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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94화 (193/218)

194화 판은 내가 깔아 주마

제니퍼 퀘이드의 제안은 간단했다.

그녀를 따르면 신세계의 정점에 함께 군림할 수 있다.

반대로 제안을 거부한다면?

“물론 넌 필요한 존재이니 죽이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이상의 고통을 맛보게 되겠지.”

나를 강제로 끌고 가서 노예처럼 이용하고는 가차 없이 죽여 버릴 거라는 말부터.

현재 침식 게이트에 갇혀 있는 이들을 모조리 죽일 거라는 협박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늘어놨다.

“어때? 이 정도면 참고가 됐으려나?”

제니퍼 퀘이드는 야릇한 미소를 띤 채 내게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은 탓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만큼 제니퍼 퀘이드의 역량은 내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창조를 연상케 하는 마법부터, 공간을 찢어발기거나, 제한적으로나마 시간을 제어하는 마법 등.

제니퍼 퀘이드가 가진 마법, 능력들은 하나같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그녀의 전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균열 너머의 몬스터 대군, 자세한 건 겪어 봐야 알겠지만 저 정도면 최소 A급이다.’

협박과 함께 일으킨 균열, 그 너머에 바글대는 몬스터 대군.

숫자도 상당할뿐더러, 언뜻 봐도 최소 A급은 되는 것 같았다.

즉, 제니퍼 퀘이드의 제안을 거부한다는 건 그 모든 것들을 정면에서 대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꿀꺽-

나는 가느다란 떨림 속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속으로 끊임없이 평정을 되뇌고 있음에도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유는 내 스스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분명 내 선택은 정해져 있지만…….’

과연 내가 제니퍼 퀘이드를 상대할 수 있을지.

그녀의 측정 불가능한 역량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굳건한 줄만 알았던 내 안의 확신이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살갗에 손톱이 박히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바로 그때.

-전에 말했듯, 제니퍼 퀘이드가 가진 미구현 특성은 ‘차원의 여행자’다. 다른 차원, 즉 균열을 넘나드는 게 바로 그녀가 가진 능력이지.

느닷없이 그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던 만큼, 나는 녀석의 말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무수한 차원을 거닐며 상당한 숫자의 유물을 손에 넣었다. 기상천외한 능력들은 전부 거기서 비롯된 셈이지.

-하나 그것들은 결코 이적(異蹟) 따위가 아니다. 초인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스킬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몬스터 대군 또한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이는 침식 유발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 몬스터를 조종하고 있을 뿐. 제니퍼 퀘이드의 능력이라 볼 수 없다.

지금껏 제니퍼 퀘이드가 선보인 상식 밖의 능력.

그림자는 냉철한 관점으로 세세하게 구분해 가며 내게 설명해 줬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필요 이상으로 압도당하고 있었구나.’

지금껏 제니퍼 퀘이드의 존재감에 과하게 압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자는 나직하게 수긍하며 말을 덧붙였다.

-분명 제니퍼 퀘이드가 강자인 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의 실체를 명확히 꿰뚫어 봐야 한다.

‘정말로 맞는 이야기야. 덕분에 정신이 드는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군.

녀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하는 한편.

조금 전의 이야기를 마저 이어 나갔다.

-다시 화제로 돌아와서, 우리에게는 제니퍼 퀘이드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가 두 가지 존재한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그것도 두 가지나?’

-그래. 첫 번째는 ‘초 진화’, 그리고 ‘초 재생’이다.

진화와 재생 계열의 최상위 스킬이자, SS급에 달하는 스킬인 ‘초 진화’와 ‘초 재생’.

두 스킬 모두 효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라는 점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이 두 가지는 아직 제니퍼 퀘이드가 확보하지 못한 스킬이다. 비슷한 효과를 가진 스킬조차 없는 상태지.

진화 계열과 재생 계열.

제니퍼 퀘이드에겐 아직 이런 효과를 가진 스킬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장기전이나,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 같은 건 내 쪽이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겠구나.’

이는 단순히 말해서 나에겐 가능한 것들이 그녀에게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전투 지속력을 바탕으로 한 장기전이나, 육참골단의 묘리 등.

즉, 내가 제니퍼 퀘이드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거라면.’

어느 정도 해 볼 만하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한편.

아직 그림자의 설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때마침 녀석은 또 다른 우위에 관해 말문을 열었다.

-두 번째는 우리의 미구현 특성이다.

‘……미구현 특성. 맞아, 그게 있었지.’

-우리가 가진 미구현 특성의 능력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오직 우리만이 제니퍼 퀘이드를 상대할 수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그 정도야……?’

나는 반신반의한 채로 녀석에게 되물었다.

오직 우리만이 상대할 수 있을 거라니.

다소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잘 와닿지 않는 까닭이었다.

‘물론 이전부터 미구현 특성의 개방은 최종 결전 직전에 이뤄낼 거라 말하긴 했지만.’

애초에 동기화율을 99%로 맞춰 둔 이유부터가 그랬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녀석은 결코 빈말을 늘어놓을 성격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의문이 조금씩 미구현 특성의 정체를 향한 호기심으로 변모해 가는 가운데.

녀석이 나직하게 덧붙였다.

-판은 내가 깔아 주마. 그러니 너는 그 위에서 제니퍼 퀘이드의 숨통을 끊는 역할을 맡아 주길 바란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구구절절 대화를 나누기엔 현 상황이 썩 좋지 않은 탓이었다.

