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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97화 (196/218)

197화 진태진, 또다시 그였다

‘……처음부터 의도를 꿰뚫어 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진태진의 대처 속도는 설명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김재학은 이를 빠득 소리 나게 갈며 속으로 생각했다.

‘전장의 매…….’

B급 초인 진태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의 등급은 초인 사회에서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태진은 현역 시절, 4대 길드 중 한 축을 담당하는 스페셜리스트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것도 김재학과 마찬가지로 무려 한 개의 팀을 이끄는 팀장으로 말이다.

4대 길드 소속 길드원의 평균이 B+급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대단한 일이었다.

‘과연 허명이 아니야.’

전장의 매 진태진.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이명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전부 탁월한 전투 수행 능력 덕분이었다.

이능형 특성, ‘무기 통찰’을 바탕으로 모든 무기의 활용을 꿰뚫고 있는 건 물론.

타고난 전투 감각 덕분에 전장을 통찰하는 능력 또한 상당했다.

조금 전 오윤진을 향한 공세의 호흡을 미리 차단한 것도 그 능력의 일환이었다.

“……치잇.”

김재학은 혀를 짧게 차며 워 해머를 거둬들이는 한편, 빠르게 발을 놀렸다.

머지않아 오윤진의 공격 마법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터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진태진 또한 칼날을 곧추세운 채 지면을 박찼고, 두 명의 권사들도 때마침 빛의 심판의 여파를 전부 걷어낸 상태였다.

즉, 네 사람이 쏟아내는 십자포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타닷-

김재학은 보법을 활용해 가며 신속하게 딛고 선 자리로부터 벗어났다.

그 직후, 상황은 정확히 그가 예상했던 대로 펼쳐졌다.

오윤진의 공격 마법이 빗발치고, 나머지 세 사람 또한 맹렬하게 추격해 왔다.

김재학은 다시금 성휘의 화신을 발휘하며 머릿속으로 전략을 가다듬었다.

‘마녀를 노리는 건 이미 글러 먹었다.’

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재앙의 마녀이자 A급 마법사인 오윤진을 먼저 제거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한번 시도가 좌절된 이상, 더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 상황에서의 차선은…….’

진태진을 시작으로 근접 계열 초인들을 단시간에 제거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누군가를 노리기는커녕, 세 사람의 추격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김재학은 인상을 구긴 채 활로를 모색하는 한편.

‘……아티팩트를 쓸까?’

주머니 속 아티팩트의 존재를 떠올리며 순간 갈등했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우습게도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김재학은 다른 수단을 강구했다.

‘애송이들을 미끼로 활용한다면…….’

새로운 전략을 떠올린 즉시 그는 발길을 트는 한편.

고개를 돌려 생도들 쪽의 전황을 빠르게 훑어봤다.

이를 확인한 순간 탄성이 절로 새어 나왔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군.’

길드에서 파견된 초인들과 생도들의 선전은 생각 이상이었다.

몬스터 대군을 상대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맞서는 건 물론.

특히 선두에서 맞서 싸우는 몇몇 생도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신 수준이었다.

이를 인식하는 순간 김재학의 표정은 와락 구겨졌다.

‘……좋지 않다.’

제니퍼 퀘이드가 사라진 지금, 몬스터를 추가로 동원하는 건 불가능했다.

균열, 다른 차원의 통로를 연결하는 건 오직 그녀만이 가능한 까닭이었다.

이 말은 곧, 이 자리에 있는 몬스터가 전부 소멸하면 상황은 그대로 정리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네 명을 넘어 수십에 달하는 이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아티팩트의 효과를 등에 업고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되겠지.’

김재학은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자존심을 따질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아티팩트를 사용하려는 찰나.

‘잠깐, 저 생도는…….’

문득 생도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던 생도들 중 한 사람이자, 재앙의 마녀의 동생, 오윤서였다.

존재를 인식한 순간, 불현듯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가 그의 뇌리를 스쳐 갔다.

‘녀석을 활용하면 마녀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윤서를 인질로 삼거나, 녀석에게 살수를 가한다면?

