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안 (2)
-저희와 함께해요.
그럼 모든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오윤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안일한은 그녀의 제안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함께하자니, 대체 무슨 말이지……?’
물론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어째서 그런 제안을 건네는 건지, 그 이유가 짐작조차 안 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제아무리 그가 한 팀을 이끄는 팀장이라한들, 그래 봐야 캐리어다.
하물며 오윤진이 이끄는 길드는 일반적인 단체가 아닌 빌런 집단이다.
‘……그런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할 이유가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랬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안일한은 차라리 직접 물어보고자 입을 열었다.
“함께하자는 말씀은……, 저보고 달그림자 길드로 넘어오라는 뜻인가요?”
그의 물음에 오윤진은 일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히려 그녀 쪽에서 질문의 내용을 예상치 못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점점 더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찰나, 오윤진이 고개를 슬쩍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에요. 달그림자 길드는 제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설립한 곳이니까요. 안일한 님을 필요로 하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따로 있다니…….”
의아함에 가만히 중얼거리자 오윤진은 문득 안색을 굳혔다.
그러고는 한없이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아까 말씀드렸죠? 과거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참사나 재앙에는 배후가 존재한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저지하겠다는 단 하나의 대의를 위해 설립된 단체예요. 그만큼 비밀스럽고, 은밀하죠. 활동 범위도 더 넓고요.”
사회의 이면에서 암약하는 존재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쉬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이야기였다.
그래서일까, 황당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궁할 수도 없었다.
이를 설명하는 오윤진의 표정이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까닭이었다.
안일한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되물었다.
“비밀 결사……, 같은 건가요.”
“틀린 표현은 아니네요. 분하지만, 상대 세력과 비교해 본다면 저희 측이 열세니까요.”
“그렇군요…….”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오윤진, 그녀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 가정해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탓이었다.
이는 처음 떠올린 의문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만한 사명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가 왜 나를…….’
일개 캐리어에 불과한 그를 끌어들이고자 하는지.
물론 안일한은 특성이 구현됐다는 점에서 다른 캐리어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래 봐야 제대로 된 전투조차 불가능한 건 여타 캐리어들과 마찬가지였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폐가 될 테지.’
안일한은 제 스스로를 냉철하다 못해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오랜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 속내를 눈치챈 건지, 오윤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의문이 명확히 해소되진 않은 모양이네요.”
“네. 어째서 저를 필요로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거든요.”
“타당한 의문이에요.”
오윤진은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앞서간 자의 그림자, 맞죠?”
“……!”
오윤진의 발언에 안일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입에서 그가 가진 특성의 명칭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까닭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되물어보려는 순간, 불현듯 그의 뇌리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그러고 보니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내 소속부터 직책까지, 전부 알고 있었지.’
오윤진, 그녀와의 만남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영입 제안’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특성의 명칭을 알고 있다는 점도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해와는 별개로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대단하시네요. 그 정도로 조사를 하셨을 줄은.”
안일한은 무의식적으로 가시 돋친 말투로 응수했다.
뒤늦게 상대의 정체를 새삼스레 깨닫고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오윤진은 딱히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분은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하지만 저희로선 중요한 문제였어요.”
조심스러운 어조로 사과를 입에 담았다.
예상 외의 반응에 조금 전의 불쾌함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그 빈자리에 들어선 감정은 다름 아닌 얼떨떨함이었다.
“제 능력이 중요한 문제라는 말씀입니까?”
“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하는 오윤진.
이어서 그녀는 본격적으로 특성에 관한 화제를 꺼내 들었다.
“분명 안일한 님의 특성은 직간접적인 경험이 그림자의 형태로 재현되는 것, 맞나요?”
“……맞습니다.”
“그 능력이 바로 당신이 저희와 함께하길 원하는 이유예요.”
그제야 의문의 일부가 해소됐다.
하지만 방금 대답만으로는 다소 부족했다.
이를 속으로 골몰하는 대신, 안일한은 생각나는 의문을 전부 입에 담았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 특성은 제 눈에만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걸 설명할 순 있지만 분명 비효율적일 겁니다.”
“알고 있어요. 애초에 저희가 원하는 건 안일한 님이 직접 특성을 활용하는 거니까요.”
“……아시다시피 제겐 전투 능력이 전무합니다.”
“지금 당장은 말이죠.”
“……!”
오윤진의 즉답에 안일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확장된 동공에 경악의 빛이 서렸다.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의 대답 속에 담긴 의미 때문이었다.
‘설마…….’
추후에 전투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건지.
다시 말해 초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건지.
분명 그런 의미가 내포된 대답이었다.
하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스텟 성장의 재능이 전무한 내게, 그런 꿈 같은 일이 가능할 리가…….’
그는 이미 40줄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청소년기에도 없던 재능이 이제와서 생길 리 만무했다.
즉, 오래 전에 겪은 절망을 어설픈 가능성으로 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속내를 알 턱이 없는 오윤진은 이전보다 한층 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한 가지, 약속드릴게요.”
“약속, 이라니…….”
“초인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당신의 손으로 적들에게 복수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초인으로 말이죠.”
“……!”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냥 허무맹랑한 말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근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그랬다.
‘만일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초인이 되는 것.
이거야말로 어렸을 때부터 바라마지않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인식한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다름 아닌 한 줄기 희망이었다.
‘……이젠 전부 삭아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활활 타오를 줄이야.
안일한의 입가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
잠깐 동안 감정을 헤아리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작정 믿기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악명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가요?”
오윤진은 어째선지 처연한 미소를 띠었다.
그 모습이 살짝 의아했지만, 안일한은 일단 생각해 둔 이야기를 마저 이어 나갔다.
“그러니 옆에서 지켜보고 판단하게 해 주십시오.”
“……!”
“정말로 당신이 속한 단체의 대의가 올바르다면, 저도 미약하게나마 한 손 보태겠습니다.”
안일한의 대답에 오윤진은 잠시 침묵했다.
서로 말 없이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십 초.
이윽고 오윤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협회에선 나오셔야 할 거예요. 안일한 님에게 주어질 일들이 결코 가볍지 않을 테니까요.”
“미련은 없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시간을 오래 드릴 수도 없어요. 저는 충분히 당신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대신 제가 먼저 안일한 님께 믿음을 드릴게요.”
믿음을 주겠다.
오윤진은 그리 내뱉고는 한차례 심호흡을 했다.
이내 그녀는 결의로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역천(逆天)을 목적으로 재앙을 일으키며 세계의 이면에서 암약하는 이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 그들은 스스로를 낙일(落日)이라 일컬어요.”
“낙일…….”
낙일.
오윤진의 말에 따르면, 저들은 스스로를 낙일이라 지칭하는 모양이었다.
‘제 손으로 태양을 추락시키겠다, 그런 건가.’
만일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광오하기 짝이 없는 작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앞선 그녀의 설명이 맞다면, 어머니의 죽음도 전부 녀석들의 소행이나 다름없었다.
생각이 가닿은 순간, 주먹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그사이.
“그리고 낙일을, 그들의 목적을 저지하기 위해서 모인 우리는…….”
오윤진이 나직한 어조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명(黎明)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