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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91화 (190/218)

191화 지금의 나라면

김재학의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제스처를 접한 후.

나는 곧바로 그림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

-……그러니 우선은 스텟 단련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일단 무슨 말인지 알겠어.’

완전한 해결책까진 아니어도, 대비에 관해선 어느 정도 일단락 낼 수 있었다.

우선 그림자의 경우, 김재학이 일을 벌였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하려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그런 식으로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스텟 단련에 매진하여 S급을 달성한다.

그게 바로 이번 대화의 결론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변하진 않았지만.’

낙일이 움직이는 시점을 특정했다고 해도 사실상 내가 할 일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계획의 핵심은 흑막을 제거하는 것.

즉, 제니퍼 퀘이드의 숨통을 끊는 것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S급을 달성하는 일은 그들의 움직임에 대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그 정도로 납득하고 녀석과의 대화를 마무리할 무렵.

“그럼 지금부터 수업을 진행하겠다.”

때마침 진태진 교관이 설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하나둘씩 시뮬레이션 룸 앞에 정렬하는 가운데.

슬슬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수업 내용 자체는 현 수준을 고려했을 때 크게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2주 후에 있을 실습.

김재학이 행동을 취할 때의 상황을 미리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썩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무극을 직접 활용해 볼 기회이기도 하고.’

어젯밤, 무극삼권은 마지막 초식 무극을 체득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무공이 됐다.

그걸 전체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싶었다.

기대감을 떠올릴 무렵.

“다음, 들어가도록.”

타이밍 좋게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이미 세팅이 되어 있는 덕분에 곧바로 가상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가상 전투 특유의 이질적인 감각 속에 주위의 풍경이 변모해 가는 가운데.

눈앞에 총 여섯에 달하는 적들이 나타났다.

‘분명 몬스터는 B급, 가상의 빌런은 C급이라 했었지?’

B급 몬스터가 넷, 그리고 빌런 역할로 등장한 C급 수준의 목각 인형이 둘이었다.

몬스터와 목각 인형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며 내 쪽으로 접근해 왔다.

‘과연, 이런 느낌인가?’

실전과 비교해 완벽히 동일하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될 듯싶었다.

나는 판단 즉시 녀석들의 움직임을 하나씩 갈무리하는 한편, 슬슬 전투 준비에 나섰다.

전투의 시작을 선고하듯, 나는 크게 한 발짝 내디뎠다.

쩌-엉!

무극삼권 제1초, 진천.

그 여파로 인해 C급에 해당하는 목각 인형들은 물론.

B급 몬스터들까지 단숨에 밀려났다.

‘이 정도면 천라만으로 다 때려눕힐 수 있겠는데……?’

피해를 가늠해 보니 이대로 가면 무극을 사용할 기회도 없을 듯싶었다.

즉, 위력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지금껏 내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왔음을 새삼스럽게 체감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코어의 출력을 조절했다.

그 상태로 두세 번 정도 진천을 펼친 끝에 딱 알맞은 수준의 출력을 찾을 수 있었다.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겠다, 나는 계속해서 무극삼권을 펼쳐 나갔다.

콰광! 콰과과광-!

시야를 뒤덮는 권격, 천라를 바탕으로 정면의 몬스터들을 거칠게 밀어붙였다.

그사이, 목각 인형들이 내 사각을 노리고 짓쳐들었다.

이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 대신.

‘적절한 타이밍이다.’

이때다 싶어 무극을 펼칠 준비에 나섰다.

무극은 두 주먹으로 펼치는 권법이 아닌, 권격만으로 상대를 타격하는 무공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한 번에 두 가지 초식을 펼칠 수 있는 셈이었다.

‘무극의 다양한 활용을 생각하면, 분명 그 이상의 효과가 나오겠지.’

권격의 제어하거나, 출력을 조절하는 건 이미 그림자 녀석 덕분에 완전히 몸에 익힌 상태였다.

그러니 내게 남은 건 몸이 기억하는 활용을 머리로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즉, 몸과 머리의 간극을 좁히는 일뿐이었다.

판단 즉시 무극을 녀석들의 머리 위로 쏟아냈다.

콰과과광-!

목각 인형들은 빗발치는 권격으로 인해 내 쪽으로 접근조차 못 한 채로 나가떨어졌다.

출력을 조절한 탓에 녀석들을 완전히 소멸시키진 못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 사실을 갈무리하는 한편, 속으로 한 가지를 가늠해 봤다.

‘만일 마법사를 상대로 무극을 활용한다면…….’

이를테면 오윤진.

그녀와의 대련에서 무극을 활용한다면?

더 이상 전처럼 마탄 세례에 휘둘릴 일은 없을 터였다.

효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극의 위력이 마나의 출력에 좌우되는 이상, 규모가 큰 마법조차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출력이나 범위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무극이 더 위력적일지도.’

무궁무진한 활용도.

그거야말로 무극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었다.

만족스럽게 결과물을 갈무리할 무렵.

스스스……

목각 인형들이 데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천라의 공세에 몸부림치던 몬스터들도 비슷한 타이밍에 소멸했다.

가상 전투의 끝을 알리듯, 시야가 본래대로 돌아오는 가운데.

나는 그간의 전투를 갈무리하며 생각했다.

‘역시 SS급 무공인가.’

진천과 천라, 그리고 무극.

세 가지 초식이 합쳐져 탄생한 SS급 권법, 무극삼권.