오윤진이 제 피붙이를 아낀다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김재학은 그녀가 움직일 거라 확신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오윤진이 구태여 오윤서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눈 게 바로 그 증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김재학은 즉시 행동에 옮겼다.

타닷-

곧바로 오윤서 쪽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그 순간.

“……너 이 자식!”

등 뒤에서부터 날카로운 음성이 귓가를 찔러왔다.

다름 아닌 오윤진의 목소리였다.

외침과 더불어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나 파동이 느껴졌지만, 김재학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발끈해서 공격 마법을 뿌려 봤자, 성휘의 화신이 유지되는 한 유의미한 타격은 없을 터.

즉, 그녀의 반응은 오히려 확신만 더해 줄 뿐이었다.

‘예상대로군.’

그제야 활로를 넘어 승기가 눈에 보이는 가운데.

김재학은 속도를 가일층 끌어올렸다.

아니, 박차를 가하려는 순간.

화륵-!

돌연 눈앞에서부터 화마가 치솟았다.

“……!”

김재학은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몸을 뒤로 젖히는 한편.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 진로를 차단한다고?’

어딘가 이상했다.

하다못해 공세를 퍼붓다가 전략의 방향성을 틀어 버린 거라면 모를까, 그것조차 아니었다.

꺼림칙한 감각 속에 김재학은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여기선 뚫고 나가야…….’

강행돌파.

판단을 내리고 몸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스슷-

화마의 장벽 너머에서부터 진득한 살기와 함께 기척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워 해머를 내지르는 순간.

콰광-!

정면에서부터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김재학은 불길을 뚫고 짓쳐든 무언가의 정체를 깨달았다.

‘칼날이라고? 그렇다는 건…….’

진태진, 또다시 그였다.

그의 존재를 인식하자마자 김재학의 표정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뒤늦게 진태진의 움직임에 깃든 의도를 깨달은 까닭이었다.

‘……이번에도 읽혔다고?’

지금껏 뒤에서 추격해 왔던 것이 아니었다.

미리 진로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게 움직이며 오윤진과 합을 맞춰 놓은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진태진, 단 한 사람에게 훼방을 당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누가 빌런으로 타락한 자 아니랄까 봐, 아주 간악하기 짝이 없구나!”

배후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거칠기 그지없는 목소리, 다름 아닌 고태식이었다.

정체를 깨닫자마자 김재학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비틀었다.

이는 불문곡직 주먹부터 날릴 거라는 고태식의 성향을 십분 고려한 대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쩌-엉!

워 해머를 채 휘두르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찰나 간 대처를 했음에도 고태식의 주먹이 반 박자 빠르게 짓쳐든 것이다.

“크, 윽!”

A급 권사의 일권, 그것도 지근거리에서의 일격이라 그런지 충격이 대단했다.

성휘의 화신이 없었다면 뇌가 진탕됐을 정도로 강맹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김재학은 충격을 수습할 여유조차 없이 양팔을 휘둘렀다.

이대로 고태식에게 붙잡혀 있다간 꼼짝없이 포위당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치잇!”

그는 힘 있게 지면을 박차며 화마의 벽을 향해 온몸을 내던졌다.

상황은 이미 착실하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미약한 가능성의 불씨를 살리려면 장벽 너머의 적.

진태진이라도 빠르게 죽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화마의 장벽 너머조차 이미 활로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진태진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고태식에 이어 또 다른 A급 권사, 연후였다.

“……이런!”

그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김재학의 표정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다급하게 코어의 출력을 끌어올리며 대항하려 했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연후를 따라갈 순 없었다.

“빌런이여! 어설프기 짝이 없구나!”

노호성을 터뜨리며 크게 한 발짝 들어 올리는 연후.

익숙한 초식이었다.

그대로 내리찍는 순간.

쩌-엉!

굉음과 함께 막대한 기파가 전신에 엄습해 왔다.

그 여파로 인해 코어의 마나가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당연하게도 성휘의 화신 또한 눈에 띄게 흐트러졌다.

‘이렇게 된 이상!’

김재학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왼손을 서둘러 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었다.

익숙한 감촉을 느끼는 순간.

“……감히 내 동생을 노려?”

