미에 지원했다고 했었지?”

“떨어졌지만.”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몰라. 이런 말을 하면 괘씸하게 들리려나?”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변함없이 무심한 대답에 차은월은 쿡 하고 웃었다.

가만히 바라봐주자 그녀는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함께했으면 아카데미의 생활이 좀 더 나았으려나?”

“과연 내가 당신 같은 천재와 어울릴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군.”

“천재? 후후, 당신의 눈에는 영락없이 그렇게만 비치겠구나.”

돌연 그녀의 표정에 처연한 기색이 스쳤다.

반응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아카데미의 생활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만히 어깨를 토닥여 주자 차은월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는 대신,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며 중얼거렸다.

“……마나 수련은 머지않아 끝날 거야.”

“그런가?”

“응. 다시 연후 님이 봐주시겠지. 아직 네가 갖춰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갖춰야 할 것들이라…….”

이쯤 되니 모를 수가 없었다.

여명의 목적, 오윤진이 그를 섭외한 이유.

그것이 곧 안일한으로 하여금 모종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음에도 그는 드러내지 않았다.

‘무엇이 됐든, 낙일에 되갚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는 갈수록 강해졌으며, 또한 여명에 녹아들었다.

모든 건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순조로웠다.

하지만 외부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세상은 점점 악화되어 갔고, 재앙은 그 빈도수가 나날이 증가했다.

멸망이 착실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은월과의 수련이 끝났을 무렵.

여명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두웠다.

오윤진은 늘상 심각한 표정으로 바쁘게 움직였고, 연후 또한 각종 무공 전수에 있어 필사적이었다.

“본래라면 현시점에 이 무공을 전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구나.”

“경청하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이라…….”

연후는 아련한 기색으로 중얼거릴 뿐.

더는 예전처럼 까칠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쁜 울림은 아니구나, 제자야.”

진심으로 안일한을 받아들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준엄한 어조로 한 가지를 강조했다.

“그럼 스승으로서 네게 한 가지 약조를 받아야겠다.”

“무엇입니까?”

“네가 최소한 A급에 도달하기 전까진 절대 이 무공을 사용해선 안 된다.”

“……!”

A급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로 사용해선 안 될 무공.

그 말은 곧 평생 쓰지 말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적어도 안일한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앞으로 평생 수련해도 A급에 도달할 순 없을 테니.’

그건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경지였으니까.

애초에 이는 재능의 영역이었다.

새삼스럽게 재능, 자질의 부재가 뼈아팠다.

이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연후에게 되물었다.

“그럼 언제 펼칠 수 있는 겁니까?”

“훗날, 때는 반드시 찾아올 거다. 그러니 약속하거라.”

“……알겠습니다.”

안일한은 얌전히 대답하는 한편,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무공의 명칭을 알려주십시오.”

“이 무공은 무극삼권(武極三拳)이라 한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는 시간보다, 혼자서 수련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낙일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오윤진의 말마따나 세계의 이면에서 암약하던 낙일이 본격적으로 어금니를 드러낸 까닭이었다.

그 증거로써 신분을 숨긴 채로 활동하던 이들이 일제히 제 가면을 벗어 던졌다.

“빙화(氷花) 윤설하, 섬전(閃電) 백유진, 묵권(墨拳)의 심인욱, 그리고…….”

“……설마 자네의 동생도 포함되어 있는가.”

“…….”

연후의 물음에 오윤진은 침묵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대답이 됐다.

그 정도로 오윤진의 표정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비단 그녀뿐만 아니었다.

“그 녀석들은…….”

차은월의 표정 또한 결코 좋지 않았다.

오윤진만큼은 아니어도, 그녀 또한 네 사람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무겁기 짝이 없는 침묵 속, 연후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일은 내가 맡겠네. 은월 양, 도와줄 수 있겠나?”

“……그렇게 할게요.”

연후는 오윤진에게 통보하듯, 그리 말하고는 차은월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을 침묵하던 오윤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안일한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잔뜩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 있어. 그리고 이유도 설명해 줄게.”

