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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201화 (200/218)

201화 생의 무게가 그리 가벼워 보였더냐

“네깟 놈이 경원시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내 직접 증명해 주지……!”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선언 이후.

연후의 두 눈에서 새하얀 광망이 폭사했다.

더불어 그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여파는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거기에 맞닿은 순간.

“……크, 윽!”

김재학의 표정은 와락 구겨져 버렸다.

그만큼 연후에게서 비롯된 기운은 지극히 맑고도 순수했다.

심지어 연후의 생명력은 단순히 동수를 이루는 걸 넘어 그의 기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를 인식한 순간, 김재학의 뇌리에 조금 전의 발언이 스쳐 지나갔다.

-생명의 무게감을 보여 주지……!

연후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생의 무게.

그게 고스란히 힘으로 치환되어 숨통을 죄어오는 기분이었다.

김재학은 압박감 속에 문득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두려움을 느낀다고……? 이 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는 아티팩트의 힘으로 S급에 도달한 이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전능한 존재에서 다시금 무력한 존재로 추락한 기분이 드는 가운데.

김재학은 이를 애써 외면하며 분노로 치환시켰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분노와 함께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는 순간, 아티팩트로부터 파멸적인 힘이 흘러들었다.

이지가 흐트러지는 감각과 더불어 온몸에 그릇된 힘이 용솟음쳤다.

다시금 전능한 기분을 만끽하려 했지만, 상황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쿠웅-!

연후가 본격적으로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익숙한 무공, 무극삼권 제1초 진천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차원이 달랐다.

쩌-엉!

진각의 여파에 한층 더 강화된 침식의 기운이 사정없이 요동치는 것이다.

‘……진각이면 분명 시작에 불과할 터인데!’

진저리가 나는 무공, 무극삼권은 아직 전개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무극삼권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후웅-!

날카롭고도 삼엄한 투로에 따라 내지르는 권격.

이에 맞서 김재학은 미친 듯이 기운을 흩뿌렸다.

쩌엉-! 쩌-엉!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오는 한편.

맞닥뜨릴 때마다 막대한 기파와 함께 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상극인 두 기운이 치열하게 맞부딪히며 가까스로 힘의 균형이 유지됐다.

그럼에도 김재학은 표정을 한층 더 일그러뜨렸다.

‘나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얻은 힘인데 어째서……!’

녀석들을 압도할 수 없는 건지.

김재학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물론 상대도 생명을 불태운 대가로 얻은 힘이었으나,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분노만이 머리를 잠식했다.

이러한 감정은 광폭한 기운으로써 그대로 표출됐다.

쿠구구궁-!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뿜어져 나오는 기파.

동시에 김재학의 안면에 검붉은 핏줄이 돋아났다.

이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커헉!”

맹렬하게 몰아치던 연후가 시뻘건 선혈을 한 움큼이나 토한 것이다.

또한 그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처럼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이거야말로 연후가 현재 생사의 간극,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대로만 몰아붙이면……!’

머지않아 저 거슬리는 존재를 찢어발길 수 있다.

김재학은 그런 일념으로 한층 더 기세를 끌어올렸다.

“크윽……!”

어깨 위로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는 침식의 기운.

흉포하기 짝이 없는 기운은 그의 전신을 검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마치 연후의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것처럼, 그 또한 점차 마물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관없어. 전혀 문제 되지 않아.’

김재학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저 녀석들만 죽일 수 있다면 대가 따위, 기꺼이 치를 수 있었다.

그렇게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게 흘러갔다.

“이노옴! 어림없다-!”

포효하듯, 처절한 외침을 내지르며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고태식부터.

“……크읏! 쿨럭-!”

지나친 마나 소모로 인해 선혈을 흘리면서도 끊임없이 마법을 구사하는 오윤진.

“막지 못하면 죽음뿐입니다! 힘을 보태 주십시오-!”

거기에 진태진을 필두로 죽음을 불사른 채로 저항하는 수십 명의 초인들까지.

하나같이 제 목숨을 도외시한 채 악에 받쳐 덤벼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진저리가 나는 상황에 김재학은 이를 바스러지도록 깨물었다.

