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지금껏 재미 좀 봤습니까?
몇 시간 후.
“……하아, 하아.”
제니퍼 퀘이드는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몰아 내쉬었다.
그러자 미약한 두통이 일며 관자놀이가 찌르르 울렸다.
이 사실을 인식한 순간, 그녀는 새삼스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저 빌어먹을 꼬맹이 같으니……!’
제니퍼 퀘이드는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날카롭게 째려봤다.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새파랗게 어린 청년, 안일한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비틀-
만신창이,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정확히는 엉망진창인 건 그의 의복일 뿐, 자세히 보면 정작 몸 상태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사하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
축 늘어뜨린 어깨부터, 땅바닥에 처박을 기세로 떨군 고개까지.
녀석은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명백히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 그럼에도 녀석은 기어코 한 발짝 내디뎠다.
……터벅
전투는커녕, 운신조차 힘들어 보였지만 꿋꿋하게 움직이는 안일한.
그녀의 두통은 바로 거기서 비롯됐다.
“이 지독한 녀석!”
제니퍼 퀘이드는 진심으로 진저리를 쳤다.
녀석이 기어코 그녀로 하여금 가진바 마법을 전부 꺼내 들게 만든 까닭이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는 재생 효과로 인해 겉으로는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대신 녀석의 속은 이렇듯 엉망진창이었다.
‘분명 이 정도면 이미 이지를 상실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준일 텐데……!’
정신이 붕괴됐어도 이미 한참 전에 붕괴됐을 터.
그럼에도 악착같이 움직이는 녀석의 모습은 이젠 소름 끼치기까지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는 감정의 문제로, 제니퍼 퀘이드의 상태는 비교적 멀쩡했다.
호흡이 살짝 흐트러졌을 뿐.
마나량도 충분할뿐더러, 별다른 타격조차 없었다.
‘마나 저장 아티팩트까지 고려하면 며칠 밤이고 전투는 가능하겠지만…….’
가부를 떠나 꼬맹이를 상대로 전심전력을 다해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히 거슬렸다.
마치 언데드를 연상케 하는 녀석의 상태를 보고 있자니 이제는 불쾌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그만 적당히 해……!”
제니퍼 퀘이드는 감정을 듬뿍 담아 마법을 전개했다.
이에 안일한이 딛고 선 지면이 순간적으로 요동쳤다.
그 순간.
휘청-
녀석은 마치 명령어가 입력된 기계처럼 전신을 뒤흔들며 반응했다.
그 탓에 마법진으로부터 솟구친 거대한 쇠말뚝은 녀석의 급소가 아닌 팔뚝을 꿰뚫었다.
푸확-!
선혈이 허공에 튀며 관통당한 부위로부터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정도면 근육을 넘어 뼈마디를 아작낸 수준의 타격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여태 그랬듯. 일순 몸을 부르르 떨 뿐.
콰직-
아무렇지도 않게 반대쪽 주먹으로 쇠말뚝의 기둥을 부러뜨렸다.
그러고는 남아 있는 말뚝의 파편을 뽑아낸 채 다시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말 없이 피를 뚝뚝 흘리며 다가오는 모습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처음 느껴 보는 감정, 이에 제니퍼 퀘이드는 순간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제니퍼 퀘이드는 마치 비명을 지르듯, 새된 목소리를 내지르며 온갖 마법을 전개했다.
그녀의 정면에 엄청난 속도로 마법진이 생성되는 한편.
이내 그로부터 각기 다른 마법이 잇달아 발현되기 시작했다.
우우웅-!
채찍처럼 쇄도해 가는 시뻘건 불꽃 세례부터, 시퍼런 전류를 흩뿌리는 번개의 창.
거기에 쇠사슬과 팔뚝만 한 넝쿨, 마지막으로 공간째로 절단하는 참격까지.
그야말로 마법의 향연이 전부 한 사람, 안일한을 폭격했다.
콰과과과광-!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났다.
위력은 물론이고, 규모를 따져봐도 그 속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제니퍼 퀘이드의 마법은 멈추지 않았다.
‘보나 마나 끈질기게 덤벼들겠지!’
언데드처럼 다시금 달라붙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제니퍼 퀘이드는 작심하고 대단위 공격 마법을 전개했다.
이 정도면 B급 초인 정도는 단번에 죽일 수 있는 건 물론.
심지어 A급 초인에게도 막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마법이 완성되는 찰나.
‘……설마 죽진 않겠지?’
순간 고민했으나, 결정을 뒤집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저 녀석의 적응 속도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야.’
과장을 조금 보태서 안일한은 실시간으로 그녀의 마법에 적응했다.
수중에 있는 얼마 되지도 않는 패로 어떻게든 최적화된 대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갈수록 까다로워지니 이제는 적당히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니 목숨을 위협하는 정도가 오히려 딱 적당했다.
‘팔이나 다리 정도는 없어도 예언을 뱉어내는 데는 별 지장 없을 테니까.’
숨만 붙어 있으면 충분히 ‘예언자’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계산 아래, 제니퍼 퀘이드는 마법을 일으켰다.
콰앙-!
엄청난 규모의 낙뢰가 안일한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녀석이 회피하는 순간.
‘그럴 줄 알았다……!’
예상했다는 듯, 녀석의 회피 지점에 미리 준비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 즉시 허공에 칠흑같이 어두운 점 하나가 찍혔다.
광택조차 집어삼킬 것만 같은 점은 엄청난 속도로 사물을 빨아들였다.
