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99화 (198/218)

199화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방법이 있다.

연후는 비장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통역용 아티팩트 특유의 이질적인 목소리를 넘어서 묵직하게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그저 그녀의 심정이 절박해서 그런 식으로 느껴지는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런 사소한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암담한 상황을 타개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됐든, 기꺼이 따르리라.

오윤진은 그러한 일념으로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정말인가요?!”

“그렇소. 하나 기회는 단 한 번뿐이며,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단 한 번의 기회.

그의 말에선 어딘가 위험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실제로, 연후의 비장하기 그지없는 표정은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한 느낌을 풍겼다.

그래서일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타닷-

지금껏 김재학을 상대로 공세를 퍼붓던 고태식이 반격을 피해 근처에 착지했다.

그 또한 연후의 말을 들었는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 괴물 같은 작자에게 한 방 먹일 방법이 있다면, 내 얼마든지 거들어 주지!”

머뭇거리는 오윤진을 대신해서 방법을 묻는 것이다.

다만 현 상황이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형편이 안 되는 만큼, 고태식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놈은 나와 태진 교관이 어떻게든 발을 묶고 있겠네. 그러니 연후 2집사의 계획을 돕는 건 자네가 맡게.”

즉, 김재학을 맡을 동안 계획에 관한 논의를 끝내라는 뜻이었다.

오윤진이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고태식은 다시금 지면을 박차고 전장으로 나아갔다.

그사이 연후는 빠른 어조로 방법을 풀어냈다.

“요청을 밝히기에 앞서 간략히 설명하자면, 나는 제자 녀석과 같은 무공을 가지고 있소.”

“그 말씀은…….”

오윤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그녀 또한 안일한의 수련을 도운 만큼, 어떤 무공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무극삼권이오. 제자 녀석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SS급 스킬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

“……제니퍼 퀘이드의 마법을 정면에서 날려 버린 바로 그 무공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렇소.”

연후의 대답에 오윤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만 그뿐으로,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존재했는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분명 무극삼권이 엄청난 무공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S급이라 봐야겠지. 그리고 A급인 내가 펼친 무공이 과연 통할지 의문일 거고, 내 말이 맞나?”

“……송구스럽지만 맞습니다.”

오윤진은 실례가 되는 걸 알면서도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근거 없이 일을 진행시키기엔 너무나 많은 목숨이 걸려 있는 까닭이었다.

연후도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은 충분히 이해하네. 이번 일에는 단순히 우리의 목숨만 걸린 게 아니니.”

그는 정확히 오윤진이 걱정하는 부분을 언급하는 한편.

돌연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렇기에 나는 목숨을 걸 생각이라네. 내 주먹이 저 간악한 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자네도 제자 녀석의 능력에 관해선 알고 있을 테지. 그러니 요점만 말하겠네. 무극삼권은 본래라면 현시점의 나는 체득할 수 없는 무공일세.”

현시점에선 체득할 수 없는 무공.

연후의 말대로 안일한의 능력은 그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말은 잘 와닿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연후는 추가적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본래 A급으로 펼칠 수 없다는 말일세. 즉, 현재 역량을 넘어서는 능력인 셈이지. 당연히 제대로 펼친다면 리스크는 피할 수 없을 걸세.”

“리스크, 라는 말씀은…….”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휘두른 대가는……, 생명력이 되겠지.”

생명력.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명의 기운, 원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생명력의 소진은 보통 사특한 무공이나 그릇된 스킬의 부작용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윤진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생명력을 담보로 펼치는 무공이라니…….’

그렇다면 연후는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윤진은 밀려드는 죄책감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녀의 속내를 읽은 듯, 연후는 짐짓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수단을 가릴 처지가 아님을 명심하게.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건 미래의 동량들이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하네.”

“그건 맞습니다만…….”

오윤진도 연후와 정확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희생의 주체가 그녀가 아닌 연후라는 점이었다.

‘과연 이 문제를 내가 결정해도 되는 걸까……?’

냉정하게 따져 보자면, 지금은 결코 번뇌에 휩싸일 때가 아니었다.

번민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두 사람, 고태식과 진태진은 죽음을 불사르며 김재학에게 맞서는 까닭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선뜻 긍정할 수가 없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무어라 입을 떼려는 찰나.

“길드장, 지금은 결코 고민할 때가 아닐세. 자네에게 이 사실을 밝힌 건 협조를 청하기 위함이지, 결코 허가를 위해서가 아님을 명심하게.”

연후가 준엄한 어조로 꾸짖었다.

그제야 오윤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죄송해요.”

“알면 됐소.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자네들이 해 줘야 할 일은 두 가지요.”

“두 가지라는 말씀은……?”

“내가 준비를 끝마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줄 것,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됐을 때 화력을 보태 줄 것. 이렇게 두 가지일세.”

연후가 제시한 두 개의 요구는 합리적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각각의 요구에 관한 이유를 덧붙였다.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한 건, 아직 제대로 된 무극삼권을 펼쳐 본 적이 없기 때문일세. 그리고 화력은…….”

“확실하게 김재학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맞나요?”

“바로 그렇다네.”

오윤진은 빠르게 납득하는 한편, 연후의 요구 사항을 한번 곱씹어 봤다.

‘계획을 보다 확실하게 성사시키려면…….’