“이, 이익……!”

반면 연후는 생명을 불태우고 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세를 더해 갔다.

그의 권격이 다시금 구름과도 같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김재학은 불현듯, 현 사태를 타개할 단 하나의 방법을 떠올렸다.

‘연후, 저놈이 구심점이다!’

무리하게 맞서는 고태식과 오윤진은 물론.

초개처럼 목숨을 내던져가며 덤벼드는 진태진을 비롯한 수십의 초인들까지.

이들이 이토록 항전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연후를 향한 믿음 때문이었다.

현시점에서 유일하게 김재학, 그 자신과 동수를 이루는 연후라는 희망에 모든 걸 걸고 있는 것이다.

‘죽이진 못할지언정, 희망을 꺾을 수만 있다면……!’

정확히는 연후가 더는 전투를 지속할 수 없게 된다면.

저 무소와도 같은 저항의 의지도 덩달아 꺾일 터였다.

김재학은 판단 즉시 침식의 기운을 날카롭게 벼렸다.

사아악-!

특유의 검붉은 기운이 허공의 두 점을 향해 급속도로 수렴하며 극한까지 압축됐다.

마치 바늘처럼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크기까지 압축된 순간.

스슷-

김재학은 소리 없이 두 줄기 기운을 발출했다.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다름 아닌 연후였다.

“……!”

연후가 두 눈을 부릅뜨며 다급하게 주먹을 거둬들이는 사이.

반 박자 늦게 고태식과 오윤진이 반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쩌-엉!

두 줄기의 기운은 연후가 가까스로 일으킨 호신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마침내 철옹성 같은 생명의 방어막을 뚫어 버린 순간.

휘익-

연후는 안간힘을 써서 몸을 비틀었다.

덕분에 급소는 간신히 피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서-걱!

침식의 기운이 연후의 양팔을 도려낸 것이다.

“크아악!”

고통에 젖은 비명과 함께 양 어깻죽지에서부터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이는 권사인 연후에게는 급소만큼이나 치명적인 데미지였다.

그래서일까.

“여, 연후 집사님-!”

“이럴 수가……!”

오윤진과 고태식은 아연실색한 채 비명을 토해냈다.

바로 거기서부터 공포가 전염되기 시작했다.

싸늘하기까지 한 적막이 주위를 가득 메우는 가운데.

김재학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이걸로 끝이다……!’

비명과 공포, 그로 인한 혼돈의 도가니.

이 상황이야말로 김재학이 바라마지않던 결과였다.

여기서 연후의 숨통까지 완전히 끊어 버린다면 더 이상의 변수는 없을 것이다.

김재학은 판단 즉시 연후를 향해 쏘아져 가는 한편.

쐐기를 박기 위해 소리를 내질렀다.

“생명이니, 무게니, 결국 비루한 말로 그쳤구나! 이제 그만 죽어라-!”

검붉은 기운을 휘감은 주먹으로 머리통을 박살 내려는 순간.

여태 고통에 몸서리치며 신음하던 연후가 별안간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김재학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기분에 휩싸였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는 가운데.

‘그럴 리 없어! 유일한 무기나 다름없는 양팔을 잃은 권사가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야 했다.

김재학은 수도 없이 되뇌며 본능의 경종을 애써 무시한 채 내지르는 주먹에 힘을 더했다.

그대로 연후의 머리를 박살 내나 싶은 순간.

“……생의 무게가 그리 가벼워 보였더냐.”

연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직후.

쩌-엉!

등 뒤에서부터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일격.

느껴지는 충격으로 보아 절대 A급 초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정체 모를 일격이 노리는 건 척추 왼쪽 부근, 다시 말해 심장이었다는 점이다.

“크, 윽……!”

신음을 흘리면서도 김재학은 생각했다.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누구. 아니, 연후는 대체 어떻게 양팔을 잃고도 무공을 펼칠 수 있었던 건지.

과연 불의의 일격을 버틸 수 있을지.

온갖 의문이 휘몰아치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콰직-

무언가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고가 정지한 것이다.

