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네 차례가 머지않았다
‘……저건 명백히 이상해.’
제니퍼 퀘이드, 그녀 정도 되는 마법사의 감각은 초월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마나에 관한 감지는 절대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조금 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유효타였어. 그건 절대적이야.’
그럼에도 안일한은 옷자락만 길게 찢어졌을 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지금 당장 그녀를 향해 불문곡직 달려드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바로 그때, 불현듯이 그녀의 뇌리에 하나의 가능성이 스쳐 갔다.
‘설마…….’
하지만 당장 의문을 확장시켜 나갈 여유는 없었다.
안일한이 어느새 사정권에 들어선 까닭이었다.
제니퍼 퀘이드는 횡으로 손을 내저으며 순식간에 다섯 개의 마법을 전개했다.
그로부터 수십 가닥의 쇠사슬이 쏘아져 나갔다.
촤르륵-!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쇠사슬 세례에 녀석은 표정을 굳혔다.
그녀의 쇠사슬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상당히 불규칙적인 궤적을 그리는 까닭이었다.
카가가가강-!
그럼에도 놀라우리만큼 녀석의 대처는 깔끔했다.
18살의 애송이가 아닌, 산전수전을 다 겪어 노련함을 겸비하게 된 초인처럼 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불가해한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스스로 떠올린 가능성에 확신했다.
‘저 아이, 틀림없이 재생 계열의 스킬을 가지고 있어.’
재생 계열 스킬.
그것도 틀림없이 등급이 상당할 터였다.
피해가 적지 않을 게 분명함에도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회복했다는 사실이 명백한 증거였다.
사고를 전개할수록 확신이 더해지는 가운데.
‘……재미있네?’
제니퍼 퀘이드의 두 눈은 이채로 가득 찼다.
녀석이 가진 ‘예언’이라는 능력부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련함까지.
지금껏 선보인 능력들도 놀라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새삼스럽게 탄성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제니퍼 퀘이드는 두 눈을 빛냈다.
‘재생 계열 스킬이라니…….’
이는 앞선 능력들과는 다른 의미로 놀라웠다.
재생 계열은 아직 그녀가 확보하지 못한 능력인 까닭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녀석이 재생 계열 스킬이 깃든 유물을 확보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언으로 재생 스킬이 담긴 유물이 발견되는 균열을 미리 알아내고, 찾아냈다? 아니, 그건 말이 안 돼.’
설령 알아냈다고 한들, 확보는 불가능할 터였다.
균열을 임의로 일으킬 수 없는 까닭이었다.
세상에서 균열을 자의로 개방할 수 있는 초인은 오직 한 명, 그녀뿐이었다.
미래의 균열이 아닌, 지금까지 발생한 균열 중 한 곳에서 발견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 내 수중에 먼저 들어왔을 테니까.’
제니퍼 퀘이드는 ‘차원의 여행자’라는 이명답게, 평소에도 차원을 넘나들며 유물 확보에 주력했다.
그만큼 무수히 많은 차원을 넘나들었고, 언제나 현실에 균열로 발생하기도 전에 공략을 끝마쳤다.
즉, 그런 유물이 있다면 그녀가 먼저 확보했을 터였다.
균열에 관한 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녀를 앞지를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알 수가 없네?’
제니퍼 퀘이드는 다시금 쇄도해 오는 안일한을 지그시 응시하는 한편.
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을 곱씹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유물을 확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네.’
녀석을 사로잡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아무런 위협조차 느끼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머릿속에는 녀석에게 밀린다거나, 패배할 가능성은 아예 배제되어 있었다.
그 대신, 제니퍼 퀘이드는 조금 다른 걱정을 떠올렸다.
‘보통 저런 계열은 스킬뿐만 아니라 유물의 효과부터가 정신적인 데미지를 줄 텐데. 괜찮으려나?’
재생 계열 능력 특유의 반동으로 인해 정신에 부하가 가해질까 염려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 사용자가 이지를 상실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대업에 커다란 지장이 될 터.
특히 낙일이 거의 소멸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 만큼, 예언자는 반드시 멀쩡한 상태로 손에 넣어야 했다.
‘……흐음, 고민이네.’
제니퍼 퀘이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 세례를 퍼부어 안일한의 접근을 저지하는 한편.
머릿속으로 방법을 골몰했다.
그러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쳐 갔다.
‘맞아, 그게 있었지.’
수중에 정신을 강제로 명료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유물이 있었다.
그거라면 정신력이 마모되거나 이지를 상실해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터였다.
‘필요할 때 강제로 회복시킬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 그 유물의 이점은 하나가 더 있었다.
이는 안일한이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더더욱 유효한 이점이었다.
‘재생 능력이 있는 한, 어지간해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겠지?’
마음 편하게 고문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끝없이 고통받으며 마음대로 생의 끈을 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 결국에는 그녀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만족스럽게 생각을 정리한 제니퍼 퀘이드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침 잘됐네. 슬슬 성가셨는데.’
지금까지는 녀석이 거슬리는 언사에도 출력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참으로 거슬렸는데, 때마침 잘됐다 싶었다.
‘최상급까진 아니어도, 썩 좋은 등급인 것 같으니.’
그러니 어지간해선 죽지 않을 터였다.
이 사실을 알았으니 더 이상 화력 조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판단은 곧바로 그녀의 행동에 반영됐다.
지잉-!
십여 개의 새로운 마법이 하늘과 지면에 무작위로 새겨졌다.
녀석이 이 사실을 눈치챌 무렵.
“늦었어!”
제니퍼 퀘이드는 동시다발적으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굉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화륵!
하늘에선 유성우를 연상케 하는 운석이 잇달아 떨어져 내렸다.
