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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210화 (209/218)

외전 첫 만남 (3)

갑작스럽게 발생한 B급 규모의 균열.

손쓸 도리조차 없이 밀려드는 언데드 대군까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들어 보셨으려나? 잘 모르겠네.”

스스로를 오윤진이라 밝힌 여자는 지나칠 정도로 평온했다.

마치 등 뒤에서 몰려오는 언데드 대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비현실의 극치나 다름없는 광경.

일순간 사고가 정지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윽고 정신이 들었을 땐.

“……당장 도망치십시오! 대체 거기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안일한은 무의식적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대체 오윤진이 누구인지,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다만 그의 두 눈에는 오윤진이라는 사람의 처참한 죽음만이 그려질 뿐이었다.

그렇기에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외쳤건만.

“호오, 정말 모르시나 보네요?”

오윤진은 오히려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이 의외라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답답함에 재차 소리치려는 찰나, 그녀가 한 발 앞서 입을 열었다.

“하기야, 지금 상황이 대화를 나누기에는 다소 부적절하죠?”

나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리는 오윤진.

위기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찰나.

별안간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휘저었다.

그 순간.

화륵-!

그녀의 등 뒤로 시뻘건 화마가 치솟았다.

“……!”

갑작스러운 현상에 두 눈을 부릅뜨는 사이.

오윤진은 장난스럽게 허공을 두어 차례 휘저었다.

그러자.

쐐애애액-!

이번에는 강렬한 돌개바람이 일었다.

화마에 거친 돌풍이 더해지자 불길은 삽시간에 일대를 뒤덮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언데드 대군을 집어삼켰다.

그어어어!

괴성과 함께 녹아내리는 언데드 무리.

무려 B급이자, C급 초인들도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내저은 몬스터.

그런 녀석들이 저항도 못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갔다.

녀석들은 진군하던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소멸해 갔다.

그야말로 신위(神威)에 버금가는 무력이었다.

적어도 캐리어인 안일한의 두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당신은 대체.”

그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이.

오윤진은 전황을 대충 훑으며 재차 허공을 휘저었다.

장난스러워 보이는 손짓. 하나 그에 따른 여파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팀원들의 도주 경로 쪽에 불길의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마나 방벽이 전개되는가 하면.

쏟아져 나온 언데드 대군을 쓸어 버리는 데서 나아가 균열 자체를 압도적인 화력으로 메워 버렸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손짓으로 말이다.

그제야 안일한은 깨달았다.

‘……고등급의 초인.’

경황이 없었던 탓에 뒤늦게 알아차렸다.

단신으로 이런 활약이 가능한 이들은 고등급의 초인들 뿐이었다.

B급, 아니 이 정도면 A급 마법사일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은 순간, 새삼스럽게 의문이 밀려들었다.

‘저 사람이 정말로 A급 마법사라면…….’

어째서 캐리어에 불과한 그를 찾아온 건지.

아니, 애초에 그를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잠시 미뤄 뒀던 의문들이 삽시간에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마치 거기에 호응이라도 한듯, 오윤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명백히 그를 향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찰나,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이제 상황도 정리됐고, 어느 정도 조용해졌으니 슬슬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이야기라니.

대체 무슨 말을 꺼낼지, 안일한은 도무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때문에 대답할 생각조차 못한 채 그저 오윤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무어라 말을 이어 나가려다 말고는 별안간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허억, 허억! 안 팀장-!”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협회 소속의 C급 마법사인 중년 남성이었다.

조금 전,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도움을 거절했던 것과는 달리 중년 남성의 만면에는 안도의 기색이 흘렀다.

심지어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기쁨마저 느끼는 모양이었다.

안일한 또한 중년 남성에게 사감은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틀린 판단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고마움마저 느껴졌다.

지금 부리나케 달려왔다는 건, 저쪽 상황이 끝나자마자 이쪽으로 왔다는 뜻이었으니까.

곧바로 다가오는 중년 남성에게 무어라 감사를 표하려는 순간.

“……다, 당신은?!”

중년 남성이 별안간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의 시선은 오윤진을 향하고 있었다.

“재앙의 마녀……!”

“재앙의, 마녀?”

들어 본 적 있는 이명이었다.

잠깐 기억을 더듬어 확인한 순간.

