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새로운 미래의 밑거름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윤진호는 신중한 어조로 답했다.
정말로 아티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가늠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윤진호는 잠깐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몇 가지 질문을 건네왔다.
-혹시 기한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2주 안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꽤나 빠듯하네요.
살짝 난감한 기색을 보이는 윤진호.
그림자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성품을 달라거나, 이미 설계도가 존재하는 아티팩트를 제작해 달라는 것도 아니니.’
그림자가 요청한 건 기존에 없던, 말 그대로 새로운 아티팩트였다.
물론 용도나 작동 원리 등, 편린이나마 정보를 제공하긴 했다.
그럼에도 윤진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그림자는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한 요청을 드려 죄송합니다. 부담스러우시겠지만, 꼭 필요한 겁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물건인가요?
“세계의 명운이 걸린 결전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런……!
“윤 박사님의 아티팩트는 적의 허를 찌를 비장의 무기로 쓰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예상치 못한 스케일에 말문이 막혔는지, 윤진호는 꽤나 오랫동안 침묵했다.
수 분간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윤진호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해 볼게요, 어떻게든.
단호한 대답.
그로부터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이를 증명하듯.
-본격적으로 설계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지속 가능한 형태까지는 힘들 겁니다.
-다만 일회성이라면 어떻게든 가능성이 보이네요. 물론 조악한 퀄리티는 감안해야겠지요.
-수량은 어느 정도 필요하시죠? 일단 마나석의 재고는 넉넉합니다만…….
가능한 범위와 제한 등,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가늠해 봤다.
‘아티팩트의 효과가 지속 가능하다면 만일의 상황까지도 대비가 가능할 테니 더 좋겠지만…….’
일회성이어도 충분히 나쁘지 않았다.
결국 윤진호의 아티팩트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순간은 단 한 번, 침식 현상에 휘말렸을 때다.
‘발 빠르게 아군이 내 쪽으로 합류할 수 있다면.’
침식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림자는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윤진호에게 추가적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윤 박사님께서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으로 제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윤진과 연후부터, 친구들, 거기에 차후 협력을 요청할 교관들의 몫까지.
아티팩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피해는 줄고 성공 확률은 늘어날 터였다.
거기까지 설명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윤진호와의 대화를 일단락 낼 수 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중간중간 연락드리죠.
“네, 혹시 모르니까 오윤진 길드장에게도 말해 놓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연락 주세요.
그림자는 나직하게 대답하며 통화를 종료하는 한편.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다름 아닌 오윤진이었다.
-여보세요?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림자는 인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낙일이 움직이는 시점을 특정했습니다.”
-……자세히 말해 줘.
“전부 말씀드리죠. 우선…….”
그림자는 가장 먼저 김재학이 선전포고를 했다는 사실부터.
이에 대비하여 윤진호에게 아티팩트를 부탁했다는 부분까지.
그간의 자초지종과 더불어 대략적인 계획을 전부 오윤진에게 설명해 줬다.
모두 전해 들은 그녀의 첫 반응은 다름이 아니었다.
-……하, 기가 찰 노릇이네?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것이다.
단순히 황당함을 넘어 은은한 분노까지 느껴졌다.
다만 그녀는 감정에 매몰되는 대신, 냉철하게 설명해 준 내용을 곱씹었다.
-그나저나 위치 추적 아티팩트라……. 확실히, 인위적으로 침식 게이트를 발생시키는 녀석들의 수법을 고려하면 꼭 필요할지도.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였거든. 응, 분명 탁월한 선택이야.
오윤진은 탄성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녀 역시 위치 추적 아티팩트의 중요성을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용케 맹점을 꿰뚫어 봤네? 쉽지 않은 발상인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시기와 수법을 특정한 이상, 나머지는 별거 아니죠.”
-……태연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 줄래? 너만 그런 거야, 너만.
“아무튼 아티팩트만 확보하면 교관님들을 비롯한 아군들도 제때 집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최소한 밑지고 들어가진 않겠네.
오윤진은 납득했다는 듯,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내 그녀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곧바로 되물어왔다.
-그나저나 교관님들에겐 언제 알릴 생각이야?
“그들이 움직이기 직전, 그러니까 실습 전날에 전파할 생각입니다. 죄송하지만, 이 부분을…….
-내가 맡아 달라는 거지? 알겠어. 설득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해 볼게.
오윤진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원스레 받아들였다.
이에 그림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는 한편.
슬슬 오윤진과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또 연락하겠습니다.”
-알겠어. 나도 윤 박사님께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면 바로 연락할게.
그녀의 대답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다시금 적막이 찾아온 가운데, 그림자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걸로 굵직한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한 셈이니, 이제 남은 건…….’
연소소와 연후, 두 사람에게 마저 정보를 공유하는 것.
그리고 윤진호에게 아티팩트를 받는 것.
마지막으로.
‘흑막을 제거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기다림의 끝이 머지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그에게 주어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나의 최후가 새로운 미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오래전에 끝난 목숨.
얼마든지 내어주리라.
그림자는 다짐과 함께 스마트 워치를 들었다.
* * *
폭풍전야.
