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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98화 (197/218)

198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니까

비슷한 시각.

“흐아압!”

백유진은 침식으로 인해 강해진 몬스터, 변이된 오크 족장을 상대로 창을 내질렀다.

날아드는 창날의 궤적은 마치 허공을 유영하는 빛무리처럼 어지러웠다.

그 상태로 순식간에 여섯 갈래로 쪼개지더니, 녀석의 급소를 일제히 꿰뚫었다.

푸슉-!

백유진이 창을 거둬들이는 순간,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언뜻 봐도 치명적으로 들어간 일격, 이는 분광십삼뢰의 경지가 완숙에 이른 덕분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숨통을 끊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크워어-!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면서도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것이다.

백유진은 혀를 짧게 차는 한편, 녀석을 마무리하기 위한 일격을 준비했다.

바로 그때.

“어딜-!”

익숙한 목소리가 녀석의 배후에서부터 들려왔다.

낮고 굵직한 음성,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그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콰직-!

묵빛 마나를 휘감은 일권이 변이된 오크 족장의 심장부를 꿰뚫었다.

심인욱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먹을 회수하자, 녀석의 검붉은 동공은 빠른 속도로 빛을 잃어갔다.

이윽고 녀석의 거체는 실 떨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허물어졌다.

쿠웅-!

백유진은 녀석의 사체를 잠깐 바라보고는, 이내 심인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합이라도 맞춘 듯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둘의 발걸음이 닿은 곳에는 오윤서가 있었다.

“아…….”

오윤서는 그들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창백한 기색이었다.

이를 염려한 건지, 백유진은 살짝 굳은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윤서야 괜찮겠어?”

백유진이 걱정하는 건 단순히 그녀의 컨디션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교관들과 부교관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던 대상.

김재학이 별안간 오윤서를 습격한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얘들아, 괜찮아!?”

“모두 무사하지?!”

윤설하와 차은월, 그리고 연소소.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또 다른 몬스터 무리를 상대하던 세 사람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얼떨결에 모두가 모인 상황 속, 오윤서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괘, 괜찮아. 이미 언니 쪽도 정리된 모양이고, 결과적으로는 별문제 없었으니까.”

내뱉은 말과는 달리 여전히 그녀의 표정에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아직도 충격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들 납득하고 넘어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잠깐이라도 휴식하기를 권하고 싶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군.”

심인욱의 말마따나 현재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은 까닭이었다.

파견 나온 초인들의 선전 아래 생도들을 규합하며 맞서 싸운 덕분에 아직까지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간의 피해나 부상까지는 그들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대로 가면 몬스터 웨이브 정도는 비교적 무사히 끝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백유진의 말대로, 처음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던 상황에 비해선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패닉이 잦아들고, 조금이나마 서로 간의 호흡이 개선된 덕분이었다.

즉, 간신히 승기를 잡은 상태였다.

이를 굳히기 위해서라도 전력의 공백은 최대한 피해야 마땅했다.

오윤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괜찮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못할 리가 없잖아? 과한 걱정이야.”

일부러 강하게 말하며 눈을 치켜떴다.

분위기가 살짝 경직된 가운데, 백유진이 미소와 함께 오윤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이지. 언제나 믿고 있다고. 그럼 다시 가 볼까?”

시원스러운 미소, 그리고 올곧은 빛을 띤 눈동자까지.

오윤서는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백유진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표정이 풀렸다.

그녀는 속으로 감사를 표하는 한편, 다시금 전장으로 나서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언니 쪽도 대충 정리된 모양이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의식적으로 상황을 정리해 보니, 상황은 나름대로 긍정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안일한, 그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초월적인 능력들을 선보이며 언니를 비롯한 교관들을 압도한 제니퍼 퀘이드.

그런 그녀를 상대로 안일한은 홀로 기꺼이 사지를 향해 갔다.

물론 그 녀석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보다 강한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그저 마음속으로나마 간절히 무사히 생환하기를 염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슬슬 전장에 복귀하기에 앞서 오윤서는 최대한 마음을 추슬렀다.

‘역시 나는 심인욱 쪽에 가담하는 편이…….’

판단과 더불어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쩌-엉!

별안간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기파가 느껴졌다.

이를 인식한 순간,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신에 엄습해 왔다.

가히 좋지 않은, 불길하게 느껴지는 기운에 오윤서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 언니가.”

검붉은 기운에 휩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오윤진.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속박당한 것처럼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표정 또한 고통으로 얼룩진 게,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기운. 그 끝에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김재학이 있었다.

‘이미 끝난 게 아니었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재학은 고태식 교관의 발아래 깔려 있었다.

즉,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확연히 다른 광경이었다.

‘다른 분들도 쓰러져 있어.’

방금 폭발하듯 뻗어 나간 기파 때문인지, 김재학을 상대하던 나머지 세 사람은 저만큼이나 밀려나 있었다.

이를 보는 순간, 오윤서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가다간…….’

언니가 죽을지도 모른다.

밀려드는 참담함 때문인지, 오윤서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

그래서일까,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두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그대로 달려나가는 순간.

터억-!

문득 왼쪽 어깻죽지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 직후, 익숙한 음색이 귓가를 찔러왔다.

“윤서야 진정해!”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백유진이었다.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억센 손놀림으로 그녀를 강제로 붙들어 맸다.

오윤서는 어깨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악에 받쳐 소리쳤다.

“크읏……! 이거 놔!”

“진정해! 진정하고 상황을 제대로 확인해 봐!”

