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스승 (2)
오윤진을 따라 대면하게 남성, 초로의 사내의 외견은 꽤나 강렬했다.
무엇보다 외눈, 외팔이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분이 내 수련을 도와주는 건가.’
이는 의문이 아닌 감탄이었다.
애초에 외눈에 외팔이이긴 해도, 불구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선이 굵고 사나워 보이는 외모며, 터질 듯한 근육, 그리고 그 위를 거칠게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강인한 전사이자, 초인으로 보이는 외견 때문이리라.
남몰래 탄성을 흘리고 있을 때.
“이분이 안일한 님께서 초인으로 거듭날 수 있게 수련을 도와주실 거예요.”
오윤진이 나직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소개가 아직이네요. 이분은 연씨…….”
그녀는 말을 이어 나가려다 말고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초로의 사내를 살폈다.
때 아닌 침묵.
이에 안일한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초로의 사내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따.
“자잘한 건 넘어가세.”
“……알겠습니다.”
정중하게 한마디씩 교환하는 두 사람.
이윽고 초로의 사내는 안일한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짤막하게 제 소개를 했다.
“연후라는 사람일세.”
“안일한입니다.”
연후.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릴 무렵, 오윤진이 재차 나섰다.
“이분이 바로 저희가 찾고 있던 마지막 퍼즐 조각이에요. 담력도 있고, 신의도 있는 분이죠.”
초로의 사내, 연후에게 소개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녀의 평가에 안일한은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마지막 퍼즐 조각? 그나저나 담력과 신의라니…….’
꽤나 과분한 평가였다.
거기에 ‘퍼즐 조각’이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까지 더해져 의아해하는 찰나.
“호오.”
연후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탄성을 흘렸다.
여태 무표정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기색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연후는 이채가 서린 한쪽 눈으로 안일한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럼 한번 시험해 볼까.”
안일한이 그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연후는 곧바로 모종의 자세를 취했다.
가볍게 두 주먹을 들어 올린 것이다.
그의 동작이 의미하는 바에 안일한은 흠칫했다.
‘……설마.’
연후가 언급한 시험, 그 의미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사실 못 알아차리는 게 이상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오윤진도 당황한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연후를 응시했다.
“잠깐만요, 이분은 아직…….”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시야에서 연후가 사라졌다.
“……!”
눈 한 번 깜빡이는 찰나에 그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이 사실을 인식했을 때.
어느새 시야가 거대한 체구로 꽉 차 있었다.
‘이런……!’
다급하게 양팔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콰직-!
복부에 연후의 일권이 작렬했다.
어마어마한 격통 속에 등허리가 새우처럼 고꾸라졌다.
“……커, 헉!”
단 일격에 하체를 비롯한 온몸의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로 인해 안일한은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한 채 무릎을 꿇고 말았다.
호흡조차 힘겨운 탓에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연후 님, 대체 무슨 짓이죠!? 이분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분이라고요!”
오윤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찔러왔다.
그녀의 질책에 호응하여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양해해 주게, 길드장. 자네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쭙잖은 각오라면 어차피 투자해 봐야 의미가 없을 걸세.”
“하지만……!”
“이자를 수련시키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지 않은가? 그럼 방식도 존중해 주길 바라네.”
정중한 어조로 단호하게 선을 긋는 연후.
과격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때문에 오윤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다만 주먹을 꽉 쥘 뿐이었다.
그 대신.
“…….”
안타까운 눈빛으로 안일한을 바라봤다.
반면 안일한은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어쭙잖다고?’
안일한의 모든 신경은 연후의 말 한마디에 쏠려 있었으니까.
어쭙잖은 각오.
연후와는 첫 대면인 만큼, 전후 상황을 모르니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이해일 뿐, 납득과는 별개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각오를 제외하면 지금의 그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 까닭이었다.
‘그 말, 취소하게 만든다.’
연후는 분명 현 상황을 두고 ‘시험’이라 일렀다.
그렇다면 안일한도 모든 걸 걸고 임할 생각이었다.
각오를 다진 순간, 그의 머리는 격통조차 잊은 채 냉철하게 굴러갔다.
‘마력은 쓰지 않을 터. 게다가 힘 조절도 하고 있겠지.’
근거는 지금 그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초인의 일권은 중화기조차 뚫지 못하는 몬스터의 피륙을 분쇄하고 박살 낸다.
그만한 위력을 가진 공격을 맞고도 숨이 붙어 있으니,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연후가 언급한 시험.
이는 말 그대로 그의 각오를 보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런 거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크, 윽……!”
안일한은 격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연후를 똑바로 노려보며 안간힘을 써서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퍽 인상 깊었는지.
“……호오.”
일순간 연후의 한쪽만 남은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하지만 이는 찰나에 불과할 뿐.
다시금 본래의 색채로 돌아갔다.
이는 곧 고통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안일한도 이 정도로 증명이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써.
처억-
안일한은 엉성하게나마 자세를 취했다.