슈와악-!
마치 블랙홀처럼 주변의 공간째로 일그러뜨리며 집어 삼키는 점.
이에 녀석은 호신으로 맞섰다.
쩌저저저적-!
심상치 않은 소리가 터져 나오는 한편.
녀석의 얼굴이 전에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팔 한쪽은 가져가지……!’
지금껏 반항한 대가로는 한참이나 부족했지만, 그나마 속이 시원했다.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가운데.
쩌-엉!
무형의 권격이 블랙홀을 사방에서 두들겼다.
예의 희한한 권법이었다.
제니퍼 퀘이드는 즉시 표정을 구기며 반응했다.
블랙홀 마법의 마나 배열을 수정한 것이다.
그러자.
콰앙-!
블랙홀이 그대로 폭발했다.
시커먼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나는 가운데, 그녀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번 건 제대로 들어갔어……!’
처음 녀석의 재생 능력을 알게 됐을 때보다 훨씬 선명한 감각이 감지됐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절망으로 물든 녀석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꾹 참았다.
그 대신 만일을 대비해 연기가 피어나는 범위 전체를 포위하듯, 마법을 전개했다.
언제든 공세를 이어갈 준비를 끝마치고 나서야 연기가 걷히길 기다렸다.
마침내 시야가 말끔해졌을 때.
우뚝-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안일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니퍼 퀘이드는 눈매를 좁히며 자세히 바라봤다.
녀석의 상체는 혈흔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사지는 멀쩡했다.
인식한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대체 언제까지!”
참다못해 분노를 터뜨리는 찰나.
“……잠깐만.”
그녀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안일한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본래라면 지금쯤, 경련과 함께 무언가 움직임을 취했을 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선 채로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동이 없는 것이다.
“……끝까지 곤란하게 만드네?”
제니퍼 퀘이드는 미간을 찌푸리는 한편.
만일을 대비하여 녀석을 에워싼 마법은 그대로 유지한 채 걸음을 옮겼다.
일정 거리에 접근했을 때,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고,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건가?’
마나 코어의 희미한 박동이 느껴지는 거로 보아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를 깨닫자 그녀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스스로도 어처구니없었지만, 희열마저 느껴졌다.
제니퍼 퀘이드는 감정을 음미하며 야릇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나를 귀찮게 만든 죗값은 죽을 때까지 치르게 될 거야.”
앞으로 녀석은 사람답게 살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고통에 신음하며 생을 강제로 연명당하게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상상을 떠올리는 사이.
마침내 제니퍼 퀘이드는 안일한과 지근거리에서 마주 섰다.
그녀는 녀석을 향해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혹시 중간에 깨어나서 날뛰면 안 되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을 대비해 금제를 가할 생각이었다.
이는 결코 과한 조치가 아니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본 결과, 안일한의 상태는 생각 이상으로 멀쩡했다.
즉, 언제 반항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원래라면 진작 정신이 붕괴되어 판단조차 불가능해야 정상인데.’
정말이지,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제니퍼 퀘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에 마나를 그러모았다.
“하여간, 방심할 수 없는…….”
투덜거리며 금제 마법을 가하려는 순간.
터억-
갑작스럽게 억센 손길이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
“무슨……!”
제니퍼 퀘이드는 두 눈을 부릅뜨며 반응했다.
아니, 곧바로 반응하려 했지만 시야에 들어온 광경으로 인해 순간 멈칫했다.
어느새 안일한이 고개를 치켜든 채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것도 피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이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섬뜩함이 밀려드는 가운데.
“……지금껏 재미 좀 봤습니까?”
녀석이 씹어뱉듯 말했다.
“그럼 각오하시죠. 앞으로는 지옥을 보게 될 테니.”
* * *
“감히……!”
내 말에 제니퍼 퀘이드의 표정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녀의 눈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 눈에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모든 것이 보인다.’
제니퍼 퀘이드의 손아귀에서 어른거리는 마나의 파동이 훤히 보였다.
거기서 발현될 마법의 궤적과 규모까지, 전부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나를 포위하듯, 에워싸고 있는 마법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스르륵-
어떤 식으로 마법이 펼쳐질지, 그리고 나는 이에 맞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마치 한 편의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재생됐다.
나 대신, 내 형상을 띤 그림자가 제니퍼 퀘이드의 마법에 맞서 최적의 대응 방식을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즉,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내 능력…….’
내가 가진 미구현 특성.
‘앞서간 자의 그림자’의 효과였다.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야말로 녀석이 내게 남긴 마지막 유산이었다.
빠득-
나는 이를 소리가 나도록 깨물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정보를 받아들였다.
머리에 새기고, 온몸에 각인시켰다.
‘당신은 결코 모를 거야.’
지금까지의 전투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또한 그림자가 제 한 몸 희생하여 쌓아 온 것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눈앞의 적은 감히 상상도 못 할 터였다.
그러니 하나씩 알려 줄 생각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몸에 새겨 줄 작정이었다.
쿠구구구궁-!
각오에 반응하듯, 코어의 마나가 용솟음치는 가운데.
나는 아낌없이 기세를 피워 올리며 왼손을 말아쥐었다.
‘이제는 내 차례다.’
그림자가 말했듯.
제니퍼 퀘이드의 숨통을 끊을 때가 왔다.
재앙의 싹을 뿌리 째 뽑아 없애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힐 시간이었다.
- 20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