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좋아, 어디 한번 어울려 주지
-쓸모가 많겠어.
김재학의 노골적인 발언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의 말은 곧 나를 이미 ‘예언자’로 단정 짓고 있다는 뜻과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반사적으로 코어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쿠구구궁-!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기파.
이는 김재학이 펼친 ‘성휘의 화신’의 출력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는지.
타닷-
김재학은 곧바로 내게서 간격을 벌리는 한편.
별안간 표정을 뒤바꾸며 소리쳤다.
“대단한 역량이로군!”
눈빛, 표정, 그리고 말투까지.
오싹함마저 느껴지던 조금 전과는 명백하게 다른 기색이었다.
낙일의 사도라는 정체를 숨기고, 다시금 부교관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쓴 것이다.
상당히 당혹스러운 나와는 달리, 김재학은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보아하니 여력은 충분히 남아 있는 모양이로군. 그럼 다시 가 보도록 할까?”
도발적인 발언.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그제야 김재학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아직도 떠보고 있는 거였나…….’
지난번 일대일 피드백을 진행할 당시.
김재학은 내 정체에 관해 99%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나머지 1%를 추궁했으나, 실패했다.
그걸 지금 이 자리에서 채우려는 모양이었다.
즉, 김재학에게 있어 지금 대련은 그때의 연장선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군.’
상대가 대련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아서 그런지, 짙은 혐오감이 밀려왔다.
화가 치밀었으나,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의도를 알게 된 이상, 대처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상대의 의도를 헤아릴 수 없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두려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도발하는 것 자체가 상대의 조급함을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즉, 여전히 칼자루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셈이었다.
‘좋아, 어디 한번 어울려 주지.’
나는 판단 즉시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갔다.
김재학 또한 내 접근에 맞서 워 해머를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그 상태로 간격이 충분히 좁혀졌을 때. 나는 최대 출력으로 진각을 밟았다.
쩌엉-!
폭발적인 기세로 뻗어 나가는 기파.
이에 김재학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던 천사의 형상이 일순간 뒤흔들렸다.
분명 미미한 효과였다.
그렇다고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저 철옹성 같은 스킬도 뚫을 수 있다.’
무려 ‘초 진화’를 바탕으로 한 내 출력과 동수를 이뤘던 스킬, ‘성휘의 화신’.
그만큼 두터운 스킬조차 압도적인 화력 앞에선 의미를 잃는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취할 전략은 간단했다.
‘힘이 다 떨어지면 더 이상 허튼소리를 늘어놓지 못하겠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
지극히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전략 아래, 나는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반면 상대인 김재학은 비교적 여유롭게 응수하는 것과 동시에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네가 여명의 수장이라면, 나를 상대하는 건 다소 격이 안 맞을지도 모르겠군. 지위를 놓고 봤을 때 말이야.”
“머지않아 그분을 뵙게 해 주지. 너라면 자격이 충분하니까.”
“꽤나 공격적이로군. 내 말에 발끈하기라도 한 건가?”
한층 더 노골적으로 나를 자극하고, 도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대방의 의도를 알면서도 휘둘릴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은 까닭이었다.
오히려 도발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김재학의 조급함이 피부에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생각 이상으로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 물론.
“그것보다 점점 약해지시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요?”
도리어 되받아치기까지 했다.
이에 김재학은 표정을 살짝 굳힌 채로 입을 열었다.
“……설마 아니라고 발뺌할 셈인가? 이제 와서?”
“그런 기억은 없습니다만.”
“나를 향한 그 적의, 적개심. 상당히 노골적이라 생각하진 않나?”
“대련은 언제나 실전처럼, 저는 그렇게 배워서요.”
김재학을 상대로 단 한마디도 지지 않은 건 물론.
콰앙! 쾅! 콰광!
코어의 출력을 가일층 끌어올리며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김재학의 표정은 급속도로 굳어져 갔다.
뿐만 아니라 그의 보호하던 성휘의 화신도 눈에 띄게 약화된 상태였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이때다 싶어 순간적으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그 결과.
콰직-!
굳건하던 천사의 형상에 큼직한 균열이 일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완전히 파괴할 작정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빗발치는 권격 속에 김재학의 안색은 급속도로 파리해졌다.
마침내.
쩌저저저저적-!
천사의 형상이 무너져 내렸다.
김재학의 절예, 성휘의 화신을 정면에서 박살 내 버린 것이다.
“……크, 윽!”
김재학은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호신마저 무너져 내린 까닭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됐다.
이대로 부숴 버릴까 하는 유혹이 치밀었으나.
우뚝-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주먹을 멈춰 세웠다.
“…….”
“…….”
말 없이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초.
나는 꽉 쥔 주먹을 천천히 펴면서 김재학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짤막하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교관님.”
“…….”
김재학은 한동안 나를 말 없이 바라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 손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수고 많았다.”
김재학과의 짤막한 문답과 더불어 악수를 끝마칠 무렵.
딩동댕동-
때마침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진태진 교관은 생도들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다들 10분 휴식 후 다시 집합하도록.”
하나둘씩 움직이는 가운데.
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조금 열이 뻗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초 진화’ 스킬의 효과를 체감했다는 점이나, 김재학의 역량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특히 성휘의 화신까지 꺼내든 그를 제압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꽤나 컸다.
‘김재학이 혼자서 움직이는 이상, 적어도 내가 당할 일은 없겠군.’
