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나머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꽈악-
왼 주먹을 말아쥐는 안일한.
제니퍼 퀘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자 다시금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끝까지……!’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나는 녀석이었다.
그녀는 혀를 내두르는 한편, 코어의 출력을 다급하게 끌어올렸다.
지금처럼 밀착하고 있다시피 한 간격은 명백히 그녀에게 불리한 까닭이었다.
화아앗-!
마법이 아닌, 순수한 마나 그 자체를 발산한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기파는 안일한에게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서서히 압도하기 시작했다.
제니퍼 퀘이드는 이 사실을 속으로 갈무리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모양이네.’
피눈물을 흘리며 씹어뱉듯 내뱉던 모습이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그녀는 문득 녀석에게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확인해 본 결과, 그렇지 않았다.
‘힘이나 마나의 출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바뀐 거라 해 봐야 마음가짐에 불과한 듯했다.
그렇다면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다.
‘각오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법이니…….’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녀석은 아직 어려서 이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시금 여유를 되찾은 가운데.
그녀는 일부러 마나를 폭발시키듯 뿜어냈다.
쩌-엉!
굉음과 함께 반탄력이 발생했다.
그 힘을 활용하여 간격을 크게 벌리는 한편.
곧바로 준비해 둔 마법을 완성시키며 생각했다.
‘아예 불구로 만들어 데려가는 쪽으로 생각해야겠어.’
어설프게 전의를 꺾으려다 이런 사단이 발생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심력은 심력대로 소모된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불구로 만들어 강제로 끌고 가는 쪽이 훨씬 이득이었다.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수법이 거칠어도 원망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 다짐하며 마법을 쏟아내는 순간.
“……!”
제니퍼 퀘이드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유는 다름 아닌 안일한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녀석의 움직임이 어딘가 달라진 탓이었다.
콰광! 쩌저적-!
대단위 공격 마법으로 인해 굉음이 터져 나오고, 대지가 초토화되는 가운데.
녀석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힘 있는 발걸음으로 멀쩡하게 메케한 연기 속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힘을, 아니 정신력을 회복하기라도 한 건가? 재생 계열 스킬에 그런 효과도 있다고?’
제니퍼 퀘이드는 눈매를 좁혔다.
실제로 녀석은 마치 각성이라도 한 듯, 활력이 넘치는 움직임을 보였다.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 나갔다.
콰광-! 쾅! 콰과과광!
대단위 공격 마법과 더불어 그사이에 대처하기 어렵게끔 속도감 있는 마법을 뒤섞었다.
거칠게 나가기로 작심한 만큼, 마법의 위력은 하나같이 경천동지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공세를 피했다.
각기 다른 종류의 마법을 당연하다는 듯 대처하며 간격을 좁혀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모를 수가 없었다.
‘저 녀석, 뭔가 있어……!’
지금 녀석이 보이는 움직임은 결코 적응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미래 예지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녀가 펼칠 마법이 무엇인지를 미리 인지하고 사전에 움직임을 취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식한 순간, 그녀의 안색은 심각할 정도로 굳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제니퍼 퀘이드는 무의식적으로 소리쳤다.
그만큼 녀석이 새롭게 발휘하는 능력은 어처구니없는 수준이었다.
마음이 급해졌지만, 그녀는 애써 조급함을 억눌렀다.
그 상태로 머리를 싸매며 대책을 강구했다.
‘불과 수십 초 이후의 미래까지 볼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뇌가 정보량을 버틸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초 단위로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은 배제한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분명 대책이 나올 것이다.
위기의식의 발로일까, 제니퍼 퀘이드는 금세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최후의 순간에 마법을 바꾸는 식으로 간다면…….’
마법의 완성 직전에 마나 배열을 바꾸어 마법 그 자체를 바꾸는 것.
이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거라면 녀석도 대처하지 못할 게 틀림없었다.
판단 즉시 그녀의 양손이 바쁘게 허공을 휘저었다.
지이잉-!
손짓에 반응해 마나 배열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그녀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찰나 간에 바꾼 마법을 완성시켰다.
‘이거라면……!’