과연, 등급에 걸맞게 잠재력이 어마어마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제대로 위력을 확인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유의미한 데이터라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활용을 통해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S급 마법사 제니퍼 퀘이드,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초 진화와 초 재생, 거기에 완전해진 무극삼권까지.

게다가 체급, S급 달성 또한 머지않았다.

즉, 수단은 이미 충분하리만큼 갖춘 상태였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이를 활용하여 제니퍼 퀘이드와 맞서는 것뿐.’

나는 각오를 다지며 시뮬레이션 룸을 빠져나왔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99%]

-[????의 그림자]가 연륜에 따른 분별력과 미래시(未來視)가 담긴 기억, 그리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림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억을 더듬었다.

머릿속으로 할 일의 우선순위를 헤아리는 것이다.

‘그것부터 처리하는 게 맞겠지.’

김재학의 움직임에 대비하는 것.

이를 위해선 약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가닥을 잡은 즉시 그림자는 스마트 워치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연결음 끝에 스마트 워치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한 군?

상대는 다름 아닌 윤설하의 아버지, 윤진호였다.

그림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윤 박사님,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덕분에 별 탈 없이 지냈어요. 듣기로는 만일을 대비해 사람을 붙여 주셨다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일한 군. 저뿐만 아니라 딸아이까지 항상 챙겨 주고 있다는 걸 알아요.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고마워요.

진심으로 그렇다는 듯, 윤진호는 한없이 진지한 어조로 감사를 표했다.

그림자는 묵묵히 수긍하는 한편, 천천히 본론을 꺼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윤 박사님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문제가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협력할게요. 무슨 일이죠?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아티팩트.

정확히는 낙일의 수법, 인위적으로 침식 현상을 유발하는 효과에 대응하기 위한 아티팩트가 필요했다.

대비책을 세우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윤진호에게 연락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실제로 윤 박사님의 연구 분야가 이쪽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초인이 쓰는 아티팩트라면 제 전문이긴 한데, 필요한 물건이 있나요?

윤진호는 반색하며 적극적으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부탁이라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이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생각해 둔 바를 입에 담았다.

“아직까지 발명되지 않은 아티팩트입니다.”

-……아직 발명되지 않은 아티팩트요?“네.”

-그게 대체 무슨…….

윤진호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듯, 의아한 기색으로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림자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혹스러울 만도 하겠지.’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아티팩트를 만들어 달라니.

분명 어처구니없는 부탁인 건 사실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윤진호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훗날 윤 박사님께서 직접 발명하게 될 아티팩트니까.’

이전 생에서 본격적으로 낙일이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그들은 주로 인위적으로 침식 게이트를 만들어 혼란을 일으켰다.

이에 따른 피해는 막심했다.

단순히 몬스터의 침공에 따른 일반인뿐만 아니라 침식에 맞서는 초인들의 피해까지도 그랬다.

원인은 명확했다.

‘침식 게이트 속에서는 스마트 워치로 연락할 수 없을뿐더러, 상대방의 마나조차 읽을 수 없으니까.’

인명을 구조하거나, 침식으로 강화된 몬스터 무리를 상대해야 하는 등.

침식 게이트 속에서는 초인들간의 협력이 필수였다.

하지만 침식 게이트 특유의 불안정한 마나 환경 때문에 서로 간에 연락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대처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윤진호가 발명한 아티팩트가 빛을 발했다.

‘침식 게이트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을뿐더러, 침식 현상 자체도 추적이 가능했으니.’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시켰던 건 물론, 침식을 발빠르게 추적하여 피해를 원천봉쇄하기도 했다.

즉, 낙일의 수법에 대항하기에 필수 불가결한 아티팩트인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생에 비하면 시기가 크게 앞당겨졌지만.’

단지 그뿐으로, 지금까지 낙일이 보인 행적을 고려하면 수법 자체는 동일할 가능성이 굉장히 컸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역시 윤진호가 만든 아티팩트가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다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훗날 윤 박사님의 손에서 탄생하는 아티팩트입니다.”

-제 손에서 탄생한다는 말은…….

“네. 윤 박사님이 차후 발명할 아티팩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제야 윤진호는 이해한 듯,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이해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여전히 납득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윤진호는 바로 거절하는 대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송구스럽지만, 제가 아는 건 아티팩트의 용도와 작동 원리 정도입니다.”

-그거라도 숙지하고 있다면 가능성이 더 올라갈 수도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그림자는 기억을 더듬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윤진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침식 현상을 추적하는 용도는 현 수준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할 겁니다.

단정적인 어조.

하지만 윤진호의 대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만 아티팩트에 마나를 보존하고, 저장된 마나를 읽어내는 효과 정도라면…….

“가능할까요?”

-확답은 어렵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네요.

윤진호의 대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침식 현상을 추적하는 건 현재 기술력으로 무리다.

하지만 침식 게이트 내부에서 마나를 추적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잠깐 생각한 끝에 그림자는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애초에 그가 생각한 대비책의 핵심은 게이트 내부에서의 연락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시점에서 낙일이 움직이는 이유는 철저히 예언자를 확보하는 데 있으니까.’

지금 낙일이 움직이려는 이유는 딱 하나, 안일한 때문이었다.

침식 현상 또한 당연히 예언자를 납치하기 위해 일으킬 터였다.

즉, 목표가 뚜렷하니 추가적으로 침식 현상을 추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침식 게이트 내부에서의 연락 및 추적 수단만 확보할 수 있다면…….’

보다 신속하게 낙일의 공세에 대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림자는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 19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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