그의 힘만으론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내게 안정감과 더불어 자신감을 심어 줬다.
‘물론 김재학은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이대로 정진한다면 틀림없이 낙일의 뿌리나 다름없는 제니퍼 퀘이드에게도 닿을 수 있을 터였다.
나는 확신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었다.
* * *
비슷한 시각.
‘……정말이지.’
김재학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는 조금 전, 안일한과 벌였던 대련이 남긴 여파였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수준이군.’
비록 가면이긴 해도 김재학은 A급 초인이자, 명실상부 수호자 길드의 간부였다.
일선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를 상대로 일개 생도가 동수를 이뤘다.
그것도 모자라 안일한은 심지어 자신을 제압하기까지 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난번 일대일 피드백 때와 비교해도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했지.’
불과 며칠도 안 돼서 마나 출력의 ‘격’이 달라졌다.
그건 날고 긴다는 천재들에게도 불가능한 기예였다.
즉, 안일한의 성장 속도는 이미 불가해의 영역에 들어선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역으로 김재학은 확신했다.
‘더 이상의 증거는 필요 없다. 그 녀석이 여명의 수장, 예언자가 틀림없어.’
안일한이야말로 그의 주인이 애타게 찾던 ‘예언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을 굳힌 김재학은 묘한 미소와 함께 생각했다.
‘슬슬 보고를 드려야겠군.’
더 이상의 탐색은 불필요했다.
이제는 슬슬 움직여야 할 때였다.
…
…
…
방과 후.
“오늘은 들러야 할 곳이 있으니, 따로 귀가하는 거로 하지.”
김재학은 팀원들을 먼저 보낸 후, 운전석에 탑승했다.
보통은 그 대신 수하가 차를 몰아주는 만큼, 직접 운전하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직접 운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간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출발과 함께 연락을 취하려는 찰나.
“음?”
김재학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정확히는 주차장 이곳저곳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에 잠시 통화를 미뤄 둔 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한동안 도로 위를 달리며 국도에 들어설 무렵.
그제야 김재학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미행하고 있군.’
최소 세 개의 차가 그를 미행하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느꼈던 시선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자택 근처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확인한 김재학은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정체를 들켰나.’
못 알아차리는 게 이상할 정도로 상대의 미행은 노골적이었다.
수호자 길드의 간부라는 가면 너머의 정체, 누군가가 그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김재학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예언자만 해도 거의 처음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니까.’
즉, 정체를 들켰다는 사실 자체는 현 상황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김재학은 생각의 방향을 조금 달리했다.
‘오윤진? 아니면 연씨세가? 녀석들도 아니라면…….’
미행하는 상대방의 정체, 혹은 미행을 사주한 이들에게 방점을 두고 생각을 거듭했다.
동시에 그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언제든 몸을 빼낼 준비를 한 채로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저벅저벅-
건물에 들어설 때까지도 상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소 예상과는 다른 흐름에 김재학은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감시가 목적인가?’
만일 그렇다면 현 상황이 이해가 됐다.
집에 도착한 그는 창문을 통해 감시하는 인원들을 확인했다.
최소 세 팀이나 그의 집을 주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정체를 확신하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의심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건가?’
정체를 확신했다면 분명 감시가 아니라 그를 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절 움직일 생각 없이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점점 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우선 보고부터 해야겠군.’
일단 보고부터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판단 즉시 김재학은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혹시 모를 도청에 대비해 마나로 소리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김재학은 어느 정도 방비를 끝마치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래지 않아 스마트 워치로부터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오, 재학. 당신이 전화를 걸다니 별일이네?
상대는 다름 아닌 낙일의 수장, 제니퍼 퀘이드였다.
통역 아티팩트의 여파 때문인지, 목소리가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김재학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예언자를 찾았습니다.”
-……역시 유능하잖아? 그래서?
“본래라면 바로 움직이려 했으나, 상황이 다소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묘하다?
“네. 감시가 붙었습니다.”
-……재미있네? 정체를 들킨 건가?
“그래서 애매합니다. 단지 감시에 불과할 뿐,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으니까요.”
-호오……,
제니퍼 퀘이드는 흥미롭다는 듯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는 한편, 질문을 이어 나갔다.
-어떤 상황에서든 몸은 빼낼 수 있잖아? 그럼 감시와 무관하게 예언자만 빼낼 수 있는 거 아니야?
“탈출은 자신 있습니다만, 예언자를 납치하는 일은 제힘만으론 불가능합니다.”
-……뭐라고?
“녀석의 역량은 이미 저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단순히 대상을 납치하는 전략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겁니다.”
예언자의 역량이 자신을 뛰어넘었다.
김재학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하자 제니퍼 퀘이드는 또다시 탄성을 쏟아냈다.
-당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건, 내가 나설 차례라는 건가?
“네, 도움이 필요합니다.”
김재학의 즉답에 제니퍼 퀘이드는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그녀는 시원스럽게 원하는 대답을 돌려줬다.
-좋아, 내가 직접 움직이도록 하지. 다만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그동안 적절한 시기를 생각해 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 드리죠.”
김재학은 통화를 종료하는 한편.
곧바로 제니퍼 퀘이드의 지시에 따라 기억을 더듬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그때가 좋겠군.’
최적의 타이밍을 떠올렸다.
- 190화에 계속 -