동시에 가슴속에서부터 핏물이 울컥 차올랐다.

온몸의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가운데.

김재학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 무공, 은 대체…….”

그제야 자신의 심장이 꿰뚫려 박살 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한편.

뒤늦게 일격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나로 이루어진 권격, 이라니.’

불가해한 일격.

그게 바로 무극삼권의 절초이자, 마지막 초식인 ‘무극’이라는 사실을 김재학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저항할 엄두조차 못한 채 옆으로 허물어질 뿐이었다.

털썩-

텅 비어 버린 심장부에서부터 선혈이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의식은 물론, 고통까지 선명했다.

아무래도 아티팩트의 힘.

아니, 저주가 아닐까 하고 김재학은 생각했다.

“……아.”

목소리는 허무하게 흩어졌다.

정확히는 연후가 무릎을 꿇는 소리, 몇 명의 인기척이 다가오는 소리와 같은 주위의 소음에 덮어 씌워졌다.

“지, 집사님! 정신 차리세요! 집사님-!”

“연소소 생도, 진정해라! 지혈은 제가 맡을 테니 나머지 분들은 부디……!”

“이 빌어먹을 놈의 심문은 나와 오윤진 길드장이 맡겠네. 태진 교관, 반드시 그분을 살리게!”

시끄러운 소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짜증이 치솟았지만, 김재학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게, 있었지.’

딱 한 가지, 발악할 수 있는 게 남아 있었다.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체면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속으로 조소를 지을 무렵.

“네놈의 잘난 주인은 어디 있지? 당장 토해내지 않으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끔 만들어 주마!”

거칠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찔러왔다.

다름 아닌 고태식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었다.

화륵-!

오윤진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화염계 마법을 일으키며 김재학을 지져 버렸다.

그러고 나서야 서슬 퍼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안일한, 대체 어디로 데려간 건지 당장 말해.”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김재학은 웃었다.

동시에 입술을 달싹거렸다.

제대로 말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너 이 개자식!”

오윤진의 반응을 보아 제대로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그게 참을 수 없는 희열을 안겨 줬다.

바로 그 덕분이었다.

화륵-!

온몸이 타들어 가 재로 흩날리는 광경.

이를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조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말이다.

잠시 후.

“크읏……!”

오윤진은 밀려드는 참담함에 도무지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는 함께 있던 고태식도, 연후의 응급처치를 마치고 다가온 진태진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거라니!”

김재학이 죽어가면서 남긴 저주와도 같은 유언.

더 이상 안일한을 찾을 수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외면할 수도 없었다.

쩌저적-!

실제로 김재학의 죽음과 함께 침식 게이트가 급속도로 소멸해 가는 탓이었다.

눈앞에 세상이 본래의 색채를 되찾는 광경이 펼쳐졌음에도 세 사람은 기뻐할 수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생존을 향한 환희를 내질렀지만, 반대로 세 사람은 무겁게 침묵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오윤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녀석을 구해야 해요.”

그녀의 발언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안일한을 이렇게 희생시킬 수 없다는 점부터.

낙일의 수장이 존재하는 한,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까지.

그렇기에 아직은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끄읏.”

오윤진은 무력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만히 고개를 떨구기를 수십 초.

이윽고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속으로 다짐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반드시 내가 구해 줄게. 그러니 부디…….’

죽지 말아 줘.

간절히 염원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에 야속하리만큼 새파란 하늘이 들어왔다.

* * *

몇 시간 전.

“꽤나 아플 거야. 오히려 죽는 쪽이 편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기회는 네가 날려 버린 거야. 알고 있지?”

제니퍼 퀘이드는 싱글거리며 오른손 검지를 빙글빙글 휘저었다.

그녀의 장난스러운 손길에 주위의 허공이 쩍쩍 갈라졌다.

심연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혀를 날름거리는 가운데.

스윽-

그림자는 말없이 자세를 취하는 한편.

“반대로 묻지.”

제니퍼 퀘이드를 향해 무심하게 내뱉었다.

“죽을 준비는 됐나?”

- 20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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