폭풍 전의 고요라는 말처럼, 2주라는 시간은 생각 외로 별 탈 없이 흘러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김재학 덕분이었다.
‘선전포고가 빈말이 아니었다, 이거지.’
그는 선전포고가 결코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실제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내게 투자할 수 있었고, 또다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 결과.
-근력 스텟 85
-민첩 스텟 86
-체력 스텟 84
-마력 스텟 115
실습까지 불과 3일 정도 남겨 뒀을 때 총합 370스텟, 마침내 S급을 달성했다.
드디어 제니퍼 퀘이드와 동일한 선상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제 막 S급을 달성하는 나와 그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겠지만.’
같은 경지에 들어선 만큼, 최소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확고한 믿음 아래 나는 다가올 최후의 결전을 대비하여 수련에 매진했다.
…
…
…
실습까지 불과 하루가 남았을 때.
오윤진은 약속대로 이번 실습에 파견되는 교관 및 조교들에게 낙일에 관한 정보를 전파했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진통을 겪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너뿐만 아니라 생도들의 안위가 걸린 문제이니 묵과할 수 없다지 뭐야?
예상대로, 교관으로서의 사명감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오윤진은 특히 진태진 교관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면서 사족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미 모든 걸 털어놓았는데, 가만히 물러날 수도 없잖아? 하는 수 없이 끈질기게 설득했지.
사안의 중차대함을 계속해서 강조한 건 물론.
심지어 그녀가 가진 능력과 내 능력을 바탕으로 위협하듯, 밀어붙인 모양이었다.
그 결과 간신히 납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즉,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교관들까지 무사히 아군으로 포섭한 것이다.
그녀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휴! 두 번은 못 할 짓인 것 같아. 아무튼, 이번 실습에 파견되는 인원들과의 조율도 대충 끝낸 상태야.
생도의 보호를 위해 외부에서 파견된 길드 및 가문의 인원들과 사전에 조율을 끝마쳐 둔 건 물론.
-거기다 윤 박사님께 아티팩트도 받았어. 수량은 기대에 살짝 못 미치지만, 이 정도면 네가 말한 계획 정도는 무리 없이 실현 가능할 거야.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아티팩트를 발명한 윤진호에게 물건을 건네받은 데다가, 수량 파악까지 끝낸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물건 전달도 내가 처리할게. 네 몫은 연씨세가 측에 미리 전달해 뒀으니, 오늘 밤에 수령하면 될 거야.
오윤진은 아티팩트를 필요한 인원들에게 전달하는 작업까지 도맡아서 처리했다.
상상 이상으로 유능한 그녀 덕분에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딱 한 가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재학에 관한 부분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그 녀석의 동향을 예의주시해 달라고 부탁했거든?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
지나치게 침묵하고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조교들뿐만 아니라 교관들도 그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어. 아예 작정하고 정보를 공유했으니까. 분명 이쯤 되면 상대방도 모를 리가 없잖아?
우리의 계획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는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김재학을 비롯한 낙일의 근거 없는 자신감뿐이었다.
오윤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이러니하지만, 일단 녀석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믿어 봐야지.
한숨과 함께 동의했다.
그 결과 우리는 다소 엉성한 근거에 기대는 대신, 최대한 김재학을 예의주시하는 거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마침내 실습 당일, 최종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 * *
다음 날, 아침.
실습 준비 때문인지, 평소보다 분주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실습과는 달리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이제는 대부분이 김재학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아카데미의 교관부터, 생존 교과를 위해 각종 단체에서 파견된 인원들까지.
적어도 실습에 참여하는 인원들은 전부 김재학의 정체를 꿰고 있는 까닭이었다.
물론 2학년 생도들까지 포함한다면, 비밀을 알고 있는 인원은 소수였다.
그럼에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건, 상황을 주도하는 교관들과 초인들 때문이었다.
‘……분명 최대한 티를 내지 않는 방향으로 사람들과 입을 맞춰 놨다고 들었는데.’
적어도 오윤진에게 듣기로는 그랬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교관이며 조교며 할 것 없이, 다들 김재학을 바짝 경계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생도들이 수상함을 느끼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저, 일한아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정도면 김재학이 중간에 도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준인데?”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들 중 몇몇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네왔다.
나 또한 정확히 같은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만큼,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예의주시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나?’
게이트에 들어설 때까지 김재학을 주시하는 것.
그게 최선인 듯싶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그가 표면적으로 A반의 부교관을 맡고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진 시야에 둘 수 있겠군.’
그 정도로 납득할 무렵.
“A반부터 준비된 차량에 탑승하도록.”
진태진 교관이 평소보다 배는 차가운 낯빛으로 탑승을 지시했다.
김재학은 그의 옆에서 뻔뻔하게 차량 탑승 및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 생각과 더불어 슬슬 분노가 치미는 가운데.
어느새 내가 탑승할 차례가 됐다.
나는 속으로 평정을 되뇌며 최대한 무표정을 고수했다.
그 상태로 김재학을 지나쳐 버스에 탑승하려는 순간.
“너무 티를 내는 거 아닌가?”
귓가에 한 줄기, 소름 끼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 193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