방어를 위해 양팔을 들어 올리고, 급소를 보호하기 위해 상체를 살짝 굽혀 오므린 것이다.
거기다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앞서간 자의 그림자.’
위험에서 회피하기 위함이 아닌 전투, 대련을 목적으로는 처음 써 보는 것이었다.
애초에 대련이라는 걸 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스르륵-
그림자는 언제나 그렇듯,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단 한 번에 불과했지만 방금 연후가 선보인 움직임의 궤적이 전부 짙은 음영의 형태로 눈앞에 나타났다.
이로써 그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났다.
다시금 각오를 굳히는 순간.
“준비는 다 끝났나?”
연후가 나직하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모양이었다.
안일한은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순간.
탓-
연후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나 안일한은 놀라지 않았다.
연후는 사라졌지만, 짙은 음영은 계속해서 그의 시야 속에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같은 코스로 온다……!’
초심자를 배려한 건지, 아니면 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노려 피해를 극대화시키려는 건지.
의도까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연후의 노림새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척-
안일한은 연후가 짓쳐드는 방향의 반대로 상체를 기울였다.
다만 그뿐으로 자리를 벗어나진 않았다.
‘어설프게 피하려 해봤자 무조건 따라잡힐 터.’
그럼 후속타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대응도 못 하고 피해를 고스란히 입느니, 차라리 충격을 어떻게든 줄이는 쪽이 현실적이었다.
그런 일념으로 짙은 음영을 두 눈으로 좇으며 온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는 순간.
콰직-!
양팔로 보호하던 옆구리 쪽에 또다시 연후의 일권이 꽂혔다.
어마어마한 격통에 구역질이 밀려왔지만, 안일한은 어떻게든 정신을 가눴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크, 흡!”
어김없이 전신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가운데.
남은 힘을 악착같이 그러모아 축발에 힘을 줬다.
그러고는.
타닷-
반대편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격통에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역시 조금 전보다는 낫다.’
처음 불의의 일격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피해가 적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그뿐으로, 지면을 볼품없이 나뒹굴게 되는 것까진 피할 수 없었다.
온몸이 지면에 쓸렸지만 옆구리 쪽의 통증 때문인지, 추가적인 통증은 없었다.
어떻게든 호흡을 가누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여, 연후 님!”
오윤진이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그녀는 첫 일격보다 이번 일격에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반면 직접 손을 섞은 연후는 달랐다.
오윤진의 외침에 대답하는 대신.
“……호오.”
짙은 흥미가 느껴지는 탄성을 흘리며 안일한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의 한쪽 눈은 이채로 가득했다.
심지어 그 너머에는 강렬한 흥미가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일어나야 해.’
연후의 반응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였다.
하지만 기다 아니다를 판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빨리 몸을 일으켜야 했다.
다음 충격에 대비해야 마땅했다.
그런 생각과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시야도 조금 전과 달리 희끄무레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양팔로 안간힘을 써 가며 지면을 밀어냈다.
하지만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울 뿐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가운데,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올려 연후의 반응을 살폈다.
그 순간.
씨익-
어째선지 입꼬리가 올라간 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무어라 판단하기도 전에 의식이 점점 가라앉았다.
완전히 수면 아래로 잠기기 직전.
-합격이다.
환청처럼 그런 말이 들려왔다.
…
…
…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아침이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연후와 오윤진에게 옮겨졌는지 이름 모를 야산의 풍경이 아니라 낯선 공간이 안일한을 반겨 줬다.
‘대체 여기는…….’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크윽!”
어마어마한 격통이 밀려들었다.
단순히 연후에게 얻어맞은 부위뿐만 아니라 전신 곳곳이 비명을 내질렀다.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흐르는 가운데.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윤진과 연후였다.
그중 오윤진은 한달음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몸은 좀 괜찮……지는 않아 보이네요.”
안쓰러움, 걱정, 미안함 등.
그녀의 표정에 여러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반면 연후는 한쪽 눈으로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버틸 만은 합니다. 그것보다.”
안일한은 힘겹게 대답하며 연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험이 어떻게 됐는지, 다른 무엇보다 그 부분이 가장 신경 쓰이는 까닭이었다.
이런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여태 지켜보던 연후가 천천히 다가왔다.
저벅저벅-
텅 비어 있는 한쪽 소매가 헐렁거리며 시선을 잡아끌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연후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안일한은 텅 빈 소매에서 시선을 거두어 그의 한쪽 눈을 바라봤다.
무심하게 시선을 교환하는 가운데,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과연 시험은 어떻게 됐는지.
무어라 물어보려는 찰나, 연후가 앞서 입을 열었다.
“쉽지 않을 거다. 딱 재능이 없는 만큼 구른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
“평범한 방식이 될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마라. 너는 나이도 많고, 주어진 시간도 적다.”
연후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를 이해했음에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려 20년 전, 포기했던 꿈이 바로 눈앞까지 성큼 다가온 탓이리라.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때.
연후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덧붙였다.
“앞으로 각오하도록.”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