- 다음 화에 계속 -

외전 최후의 계획

‘……드디어.’

이유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긍정적인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품어 왔던 의문이라 그런지,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사이, 오윤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만나 줘야 할 사람들이 있어.”

만나야 할 사람들.

뉘앙스로 보아 연후나 차은월은 아닌 듯했다.

살짝 흥미가 동하는 가운데, 오윤진이 나직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일인 만큼,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설명해 줄게.”

여전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안일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오윤진은 한차례 표정을 가다듬고는 그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바로 가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변함없이 준비성이 철저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안일한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오윤진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일남일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파리한 안색의 노인과 아름답지만 무표정한 여성.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다만 둘 다 표정에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선 비슷했다.

‘이들도 무언가 사정이 있는 건가?’

지금껏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은 차은월이 유일했다.

하지만 구태여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저마다 사정이 있으며, 나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눈앞의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각을 떠올릴 무렵.

“그럼 소개할게.”

오윤진이 나섰다.

그녀는 파리한 안색의 노인을 시작으로 두 사람을 소개해 줬다.

윤진호 박사와 연소소 당주.

무겁기 짝이 없는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마칠 무렵.

그녀가 진지한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최종 계획의 준비를 시작하기 위함이에요.”

최종 계획의 준비.

범상치 않은 내용에 안일한의 표정도 덩달아 굳었다.

무어라 질문하려는 찰나.

“그 전에 먼저, 일한 씨?”

오윤진이 앞서 말을 걸어왔다.

“당신이야말로 사실 우리가 가진 최종 계획의 알파이자 오메가야. 그러니 전부 설명할게. 당신을 원했던 이유와 우리의 목적까지.”

“……알겠습니다.”

각오를 다진 채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오윤진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의 설명은 첫마디부터 충격적이었다.

“당신이 회귀해 줬으면 해.”

“그게 무슨…….”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 낙일을 막아 주길 바라.”

“……!”

“그게 바로 우리가 당신을 원했던 이유야.”

안일한은 말문이 턱 막히는 감각 속에 침묵했다.

회귀(回歸)라니,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가라니.

제아무리 시대가 이렇다지만, 그런 이적과도 같은 현상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가운데.

오윤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사실 낙일을 저지하는 건 현시점에서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아니, 이미 대세는 완전히 기울었지.”

“……그러니 과거로 회귀하여 저들의 싹을 처단하라는 겁니까?”

“맞아.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 지금껏 쌓아 왔던 지식을 토대로 강해져서, 일찍이 낙일을 제거하는 것. 그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해답이야.”

암담함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단호하게 맺는 오윤진.

납득과는 별개로 지금껏 남아 있던 모든 의문이 한꺼번에 해소됐다.

‘……그래서 내가 초인으로 거듭날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했던 건가.’

여명의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했던 것도.

연후와 차은월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초인들이 지도에 나선 것도.

전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회귀 이후를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여태 이론을 강조하고, 수준에 맞지 않은 무공을 전수한 것도 전부…….’

모든 의문이 하나의 해답으로 이어졌다.

충격에 몸서리치는 와중에도 배신감은 들지 않았다.

지금이 아닌, 회귀 이후일지언정 복수의 주체가 그가 된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여전히 ‘회귀’가 가능할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의문을 입에 담으려는 찰나.

“그 부분은 당신이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들의 몫이니.”

여태 침묵하던 윤진호 박사가 입을 열었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이다.

태도는 그렇다 쳐도,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오윤진이 천천히 설명을 덧붙였다.

“두 분의 능력이 회귀를 가능케 만들어 줄 거야.”

“……대체 어떻게.”

“두 분도 너와 마찬가지로 미구현 특성의 소유자니까.”

“……!”

미구현 특성.

그 한마디로 불가해의 영역에 머물렀던 회귀도 설명이 됐다.