‘……빌런!’

오한이 등골을 타고 내달렸다.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정체를 깨달은 탓이었다.

심지어 그냥 빌런도 아니었다.

빌런계에서도 악명이 높은 달 그림자 길드의 수장이자, 협회 차원에서 수배 중인 빌런.

그게 바로 재앙의 마녀였다. 이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닌 것이다.

‘대체 빌런이 왜…….’

자신을 구했을까.

영문 모를 상황에 얼어붙어 있을 때.

타닷-

중년 남성이 빠르게 안일한의 앞을 막아섰다.

형형한 눈빛,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까지.

얼핏 보이는 중년 남성의 표정으로부터 모종의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시간을 벌 테니 최대한 도망치게.”

중년 남성은 비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지키려는 것이다.

안일한은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

“대체 왜…….”

“아까는 내가 잘못 생각했네.”

그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아무리 세상이 이렇다지만, 생명에는 경중이 없어야 맞지. 그리고 자네 또한 초인으로서 내가 지켜야 마땅한 사람일세.”

“……!”

“어서 가게!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오래지 않아 지원이 당도할 테니, 어서…….”

중년 남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가 보면 사생결단이라도 내려고 온 줄 알겠네.”

한 줄기, 나른한 음색이 끼어들었다.

다름 아닌 재앙의 마녀, 오윤진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중년 남성이 두 눈을 부릅뜨며 반응하는 순간.

사락-

또다시 그녀가 허공을 한차례 휘저었다.

조금 전, 화마를 일으키고 돌풍을 불러들였던 바로 그 손짓이었다.

“이런……!”

손짓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중년 남성은 대경실색한 채 양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크, 윽!”

저항이나 각오가 무의미하리만큼 중년 남성은 맥없이 허물어졌다.

안일한은 반사적으로 남성의 몸을 받아들었다.

“마, 마법사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건만.

마법, 정확히는 마나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그의 입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안일한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었다.

‘……살아 있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확인 결과, 맥박이나 체온은 정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듯했다.

당연히 죽길 바란 건 아니지만, 명백히 이상했다.

그런 의미를 담은 눈길로 오윤진을 쳐다보는 순간.

“하아, 정말이지. 나를 뭐로 보는 거람.”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안일한을 향해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흠칫했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똑바로 마주 보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는지, 오윤진은 미소를 머금었다.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드는데?”

마주 선 채로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오윤진.

무어라 되물어보기도 전에 그녀가 몸을 기울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상체를 뒤로 빼려는 찰나.

“……!”

그의 귓가에 특유의 나른한 음색이 흘러들었다.

오윤진의 말을 전해 들은 순간.

“그, 게 무슨……!”

안일한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경악성을 토해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까닭이었다.

무어라 추궁하려는 찰나, 오윤진이 멀어졌다.

그 직후.

“저쪽이다!”

고함 소리와 함께 몇몇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본부에 요청한 지원 병력인 듯했다.

‘설마 그 사실을 눈치채고……?’

한 줄기 의문이 뇌리를 스쳐 갈 무렵.

오윤진은 나른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잘 기억해 둬요.”

뚜렷하게 귓가에 꽂히는 목소리.

반사적으로 조금 전, 그녀가 속삭였던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사이, 오윤진은 자취를 감춘 채였다.

마치 나타날 때처럼 전조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홀로 덩그러니 남게 된 안일한은 머릿속으로 오윤진의 말을 곱씹었다.

‘수원 대참사의 내막을 알고 있다, 고……?’

30년 전, 어머니를 잃게 된 수원 대참사.

그 내막이자, 원흉을 알고 있다.

오윤진은 분명 그렇게 덧붙였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건이 재해가 아니었다는 건가?’

어머니가 휘말린 참사가 불가항력적인 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지나친 사고의 비약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안일한은 그녀의 전언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분명 삼 일 후라고 했지.’

오윤진은 충격적인 발언 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알고 싶으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그러고는 그에게 정확한 일자와 시간, 그리고 장소까지 전해 줬다.

‘……만나보자.’

그렇게 다짐할 무렵.

“저쪽에 생존자다!”

일련의 무리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안일한은 오윤진이 사라져간 자리를 한차례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손을 흔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한편.

속으로 다시 한번 오윤진의 말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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