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수련 (1)
-평범한 방식이 될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마라.
실제로 연후는 제시한 방식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곧바로 실전에 들어가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너는 나이도 많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적으니 말이다.
안일한의 나이, 그리고 제한적인 시간 때문이었다.
나이에 관한 문제는 곧바로 납득했다.
‘초인으로서 거듭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청소년 시기에 판가름 나는 것도 전부 나이 때문이니까.’
스텟 성장의 재능이 있다는 가정하에 가장 성장이 왕성한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다.
전 세계의 초인 육성 시설, 즉 아카데미가 고등학교를 갈음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성인만 되어도 성장 효율이 떨어지는데, 하물며 그는 이미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평범한 수단으로는 아예 성장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특수한 수단으로라도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니까.’
그렇게 일찍이 생각을 정리한 덕분에 번민은 없었다.
두 번째, 제한된 시간에 관해서는 오윤진이 짧게나마 설명해 줬다.
“사실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재앙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리고……, 연후 님은 저희의 몇 안 되는 고급 전력이기도 하고요.”
즉, 언제까지고 안일한의 수련에만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충분히 납득 가는 이유였다.
오히려 그는 다시금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반면 오윤진은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몇 가지 설명을 추가로 덧붙였다.
“걱정 마세요. 약속은 반드시 지킬 테니까요. 연후 님뿐만 아니라 저를 비롯하여 안일한 님에게 도움을 드릴 분들이 몇 분 더 계시거든요.”
연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동원하여 그의 수련을 돕겠다고 단언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믿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오윤진은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하는 한편.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를 잊고 있었네요.”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는 별안간 새삼스럽게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상태로 오윤진은 안일한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명에 온 걸 환영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
…
본격적으로 여명에 합류한 이후.
당장이라도 실전에 나설 것처럼 단언했던 것과는 달리 며칠간은 여명의 아지트에 머물렀다.
실전으로 나서기에 앞서 한 가지, 준비가 필요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력 스텟’이었다.
“일정 수준의 마력 스텟이 뒷받침되어야 실전에서 최소한의 활동이 가능해지는 거다.”
즉, 연후의 수련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일정 수준 이상의 마력 스텟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방법은 다름 아닌 ‘마나 수정’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마나 수정이라면…….’
비록 캐리어로 살아왔지만, 안일한 역시 초인 사회에 속한 사람이었다.
마나 수정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 가치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다섯 개면 충분할 거다. 흡수 방법은 딱 한 번만 알려 줄 테니, 잘 기억해 두도록.”
무려 다섯 개나 되는 마나 수정을 선뜻 제공해 주는 건 물론, 친히 흡수 방법까지 알려 줬다.
덕분에 처음 각성한 이후 줄곧 1스텟에 머물렀던 마력 스텟이 무려 5스텟까지 올랐다.
‘진짜로 내가…….’
제대로 된 스텟을 갖추게 됐다.
안일한은 감격에 겨워 말문이 막혔지만, 연후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마나 수정이 비효율적이라지만 다섯 개를 써서 고작 4스텟이 오르다니. 이만한 재능은 또 처음이구먼.”
아무래도 성장 효율이 예상치에 턱없이 못 미쳐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 반응에도 안일한은 동요하지 않았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니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연후는 어째선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실전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마친 후.
안일한은 연후를 따라 본격적으로 실전에 나섰다.
…
…
…
꿀꺽-
안일한은 마른침을 삼키며 정면을 바라봤다.
시선이 가닿은 허공은 이질적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고오오오-
허공의 점을 향해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광경.
이것이 바로 게이트였다.
즉, 연후가 말한 실전 수련이란 게이트에서의 수련을 의미했다.
‘D급 게이트이긴 하지만.’
현재 안일한은 초인의 등급을 기준으로 보자면 F급에 불과했다.
더욱이 이전처럼 캐리어로서 임하는 게 아닌, 초인으로서 게이트에 임하는 것이었다.
살짝 긴장됐지만 고개를 한 차례 털어내며 마음을 다잡았다.
‘정말 초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면.’
고작 D급 게이트에 겁먹어선 안 된다.
빠르게 평정을 되찾아 가고 있을 때.
턱-
문득 연후가 한쪽 남은 손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아무래도 그가 찰나 간 두려움을 느꼈으며, 그걸 빠르게 해소했다는 사실까지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네 녀석의 배짱만큼은 인정하지. 그런 마음가짐만 잘 유지할 수 있다면 분명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다.”
“네, 스승님.”
안일한은 낯간지러운 감정을 무릅쓰고 ‘스승’이란 호칭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연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착각하지 마라. 팔자에도 없는 제자를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싸늘한 어조.
하나 불쾌하다기보단, 나름의 사정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를 묻는 대신 안일한은 순순히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연후 님.”
“그래, 바로 진입할 테니 준비해라.”
그렇게 연후와 짤막한 문답을 주고받은 후, 곧장 게이트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이질적인 감각이 전신에 엄습해 왔다.
“……!”
마력 스텟이 올라서 그런 걸까.
이전과는 달리 게이트 내부의 이질적인 마나의 파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변화를 체감하는 사이, 시야가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이윽고 눈앞에 D급 게이트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를 인식한 순간.
케룩-!
익숙한 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D급 몬스터, 고블린이었다.
‘총 세 마리인가.’
고블린 무리와 조우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캐리어로서의 상식은 그러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을 하면 되죠?”
안일한은 고블린 무리를 향해 성큼 한발짝을 내디디며 물었다.
이는 초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연후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의지는 알겠다만, 일단은 지켜봐라. 그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만.”
“경청하겠습니다.”
“네 녀석의 특성, 간접적인 경험도 효과가 있으렷다?”
“맞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연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나아갔다.
접근에 반응하여 고블린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딱 한 번만 보여 줄 테니 머릿속에 잘 새겨 두도록. 네 녀석이라면 특성을 통해 재현할 수 있겠지만, 능력에만 의존할 생각일랑 접어둬라. 그 이유인즉…….”
설명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고블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안일한의 두 눈은 휘둥그레 커졌다.
하지만 연후의 한쪽 남은 눈빛은 변함없이 고요했다.
이어지는 행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한쪽 남은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다.
스윽-
느리게 날아가는 일권.
주먹의 투로부터, 타격하고자 하는 지점까지.
전부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렸다.
그럼에도.
콰직-!
고블린은 연후의 일권을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가격당한 고블린이 왈칵 피를 쏟아내는 사이, 나머지 두 마리가 성난 기세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콰직- 콰지직!
연후의 느릿한 주먹세례를 피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세 마리가 전부 피를 쏟아내는 사이, 연후는 다시금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온전히 네 녀석의 것이 되어야 비로소 능동적인 전투가 가능해지는 까닭이다.”
“능동적인 전투…….”
“그러니 특성을 재현하면서도 온몸에 경험을 새겨라. 최종적으로 네 녀석의 능력만으로 전투가 가능한 경지를 목표로 하는 거다.”
그제야 비로소 조금 전 연후가 보여 준 전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특성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길러야 하는구나.’
그간 모호하던 방향성이 제대로 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방금 연후가 보여 준 공세를 더듬어 보는 사이.
케룩-!
여태 피를 쏟아내던 세 마리의 고블린이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다만 그뿐으로, 녀석들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연후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네 녀석의 차례다.”
“……그렇군요.”
연후는 단순히 전투법을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차례를 넘겨 줬다.
직접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고블린을 약화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안일한은 이해했다는 양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특성을 발동시켰다.
스르륵-
짙은 음영이 연후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했다.
안일한은 온몸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타닷-
비틀거리는 고블린 무리를 향해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