머리 위에서 서슬 퍼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앙의 마녀, 오윤진.

그녀의 정체를 인식하고 무어라 반응하려는 찰나.

지이잉-!

대규모의 마나 파동이 바로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마법이 끊임없이 전개되는 거로 보아 대단위 공격 마법은 아니었다.

‘……마탄.’

정체를 깨닫기 무섭게 마탄이 쏟아져 내렸다.

콰과과과광-!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마탄 세례.

본래라면 하잘것없는 위력이겠지만, 코어가 불안정한 지금은 이야기가 판이하게 달랐다.

“……크, 윽!”

계속되는 충격에 성휘의 화신은 엄청난 속도로 소멸해 갔다.

그 증거로 김재학은 누적되는 피해를 버티지 못해 신음을 토해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털썩-

그 상태로 무릎을 전부 꿇을 때까지 마탄 세례는 이어졌다.

결국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내고 나서야 공격 마법이 멎었다.

“……커, 헉! 커헉!”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내는 김재학.

호흡조차 좀처럼 제어가 안 되는 가운데.

스윽-

돌연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감촉이 목에 닿았다.

진태진이 검을 겨눈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퍼-억!

별안간 등 쪽에서부터 어마어마한 격통이 느껴졌다.

몸이 정면으로 고꾸라지고 나서야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아차렸다.

누군가에게 걷어차인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해 보거라. 그대로 척추째 박살 내 버릴 테니까.”

엎어진 것도 모자라 고태식은 발에 무게를 실어 지긋이 내리눌렀다.

그로 인해 숨 쉬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감각 속에 치가 떨렸다.

‘……이런 꼴을 당하다니.’

치욕과 분노가 뒤엉켜 머릿속을 헝클어뜨렸다.

사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더욱 감정에 잠식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티팩트를 쥔 왼손에 미약한 힘이나마 불어넣으려는 찰나.

“저와 오윤진 길드장이 이자를 맡겠습니다.”

특유의 무심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다름 아닌 진태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네. 추궁은 저와 태진 교관님이 책임지고 진행할게요. 두 분은 부디 생도들을 챙겨 주시길 바라요.”

오윤진은 물론.

“슬슬 소소 아가씨가 걱정되던 차였으니, 기꺼이 그리하도록 하지.”

연후.

“……괜찮겠나? 애송이들 중에는 자네의 동생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마지막으로 고태식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마치 그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화를 나눴다.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반응에 김재학은 빠득 이를 갈았다.

‘……죽여 버리겠어.’

치욕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그 빈자리는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분노가 차지했다.

일순간 아티팩트의 힘을 일부 활용하여 도주까지 생각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온통 단 하나의 목적뿐이었다.

‘모조리 씹어먹어 주마.’

다짐과 함께 남아 있는 마나를 쥐어짜냈다.

그 순간.

“……어디서 허튼수작을!”

아직까지 발을 치우지 않고 있던 고태식이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쩌-엉!

그의 주먹은 김재학에게 닿지 못한 채, 무형의 장벽에 튕겨 나갔다.

“……!”

두 눈을 부릅뜨는 고태식.

찰나에 불과한 반응이었으나, 나머지 세 사람은 김재학에게 심상치 않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단숨에 눈치챘다.

그 증거로써 세 사람은 일제히 김재학을 향해 살수를 펼쳤다.

하지만.

터-엉!

카가가가가강-!

나머지 세 사람의 공격 또한 고태식의 그것과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부 김재학을 둘러싼 정체 모를 기운에 튕겨 나가는 것이다.

“저 검붉은 기운은 도대체……!”

오윤진이 경악스러운 음성을 토해냈다.

다만 그뿐으로, 그녀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옥죄인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사이, 김재학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내 그는 제 몸 상태를 가늠해 봤다.

‘……이것이 그분께서 말씀하신 힘이구나.’

인간을 초월한 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활력이 전신 곳곳을 내달렸다.

조금 전까지의 피해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힘이 넘쳐 흐르는 가운데.

번쩍-

김재학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으르렁거렸다.

“갈기갈기 찢어 주마.”

- 19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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