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동료 (1)
안일한은 간만에 보는 얼굴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오윤진은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일한 님, 잘 지내셨나요?”
“오윤진 길드장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안일한은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건네는 한편.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에 관해 되물었다.
“소개라니, 거기다 용건이 있으시다고요?”
“맞아요. 그래서 겸사겸사 제가 왔죠.”
싱글거리며 답하는 오윤진.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때.
“그럼 두 사람, 이야기 나누도록.”
연후는 나직하게 말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나가기 전에 오윤진과 눈빛을 교환하는 거로 보아 사전에 입을 맞춰 둔 모양이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연후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자 오윤진이 짤막하게 덧붙였다.
“연후 님께서 맡아 주셔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렇군요.”
안일한은 더 파고들지 않고 얌전히 납득했다.
직접 두 눈으로 여명의 활동을 지켜보고 난 다음,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들과의 거리감은 여전했다.
‘아무래도 내가 여명의 일원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지금까지 그랬다.
그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할 뿐.
안일한이 여명의 대의나 활동에 기여한 바는 전무했다.
물론 연후나 오윤진이 그에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부채감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때가 되면 이야기를 꺼내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오윤진이 본격적으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우선 연후 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부터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죠.”
그녀의 말에 안일한은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초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지?’
초인들뿐만 아니라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
아무래도 오윤진은 이 부분에 관해 먼저 알려 주려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그녀의 입에서 해답이 흘러나왔다.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에요.”
“마나…….”
“여태 안일한 님은 마나 수정을 흡수하며 마력 스텟은 갖췄을 거예요.”
“맞습니다.”
“그것만으로도 D급 게이트 공략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예요.”
“지금 이상을 넘보려면 반드시 마나를 다루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오윤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딱 알맞은 타이밍이에요. 공교롭게도 슬슬 힘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
안일한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혼잣말이 의미하는 바를 곧바로 눈치챈 까닭이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기울어져 가고 있으니까.’
점점 더 멸망에 가까워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 남으려면, 살아가려면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가만히 납득하고 있을 때, 오윤진은 분위기를 환기하듯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지금부터 마나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기본적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리고, 그 이후는 다른 분께서 수련을 맡아 주실 거예요.”
“그럼 소개해 주신다는 분이…….”
“맞아요, 안일한 님의 마나 수련을 도와 주실 분이죠.”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의문이 전부 해소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마나 수련을 향한 흥미가 깊어졌다.
안일한의 두 눈에 이채가 서리는 가운데.
그의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오윤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우선 기초적인 것부터 진행하죠. 장소를 옮길까요?”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안일한은 그녀의 뒤를 따르는 한편,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초라 하심은…….”
“간단해요.”
오윤진은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나를 느끼는 것. 인식하는 거죠.”
…
…
…
3개월.
안일한이 마나를 느끼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기본적인 스텟 단련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을 전부 쏟았음에도 3개월이나 걸렸다.
그래서일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래도 3개월 정도면 아주 늦은 편은 아니니까요.”
오윤진이 위로와 격려를 해 줬다.
하지만 안일한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진척이 느릴 거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
오히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영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면 미래가 없었겠지만, 늦게라도 성공해 냈다.
다음을 넘볼 수 있다는 것.
안일한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위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네. 오히려 감사를 드리고 싶군요. 길드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는 오윤진을 향해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지금껏 물심양면 지원해 준 건 물론.
마나를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 설명부터, 수련에 필요한 환경의 조성에 이르기까지.
이번 수련에서 오윤진이 쏟은 노고가 결코 적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게 저희와 안일한 님과의 약속이니까요.”
오윤진은 옅은 미소로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는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예요.”
“다음 단계요?”
“네. 마나를 인식하는 건 말 그대로 기초예요. 핵심은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죠.”
그녀는 설명과 함께 품 속에서부터 작은 책자 두 권을 꺼내들었다.
두 권의 얇은 책자.
표지에는 각각 다른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안일한은 무의식적으로 두 글귀를 읽어 내렸다.
“……현천강기, 그리고 혼원공.”
“맞아요. 안일한 님이 익히게 될 마나 호흡법이죠.”
“……!”
현천강기, 혼원공.
둘 다 명칭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그만한 호흡법을 익히게 될 거라니.
안일한은 차오르는 기대감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오윤진은 나른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두 가지 심법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부터 드릴게요.”
“부탁드립니다.”
“우선 현천강기는 강(强) 계열의 마나 심법이자, B급 스킬이에요. 반대로 혼원공은 유(柔) 계열의 마나 심법이고 B+급이죠.”
“……!”