단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그제야 오윤서는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다.

이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과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콰앙! 쾅-!

쓰러져 있던 고태식 교관과 연후 부교관.

어느새 몸을 일으킨 두 사람은 김재학을 향해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둘 다 A급 초인인 만큼, 권격을 흩뿌리는 기세는 강맹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하지만.

터-엉!

그럼에도 김재학을 둘러싼 정체 모를 기운을 뚫어내지 못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두 사람의 맹렬한 공세 덕분에 오윤진이 속박으로부터 풀려났다는 점이었다.

“……크읏!”

바닥에 주저앉은 채 거친 호흡을 토해내는 오윤진.

그녀의 모습에 오윤서는 다시금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대로 있다간……!”

발을 동동 구르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찰나.

쩌-엉!

또다시 김재학으로부터 검붉은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이는 조금 전과는 다른 여파를 불러일으켰다.

그워어어-!

그녀를 비롯한 생도들과 파견 초인들의 합작으로 조금씩 밀려나던 몬스터 무리.

녀석들의 기세가 한층 살벌하게 변모한 것이다.

변화는 단순히 기세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의 능력 자체가 배가됐다.

그 증거로 조금씩 전진하던 전선이 순간적으로 밀려나게 된 것은 물론.

“끄아악!”

곳곳에서 치명적인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전투에 따른 굉음과 비명, 그리고 초인들이 흩뿌리는 핏물까지.

그야말로 상황은 아비규환,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가운데.

“오윤서! 정신 차려-!”

눈앞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상대는 백유진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덕분일까.

‘……진정하자.’

오윤서는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사이, 백유진은 노기 어린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문제는 김재학뿐만이 아니야! 우리가 두 손 놓고 있으면 몬스터 무리 때문에 교관님들이 더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맞는 말이었다.

‘……맞아. 우리가 몬스터 무리를 확실하게 붙들고 있어야 언니 쪽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거야.’

이대로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했다간 전선의 누수가 지금보다 심해질 터였다.

그렇게 되면 오윤진을 비롯한 네 사람은 김재학뿐만 아니라 몬스터까지 상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김재학의 역량이 측정조차 불가능해진 지금, 상황이 더 악화됐다간 정말로 끝이었다.

오윤서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 네 말이 맞아. 바로 움직이자.”

그녀는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눈빛을 바로 했다.

그러자 백유진의 눈빛에 일순간 후회하는 듯한 기색이 스쳐 갔다.

이를 증명하듯.

“윤서야, 소리를 지른 건…….”

백유진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무래도 윽박지르듯 이야기한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게 참 백유진답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한편.

오윤서는 곧장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도움이 됐어.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니까.”

분명 현 상황이 예측과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사실이나, 주어진 소임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언니와 교관님들이라면 저자를 죽일 수 있을 거야.’

그들이 온전히 김재학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이를 위해서라도 몬스터 무리를 확실하게 저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새삼스럽게 각오를 다질 무렵.

“백유진! 오윤서! 이쪽에 지원을!”

심인욱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이에 오윤서는 백유진과 한차례 시선을 교환했다.

그것만으로 뜻이 통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면을 박차고 나아갔다.

* * *

같은 시각.

‘……이건 좋지 않아.’

오윤진의 표정은 낭패로 물들어 있었다.

이유는 그녀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 오연한 태도로 서 있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김재학,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거지……?’

다름 아닌 김재학.

정확히는 그가 발휘하는 힘 때문이었다.

분명 김재학은 조금 전의 전투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그로 인해 운신은커녕, 호흡마저 가누지 못했다.

그만한 데미지를 단숨에 회복한 건 물론, 이제는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을 흩뿌려댔다.

‘거기다 변이된 몬스터들까지도 한순간에 강해졌어.’

그야말로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연상케 하는 힘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파견 초인과 힘을 합쳐 생도들이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아이들이 잘 버텨 주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작 어른이자, 보호자여야 할 터인 그녀는 생도들을 도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전황은 불투명했다. 사실상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써.

“……크윽!”

“어찌 이런 사특한 힘이……!”

김재학의 공세에 두 사람, A급 권사인 고태식과 연후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심지어 김재학이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이는 그의 따분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치잇.”

오윤진은 입술을 질끈 깨무는 한편, 코어를 활성화시켜 순식간에 마탄 세례를 흩뿌렸다.

콰과과과광-!

요란한 굉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덕분에 연후와 고태식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시시하군. 정말로 시시해.”

정작 김재학에겐 일말의 피해조차 주지 못한 것이다.

사정은 진태진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금 전 전투에서 김재학을 궁지에 몰아넣은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약한 진태진.

현재 그는 김재학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기운으로 인해 접근조차 못 하는 상태였다.

“……면목 없군.”

진태진은 그녀의 곁에 선 채 고개를 떨구었다.

마음 같아선 선배이자 과거의 스승인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현 상황이 전혀 괜찮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 정도면 이미 김재학의 역량은 A급을 넘어선 거나 다름없어.’

A급 초인 셋이서 대항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무력.

그의 힘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연상케 했다.

단신으로 전황을 좌우하던 S급 마법사 제니퍼 퀘이드.

즉, 현재 김재학은 S급에 비견될 만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해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땅한 방법이 나오지 않아서 더더욱 그랬다.

자연스럽게 표정이 절망의 빛으로 물드는 가운데.

“……내게 방법이 있소.”

그녀의 귓가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연씨세가의 2집사, 연후였다.

- 19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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