이윽고 그녀는 한 가지, 괜찮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빠듯하지만 계획을 성공시킬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릴 수 있는 계책이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구상을 정리하는 것과 동시에 전황을 살폈다.

때마침.

“……크윽!”

김재학의 압도적인 공세에 밀려난 고태식이 그녀가 딛고 선 자리에 이르렀다.

오윤진은 이때다 싶어 빠르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고태식 교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계획에 대한 논의는 끝났나?”

“네. 연후 집사님께서 요구한 건 두 가지입니다.”

오윤진은 즉시 연후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그러자 고태식은 심각하게 굳은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명력을 담보로 해야 하는 건가……, 어려운 결심을 해 주셨군.”

고태식은 그녀와 달리 순순히 납득했다.

물론 그는 단순히 연후의 희생을 받아들인 데서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의 각오를 보였다.

“이 한 목숨을 희생해서 애송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응당 그래야겠지……!”

오윤진이 상황에 맞지 않음에도 심각하게 번민했던 것처럼.

고태식은 연후와 함께 결사 항전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그의 모습에 오윤진은 새삼스럽게 각오를 다지는 한편.

생각했던 바를 빠르게 입에 담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이건 연후 집사님의 생각은 아니고 제 생각인데…….”

“어디 한번 말해 보게.”

오윤진의 설명에 고태식은 진지한 낯빛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다 들었을 무렵, 그는 침음과 함께 나직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당장은 위험부담이 크겠지만.”

“연후 집사님께서 김재학을 제거할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더 올라갈 거예요.”

오윤진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단호하게 덧붙였다.

이에 고태식 또한 각오를 다지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태진 교관에겐 내가 알리겠네.”

“부탁드려요.”

그녀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는 종료됐다.

두 사람은 합이라도 맞춘 듯, 고개를 돌려 한곳을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김재학이 오연한 태도로 서 있었다.

* * *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는군.’

김재학은 미친 듯이 실소를 흘려댔다.

이 웃음은 보잘것없는 힘으로 몬스터에 맞서는 생도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악착같이 그에게 덤벼드는 고태식도, 진태진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김재학, 그 자신을 향한 실소였다.

정확히는.

‘이렇게나 약한 존재들을 상대로 고전하다니. 정말이지 나도 형편없었군.’

조금 전의 자신, 아티팩트의 힘을 얻기 전의 자기 자신을 향해서였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과거의 모습을 업신여길 정도로 김재학은 강해졌다.

그만큼 아티팩트가 안겨 준 힘은 엄청났다.

쩌-엉!

지금껏 호각을 이루던 A급 초인, 고태식을 단 한 수로 물리칠 수 있게 된 건 물론.

“……크, 윽!”

B급 초인, 진태진에 이르러선 단순히 기운을 내뿜는 것만으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게 가능했다.

즉, 전투라 칭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인 구도가 된 것이다.

김재학은 온몸에 들끓는 힘을 만끽하며 생각했다.

‘전지전능함, 이게 바로 S급 초인의 힘인가.’

손짓 한 번, 기운을 발산하는 것만으로 A급 초인을 유린하는 힘.

이거야말로 그가 비로소 단신으로 전황을 좌우한다는 존재, S급이 됐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게 바로 그분이 보는 세계였군.’

마침내 단 하나뿐인 주인, 제니퍼 퀘이드와 같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를 인식하는 순간, 김재학은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확히는 더 이상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하찮은 술수를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원거리 엄호를 차단하기 위해 기를 쓰고 오윤진을 노리지 않아도 됐다.

역전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생도들을 인질로 잡는 식의 추잡한 술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는 오롯이 강자의 특권이었다.

‘이젠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발악할 차례다.’

입장은 이미 뒤바뀐 채였다.

그러니 상대는 조금 전의 그가 그러했듯,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맬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실제로 녀석들은 어느 샌가부터 대응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고태식과 진태진 단둘이 나서고, 나머지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기는.’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네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그의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할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고작 둘이 덤비다니, 정신이 나갔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쯧!”

김재학은 마땅찮은 듯, 혀를 짧게 차며 고태식과 진태진을 지그시 응시했다.

누적되는 피해에도 굴하지 않고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두 사람.

그 모습은 상당히 거슬렸다.

‘다 죽여 버릴까?’

문득 살심이 치솟았으나, 김재학은 스스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조금 전의 치욕을 생각하면 처참히 죽여야 마땅했다.

‘특히 오윤진, 그리고 고태식, 진태진도 조금 전의 전투를 생각하면 빼놓을 순 없지.’

첫 대면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건방진 태도를 고수하던 오윤진.

감히 그를 걷어찬 것도 모자라, 깔아뭉갠 채로 여유나 부리던 고태식.

거기에 중요한 순간마다 빠짐없이 훼방을 놓던 진태진까지.

‘이 세 사람 만큼은 곱게 죽일 수 없다.’

기필코 자신이 느꼈던 치욕 이상의 것을 안겨 주며 처참히 죽이리라.

김재학이 새삼스럽게 다짐하는 사이, 한 사람이 고태식과 진태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름 아닌 재앙의 마녀, 오윤진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발버둥 칠 마음이 생긴 건가? 나머지 한 명은…….’

가만히 바라보며 상대의 대응을 가늠하고 있을 때.

“음?”

녀석들은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취했다.

정확히는.

“……감히.”

의도를 알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 200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