거기에 오윤진이 추가로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당신의 의식을 가공하여 과거로 전송하는 식으로 진행될 거야. 예상대로라면, 과거의 당신의 몸에 두 개의 의식이 공존하는 형태가 될 테지.”

“……그럴 수가.”

“거기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겪어 보지 못했던 경험을 더해서 전송할 예정이야. 과거의 당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즉, 의식의 형태로 회귀하여 과거의 그가 낙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

이거야말로 오윤진이 말한 최종 계획의 요체였다.

대략적인 내용의 설명을 끝마친 건지, 그녀는 가만히 호흡을 골랐다.

그러고는 한동안 안일한의 눈치를 봤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동의조차 없이 일을 진행시킨 셈이니.’

실제로 그녀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무리한 부탁. 아니지, 말도 안 되는 부탁인 건 알고 있어.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어째서 저죠?”

“당신만이 가능한 일이니까. 사실 당신이 가진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성사되는 계획이기도 하고.”

앞서간 자의 그림자.

오윤진이 덧붙이기를, 윤진호 박사와 연소소 당주만의 능력으론 회귀를 실현시키기에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연구 결과, 회귀란 세 명의 서로 다른 미구현 특성이 어우러져 발생하는 하나의 기적이라는 것이다.

‘회귀라니…….’

안일한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원인은 배신감도, 분노도 아니었다.

다만 이런 중차대한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그것만이 유일한 고민이었다.

이를 눈치챈 걸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 지금껏 내가 지켜본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오윤진은 각오가 서린 눈빛으로 단언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결심이 섰다.

“하겠습니다.”

“……!”

“제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말씀해 주시죠.”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

이에 오윤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최종 계획, 여명(黎明).

안일한의 의식을 과거로 회귀시키는 것.

내막을 전부 전해듣고 난 이후.

여명은 줄곧 최종 계획의 준비에 매달렸다.

-아카데미 입학, 그게 모든 계획의 시작점이 될 거야.

이번 생에 이루지 못했던 초인 아카데미 입학.

이를 위한 방법부터.

-공교롭게도 당신이 입학하게 되는 연도에 함께 입학하는 이들 중, 낙일의 간부로 전락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어. 정보를 줄 테니, 해결 방법과 함께 숙지해 줘.

아카데미에서 해야 할 일들과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한 리스트.

마지막으로.

-각 스킬과 이를 익혀야 하는 시점도 알고 있어야 해. 활용은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야.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잘 해낼 거라 믿어.

성장 과정에 관한 피드백까지.

오윤진과 윤진호, 연소소, 세 사람이 달라붙어 계획의 치밀함을 더해 갔다.

‘변수를 완전히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세 사람은 변수까지 고려해 최악의 사태와 그에 따른 행동 강령까지 세심하게 준비했다.

그렇기에 준비를 거듭할수록, 불안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진행한다면.’

오윤진이 말했듯.

틀림없이 과업을 완수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최종 계획이 착실하게 갖춰지는 사이.

“……낙일에게 발각됐어.”

성큼 다가온 재앙이 목끝에 칼을 겨눴다.

발단은 백유진을 비롯한 낙일의 간부들의 토벌이었다.

그로 인해 저들이 여명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낙일의 칼끝은 정확하게 여명을 겨냥하게 됐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은 건 총력전뿐이야.”

최후의 항전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런 상황임에도 밀실에 모인 이들은 안일한을 포함하여 불과 여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연후, 연소소, 차은월, 오윤진, 윤진호.

그만큼 많은 이들이 항전을 벌이기도 전에 목숨을 달리한 까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종 계획의 준비가 끝났다는 점이려나.”

오윤진은 처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마따나 아슬아슬했지만, 회귀를 위한 대략적인 준비는 끝낸 상태였다.

남은 건 연소소의 도움으로 과거를 향해 회귀하는 것뿐이었다.

“그럼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쩌저적-

상황이 발생했다.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동.

초인이 된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최소 B급 이상.’

아니, 실제로는 그 이상일 터였다.

