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209화 (208/218)

외전 첫 만남 (2)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겼다.

어둑한 밤.

도심은 몬스터와의 전투로 반파되어 가로등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꿀렁꿀렁-

짙은 음영이 안일한의 발밑에서부터 피어올랐다.

그가 가진 특성, ‘앞서간 자의 그림자’가 발동된 것이다.

그림자는 곧바로 오크 투사를 향해 뻗어나갔다.

일정 거리에 이르는 순간 솟구치더니, 사람의 형상을 이뤄 갔다.

이를 확인한 순간.

타닷-

안일한은 겁없이 도로를 박찼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자, 잠깐!”

“대, 대체 무슨!”

“죽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거야, 뭐야?!”

그를 지켜보고 있던 초인들은 대경실색한 채 소리쳤다.

심지어 원호를 위해 마탄을 전개하던 마법사는 참상을 떠올렸는지, 표정에 암담함이 드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침착하자, 제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살 수 있어.’

안일한은 속으로 평정을 되뇌며 부릅뜬 두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상이 모종의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크게 지면을 박차며 오른쪽으로 뛰거나, 착지와 동시에 정면으로 몸을 내던지는 등.

영문 모를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사이.

그워어어-!

오크 투사가 지척에 이르렀다.

녀석이 박도를 휘두르기 직전, 안일한은 처음 그림자가 형성된 지점에 도달했다.

그 순간.

타닷-

안일한은 불문곡직 지면을 크게 박찼다.

전신의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즉, 조금 전 그림자가 보인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바로 그때.

콰아앙-!

안일한이 딛고 서 있던 자리로 큼지막한 박도가 떨어져 내렸다.

녀석의 공격을 정확하게 회피한 것이다.

적어도 지켜보던 초인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마, 말도 안 돼!”

“캐리어 맞아?!”

저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경악을 토해내는 가운데.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아직 안 끝났어!”

그 말대로였다.

오히려 오크 투사는 공격을 맞추지 못해 분노한 것처럼 한층 성난 기세로 박도를 휘둘렀다.

부웅-!

횡으로 날아드는 일격.

공기째 짓뭉개는 위력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탓-

안일한은 필사적으로 정면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조금 전, 사람의 형상을 띤 그림자가 그러했듯 말이다.

그 결과.

후웅-!

박도는 무의미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녀석의 두 번째 일격까지 완벽에 가깝게 피해냈을 무렵.

퍼퍼퍼퍽-!

수십 발의 마탄 세례가 녀석의 몸을 꿰뚫었다.

살에 파묻힌 녀석의 동공이 빠르게 빛을 잃어갔다.

그대로 녀석의 사체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타닷-

안일한은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이 역시 그림자가 취했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쿠웅-!

안일한은 오크 투사를 가만히 바라봤다.

녀석의 죽음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다.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음을 파악하고 나서야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했지만, 이번에도 잘 넘겼어.’

앞서간 자의 그림자.

이 특성이야말로 안일한이 믿고 있는 구석이었다.

효과는 심플했다.

경험해 본 상황이 짙은 음영으로 눈앞에 재현되는 것.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상관없으며, 단 한 번이라도 겪어봤다면 문제없이 발동된다.

캐리어의 몸으로 살벌한 전선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특성 덕분이었다.

‘능력만 따지고 보면 회피 말고도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겠지만…….’

회피뿐만 아니라 전투에 오히려 빛을 발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불가능했다.

스텟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일한은 스텟 성장에 관한 재능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는 오래전, 아카데미의 입학 실패로 뼈저리게 느낀 바였다.

‘옛날에 내려 놨다고 생각했거늘.’

수 년 전, 느닷없이 특성이 구현되고 난 이후부터 부쩍 옛날 생각이 잦아졌다.

특히 지금처럼 특성을 활용할 때면 새삼스럽게 진하디진한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저 녀석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었다면…….’

무의식적으로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가운데.

누군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봐! 괜찮……, 안 팀장?”

다름 아닌 마탄 세례를 퍼부어 오크 투사를 쓰러뜨렸던 마법사였다.

그는 일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안일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보니 평범한 캐리어가 아니라 안 팀장이었구먼! 자네인 줄 알았으면 노심초사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는 안일한을 알아봤다.

사실 안일한은 협회 소속 초인은 물론, 사설 단체 소속 초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팀장이라는 직책뿐만 아니라 전선을 이렇듯 거리낌 없이 활보하는 캐리어는 그가 유일한 까닭이었다.

“내 괜한 걱정을 했나?”

“아닙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는 안일한.

마법사, 중년 남성은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어 갔다.

“당연한 일이지. 쯧, 스텟만 제대로 갖춰졌어도 훌륭한 초인이 됐을 텐데.”

중년 남성은 같은 협회 소속으로, 그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아쉬운 듯 중얼거렸지만 안일한은 옅은 미소로 대꾸할 뿐이었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

매달려 봤자 심력만 소모되는 까닭이었다.

이를 눈치챈 건지, 중년 남성은 기지개를 켜며 화제를 전환했다.

“슬슬 가봐야겠군. 머지않아 정리될 테니, 피곤하겠지만 나머지를 잘 부탁…….”

그가 무어라 말을 이어 가려는 순간.

위이잉-

손목의 스마트 워치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안일한은 중년 남성을 향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직전에.

끄아아악-

어디선가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중년 남성 또한 무언가를 느꼈는지 표정을 굳혔다.

안일한은 서둘러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그의 팀원이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티,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외곽 지대에 새로운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

새로운 균열.