‘……일단 알겠어.’

우선 눈앞의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슬슬 대화를 마무리할 무렵.

때마침 제니퍼 퀘이드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답은?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줬잖아? 내가 원래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인 사람이거든.”

그녀는 인내심이 다 했는지, 내게 대답을 추궁해 왔다.

나는 한차례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으로 각오를 다졌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똑바로 주시한 채 입을 열었다.

“거절합니다.”

단호하게 대답을 내뱉은 순간.

“……호오, 그래?”

제니퍼 퀘이드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반면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채였다.

이는 김재학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겠다니. 이래서 나이는 어쩔 수 없나.”

“재학, 당신이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건 아니고?”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김재학은 한숨을 푹 내쉬는 한편.

“다른 사람들도 제정신이 아니군. 고작 이런 애송이를 믿고 상황을 이토록 번거롭게 만들다니.”

나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워 해머를 쥔 오른손을 가만히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그의 접근에 맞춰 보폭을 벌리며 자세를 취하는 한편, 미리 챙겨둔 아티팩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정말로 저항할 셈이야? 너,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아이구나?”

제니퍼 퀘이드는 내 반응이 놀랍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재학 또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정도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아무래도…….”

“과연 그럴까요?”

나는 그가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끼어들었다.

그게 퍽이나 거슬렸던 걸까.

“……그게 무슨 뜻이지?”

김재학은 걸음을 멈춰 세운 채 날카로운 어조로 나를 추궁해 왔다.

나는 주머니 속 아티팩트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아무런 대비조차 없이 이곳에 왔을까요? 판단은 각자의 자유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음, 조금 안타깝네요.”

“……뭐라고?”

“저는 당신의 정체는 물론이고, 저 뒤에 폼 잡고 있는 당신의 주인까지 아주 오래전부터 꿰뚫어 봤습니다. 그런 제가 과연 이 상황을 예상치 못했을까요?”

“너……!”

김재학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개를 홱 돌리더니, 제니퍼 퀘이드를 향해 통보하듯 말했다.

“……아무래도 손을 봐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 데려가 봤자 심기만 어지러워질 것 같으니까요.”

“좋을 대로 해.”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수긍했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아 참, 입은 멀쩡해야 한다? 그래야 예언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유념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제멋대로 내 처우에 관한 말을 늘어놨다.

그제야 김재학은 이전보다 한층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를 똑바로 주시하는 한편,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적당히 김재학을 상대하며 조금 더 시간을 버는 쪽으로…….’

김재학과 손을 섞으며 시간을 확보한다.

그 정도로 가닥을 잡으려는 찰나.

“한참 찾았잖아?”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유의 나른한 음색, 정체를 눈치챈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김재학 또한 곧장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그의 표정은 와락 구겨졌다.

“정말이지, 음침한 놈들 아니랄까 봐 하는 짓도 고약하기 짝이 없잖아?”

다름 아닌 오윤진.

가장 먼저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찾아온 것이다.

오윤진은 김재학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타닷-

가볍게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평소처럼 나른한 어조로 내게 물었다.

“어때, 딱 맞춰 왔지?”

“최고의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녀와 짤막하게 문답을 주고받을 무렵.

사방 곳곳에서부터 인기척이 발생했다.

진태진 교관과 고태식 교관은 물론.

연후와 연소소, 그리고 내 친구들.

마지막으로 신창백가와 대지의 혼 길드, 그리고 다섯 번째 진리 마탑에서 파견 나온 초인들까지.

‘다들 모였다.’

사전에 윤진호의 아티팩트를 받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들었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의 면면을 빠르게 훑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두 사람, 제니퍼 퀘이드와 김재학이 굳은 낯빛으로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제가 말했죠,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건방진 애송이가……!”

김재학은 적개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반면 제니퍼 퀘이드의 경우에는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러면 더 갖고 싶어지는데?”

진실로 재밌다는 듯,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그사이, 일련의 무리가 추가로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애송이, 아주 위험한 일을 벌였더구나.”

가장 먼저 A급 권사이자 ‘맹호’라는 이명을 가진 초인, 고태식 교관.

“생도의 섣부른 행동에 관한 문책은 모든 일이 끝나고 난 이후에 할 테니, 기억하고 있도록.”

B급 초인이자 현역 시절 ‘전장의 매’라 불리던 진태진 교관.

“제자야, 한바탕 날뛰어 보자꾸나.”

연씨세가의 2집사이자, 그림자 녀석의 스승인 연후.

그리고 연소소를 비롯한 내 친구들까지.

이를테면,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정예라 할 수 있는 초인들은 전부 내 곁으로 집결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균열 너머에 바글대는 몬스터 대군까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이는 곧 그만큼 내가 제니퍼 퀘이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신속하게 계획을 정리하는 한편.

‘그전에 먼저 그것부터 끝내야겠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판단 즉시 사람들을 향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제게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깐이면 충분합니다.”

그동안의 보호를 요청하는 한편, 곧바로 연소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연 당주님.”

“알겠어요. 저는 이미 준비됐어요.”

그녀는 이미 내 요청을 예상했다는 듯,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둘러 다가오는 연소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침내 1%를 채울 때가 왔다.’

동기화율 100%.

지금이 바로 최후의 퍼즐 조각을 맞춰야 할 순간이었다.

- 19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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