반드시 통한다.
확신을 더하려는 순간.
스르륵……
돌연 녀석이 대처를 달리했다.
마법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과 더불어 해당 마법을 파괴하기에 적합한 무공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콰직-!
결과는 녀석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실을 접한 순간 제니퍼 퀘이드의 표정은 사색으로 물들어 갔다.
“이럴 수가!”
예상이 틀렸다.
저 녀석은 초 단위로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무슨 수를 썼기에 뇌가 그만한 정보량을 감당할 수 있는 건지.
아니, 그 전에.
‘분명 다 죽어 가던 녀석이 무슨 수로……!’
이토록 멀쩡해졌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불가해의 극치였다.
마치 미지(未知)의 영역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한 기분 속에 그녀는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실제로.
타닷-
녀석은 그 모든 공세를 뚫고 그녀의 앞에 섰다.
악에 받친 표정, 그리고 분위기는 그녀로 하여금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휘익-!
녀석은 마침내 그녀의 간격까지 도달해 피할 수 없는 일격을 내질렀다.
다급하게 방어 마법을 몇 겹씩 전개했다.
바로 그때, 느닷없이 녀석의 손아귀가 요사스럽게 물들었다.
이를 인식한 순간.
쩌-엉!
어마어마한 충격이 복부를 강타했다.
“끄, 윽!”
순간적으로 호흡이 멎은 듯,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몸 상태를 점검했다.
‘마나 순환로가, 어그러졌어?’
단 일격.
그로 인해 모든 마법의 근간인 마나 흐름이 뒤틀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빠르게 전신의 순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인식한 순간, 불현듯 그녀의 뇌리에 녀석의 선고와도 같은 발언이 스쳐 갔다.
-그럼 각오하시죠. 앞으로는 지옥을 보게 될 테니.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가운데.
그녀의 머릿속은 단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 이대로 가면…….’
죽는다.
틀림없이 죽는다.
공포로 머릿속이 잠식되는 가운데, 사고가 따라갈 틈도 없이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쩌저적-
타 차원으로 이어지는 균열을 개방한 것이다.
이에 안일한은 일순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녀석의 반응을 확인할 여유도 없던 그녀는 남아 있는 마나를 쥐어짜서 그대로 폭발시켰다.
쩌-엉!
굉음이 귓가를 먹먹하게 만드는 가운데.
반탄력을 활용해 균열 너머로 온몸을 내던졌다.
* * *
지이이잉-
불규칙적으로 일렁이는 균열.
나는 심연과도 같은 구멍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실책이다.’
차마 제니퍼 퀘이드가 도망칠 거란 생각은 못 해 봤다.
당연히 그에 따른 대책도 생각지 못했다.
이는 명백한 실책이었다.
꽉 쥔 주먹에 힘이 절로 드는 가운데, 문득 그림자의 존재가 뇌리를 스쳤다.
‘녀석이라면…….’
분명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진정시켜 줬을 것이다.
그러고는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로 대안을 제시해 줬을 터였다.
하지만 더 이상 녀석은 없다.
나머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내가 해야 해.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를 짓는다.’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 또한 가능할 터였다.
비록 서툴고 부족할지언정 틀림없이 그랬다.
결국 녀석은 나니까.
각오와 함께 균열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
…
…
‘반드시 제니퍼 퀘이드를 죽인다.’
그런 일념으로 나는 그녀를 쫓았다.
하지만 상대도 단 하나의 일념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생존. 생을 향한 강렬한 의지.
그렇기에 몇 시간 동안은 똑같은 양상이 펼쳐졌다.
제니퍼 퀘이드는 잇달아 균열을 일으켜 다른 차원으로 도주했고, 나는 그녀가 열어둔 균열을 타고 넘어가서 계속 추격했다.
…
…
…
대략 하루쯤 지났을 무렵.
제니퍼 퀘이드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
도망치기를 멈추고 다시금 내게 대적해 오는 것이다.
‘바라던 바다.’
나는 기꺼이 응했다.
그림자는 이미 소멸했지만, 녀석은 미구현 특성의 능력이라는 형태로 나와 함께했다.