안일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만큼 오윤진의 설명이 경악스러운 까닭이었다.
‘C급 스킬만 되어도 엄청난 가치를 자랑하는데…….’
비록 캐리어지만, 초인 사회에 몸담았던 이로서 스킬의 가치 정도는 알고 있었다.
C급 스킬조차 귀중한 취급을 받는데 무려 B급, B+급이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이를 선뜻 내어주다니, 감사한 마음 그 이상으로 당혹스러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과연 이만한 스킬들을 받아도 되는 건지.
대체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안일한은 심경이 복잡했다.
그런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오윤진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오히려 안일한 님이 아니면 안 되는 거죠.”
“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씀이 대체…….”
“안일한 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요.”
듣는 순간 안일한은 직감했다.
이거야말로 오윤진을 비롯한 여명이 그를 원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어떤 일이죠?”
“……지금은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예상 외로 오윤진은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의문이 깊어졌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째선지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일한은 가슴이 답답했지만 애써 억눌렀다.
‘때가 되면 말씀해 주실 테니.’
함께한 시간이 짧지 않은 만큼, 오윤진이라는 사람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됐다.
그녀는 세간에 알려진 악명과는 달리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며, 신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안일한은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다.
이런 속내가 전해진 건지, 오윤진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무엇이죠?”
“저희의 목적이 안일한 님의 목적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 이 점 하나만은 분명하게 약속드릴게요.”
목적이 일치한다.
즉,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이 정도가 한계인 듯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호의, 감사히 받겠습니다.”
안일한은 공손하게 두 권의 책자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그녀를 향해 가만히 눈짓했다.
“한번 살펴 보세요.”
단번에 의미를 이해한 오윤진은 살펴보기를 권했다.
떨리는 손길로 책자를 펼쳐 보자 영문도 모를 글귀가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자, 그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구결이에요. 심법을 체득할 때 필요한 요소들 중 하나예요.”
“……그렇군요.”
“심법을 체득하는 방법과 활용법은 다른 분께서 도와 주실 거예요.”
“전에 말씀하셨던?”
“네, 맞아요.”
오윤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러고는 한 사람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입에 담았다.
“차은월, 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차은월이라면…….”
무의식적으로 되뇌던 안일한의 두 눈이 일순 휘둥그레 커졌다.
차은월.
기억 속에 있는 이름이었다.
‘설마 마탄의 여제를 말씀하시는 건가.’
마탄의 여제.
일반적인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마탄 하나만으로 이름을 떨쳐 만들어진 이명이었다.
차은월, 그녀의 유명세는 단지 압도적인 마법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재앙의 마녀라 불리는 오윤진과 마찬가지로 빌런으로 악명 높았다.
안일한이 경악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마탄의 여제……, 맞나요?”
“네. 그녀 역시 저희의 식구 중 한 명이거든요.”
“설마 그 사람까지 품고 있었을 줄은…….”
“충분히 이해해요. 차은월은 세간에선 독보한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오윤진의 말마따나 차은월은 특이하게도 홀로 활동하는 초인이었다.
길드나 가문에 속하지 않은 초인은 여럿 있지만, 그녀만큼 고등급의 초인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건 꽤나 특이한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여명에 몸을 담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안일한은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마탄의 여제, 차은월이 어떤 사람인지는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럼 제 수련을 도와 줄 거라는 분이…….”
“맞아요. 차은월, 그녀가 안일한 님의 남은 마나 수련을 도와 줄 거예요.”
“……!”
안일한의 두 눈은 삽시간에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이는 오윤진이 제공하려는 마나 심법이 B급, B+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오래 전부터 위명을 날리던 초인이 가르쳐 줄 거라니.
그야말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었다.
얼떨떨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을 때.
“아, 맞다.”
오윤진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안일한 님과 나이가 같을 거예요.”
“대체 무슨…….”
“그러니까, 이때쯤 초인 아카데미 입학 시험을 치르지 않으셨나요?”
오윤진은 질문과 함께 특정 연도를 언급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 관한 정보를 꿰고 있었으니, 이제와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이에 안일한은 그녀에게 따지는 대신, 머릿속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그렇네요.”
“그럼 두 분이 초면은 아니겠네요. 그녀도 해당 연도에 입학 시험을 치렀으니까요.”
마침 잘됐네요. 오윤진은 그렇게 덧붙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안일한은 난감할 따름이었다.
‘면식이 있는 사람이라니, 티끌만 한 기억조차 없는데.’
걱정이 밀려드는 한편,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떤 식으로 수련이 진행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다음 수련을 곱씹고 있을 때.
오윤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만나러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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