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첫 만남 (1)
캐리어의 삶은 고단하다.
마치 종말이라도 눈앞에 둔 것인 양, 세상 곳곳에 균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요즘은 더더욱 그랬다.
그 증거로써.
-[대한 초인 협회] 금일 23시 51분, 상황 발생. 수원시 근교에 C급 규모의 균열 발생. 캐리어 2팀은 즉시 지원 바람.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도 이렇듯, 협회로부터 긴급 호출 문자가 왔다.
안일한은 무심한 눈길로 스마트 워치를 살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어나려는 찰나.
“……!”
순간적으로 온몸이 굳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문자 속 내용, 정확히는 균열이 발생한 장소 때문이었다.
‘수원이라…….’
그의 손끝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수원은 그에게 있어 트라우마로 남은 장소인 탓이었다.
‘……하필이면.’
수원 대참사.
도심 한복판에 발생한 게이트의 변이, 그로 인한 범람으로 민간 피해는 물론.
몇몇 초인들이 인명 구조 중에 순직하기까지 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리고 순직한 초인들 중에는 그의 어머니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됐건만.’
현재 안일한, 그의 나이는 37살로 협회 소속 캐리어로 활동한 세월만 17년이 넘었다.
협회 소속 캐리어 2팀을 이끄는 팀장으로, 캐리어치곤 업계에서 나름 유명했다.
일처리가 확실한 건 물론, 어지간한 몬스터를 상대로도 움츠러들지 않을 정도로 경력이 풍부했다.
그런 그조차도 여전히 도심 한복판에 균열이 발생하면 온몸이 굳었다.
트라우마란 그만큼 강력했다.
그래서 더더욱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책무를 저버릴 이유가 될 순 없겠지.’
안일한은 떨리는 손끝을 애써 무시한 채 나갈 채비를 갖췄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초인이지만, 전투 이후 공공질서를 되찾는 건 오롯이 캐리어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 쓸쓸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
…
…
상황 발생시 캐리어의 임무는 명확했다.
초인들의 전투 과정에서 민간인을 대피시키는 것.
그리고 전투 이후, 몬스터의 사체에서 비롯된 부산물을 처리하는 것.
남겨진 사체는 통행을 방해하고, 몬스터의 부산물들은 민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탓이었다.
그렇기에 협회 소속 캐리어들은 지금처럼 주로 도심에서 발생한 현장으로 파견됐다.
보통 균열이 발생하는 오지산간이나 인적이 드문 장소와는 달리 도심은 위험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할 확률도 높을뿐더러, 범람하듯 밀려드는 몬스터 무리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는 경우도 더러 있는 까닭이었다.
자연히 현장에 임하는 협회 소속 캐리어들은 항상 긴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안 팀장님, 이쪽입니다!”
한껏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30대 남성.
그를 향해 안일한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곧장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상황은?”
“발생한 균열은 하나이며, 출몰한 몬스터는 오크 투사입니다! 현재 초인 1팀과 3팀이 응전 중에 있습니다!”
“민간인은 전부 대피시켰나?”
“네, 다행히 이번 균열은 거주 지역을 피해간 데다가 시간도 자정이라 통행량 자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음.”
팀원의 보고에 안일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대피를 끝마치고, 2개 팀이 균열 하나에 붙었다면 대략 20분 전후로 상황이 끝날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난 다음, 안일한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외곽에서부터 작업 시작하지.”
“지금 바로 전파하겠습니다!”
팀원의 대답을 끝으로 안일한은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귓가가 먹먹해졌다.
전투에 따른 굉음과 몬스터가 내지르는 포효 소리 때문이었다.
초짜라면 당황할 수 있겠지만, 그는 무려 17년 경력의 프로였다.
이 정도면 일상적인 소음이자, 분위기에 불과했다.
그럴 터인데…….
부르르-
떨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수원이라는 장소, 그리고 어머니를 잃었을 때와 꼭닮은 상황 때문이리라.
그런 내막을 알 턱이 없는 팀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어머니와 관련된 트라우마는 단 한 번도, 누구에게도 밝힌 적 없는 비밀이었다.
그러니 팀원이 보이는 의아한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더욱이 이제와 새삼스레 밝힐 생각도 없는 만큼, 그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진정하자.’
안일한은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짤막하게 내뱉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네.”
“너희들은 외곽부터 정리하도록.”
“팀장님께선 바로 전선으로 가십니까?”
팀원의 물음에 안일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으로서 그의 역할은 팀원들의 캐리어 업무 수행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전선을 살피고, 양상에 따라 팀원들의 움직임을 제어하거나 지시를 내리는 일이 주를 이루었다.
직접 전선에 나서야하는 만큼 가장 위험한 일이었으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팀원이 무턱대고 작업에 몰두하다 몬스터와 마주치는 불상사를 피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그럼 이동하도록.”
“알겠습니다!”
팀원은 씩씩하게 대답한 후, 곧바로 몸을 돌렸다.
반대로 안일한은 곧장 전투가 벌어지는 한복판을 향해 갔다.
도착할 무렵.
카가가강-!
초인들과 오크 투사의 전투가 그를 반겨줬다.
정확히는 초인들의 몬스터 학살극에 가까웠다.
몬스터의 개체수를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몬스터 몇 마리에 붙들려 생사투를 벌여야 하는 시점에서 이미 상황은 글러먹은 셈이니.’
실제로 균열에선 초인들이 학살하는 것 이상으로 몬스터가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다섯 초인이 1개 팀으로, 총 2팀이 응전하고 있음에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칫 몬스터가 새어나오면 꼼짝없이 몬스터와 마주하게 될 터.
초인들과 달리 스텟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그는 몬스터를 당해낼 수 없다.
즉, 마주치는 순간 죽음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안일한은 쫄지 않았다.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었다.
실제로.
쿵! 쿵! 쿵!
오크 투사 하나가 초인들의 두터운 방어를 기어코 뚫고 나왔을 때도 그는 표정 한 점 변하지 않았다.
반면 이 사실을 눈치챈 초인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자, 잠깐!”
“맙소사! 저쪽에 캐리어가 있어!”
“마법사! 저 빌어먹을 오크 녀석부터 처리를……!”
어느 초인의 외침에 반응해 한 마법사가 다급하게 마탄을 준비했다.
하지만.
‘마법사님의 도움을 받기에는 늦겠어.’
그 전에 오크 투사 녀석의 큼지막한 박도에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질 터.
이미 도움을 받기에는 늦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그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정확히는 그가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그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16살, 각성과 함께 절망을 안겨 준 능력이자, 그 이후 십여 년 넘게 미구현 상태로 남아 있던 능력.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수 년 전, 갑작스럽게 구현되어 버린 특성.
‘앞서간 자의 그림자.’
안일한은 한차례 깊게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짓쳐드는 오크 투사를 노려봤다.
이윽고 그의 시야에 짙은 음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