짙은 음영으로써 제니퍼 퀘이드의 마법에 대처하는 길을 훤히 밝혀 준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한층 강하게 그녀를 압박할 수 있었다.
쩌-엉! 콰직-!
S급 마법사의 두터운 방어를 뚫고, 제대로 된 유효타를 꽂아 넣었다.
“……커, 흑!”
제니퍼 퀘이드는 피를 왈칵 토해내며 창백한 안색으로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지금처럼 속절없이 당한 경험 자체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고통에 취약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
…
…
시간의 흐름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사이.
제니퍼 퀘이드의 대응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크르륵-!
몬스터가 존재하는 차원으로 도주한 것이다.
모종의 아티팩트가 있는 건지, 몬스터는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오로지 나만 노렸다.
하지만.
‘몬스터따위, 이제 와선 상관없겠지.’
약간 지칠지언정, 온몸에는 여전히 활력이 넘쳐 흐르고 코어의 마나는 언제나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군하듯 나아갔고, 그만큼 제니퍼 퀘이드의 안색은 초췌해져 갔다.
…
…
…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실 딱히 상관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건 딱 하나.
“……제발, 제발 그만하자. 응?”
결국 제니퍼 퀘이드가 내 눈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녀의 안색은 끔찍하리만큼 초췌했다.
특유의 금발은 대걸레처럼 푸석푸석했고, 어느새 얼굴에는 주름으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폭삭 늙어 버린 것이다.
이를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는지, 그녀는 체면 따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끊임없이 애원했다.
“내 모든 것을 네게 줄게! 아니지, 차라리 네 밑으로 들어갈게!”
돈과 권력을 전부 다 넘기는 건 물론.
심지어 내 밑으로 들어가겠다며 싹싹 빌었다.
그토록 당당하던 자가 이렇게 추락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대답 없이 마무리를 위해 다가가는 순간.
“……내가 죽으면 네 녀석도 성히 살아 돌아가지 못할 텐데?! 차원을 떠도는 망령이 되고 싶어?!”
제니퍼 퀘이드는 표독스러운 얼굴로 내게 쏘아붙였다.
애원에서 협박까지.
한순간에 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희극이 따로 없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만큼, 나는 묵묵히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다 죽어 가고 있음에도 S급 마법사의 감각은 어디 가지 않았는지, 그녀의 안색은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제발! 내가 실언을 했어! 부디 아량을……!”
그녀가 무어라 말을 끝맺기도 전에 주먹을 내질렀다.
제니퍼 퀘이드는 마지막까지 마나를 끌어올려 반항했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콰직-!
주먹에 무언가가 으깨지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골통을 그대로 부숴 버린 것이다.
본능적인 거부감 속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느다랗게 뜬 눈꺼풀 사이로 흩날리는 핏물이 보였다.
‘드디어…….’
끝났다.
인식과 함께 주먹을 거둬들일 무렵.
털썩-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제니퍼 퀘이드는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녀에게서 비롯된 핏물이 지면을 붉게 물들였다.
그제야 와닿았다.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이 말이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끝났나.’
땅을 짚은 손바닥으로부터 핏물 특유의 끈적한 촉감이 느껴졌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바지도 시뻘겋게 물들어 갔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불빛은…….”
검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는 하늘, 그 속에는 달을 연상케 하는 밝은 빛이 세 개나 찍혀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광경.
인식한 순간, 새삼스레 제니퍼 퀘이드의 저주와도 같은 유언이 뇌리를 스쳐 갔다.
-차원을 떠도는 망령이 되고 싶어?!
차원을 정처 없이 떠도는 망령.
다른 건 몰라도 그 말 하나는 공감이 됐다.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분명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균열을 자의로 개방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
이미 싸늘하게 식어 버린 제니퍼 퀘이드뿐이었으니까.
내 힘으론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아하하…….”
왠지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오는 한편.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릴 순 없겠지?’
그건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속에는 생을 향한 의지와 열망이 샘솟는 가운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과연 이곳을 벗어나,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단서는커녕, 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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