호흡조차 버겁고,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렬한 파동이었으니까.

다른 이들도 이 사실을 눈치채고는 표정을 굳혔다.

심각한 분위기 속, 가장 먼저 연후가 나섰다.

“소소 아가씨, 내세에는 부디 평온하시길. 제자야, 너를 믿는다.”

“……!”

“……!”

그는 돌아보지 않고 밀실을 벗어났다.

연후의 뒤를 따라 움직인 건 차은월이었다.

그녀는 벗어나기 전, 안일한을 바라봤다.

“……!”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

무어라 말을 걸기도 전에 그녀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안일한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허망하게 떠나보낼 수는……!’

도저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대로 박차고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팔뚝을 강하게 잡아챘다.

다름 아닌 오윤진이었다.

“……당신은 가면 안 돼.”

“그게 무슨!”

“이런 경험을 시켜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당신이 유일한 희망이야.”

그녀는 빠르게 내뱉으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두 눈을 부릅뜨는 찰나.

“……!”

강렬한 힘이 전신을 옥죄었다.

저항조차 못한 채 몸서리치고 있을 때.

오윤진이 처연한 얼굴로 무어라 속삭였다.

그건 분명 사과였다.

이윽고 그녀는 연소소와 윤진호를 향해 말했다.

“……부디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요. 다음에는 저 세상에서 보게 되겠네요.”

유언과도 같은 말이었다.

듣는 순간 안일한의 두 눈에 시뻘겋게 핏발이 섰다.

실제로 오윤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세 사람이 남았을 때, 연소소가 충혈된 두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시작……, 할게요…….”

회귀를 위한 마지막 작업, ‘계승’을 발휘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격통 속에서도 안일한은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익숙한 음색의 비명이 터져 나오는 까닭이었다.

피눈물이 흘러나올 무렵.

“……아아, 아.”

온몸을 옥죄던 속박이 풀렸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절망적인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거렸다.

이를 눈치챈 윤진호가 빠르게 다가와 속삭였다.

“일한 군,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 셈입니까?!”

“하지만……!”

“분노를 쏟아내야 할 대상은 지금 눈앞의 낙일이 아닙니다! 당신만이 가능한 일을 생각하세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붉게 물든 시야 속 윤진호의 얼굴이 보였다.

피눈물 때문인지, 그의 얼굴도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절망으로 가득한 표정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사이, 윤진호가 씹어뱉듯 말을 이어 갔다.

“일한 군, 염치없지만 부탁이 있어요.”

“……!”

이번에도 역시 유언이었다.

어떻게든 말리고자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발 우리 불쌍한 딸아이의 복수를, 설하의 복수를 해 주세요……!”

빙화 윤설하.

분명 그녀는 낙일의 간부로서 사투 끝에 제거당한 초인들 중 한명이었다.

무어라 질문하기도 전에 윤진호는 자리를 박찼다.

윤진호 역시 안일한만큼이나 약했다. 그럼에도 목숨을 내던졌다.

그렇게 모두가 떠났을 무렵.

쿠구구궁-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다급하게 연소소를 데리고 피하려는 찰나.

터억-

강렬한 힘에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부릅뜬 두 눈 사이로 양손을 뻗은 채 바라보는 연소소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 됐어요. 부디 저희들의 염원을…….”

그녀가 무어라 말을 끝맺기도 전에.

“……!”

시야가 반전됐다.

의식이 알 수 없는 힘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사이.

콰과광-!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연소소의 머리 위로 추락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절망을 토해낼 틈조차 없이.

화아앗-

의식이 툭, 하고 끊겨 버렸다.

외전 여명(黎明)

-미구현 특성 [????의 그림자]가 활성화됐습니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0%]

모든 게 희미했다.

자신이 무엇인지.

어디서 비롯됐는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본능이 끊임없이 속삭였다.

-강해져야 한다.

그런 일념하에 그림자는 단련을 시작했다.

기계처럼, 미친 듯이.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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