그 말은 곧 외곽 지역에도 지옥도가 펼쳐질 거라는 뜻이었다.

안일한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현재 정확한 위치는?! 하던 작업 중지하고 당장 대피시켜!”

그는 팀원을 향해 질문과 지시를 쏟아내는 한편, 곧장 중년 남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큰일 났습니다! 외곽 지역에 새로운 균열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중년 남성은 경악을 토해내며 순식간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초인들이 여전히 오크 투사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즉, 기존의 균열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거기까지 파악을 마치자 중년 남성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갔다.

이를 미처 살피지 못한 안일한은 서둘러 말을 이어 나갔다.

“본부에 지원은 제가 요청하겠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대피하지 못한 팀원들이 있으니 부디 인원을…….”

“…….”

“마법사님?”

사색이 된 채 침묵하는 중년 남성.

불길한 예감이 다시 한번 뇌리를 스쳤으나, 안일한은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인원을 분배하는 건 어려울 것 같네.”

오래지 않아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드러났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안일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자네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새로이 발생한 균열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파동은 B급 수준이네.”

즉, 지금 현장에 있는 C급 초인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균열이라는 뜻이었다.

“협회뿐만 아니라 길드와 가문에도 지원을 요청해야 할 걸세. 그리고 캐리어는…….”

중년 남성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뒷말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구할 수 없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납득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생명에 경중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선 그렇지도 않았다.

이렇듯 균열은 전조조차 없이 발생하여 도심을 초토화시킨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초인뿐인데, 초인은 전체 인구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소수의 초인 덕분에 간신히 일상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귀했다.

캐리어들을 대신하여 목숨을 불사르기엔 초인들의 생명이 너무나 귀중했다.

재앙에 한없이 가까운 현실이 그렇게 만들었다.

“부디 내 선택을 이해해 주게. 아니, 차라리 나를 원망하게나…….”

씹어뱉듯, 잔뜩 억눌린 목소리.

중년 남성은 죄책감으로 물든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안일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스마트 워치를 조작해 본부에 연락을 넣었다.

길드와 가문에 긴급 지원을 요청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필요한 일을 끝마치고 나서야 그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 합니다.”

“다행히 자네라도 살아남았으니, 지원이 올 때까지는 우리 곁에서 절대로…….”

그가 무어라 말을 이어 나가기도 전에 안일한은 몸을 돌렸다.

동시에 짤막하게 내뱉었다.

“……대신 마법사님도 제 선택을 이해해 주세요.”

안일한은 말을 맺은 즉시 지면을 박찼다.

“자, 자네!”

등 뒤에서 중년 남성의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오히려 속도를 가일층 끌어올렸다.

‘……또다시 내 사람들을 잃을 순 없어.’

지옥 같은 장소, 지옥 같은 상황에서 또다시 허무하게 잃을 수 없었다.

그런 무력감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야말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린 덕분일까.

“티, 팀장님!”

그의 팀에 속해 있는 팀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어어어……

수십. 아니, 일백이 훌쩍 넘는 언데드 대군이 팀원들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개중에는 미처 피하지 못해 언데드 무리에 그대로 집어삼켜지는 인원도 있었다.

“끄아아악!”

단말마를 끝으로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팀원들.

안일한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주위를 살피는 한편.

머리를 혹사시키며 대책을 강구했다.

‘건물로 피난시킬까? 그래선 퇴로가 막혀. 흩어지라고 하면 일부는 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을까?

그런 의문조차 현 상황에서는 사치였다.

저만한 대군이다. 녀석들이 인원을 나누면 결국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B급 몬스터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여기서 몬스터 무리가 분산되면…….’

오히려 나중에 초인들이 당도했을 때 처리하기가 더욱 곤란해지는 건 물론.

피해 반경도 훨씬 넓어질 터였다.

“……제길!”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초인뿐이었다.

결국은 돌고 돌아 초인이다.

캐리어에 불과한, 재능 없는 그에겐 제 사람을 구하는 일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딱 하나,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미끼가 된다면.’

최소한 살아남은 팀원들이 도망칠 틈을 벌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무의미한 희생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타닷-

안일한은 언데드 대군을 향해 돌진했다.

분명 이성보단 감정적인 이유였다.

이를 알면서도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지려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더 이상 무기력하게 내 사람을 잃을 수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념하에 안일한은 특성을 발동시켰다.

‘앞서간 자의 그림자.’

이거라면 최소한 발악쯤은 가능할 것이다.

순식간에 죽지만 않는다면, 팀원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르르륵-

짙은 음영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솟구쳤다.

이윽고 각각의 그림자가 사람의 형상을 이루어 갔다.

하지만 오크 투사 때와는 명백히 다른 양상이었다.

각 그림자가 중첩되고, 산만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럴 수가.”

이대로라면 눈앞의 그림자의 움직임을 재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짙은 무력감에 온몸이 떨렸다.

결국 그의 행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실감하게 된 까닭이었다.

꽈악-

잇몸에 피가 나도록 이를 꽉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을 느끼며 다가올 죽음을 두 눈 똑바로 뜬 채 노려봤다.

바로 그 순간.

타닷-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말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하는 가운데, 그녀 역시 안일한을 바라봤다.

그 상태로 여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인 협회 소속 캐리어 2팀의 팀장 안일한, 맞죠?”

“다, 당신은…….”

“아, 저요?”

상황에 맞지 않은 나른한 목소리.

그녀는 쿡 하고 웃으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저는 오윤진이라고 해요.”

재앙의 마녀 오윤진.

이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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