쿠구구궁-!
지면은 마법진에 호응하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규모며 위력까지. 조금 전의 다채로운 마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마법이었다.
녀석 또한 이를 느꼈는지.
“……!”
심각하게 낯빛을 굳히는 한편.
익숙한 자세를 취하며 충격에 대비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제니퍼 퀘이드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이미 끝났네.’
녀석과의 전투.
고작 18살에 불과한 아이와 손을 섞는 걸 전투라 칭하기에도 민망했지만, 어쨌든 그 끝이 보였다.
변수는 물론이고,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그녀의 승리로 끝날 터였다.
근거는 다름 아닌 수중에 있는 패의 가짓수였다.
‘녀석이 가진 패는 기껏해야 재생, 그리고 희한한 권법뿐이니까.’
제아무리 피해를 회복하고, 들어 본 적도 없는 형태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 한들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수단이 한정적인 이상, 적응하면 끝나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그녀는?
‘쓸 만한 마법만 추려도 최소 스무 개는 더 남아 있으니까.’
수단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수중에 패가 가득했다.
게다가 비상시를 대비하여 휴대하고 다니는 마나 저장 아티팩트의 여분도 충분했다.
즉, 녀석과의 전투는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애처롭네?”
제니퍼 퀘이드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녀의 말이 안일한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크윽!”
요동치는 대지와 쏟아지는 운석 세례.
그 속에서 안일한은 제 한 몸을 건사하느라 바쁜 까닭이었다.
제니퍼 퀘이드는 이를 야릇한 미소를 띤 채 바라봤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기대감을 떠올리는 한편.
다음에는 어떤 마법을 펼칠지, 더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민했다.
* * *
쩌-엉!
그림자는 무극삼권 제1초, 진천으로 요동치는 지면을 잠재우는 한편.
콰지직-!
무극삼권 제2초, 천라를 펼쳐 추락하는 운석을 정면에서 부숴 버렸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치잇!”
그럼에도 그림자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전투의 형세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까닭이었다.
이는 전적으로 제니퍼 퀘이드, 그녀가 펼치는 마법의 격이 달라진 탓이었다.
가히 자연재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마법.
때문에 그림자는 온갖 수단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타닷-
흑영신보를 통해 최대한 마법의 여파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탈혼지, 무영귀살각, 벽뢰수, 복마구권, 거기에 항마멸인장까지.
그야말로 모든 무공을 동원해서 제니퍼 퀘이드의 격이 다른 마법에 맞섰다.
하지만 전황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상대의 마법에 적응했을지언정, 상대에게는 유의미한 피해를 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를 증명하듯.
“너 정말 진심이었구나?”
“재롱을 보는 기분이라 나쁘진 않은데, 슬슬 질리네?”
“지옥을 보여 준다고 하지 않았니? 그러려면 네 작은 주먹이 내게 닿아야 할 텐데?”
제니퍼 퀘이드에게서 잇달아 조롱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묵묵히 인내하며 눈앞에 집중했지만, 야속하게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복이 찢어지고, 생채기와 흉터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크윽!”
즉, 아슬아슬하던 힘의 균형마저 깨지고 있는 것이다.
가랑비에 앞섶이 젖듯, 피해가 누적되는 가운데.
그림자는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잘 봐둬라.
마치 누군가에게 전하듯, 같은 말만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전략을 구상하지도, 대책을 강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점점 커져 가는 고통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티면서 속으로 되뇔 뿐이었다.
그런 그림자의 모습에 제니퍼 퀘이드는 진심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우와, 집념만은 인정해 줄게! 나도 지금껏 이토록 많은 마법을 써 본 건 처음이거든?”
“…….”
“설마 소모전을 노리고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 그런 얕은 전략이라면 조금 실망인데?”
“…….”
“그런 식으로 네가 이기려면 음……, 쉬지 않고 대략 일주일 정도 싸우면 가능할지도? 뭐, 그 전에 네 정신이 붕괴되겠지만 말이야!”
제니퍼 퀘이드.
그녀의 시선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그림자가 단지 미련하고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같은 몸을 공유하며, 제3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림자 녀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이다.
-판은 내가 깔아 주마.
그러니 너는 그 위에서 제니퍼 퀘이드의 숨통을 끊는 역할을 맡아 주길 바란다.
녀석은 실제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진 고통과 쏟아지는 조롱 속에서 말이다.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저자에게서 최대한 많은 마법을 이끌어내며, 최적화된 대응 방법을 몸에 주입시키고 있어.’
말 그대로 녀석은 내가 직접 결전에 나설 때를 대비해 판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녀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을 내게 전해 왔다.
-네 차례가 머지않았다.
속마음을 전해 듣는 순간.
그림자가 이전에 내게 건넸던 말의 진의를 깨달았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마지막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마지막 소임.
지금 그림자가 무모하리만큼 처절하게 펼치는 전투는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모든 일의 종지부를 무사히 찍을 수 있게끔, 토대를 닦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제 소임을 완수하고 나면……
‘……사라지는 건가.’
녀석은 말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벌써부터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새삼스럽게 녀석의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감상 따위에 젖어 있을 틈은 없었다.
‘네 목숨을 걸고 만든 기회라면…….’
헛되이 스러지지 않도록, 반드시 잡아채야 했다.
그러니 지금은 상실감을 느낄 때가 아니라 마음속 칼날을 보다 첨예하게 세워야 할 때였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생각했다.
‘그래, 모든 걸 담아 두지.’
녀석의 고통은 전부 제니퍼 퀘이드의 숨통을 끊을 비수로 화할 것이다.
예언과도 같은 다짐과 함께 부릅뜬 두 눈으로 전황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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